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10일 새 생명 축제 예배 (요약 자료)
성도에게 있어서 설날은?(요 6:3-4)
설날, 주님의 은혜로 기쁘고 즐거운 설날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요즘 레알 시리즈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에게 있어서 설날은?” “구원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
솔로몬 왕은 쾌락을 즐기면 기쁘고 행복해질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어마어마한 재산과 권력으로 시험 삼아 다 해 봤습니다. 그 결과는 허무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영혼은 육신의 쾌락으로 즐겁게 해줄 수 없습니다. 우리 영혼은 구원을 받아야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그러한 성도의 상태와 특징을 잘 말해줍니다. 예수님을 못 보아도 사랑하고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지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9).
다윗이 죄를 범하고 난 이후에 기쁨이 사라지고 즐거움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참회하면서 구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입니까?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시 51:12). 성도의 영혼은 구원을 받으면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됩니다. 이 즐거움과 기쁨을 회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설날과 유대인의 설날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조선시대 풍속을 보면, 이 날 사당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 하고, 아이들이 입는 새 옷을 세장(歲粧)이라고 하며 어른들을 찾아뵙는 일을 세배라 합니다. 이 날 대접하는 음식을 세찬(歲饌)이라고 합니다. 세찬으로는 떡국[餠湯]을 먹습니다. 한편 사돈집 사이에는 부인들이 근친하는 뜻으로 하녀를 서로 보내어 새해 문안을 드리는데, 이 하녀를 문안비(問安婢)라 합니다.
설날 꼭두새벽에 거리에 나가 맨 처음 들려오는 소리로 1년간의 길흉을 점치는데, 이를 청참(聽讖)이라 합니다. 또한 나무에 금·목·수·화·토를 새겨 장기쪽같이 만들어 이것을 던져서 자빠지고 엎어진 것을 보아 점괘를 얻어 새해의 신수를 점치는데, 이를 오행점(五行占)이라 합니다.
유대인의 새해는 유월절(Passover)입니다. 애굽에 아홉 가지 재앙을 내린 후 마지막 재앙이 내렸습니다. 사람이든 가축이든 처음 난 것은 모두 죽는 재앙입니다. 이 재앙이 내리기 전에 이스라엘백성에게 유월절 행사를 하도록 했습니다. 각 가족의 수대로 어린양을 잡고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면 그 피를 볼 때에 재앙이 넘어가도록 했습니다. 잡은 양을 먹고 누룩이 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시행되는 시점부터 새해가 시작하도록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2장 2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이스라엘의 새해는 이렇게 어린양의 피로 재앙이 넘어가는 유월절부터 시작합니다.
이처럼 우리 설날과 유대인의 설날은 그 의미가 많이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언뜻 보아도 재앙을 벗어나는 방식이 크게 다릅니다. 귀신을 달래서 재앙을 피하는 방식과 어린양 예수님의 피로 재앙을 피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우상을 섬기고 제사하는 것과 참 신이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다릅니다.
귀신은 조상을 가장해서 자기를 섬기도록 합니다. 조상을 잘 섬기니 잘 되더라는 헛 소문이 나게 만듭니다. 한 가지는 잘 되게 해주고는 아홉 가지는 다 빼앗아 갑니다. 그러면서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지 말게 훼방합니다. 진짜 복을 받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마귀가 오는 것은 죽이고 빼앗는 도둑으로 오지만 자신은 선한 목자로 생명을 주되 더 풍성함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재앙에서 벗어나 진실로 잘 되게 하십니다.
음식 또한 크게 다릅니다. 이렇게 크게 다른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설날 떡국을 먹습니다. 그것을 차례 지낼때도 올립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설날인 유월절은 다릅니다.
‘세데르’라는 여섯 가지의 특별한 음식을 차립니다. 노예 때를 기억하고 해방 받은 것을 기념합니다. 소금물은 노예 때 흘린 눈물, 쓴 나물은 노예 생활의 고역, 으깬 음식은 진흙으로 벽돌을 굽던 노예 생활, 정강이뼈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 상추는 싱싱한 생명을 얻은 기쁨과 축복, 구운 계란은 희생 제물을 뜻합니다. 그리고 ‘마짜’라는 무교병을 차립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을 기억하는 것이 다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설날은요?
설날도 기쁘게 보내고, 아울러 성도의 진짜 설날인 유월절의 의미도 기억하고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5장 7절 “너희는 누룩이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성도는 유월절 어린양 예수의 피로 구원받고 새 사람 되어 새 생활하는 사람입니다. 설날의 기쁨은 세배 돈이 아니라 내 영혼이 구원받은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만의 명절이 아닙니다. 우리의 명절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예수의 피로 영적 이스라엘, 영적 유대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두 가지의 시민권이 있습니다.
성도는 두 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주민으로 등록되어 있고, 천국의 시민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등록되어 있지 않으면 큰 일 입니다. 없으면 지옥에 들어갑니다. 빌립보서 3장 19절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절 합독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러므로 꼭 예수님을 꼭 믿으셔서 천국 시민으로 꼭 등록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진짜 소속은 하늘에 있는 시민입니다. 한 몸이지만 실제로는 두 나라의 살림을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부모로부터 태어나 대한민국 국민으로 땅에 살고 있고,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성령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거듭나 하나님 아버지 나라의 국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설날도 두 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땅의 우리 설날과 하늘나라의 유월절 설날도 보내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렇게 땅에서 살기도 하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의 신분이 그렇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살기도 해야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도는 성경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성경 말씀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하늘나라 시민은 성경을 붙잡고 지키면서 행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설날을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두 가지의 시민으로 보내야 합니다. 하늘의 시민권도 가지고 있음을 기억하면서 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가족과 이웃과 함께 기쁘고 즐거운 설날을 보내고, 아울러 어린양 예수의 유월절의 의미를 기억하면서 보내야 합니다. 내 영혼의 설날도 잘 챙겨야 합니다.
우리를 쓰디쓴 마귀의 종노릇에서 구속해주시고 구원해주신 것 깊이 감사드리면서. 어린 양 예수의 피로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는 것, 모든 저주와 악과 연약함과 부정적인 것, 가난과 비천, 미움과 다툼, 온갖 좋지 않은 생각과 잘 되지 못하게 하는 말과 행동과 환경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것, 특히 마귀에게 잡혀 지옥가지 않고 마귀에서 해방되어 예수님의 손에 잡혀 천국에 가는 것 감사하면서 보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린양 예수의 피로 인한 내 영혼의 설날을 실제적인 설날로 잘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월절 어린양 예수의 피로 모든 묶여 있는 것에서 풀려나고 모든 눌린 것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셔서 유월절 어린양 예수의 피로 구원받고 축복받고 문제 해결 받고 새 힘을 얻어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설날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설날인데도 바쁜 일도 만사도 제쳐놓고, 제사도 지내지 않고, 가족들 만나는 시간도 잠시 제쳐놓고 이렇게 하나님께 먼저 예배드리러 오신 여러분께 어린양 예수의 크신 위로와 권세와 능력과 축복과 은혜가 차고 넘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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