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적강해/주일설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 (갈 5:18-26)

by 이서영 목사 2015. 7. 17.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 (갈 5:18-26)

 

삼한갑족(三韓甲族)은 ‘신라, 고려, 조선 3조에 걸쳐 대대로 문벌이 높은 집안’을 말합니다. 우당 이회영의 집안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집안은 백사 이항복 이후로 열 명의 정승을 배출하였습니다. 동생 이시영이 부통령을 지냈으므로 총 열한 명의 재상급 인물이 나온 셈입니다. 이회영의 부친은 고종 때 이조판서를 지냈던 이유승입니다. 이회영은 나라를 잃자 막대한 가산을 정리해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했습니다. 그 당시 40만원인데 현재가치로는 600억 원 이상입니다. 집단 망명한 다음에 신흥무관학교를 만들어 3500명의 독립운동가들을 길러내고,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 등의 무장독립투쟁을 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느 가문의 사람이십니까? 육신의 가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가문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영적으로 어느 가문의 사람이십니까?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의 가문에 속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입니다. 로마서 1장 6절을 보면,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3장 23절에서도 이 사실을 확증해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아멘. 고린도전서 12장 27절에서는 아예 그리스도의 지체인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아멘.

 

마태복음 1장 1절은 무엇입니까? 적어도 창세기 1장 1절과 마태복음 1장 1절은 암송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다시 한 번 외워봅시다. 계보는 쉽게 말씀드리면 족보입니다. 이 가문이 바로 영적으로 위대한 삼한갑족 중의 삼한갑족입니다. 그런데 이 계보는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족보도 아닌데 왜 이 족보를 외워야 할까요? 이 족보를 꼭 외워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9절은 이 영적인 족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아멘.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예수님의 것이 맞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인 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을 줄도 믿으십니까?

 

이처럼 마태복음 1장 1절의 족보가 다른 나라 사람의 이야기로 끝난 것이 아니기에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족보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족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이어져 내려온 족보가 2천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나에게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의 족보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문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인터넷을 통해 회원으로 가입하여 여러 사이트에 접속합니다. 그런데 어디에 접속하고 있습니까? 접속한 사이트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 그런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어디에 접속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는 예수님의 가족이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혈통에 접속되어 있습니다. 천지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수많은 인류를 구원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과 딸들입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하늘로부터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성령님을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위대한 영적인 삼한갑족의 후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무엇을 추구하고 사는 사람이냐? 무엇을 따라가는 사람이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하늘 회원에 가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것에 접속하고 하늘의 것을 추구하고 하늘의 것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입은 사람입니다. 땅에서 태어나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육체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주시는 것을 입은 사람입니다. 하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에서 아들 예수님을 내려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하늘에서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속에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살아계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9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람이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3장 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예수님께 속한 사람은 이처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 사람 속에 예수님의 영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그 속에 성령님이 살아계십니다. 성령님이 그 속에 머무시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무엇도 쉽게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슬픔도, 낙심도, 환난도, 고난도, 실패도 잘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은 속에 계신 성령님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성령님이 강력하게 임한 사람은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힘들 때가 많습니다. 죽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찾아오시면 새 힘을 주십니다. 용기를 주시고 위로해주십니다.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기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면 넉넉하게 하시고도 남습니다. 어둠을 빛으로 바꾸어주십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악취가 나는 인생을 향기가 나는 인생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 찾아오시면 숨길 수가 없습니다. 향수를 아무리 병 안에 넣고 마개를 막고 포장을 해도 향수 냄새가 뿜어져 나오듯이 성령님이 속에 계시면 그리스도 예수의 향기가 나옵니다. 성령님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계신 냄새가 납니다. 성령님이 찾아오시면 사랑과 기쁨과 감사와 능력이 덩달아 따라붙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늘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간혹 그렇지 못한 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것 다워야 합니다. 위대한 영적인 삼한갑족의 후예다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최측근의 수제자인 베드로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마 16:23) 수제자를 마치 사탄처럼 취급하였습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사탄의 제자라는 말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분명히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소속이 예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을 보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에 사탄처럼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소속이 분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속해야 하는지, 사탄에게 속해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누구나 사탄에게 속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속하면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예수님께 속한 하늘의 사람입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은 이 땅보다 천국이 얼마나 더 좋은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 땅에 모든 것을 쌓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하늘의 일에 소홀할 때가 많습니다. 땅의 것이 좋아보여서 따라갈 때가 있습니다. 타락한 아담 이후로 이어져 내려온 죄의 본성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육체의 일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성도라 할지라도 가만히 있으면 육체의 일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마음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변질되었기 때문에 나오는 말과 행동도 변질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도 동일하게 말씀하셨습니다(마 15: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되고나면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1절과 2절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아멘.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마음부터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도는 하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잘 해보려고 하는데 생각만큼 잘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잘 안 된다고 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아닌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것이 맞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지만 하는 행동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요한복음 3장 27절에서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하늘에서 주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위로부터의 종교입니다. 좋은 것은 위에서부터 내려옵니다. 예수님도 위에서 내려오시고, 성령님도 위에서 내려오십니다. 땅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위로부터 나오는 것이 진실로 아름답고 영원하고 복됩니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축복을 받는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이 박힌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땅으로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을 박은 것은 한없는 복을 받게 하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부모치고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의 축복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안개와 같이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축복은 영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축복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영원히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 각자의 십자가에 못이 박히면 됩니다. 본문 24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에서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 위에서 죽을 때 살아납니다. 죽어야 부활할 수 있습니다. 감정이 죽고 탐심이 죽을 때 열매를 맺습니다. 자신이 죽은 성도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이 박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자기가 죽은 사람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 사람입니다. 십자가에 못이 박힌 사람은 자기의 손과 발이 꼼짝 못합니다.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고, 거머쥐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잡지 못합니다. 요즈음 갈 곳이 많아서 문제입니다. 볼 것도 많아서 문제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이 박힌 사람은 아무 곳이나 가고 아무 것이나 안 봅니다. 자기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님이 되어서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무엇이 십자가에 못이 박혔다고 하였습니까? 19절에서 21절에서 말하고 있는데 육체의 일입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렇게 십자가에 못이 박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이런 육체의 일을 습관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이런 육체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좋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 십자가에 못이 박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되십시다.

 

그런데 이것이 좋은 것은 분명히 잘 알겠는데 생각만큼 잘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 육체의 일을 좀 더 시원하게 벗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에 못이 박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으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땅의 것으로는 해결 받을 수 없습니다. 땅의 것으로는 천국을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이어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십자가에 못이 박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려면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 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의 일을 밥 먹듯이 하지 않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육체의 욕심도 이루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성령님께서 이끌어주시고, 그 성령님과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본문 18절을 보면,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해주시면 육체의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이렇게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행하는 사람입니다. 포도가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포도나무가지에 붙어 있어야 포도가 열립니다. 우리도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성령님 안에 있어야 성령의 열매가 열립니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 계셔서 역사해주셔야 열립니다.

 

창세기 39장에서 41장을 보면 요셉이 수난을 당하다가 총리에 오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셉이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 팔렸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지만 이스마엘 사람의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있었습니다. 결코 불운하게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 잡혀있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형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39:2). 그래서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바로 왕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에 팔렸습니다. 사는 게 힘이 들고 감정이 엉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요셉 때문에 오히려 보디발의 집이 큰 복을 받았습니다(39:5).

 

그러나 요셉은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갔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셔서 제반 사무를 요셉이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형통하게 하신 것입니다(39:23). 이젠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애굽의 국무총리가 됩니다. 그러자 바로가 놀라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라고 감탄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성령님이 속에 계신 사람은 노예로 팔려가도 감옥에 들어가도 갇혀있지 않습니다. 기분이 나쁜 상황속에서도 환경이 좋지 않아도 풀려납니다. 오히려 지배하게 됩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합니다.

 

18절에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의 ‘인도하는’(아게스데)이란 단어의 뜻은 ‘이끄는, 데리고 오는’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수동형입니다. 우리가 앞장서서 이끌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앞장서서 우리를 이끌어나가신다는 뜻입니다. 데리고 다니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면 얼마나 잘하겠습니까? 우리 힘으로 어렵습니다. 기분에 따라 살지 않으려고 하지만 잘 안 됩니다. 땅의 것으로는 하늘의 것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을 이어받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가능합니다. 이처럼 성령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문제가 있어도 문제를 밟고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요셉처럼 기분이 좋지 않아도 환경이 좋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입니다. 탐심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하지만 기분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이 박힌 사람은 감정이 못에 박힌 사람입니다. 감정에 너무 쉽게 흔들리지 않고 성령님의 감화 감동하심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난 존재로, 성령의 충만을 받아 성령님께서 이끌어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이 박히고 내주하신 성령님을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되셔서 위대한 영적인 삼한갑족의 영광스러운 후예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2011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83 담임목사 이서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