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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주일설교

기다림의 복 (벧후 3:8-9)

by 이서영 목사 2015. 7. 17.

기다림의 복 (벧후 3:8-9)

 

  오늘은 경칩입니다. 날씨가 따뜻해 얼었던 땅이 녹고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깨어나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그리고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낸 앙상하던 나뭇가지에 파릇한 새싹이 눈을 뜹니다. 경칩은 24절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4계절마다 6절기가 있어서 4×6=24절기가 됩니다. 또한 매월마다 2절기씩 있어서 12×2=24절기가 됩니다. 24절기를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하나하나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2월

     입춘 (入春) 양력 2월 4일 봄의 시작

     우수 (雨水) 양력 2월 19일 봄비가 내리고 싹이 돋아남

   3월

     경칩 (驚蟄) 양력 3월 6일 개구리가 겨울잠에 깨어남

     춘분 (春分) 양력 3월 21일 낮이 길어지기 시작함

   4월

     청명 (淸明) 양력 4월 5일 봄 농사 준비

     곡우 (穀雨) 양력 4월 20일 농사비가 내림

 

여름

   5월

     입하 (立夏) 양력 5월 6일 여름의 시작

     소만 (小滿) 양력 5월 21일 농사의 시작

   6월

     망종 (芒種) 양력 6월 6일 씨뿌리기 시작

     하지 (夏至) 양력 6월 22일 낮이 연중 가장 긴 시기

   7월

     소서 (小暑) 양력 7월 7일 여름 더위의 시작

     대서 (大暑) 양력 7월 23일 더위가 가장 심한 시기

 

가을

   8월

     입추 (立秋) 양력 8월 8일 가을의 시작

     처서 (處暑) 양력 8월 23일 더위가 식고, 일교차가 커짐

   9월

     백로 (白露) 양력 9월 8일 이슬이 내리기 시작

     추분 (秋分) 양력 9월 23일 밤이 길어지는 시기

   10월

     한로 (寒露) 양력 10월 9일 찬 이슬이 내리기 시작

     상강 (霜降) 양력 10월 24일 서리가 내리기 시작

 

겨울

   11월

     입동 (立冬) 양력 11월 8일 겨울의 시작

     소설 (小雪) 양력 11월 23일 얼음이 얼기 시작

   12월

     대설 (大雪) 양력 12월 7일 겨울 큰 눈이 옴

     동지 (冬至) 양력 12월 22일 밤이 연중 가장 긴 시기

   1월

     소한 (小寒) 양력 1월 6일 겨울 중 가장 추운 때

     대한 (大寒) 양력 1월 20일 겨울 큰 추위

 

  이처럼 4계절과 12개월의 달에 따라서 24절기를 잘 만들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계절을 어떤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있는 계절을 4계절로 분류한 것뿐입니다. 다니엘 2장 21절에서 말해줍니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하나님께서 계절을 만드시고 4계절을 바꾸시고 계십니다.

 

  이 24절기 가운데 경칩이 되면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됩니다. 봄은 약동하는 계절입니다. 봄은 영어로 ‘스프링(spring)’이라고 하는데, 다른 뜻으로는 ‘용수철’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움츠려 있던 동물도 식물도 사람도 모두 활기차게 기지개를 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주로 입학식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고 새로운 학년이 시작됩니다. 그러면 새로운 학급과 새로운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잔뜩 기대하고 들뜨게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새로운 기분으로 3월을 힘차게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설렘’이란 말은 참으로 좋습니다. 너무 ‘뻔’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영화도 재미없게 되고 사는 것도 재미없게 됩니다. 무언가 기다리고 설레는 마음이 있을 때 사는 재미가 새록새록 납니다. 여러분 데이트 해보셨나요? 데이트할 때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입니까? 약속시간입니다. 만나면 좋기도 하지만 때론 다투기도 합니다. 그러나 약속을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설레는 시간이 되기에 좋은 시간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의 모든 시간도 이런 설렘 속에서 기쁜 나날들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가끔 우리가 원하지 좋지 않은 기다림도 있습니다. 연애편지는 무척 기다리는데 청구서는 기다리지 않습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아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낸 목사님과 서울로 공부하러 보낸 목사님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외국에 유학을 보낸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저는 아들의 편지를 볼 때마다 사전을 찾아봐야 한답니다. 점점 쓰는 단어가 어려워지거든요.” 그러자 서울에 공부하러 보낸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그래도 목사님은 약과입니다. 저는 아들의 편지를 볼 때마다 은행에 가야 한답니다.”(황영헌, 재미 있는 설교 유머)

 

  우리가 기다리고 싶지 않은 시간으로 어떤 시간이 있을까요? 빚쟁이가 찾아온다는 그 시간은 피하고 싶은 시간입니다. 이런 시간은 설레는 시간이 아니라 죽을 맛을 주는 시간입니다. 재판정에 끌려 나가 형을 선고받으러 나가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은 설레기는커녕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원하지 않는 좋지 않은 기다림은 없기를 바랍니다.

 

  봄이 오면 좋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춥고 움츠려든 겨울이 지나갔기에 좋을 것입니다. 입춘을 시작해서 경칩을 거쳐 봄이 오니까 얼었던 땅이 녹고 날씨는 따뜻해지고 새싹도 돋고 예쁜 꽃까지 피니까 좋을 것입니다. 또 좋은 이유로 무엇이 있을까요? 봄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다’는 설레는 마음이 있었기에 좋은 것입니다. 이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큰 복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입사를 기다리는 사람, 이런 저런 이유로 기다리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행복한 마음을 가져다줍니다. 우리 모두 이런 좋은 기다림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기다리는 사람들 가운데 군인이나 경비를 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밤에 지키면 긴장이 많이 됩니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교대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얼마나 가볍고 신이 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곳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교대하는 아침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시편 130편 6절을 보면 파수꾼이 아침을 간절히 기다리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기록한 것은 어떠한 간절한 기다림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려는 것입니다. 그 간절한 기다림은 무엇일까요?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간절히 기다리는 대상은 다름 아닌 주님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간절한 기다림이나 설렘이 있습니까?

 

  우리의 옛 모습은 희망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우리는 기껏해야 안개같이 사라져버릴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목숨을 걸고 버둥거리면서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세상에 대한 희망이 없었습니다. 역대상 29장 15절이 말해줍니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우리는 해가 지면 금방 사라져버리는 그림자와 같은 신세였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있어서 기다림이란 온통 육적인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야망에게 사로잡혀 야망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야망은 결국 우리의 인생을 허무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그러한 부질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세익스피어(Shakespeare)가 야망에 대해『햄리트(Hamlet)』에서 말했습니다. “야망이란 건 사실 공기같이 허무한 것이라서 그것은 결국 그림자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야망은 사라지는 그림자에 불과한데 우리는 그것을 따라다녔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모든 것인 줄 알고 사라지는 그림자를 붙잡으려고 집착하면서 살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것에 대한 기다림이나 설렘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거두고 모은 것이라고는 사라지고 마는 허무한 것이었습니다. 윌리엄 윈터(William Winter)는 야망의 결과를 『여왕의 영토(The Queen's Domain)』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야망에는 결국 단 하나의 보상밖에 없다. 약간의 권력, 약간의 일시적인 명예, 그 안에서 살 수 있는 무덤, 그리고 사라지는 이름 뿐!”

 

  그러던 우리가 어느 날부터 영원한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영원히 존재하는 하늘의 신령한 것에 가치를 두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의지하게 되었고 우리의 도움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시편 146편 5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영원을 기다리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모든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아무런 희망이 없고 기다림도 없고 설렘도 없었던 우리가 어떻게 해서 영원한 세상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습니까?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되었습니까?(고전 1:7) 그것은 우리를 천년을 하루같이 여기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본문 가운데 8절을 합독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인간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표는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천지창조가 6일이라는 것과 지구의 나이와 인류의 연대는 인간이 측정한 시간표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시간표로는 인간창조 이전의 세월이 몇 억년이 되는지를 모릅니다. 우리의 시간표로는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와 우리의 시간표는 다릅니다.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것이 하나님의 시간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초점은 이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만남을 위해 천년을 하루같이 여기고 손꼽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애절한 기다림이 초점입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므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시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뒤따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오래 참으시고 멸망하지 않도록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9절을 합독하겠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십니다. 이러한 모습을 어떤 사람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29장을 보면 야곱이 라헬을 얼마나 애가 타도록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라헬과의 사랑에 푹 빠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20절을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한 까닭에 칠 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칠 년을 머슴살이해도 마치 며칠이 지난 것처럼 느꼈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이렇게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이런 사랑의 기다림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냥 설레는 기다림을 주십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세상에서 우리와 함께 지낼 날을 천 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는 지금 이 시간도 기뻐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붙잡아 주듯이 우리의 손을 꼭 붙잡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 그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런 기다림이 있는 사람은 살아가는 힘을 얻습니다. 기다림은 우리에게 설렘을 주고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환경에 연연해하지 않고 기쁘게 즐겁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앞날의 희망이 없으면 기다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절망하게 되고 허무하게 되고 우울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 환경이 나빠도 앞날의 희망이 있으면 힘을 얻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다림이 있다는 것은 큰 은혜요 큰 복입니다.

 

  그렇다면 기다림 가운데 가장 큰 기다림은 어떤 기다림이 있을까요? 우리의 진정한 봄날은 이 세상에서의 봄날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찾아옵니다. 그 날이 오면 진실로 “고생 끝, 행복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부터 우리는 영원한 봄날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이 기다림이 있기에 오늘도 내일도 어떠한 여건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봄날이 주님과 함께 시작되는 날이 있기에 기다림과 설렘 속에서 기쁘게 신앙생활하며 생애를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귀한 기다림의 복을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2011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59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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