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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기타설교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 (고전 3:1-9)

by 이서영 목사 2015. 7. 17.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

(고린도전서 3:1-9  이서영 설교자료)

 

   사도 바울은 글로에의 집으로부터 고린도 교회의 내부에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1:11).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역자에 따라 파를 나누었습니다. 그 당시는 거짓 교사들과 맞서서 진리를 지키기 위해 하나로 화합해도 부족한 때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교회 안에서 분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장 10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권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하나가 되기를 권면한 다음에 1장 18절부터 2장 16절까지 하나님의 지혜이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집중적으로 강조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강조한 다음에 고린도 교회의 분쟁에 관해 계속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본문 3장 1절부터 9절까지 사역자의 인맥에 따라 시기하고 분쟁하는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교훈을 통해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깨우쳐주었습니다.

 

1. 시기와 분쟁의 원인은 영적 미성숙입니다(1-4절).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시기하고 분쟁하였던 원인은 육신에 속한 상태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1절을 시작하면서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육신에 속해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들의 행동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행동과 비교해 볼 때 미성숙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에 속해 있지만 마치 육에 속한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적 어린아이들은 자연인의 본성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주위에 있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였습니다. 그 증거로 그들은 어린아이들처럼 서로 시기하고 분쟁하였습니다.

 

   본문 2절과 3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육신’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로는 ‘사르키코스(sarkikov")’라는 말인데 ‘육체’ 혹은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의미하는 ‘사르크스(savrx)’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의 마음 자세가 세속적이었으며, 따라서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망에 지배를 받고 있었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시기와 분쟁이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분명히 신자였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미성숙한 신자였습니다.

 

   미국의 플로리다에 있는 개혁신학교의 구약학 교수인 리차드 프랫 주니어(Richard  L. Pratt, Jr.)는 그들의 상태를 말하면서“그들은 여전히 불신자들처럼 행하며 육신에 속해 있다. 불신자들의 경우에는 성령을 소유하지 않고 있다는 핑계거리가 있었지만, 고린도 교인들은 성령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신자들처럼 행동했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들을 본문 4절에서 ‘육의 사람’으로 불렀지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어서 구원을 받지 못할 사람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행동이 육에 속한 불신자들처럼 시기하고 분쟁하고 있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현대 교회의 교인들도 고린도 교회가 빠졌던 동일한 생각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아볼로맨이나 바울맨이라고 하는 말이 오늘날 원로목사맨이나 위임목사맨, 아니면 담임목사맨과 부목사맨, 아니면 목사맨과 장로맨이라고 하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를 잘 따르는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차적으로 해야 할 일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인도자를 잘 존중하고 잘 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하여 시기와 분쟁에 빠지지 않는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십시다.

 

2. 성장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5-7절).

 

   사도 바울은 신자들의 심령 속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개척을 담당하였습니다. 구원의 메시지를 가져다 준 최초의 인물이자 고린도 교회의 설립자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볼로는 물을 주는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다시 말해 신자들이 믿음 안에서 더욱 강건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일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교회를 세운 인물이었다면 아볼로는 그 기초 위에 더욱 튼튼한 건물을 세운 인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아볼로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들을 감당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교회의 사역자들은 본문 5절과 같이 ‘주님께서 각각 주신 대로’ 자신들의 책임을 수행합니다. 그리하여 바울과 아볼로, 두 사람 모두 주님께서 각각 주신 맡은 바 임무를 감당했습니다. 본문 6절과 7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복음을 전해 ‘씨’를 심었다고 비유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씨를 뿌렸고 아볼로는 그 위에 물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아볼로는 사도 바울이 심은 씨에 ‘물’을 주었습니다.

 

  본문 6절에 ‘자라나게 하셨나니’로 번역된 ‘에윅사넨(hu[xanen)’은 ‘늘리다’, ‘증가하다’라는 뜻을 지닌 ‘아욱사노(aujxavnw)’의 미완료형입니다. 심고 물을 준 두 동사가 과거형인 반면에 이 단어는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미완료형으로 쓰였습니다. 그렇게 쓴 의미는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 지금도 계속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 자신과 아볼로의 고린도 교회의 사역은 일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은 지금도 계속된다는 것을 강조하여 고린도 교회의 복음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농사를 지을 때 씨를 심는 것과 물을 주는 것은 식물의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적 조건이 아닙니다.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의 씨앗’이 자라나게 한 것은 그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만이 그 씨앗을 통해 열매를 맺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에서 사역자들의 행위 역시 성도들의 구원에 있어 절대적 조건이 아닙니다. 농사에 있어서나 교회 사역에 있어서나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성장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본다면 바울과 아볼로뿐만 아니라 오늘날 수고하는 교회의 모든 사역자들도 하나님의 돕는 일꾼입니다. 사역자는 주도적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따라 분업하여 돕는 일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성장의 주체가 되시는 것을 잘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러면서 앞에서 이끌어주시는 인도자를 잘 따르고 잘 협력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하여 시기와 분쟁에 빠지지 않는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십시다.

 

3. 화합하여 동역하면 상을 받습니다(8-9절).

 

   본문 8절과 9절을 보면, 씨 뿌리는 사람과 물 주는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성장하게 하여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가 ‘하나님의 동역자’인 것을 밝힙니다. 그들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는 그들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밭’이었습니다. ‘밭’과 ‘건물’이란 단어는 분열된 교회가 아니라 하나로 일치된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역자들이 각각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한 팀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습니다. ‘상(misqov")’은 13절이나 4장 5절의 문맥을 고려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 재림 이후 마지막 날에 주실 상급을 말합니다. 사람은 그 시대, 그 공간에서 사역하면 끝이 납니다. 무한하지 못하고 일시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돌보시고 성장시키십니다. 교회 성장의 주체이신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수고를 필요한 때마다 모두 갚아주십니다. 서로 화합하여 심는 일과 물주는 일로 회를 세우고 성장시킨 동역의 성과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하시고 보상하십니다.

 

   그러나 자칫하면 교회의 성장이 사람의 수고로 되는 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물을 준다고 해서 곡식이 자라나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농부의 수고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지만 제대로 자라서 열매를 맺으려면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려야 합니다. 적절한 태양 빛도 필요합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밭인 성도가 있어야 하고, 농사꾼인 사역자들도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 없이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성장의 결과를 자신의 수고와 공로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대로 섬기고 동역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사역에 대해 교만도, 낙심도 하지 맙시다. 시기도, 분쟁도 하지 맙시다. 우리 모두는 동역자입니다. 함께 농사를 짓고, 함께 건물을 건축하는 동역자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서로 잘 화합하여 하나님의 밭을 가꾸어나가고 하나님의 집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공정하게 상을 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하여 시기와 분쟁에 빠지지 않는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십시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시기와 분쟁은 육신의 행동을 하는 영적으로 미성숙한 어린아이들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세속의 관점에 따라 그들의 인도자를 따랐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농사의 비유를 들어 교회의 인도자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고,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섬기고 따라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신 것을 깨우쳐주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일꾼으로 서로 화합하고 힘써 일하면 합당한 상을 받게 되는 것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차적으로 존경받아야 할 분이신 것을 기억하십시다. 그러면서 인도자들을 잘 존중하고 인도자들에게 잘 협력하십시다. 그리하여 시기와 분쟁이 아니라 서로 잘 화합하고 힘써 동역하여 함께 큰 상을 받는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십시다.

 

 

출처 : 참좋은 제자들 교회
글쓴이 : 참좋은 제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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