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적강해/주일설교

[부활주일]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 (행 1:6~11)

by 이서영 목사 2015. 7. 17.

부활주일 -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 (행 1:6~11)

 

부활절은 동방교회에서는 유대교 신자들이 초대교회에서부터 지켜온 유월절의 첫 날을  부활절로 지킵니다. 서방교회에서는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킵니다. 춘분이 지난 다음 달의 첫 번째 주일이나 그 다음 주일로 지키기로 325년에 니케아 회의에서 정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교회는 서방교회의 전통에 따라 올해는 춘분이 3월 21일이므로  다음 달 첫째 주인 4월 4일에 부활절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부활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진정한 고백인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라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 우리도 부활하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우리도 부활하여 영원히 산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은 우리의 신앙고백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더 나아가 이 고백은 고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이기에 더욱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활은 기독교의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하여 부활절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헛것이 되고 우리가 믿는 믿음도 헛것이 됩니다. 우리는 거짓 증인이 됩니다(고전 15:13~15). 그러나  부활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요 매우 귀한 교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고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으며 오늘 이렇게 부활절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부활절에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승천하신 예수님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님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실 때 놓친 장면이 있었습니다. 하늘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것을 볼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만 그렇게 해야 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부활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사건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사건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내 할 일을 다 했다. 끝.”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우리가 생각할 때 세상 끝 날에 마지막 심판하는 장면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  놀라운 일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이 부활하는 일입니다.

 

이 부활은 완벽한 부활인데 영화롭게 부활합니다. 죽어서 흙으로 돌아갔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중간기에 머물고 있던 영혼과 결합하게 됩니다. 그 신령하고 영화로운 부활체를 가지고 영원한 천국에서 서로 사랑하면서 기쁘게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부활이 예수님의 부활사건으로 그치면 안 된다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 혼자만 부활하시고 승천해버리신 것이 아니라 다시 오셔서 우리도 부활하여 함께 승천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고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우리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 없을 것입니다(고전 15:19).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복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이 땅에서 희생하고, 죽을 고생을 하고, 참고, 헌신하고, 수고한 모든 것이 헛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분명히 있습니다. 이 귀한 부활을 처음 시작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우리 성도들도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예수님께 속한 성도들도 부활하는 것입니다(고전 15:23).

 

그리하여 세상 마지막 날에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성도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변화를 받습니다(고전 15:52). 부활은 이처럼 성도들에게 있어서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이요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부활’ 하면 예수님께서만 부활하셨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 부활사건이 곧 나의 부활 사건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의 부활이 되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부활인 것을 잘 알고 부활절을 보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오실 때 내가 부활하는 것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부활이 내 부활인 것을 바라보 는 것, 이것이 부활절이 주는 커다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부활절에 있어서 도전받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자세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나그네와 그림자로 사는 인생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하늘을 자세히 쳐다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올라가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있지 말라고 했습니다. 올라가신 예수님보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이르되 갈릴리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이 세상을 지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는 자세로 이 세상을 산다면 우리 교회와 성도와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더 좋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대통령이 연두 순시하는데 아무렇게나 맞이하지 않습니다. 환경적으로 청결하게 하고, 업무도 점검하고, 새로운 계획도 세워서 맞이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면 이보다 더 잘 준비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아무 근거도 없이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대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4절에 나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아멘.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성경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해서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준비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 오늘은 자살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부활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그런데 성도만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의인과 악인 모두가 부활합니다. 부활한 그들 앞에 영생과 영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살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물론 괴롭고 답답하고 참담한 심정은 이해됩니다. 그러나 죽는다고 해결되지 않기에 자살하면 안 됩니다. 죽으면 문제가 더 복잡해지고 더 괴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죽으면 끝이 아니라 죽어도 다시 살아나서 영원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심판받기 때문입니다.

 

자살하면 오히려 영원한 심판을 받아 더 큰 괴로움을 영원토록 받아야 하기에 자살은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서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자살할 수밖에 없도록 궁지에 몰아넣는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합니다. 가족의 도움을 받거나, 친구나 전문가 등의 도움을 받아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보다 더 좋고 귀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좋은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점차 모든 일들이 좋아지게 됩니다. 이 길을 택해야 이 땅에서도 잘 되고 죽어서도 영원히 잘 됩니다.

 

그러므로 자살충동이 있는 분은 부활이 있음을 꼭 믿으시길 바랍니다. 죽는다고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죽고 난 이후에 영원히 산다는 것을 꼭 믿으시길 바랍니다. 죽은 이후에 더 괴롭고 답답하고 더 무섭고 힘든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하시고 이 땅에서 문제를 해결 받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좋은 신앙을 가지면 이 땅에 사는 동안 세상이 주는 고통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한 이후에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기쁨을 세세토록 누리게 됩니다. 이 기쁨에 동참하시길 바라며 이러한 것을 바라보시고 자살충동을 이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살충동을 느끼시는 분만 아니라 살기가 힘들고 괴롭고 답답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이기시길 바랍니다.

 

다니엘 12장 2~3절입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아멘.

 

우리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오랜 시간의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시황제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불로장생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렇게 원했던 영원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그 영원한 시간이 주어지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살게 됩니다. 죽으면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행복한 시간속에서 살고 믿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불행한 시간속에서 살게 됩니다.

 

이때 자살하는 사람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영원히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떻게 자살할 수가 있겠습니까? 부활을 믿는다면 어떻게 자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처럼 부활은 우리를 지켜주는 매우 귀중한 교리이자 실제사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부활을 믿는다면 우리는 자살하지도 못할뿐더러 우리의 모든 삶도 더욱 더경건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부활해서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받거나 보상받게 되는데 어떻게 불경건하게 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이 질문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어찌하여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하늘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님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예수님 부활이 내 부활이 된 것을 믿고 감사드리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경건하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2010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12 담임목사 이서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