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에게 배우는 기도법 (출 3:1~15)
모세와 하나님과의 첫 만남은 호렙산 떨기나무 앞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40년 동안 미디안에서 연단시키시고 기다리신 하나님께서 드디어 때가 되자 나타나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이 때 모세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대답하면서 이렇게 첫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출 3:4).
모세를 만나신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출 3:7)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어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가서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어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겠다(출 3:8)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고통도 역시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힘든 처지에 있는지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탄식하는 우리 목소리도 듣고 계십니다. 울면서 부르짖는 기도소리도 들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건져내어 참 좋은 땅으로 데려가신 것처럼 우리가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건져내어 아름답고 풍성한 삶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모세와의 첫 만남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위대한 목표 아래 만났습니다. 이 출애굽을 위하여 모세를 보내시려고 부르시고 임무를 부여하셨습니다. 이 때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여쭈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분이십니다. 피조물인 우리로서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탐구 대상이나 연구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그저 알려주시는 만큼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그 무엇도 스스로 움직이는 것은 없습니다. 지구상의 수많은 과학자와 발명가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지금까지 연구했지만 결국 모두 실패했습니다.
모든 사람이나 물건이나 자동차 등은 모두 에너지와 외부의 힘에 의해 움직입니다. 저절로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스스로 움직이십니다. 다른 어떤 존재에 의해 움직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판단하시고 행하십니다. 이렇게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가르쳐주실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세가 드린 기도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모세는 기도의 대상을 분명히 했다는 점입니다. 기도드릴 때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신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잘 모를 때는 “하나님은 누구세요?”라고 여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묻지 않고 자기 멋대로 신을 만듭니다. 그래서 마음의 소원을 빌 때 나무와 돌에게 빕니다. 그리고 각자가 만든 신에게 빕니다. 상상해서 만든 조상신에게 빌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에 빌면 안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합니다.
주기도문 첫 번째 나오는 기도문이 무엇입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입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기도드리는 대상이 하나님이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듣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만든 대상에 빌지 않고 스스로 계시면서 들어주시고 응답해주시는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에게 배울 수 있는 첫 번째 기도법입니다. 기도를 받으시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점입니다. 모세는 그 하나님께 기도드린 것입니다. 기도의 대상을 확실히 알고 기도드린 것입니다. 모세만큼 하나님과 대면한 사람은 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세를 통해 기도드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역시 모세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먼저 인식하고 기도드리시길 바랍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은 후에 애굽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임무부터 장벽을 만났습니다. 애굽 왕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출 5:1)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콧방귀도 안 뀌었습니다. 모세는 보기 좋게 거절당했습니다. 오히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심한 노역을 시키고 학대했습니다.
이럴 때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와서 기도드렸습니다.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출 5:22) 모세는 인간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께 와서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습니다.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출 6:1)
모세에게 배울 수 있는 두 번째 기도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도한다는 점입니다. 무슨 문제든지 즉각 하나님께 들고 가서 기도드린 것입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께 와서 기도드렸습니다. 지금 문제가 심각하므로 해결해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임무를 받고 갔지만 길이 막혀서 힘이 든다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럴 때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우리 역시 이 점을 배워야 합니다. 어려움에 처하면 우리는 누구에게 찾아갑니까? 조금만 어려우면 친한 사람에게는 휴대폰으로 잘 통화하면서 정작 모든 것을 아시고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께는 기도드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와서 부르짖어야 합니다. 만민이 와서 기도하는 집인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문제를 내어놓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모세는 무슨 사건이 터지기만 하면 하나님께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홍해 앞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사면초가에 처한 백성들이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여기서 모두 죽게 하느냐” 라고 원망했습니다. 그럴 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주셨습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사흘 길을 걸었으나 마실 물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물이 있긴 있었지만 그곳에 있는 물은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마라’라고 했습니다. 이 때 백성이 모세에게 또다시 원망했습니다. 그러자 모세도 또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리하여 응답받은 대로 하나님께서 가리키시는 한 나무를 던졌더니 물이 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드렸습니다.
거의 비슷한 장면이 또 반복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에 장막을 쳤을 때 그곳에는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모세와 다투면서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들과 상대하면서 온갖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셔서 반석에서 물이 나오도록 해주셨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하나님과 때론 친구와 같이 이야기할 정도로 대면했습니다(출 33:11). 문제가 생기면 어김없이 곧바로 하나님께 찾아와 부르짖으면서 기도드렸습니다.
기도는 이처럼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들어야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되고 무엇을 말해야 되는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말씀을 듣지 않고 무슨 일을 해나가겠습니까? 그러므로 먼저 부르짖고 기도해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대언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능력을 받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문제가 생기면 즉각 들고 와서 부르짖어 기도드리시길 바랍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사십 일을 밤낮으로 하나님과 함께 지내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이 사십 일을 못 참고 금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했습니다. 그 앞에서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거기다가 백성들이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뛰놀았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모세에게 속히 내려가라고 했습니다. “나를 저버리고 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예배하고 제물을 드리고 있으니 모두 진멸시켜 버리고 너로 하여금 큰 나라가 되게 해주겠다”(출 32:8~1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때 모세가 한 자리를 차지할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세는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드렸습니다.
“맹렬한 분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켜 주셔서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말아주시옵소서” 라고 간청을 드렸습니다. 심지어 “죄를 사하여 주시지 않으신다면 주께서 기록한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시옵소서” 라고까지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셔서 화를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세를 통하여 세 번째 기도법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기도한다는 점입니다. 자기 백성을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생명을 건 기도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운데 혹시 지옥에 가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저도 가기 싫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자기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을 지워 버려도 좋으니 자기 백성들을 용서해달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지옥에 가도 좋으니 백성만은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과 자세를 가진 사람이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습니다. 한 영혼을 깊이 사랑하고 한 영혼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사람은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이 됩니다. 우리도 이러한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드려야 할 것입니다. 내 자신을 지옥에 던져 넣는 대신 한 영혼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마음과 자세로 기도드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기를 원하고 쓰임받기를 원하면서 이 마음을 품지 않는다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영혼을 얼마나 많이 품고 사랑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그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필요한 능력과 사람과 물질과 이름과 건강을 붙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한 몸을 위해 기도하는 수준에서 이웃의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혼 구원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간절히 기도드리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모세에게 배울 수 있는 기도법은 먼저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즉각 하나님께 엎드려 부르짖어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영혼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기도하여 모세처럼 하나님께서 가까이 대면해주시는 훌륭한 기도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010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14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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