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가 응답받은 비결 (삼상 1:9-18)
다윗 왕을 살펴보면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과적으로 축복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축복을 받은 비결이 있습니다. 몇 가지 비결 중에 한 가지를 소개하면 공손함입니다. 다윗 왕이 왕 자리에 오르기 이전에 현직 왕인 사울 왕의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심지어 죽이려고 군대를 풀어서 샅샅이 뒤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다윗 왕이었지만 원수 같은 사울 왕에 대한 공손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을 손쉽게 죽일 결정적인 기회가 두 번씩이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 왕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왕을 자기 손으로 해쳐서는 안 된다는 자세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죽이려고 살기등등했던 원수였지만 다윗 왕은 공손하게 대했습니다.
다윗 왕이 숨어 있는 굴로 사울 왕이 모르고 들어왔을 때 손쉽게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살려주었습니다. 살려준 후에 한 말이 있습니다. “내 아버지여”라고 극진히 높였습니다. 어떻게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에게 이렇게 극존칭을 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윗 왕은 지극히 공손하게 높여드렸습니다.
두 번째 기회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울 왕이 진중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에도 죽일 기회가 있었으나 역시 살려주었습니다. 그러고 하는 말이 “내 주여 왕이여”라고 역시 지극히 높여드렸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이 다윗 왕에게 큰 축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첫 번째 살아났을 때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삼상 24:19-20) 두 번째 살아났을 때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삼상 26:25)
다윗이 공손하게 악을 선으로 갚자 원수로부터, 괴롭힘을 받던 사람으로부터 오히려 축복받았고 그 축복대로 왕이 되었습니다. 분통을 터뜨리지 않고 매우 공손하게 대했더니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기도응답의 비결을 찾을 수 있습니다. 축복받고 응답받고 문제 해결 받는 비결은 기도하는 자의 자세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방해하고 조롱하던 자가 축복할 정도가 되면 응답받게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나오는 한나를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한나는 아기를 낳지 못해 평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아기 못 낳는 여자라고 심하게 조롱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굉장히 한이 서려 있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깊이 받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한나가 성전에 올라와서 속으로 탄식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10~11절.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본 엘리 제사장이 한나가 속으로 말하면서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않아서 취한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한나에게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고 말했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이럴 때 한 마디 들으면 감정이 폭발합니다. 억울해서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러나 한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정중했습니다. 공손하게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주의 종에게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15~16절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억울하다고 분통을 터드리지 않고 매우 공손하게 대답했습니다. “내 주여” “당신의 여종”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낮추고 제사장은 높여드렸습니다.
알고 보면 엘리 제사장은 패망해 가는 제사장입니다. 결국 엘리 제사장 집은 몰락했습니다. 이런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는 공손하게 섬기면서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응답받는 기도비결입니다. 어처구니없이 말하는 사람일지라도 공손하게 자기 할 일을 다 하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하나님께 엎드려 끝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윗 왕은 자신을 해치려고 했던 사울 왕을 악으로 갚지 않고 공손하게 기름 부은 자로 높였을 때 오히려 그로부터 축복을 받아 왕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응답받는 기도비결이라는 것입니다. 다윗 왕도 패망해가는 사울 왕을 섬겼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은 그 자신과 집안까지 몰락했고 다윗 왕은 소원대로 왕이 되었습니다.
한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름 부어 세운 엘리 제사장이 억울하게 대했지만 맞대응하지 않고 높여드렸습니다. 그러자 그 엘리 제사장으로부터 축복받아 소원대로 아들을 얻었습니다. 17절.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다윗 왕과 한나의 도리를 다하는 자세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왕이 되고 아들도 얻게 했습니다. 이것이 응답받는 기도비결입니다. 끈질기게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한 가지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은 주위 사람이 뭐라고 하든 공손한 자세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맞대응하지 않고 공손하게 대하면 그 사람들이 축복할 정도가 되면 응답받게 됩니다.
한나가 응답받은 기도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기도응답 받은 비결, 소원이 이루어진 비결이 무엇입니까? 한을 품고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도드렸기 때문입니까? 그러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아들을 바친다고 서원 기도했기 때문입니까? 그러나 그것도 아닙니다. 이것 말고 또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억울한 일을 당해도 따지지 않고 평정심을 잃지 않고 공손한 자세로 대응하고 기도했다는 점입니다.
제사장 엘리가 기도하고 있는 한나를 보고 술 취해서 술주정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한나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억울한 소리입니까? 술은 입에도 댄 적도 없고 다만 죽을 지경에 빠져서 기도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날 벼락같은 소리입니까? 우리 같으면 이런 상황이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그런데 한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공손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엘리 제사장이 한나의 기도제목이 이루어지기를 복을 빌어주어서 응답받았습니다.
한나와 같은 여인이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습니다(마 15:21~28). 사마리아에 사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의 딸이 흉하게 귀신이 들렸기에 고치려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소문으로 들었던 예수님과는 전혀 다른 예수님이셨습니다.
이방여자라서 이스라엘 사람 틈에서 겨우겨우 찾아와서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저를 구원하소서”라고 처절하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니 이해가 아니라 화를 돋구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딸 문제로 깊은 신음과 고통 속에 있는데 위로는 못할망정 마음에 큰 상처가 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택받은 민족이 아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곳으로 보냄을 받지 않았다. 너는 개 취급받는 사마리아의 이방여인이다. 자녀들의 떡을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 이 무슨 자존심을 무참하게 만드는 말씀입니까? 지금 이 가련한 여인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씩씩 거리면서 별의 별 말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화가 나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럴수록 더욱 더 자세를 낮추고 더욱 더 간절하게 부르짖었습니다. 원망하거나 욕하거나 시비를 걸거나 흉보지 않았습니다. “지금 제가 개 취급받으면 어때요. 예수님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십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어요. 예수님은 정말로 참 좋으신 분이심을 믿어요. 차별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겨주셔서 내 딸을 반드시 고쳐주실 줄 믿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무시당했다고 해서 거절당했다고 해서 분을 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절하면서 도움을 정중하게 청했습니다. 기름 부은 받은 그리스도이시기에 공손하게 대했습니다. 절까지 했습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이 모든 시험을 이기고 믿음대로 딸의 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드디어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우리의 간절한 소원도 이런 자세로 이룰 수 있습니다. 한나가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도 사마리아 여인이 응답받은 것도 다윗 왕이 응답받은 것도 모두 시험을 통과하였기 때문입니다.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은 바로 이것입니다. 억울하게 말하고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들로 인해 힘들고 괴로운 점이 있더라도 공손한 자세로 끝까지 하나님께 엎드려 간청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시기 전에 시험해보시기도 합니다. 화를 돋구어 보시기도 하고, 즉각 응답도 안하시고, 아예 들은 척도 않는 것처럼 무관심한 척하십니다. 이럴 때 이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면 우리는 응답받고 축복받고, 도저히 해결할 수 없어 보이는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할렐루야!!
그런데 우리 가운데 시험을 당해 분노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 형편과 처지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딱한 처지에 놓여 있는데 어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이럴 수가 있느냐고 따지려고 하지는 않는지요? 기도하는 자신을 향해 사람들이 좋지 않은 말을 하면 “날 뭘로 보고 그러느냐”고 따지려고 하지는 않는지요?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금 어떤 반응을 보이시든,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취급하든 이겨내야 합니다. 억울하다고 맞대응하거나 원망불평하고 분을 내면 기도응답은 물 건너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우리의 믿음을 보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공손한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자세로 기도하면 한나와 같이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다윗 왕과 같이 응답받고 해결 받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위대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원수로 대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그를 사랑하고 신뢰하는데 있다”(매튜 헨리).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할수록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자세를 낮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큰 시험을 통과하고 나면 더 큰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더 큰 응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원하시고 때론 우리를 괴롭히고 분통 터뜨리게 만드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시험장으로 들여보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이리저리 흔들리지 맙시다. 시험에 빠지지 않고, 공손한 자세로 맞대응하지 말아서 시험을 이깁시다. 이런 자세로 우리가 끝까지 기도하여, 속을 썩이고 골치를 아프게 만드는 문제들을 속 시원하게 해결 받고, 마음의 간절한 소원들이 성취되시길 기원 드립니다.
[2010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15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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