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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성경강해

[성경강해] (눅 2:8~11) 기쁘다 구주 오셨네 (요약편)

by 이서영 목사 2022. 12. 25.

[성경강해] (눅 2:8~11)  기쁘다 구주 오셨네 (요약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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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기쁘다 구주 오셨네-요약편.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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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집을 장만하거나 승진하거나 입학하거나 병이 낫거나 장사가 잘 되거나 취업했다거나 경제 사정이 좋아졌거나 하는 등의 소식에 민감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구주는 무엇이 되겠습니까? 죄를 사해주시고 구원해 주시려고 오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이 그들의 구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죄 문제를 해결 받고 귀신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영생복락을 누립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우리 죄를 사하러 오신 구주 예수께서 오셨으니 우리 모두 찬양하며 기쁘게 맞이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구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오늘은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죄를 사하러 오신 구주 예수님은 귀하십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잘 되고 건강하고 세상 복을 많이 받아도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선 잘 사는가 싶어도 죄를 해결 받지 못하므로 영원 형벌에 처하게 됩니다. 결코 잘 살거나 영생복락을 누릴 수 없습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뻐하고 있습니까? 우리를 잘 되게 하는 그 무엇인가를 기뻐하고 있습니까? 그러한 소식이 복음이요 기쁜 소식입니까?
•현실에 있어서 필요한 의식주 등은 우리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은 맞습니다. 없으면 살아가는 데 불편을 많이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풍성할수록 좋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궁극적인 것도 아닙니다. 현실의 생활도 중요하지만 영생, 즉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삶이 더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비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네 가지 땅에 떨어진 비유 가운데 돌밭에 떨어진 두 번째와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세 번째를 살펴 보겠습니다.
•두 번째 유형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지만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세 번째 유형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어려운 환난이나 박해를 잘 이겨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단계인 현실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앞에는 맥을 추지 못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염려가 얼마나 큰 죄악에 해당하는지 모릅니다. 죄라고 꼬집어 말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죄와 동등하게 취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누가복음에서 찾아보면 8장 14절에서 세 번째 유형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현실의 염려가 향락과 동등하게 취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술 취하고 방탕하고 음란하고 호색하는 것만 죄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생활의 염려도 그와 동등한 죄로 다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1장 34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방탕함과 술취함과 동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생활의 염려라는 것입니다.
•현실의 문제가 크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염려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실의 일시적인 것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아 순간적인 기쁨만 줄 뿐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생활여건이 좀 더 좋아지면 기뻐하리라.’ 그러나 언제 그런 날이 오겠습니까? 끝도 없습니다. 육신의 것은 만족이 없습니다.
•물을 먹으면 밥이 먹고 싶고 밥을 먹으면 고기를 먹고 싶어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그러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사를 잘 대변해줍니다.
•우리는 무엇에 대해 기뻐하겠습니까? 집이 한 채 생겼다고 하면 좋겠습니까? 좋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 만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이 우리의 구주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것이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을 마련해주지 못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해주시고 영원한 집을 마련해주시는 분은 오직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마음에 근심 걱정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살 집을 준비해 주시고 다 준비되면 데리러 오시겠다는 것입니다. 근본 해결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이와 같으므로 우리는 현실의 벽을 뛰어 넘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참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현실에 소유하지 못한 것이 많이 있으나 없어도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현실보다 구주 예수님이 더 귀하게 여겨지고 그러한 깨달음이 오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선하신 예수님, 좋은 곳으로 인도해주시는 신실하신 예수님, 그러하신 예수님을 믿고 바라볼 때 커다란 기쁨이 우리 안에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기쁨이 찬양으로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사람은 구주가 인간적인 것들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구주 예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적인 일을 하는데 있어서 피해를 주니까 떠나 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구주가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구주시라는 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구주 예수님 뿐이심을 알고 더욱 갈망하고 더욱 의지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입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이 소식은 천사가 목자들에게 와서 전해 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구주가 나신 것은 모든 만민에게 커다란 기쁨입니다. 구원해 주신다는 소식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구주로서 때론 음식과 병고침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보다 더 큰 영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삶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의 구주 예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러한 기쁜 소식을 듣고 있고 그러하신 예수님을 향해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 마음과 가정과 사회와 학교와 나라와 심지어 교회에 까지 들어와서 파괴행위를 서슴치 않습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파괴적입니다. 죽이고 빼앗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처럼 마귀는 생명도 풍성함도 마음도 가정도 나라도 그 무엇도 빼앗아가고 죽이고 파괴시켜 버립니다.
•마귀는 서로 다투게 만들고 분열시키고 미워하게 만듭니다. 화를 당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기쁨을 빼앗아가는 대신에 슬픔을 주기도 합니다. 안식을 거두어 가는 대신에 불안을 줍니다. 감사 대신에 원망불평을 심습니다.
•이러므로 마귀가 오면 좋아질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할 수만 있다면 좋은 것을 주시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서 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로서 하시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마귀를 멸하시는 것입니다.
•마귀를 그냥 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마귀를 멸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입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이처럼 예수님은 마귀를 멸하시려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기쁘다 구주 오셨네”인 것입니다.
•마귀가 설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의 구주 역할을 다하고 계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셔서 우리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에게 영생과 풍성함을 주시고 마귀를 멸해 주셔서 우리를 구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러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진실로 그러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11절을 보면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소식은 천사가 밤에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전해 준 소식입니다.
•그런데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그 당시에만 그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금의 나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는 소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하신 예수님께서 실제적으로 나의 구주가 되셔서 이 땅에 사는 동안 현실의 필요를 해결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나와 주위 사람을 분열시키고 나를 괴롭히고 슬프게 만드는 마귀를 멸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 무엇보다도 구주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깨끗이 받아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셔서 예수님이 나를 실제적으로 구원해 주신 나의 구주 예수님으로 깊이 체험하시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찬송이 마음 가운데 더욱 더 진실하게 울려 나오시는 성탄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 오늘 말씀드린 것은 2022 3 30일자로 로고스성경연구소 성경강해 게시판에 “[성경강해] ( 2:8-14)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제목으로 게시한 것을 요약하여 올린 것입니다. (https://logosbibleinstitute.tistory.com/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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