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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주일설교

믿음은 문제 해결의 열쇠 (마 21:18-22)

by 이서영 목사 2015. 7. 17.

믿음은 문제 해결의 열쇠 (마 21:18-22)

 

인생살이하면서 무엇을 힘으로 삼고 살아가십니까? 어떤 분은 밥 힘으로 산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밥을 먹어야 살 수 있겠지요. 사람마다 힘으로 생각하는 것이 다를 것입니다. 권력의 힘, 지력의 힘, 체력의 힘, 경제력의 힘 등 힘에는 종류가 많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떤 힘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톨스토이(Leo Tostoy)는『참회록(My Confession)』에서 “신앙이 인생의 힘”(Faith is the force of life)”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의 힘은 무엇이 힘입니까? 믿음이 우리의 힘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권력과 지력과 체력과 경제력의 힘도 마땅히 있어야 합니다만 그 무엇보다 믿음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대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믿음대로 그 결과가 만들어지고 생겨납니다. 믿으면 믿음대로 이루어집니다. 톨스토이는 이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곧 믿음이 인생의 힘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께서도 믿음이 힘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으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님으로부터 공급받습니다. 영원히 살고 싶습니까? 믿음을 가지십시오. 영원히 잘 먹고 잘 살고 싶습니까? 믿음을 가지십시오. 영원히 잘 되기를 바라십니까? 믿음을 가지십시오. 주님께서 맡겨주신 삶과 사역을 잘 감당하고 싶습니까? 믿음을 가지십시오. 믿음이 있으면 이 모든 것을 주님으로부터 공급받습니다.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안 되는 것도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 앞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 주님께서 행하시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하면 된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믿으면 믿음대로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믿으면 되는 줄로 믿으시고 주님을 믿으시고 주님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우리 인생의 힘이 되어줄 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의 문제를 풀어주는 열쇠가 되어줍니다. 믿음의 열쇠는 지옥의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이 땅의 생지옥의 문제도 해결해줍니다. 이 모든 문제를 풀어주는 열쇠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열쇠는 내생의 천국과 금생의 천국의 축복도 열어줍니다. 이처럼 믿음의 열쇠는 천국의 문을 열고 천국의 보화창고를 엽니다. 이 믿음의 열쇠는 우리의 영생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우리 인생살이의 여러 가지 문제도 거뜬히 해결해줍니다. 이 믿음의 열쇠를 꼭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을 말할까요?

 

우리 인생의 힘이 되고 우리 인생의 문제와 우리 영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이 믿음은 주님을 바라볼 때 생깁니다. 주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천지를 운행하시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우리가 그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면 우리에게 그러한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믿음이 생겨서 해결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고, 부족한 것은 풍성해지고, 무능한 것은 능력이 있게 되고, 잘 안 되는 것은 잘 되게 됩니다. 믿음의 삶은 이처럼 창조적인 삶입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없는 것을 만들어냅니다. 큰 믿음은 큰 역사를 이뤄냅니다. 이 큰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찬양을 드리겠습니다. “약한 나로 강하게”(3232).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 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반복해서 한 번 더 부르겠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6절에서 52절을 보면 눈먼 거지 바디매오가 눈을 떠서 보게 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아멘.

 

눈이 멀어 일평생을 맹인으로 거지 노릇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속에 해답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그렇습니다.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눈이 멀어 아무런 희망이 없이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눈을 고쳐주신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고침을 받았습니다. 믿음이 일평생 걸려도 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해준 열쇠가 된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우리 모두 누구나 이러한 믿음이 있으면 동일하게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셔서 우리 인생의 문제도 해결 받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우리 인생의 힘이요, 열쇠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 자신의 문제만 해결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의 문제까지 해결해줍니다. 누가복음 8장 40절과 41절, 그리고 49절에서 56절을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고침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번에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하는 딸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것도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그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아멘.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죽었다고 울면서 통곡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이 비웃음과 통곡소리는 놀라움과 기쁨의 소리로 바뀌어버립니다. 상상할 수 없는 있을 수 없는 큰 기적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입니까? 역시 예수님의 말씀에 해답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야이로가 믿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처럼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믿으면 그 믿음대로 역사됩니다. 믿음으로 문제를 해결 받는 사례가 성경에는 무수하게 많이 나옵니다. 믿음은 자기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문제까지도 해결 받습니다. 우리 자신의 문제와 자녀와 부모의 문제, 그리고 심지어 직원의 문제까지도 해결 받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7장 2절에서 10절을 보면 백부장의 믿음으로 죽을 병에 걸려 죽게 된 종이 고침을 받은 기적이 나옵니다.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아멘.

 

죽을 병에 걸린 하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자기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직원의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해결 받은 열쇠는 무엇입니까? 역시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주님을 믿고 주님을 바라보는 이 믿음은 우리 자신의 문제와 자녀의 문제뿐만 아니라 직원의 문제까지도 해결해줍니다. 자신과 가정과 직장의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이 놀라운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셔서 우리 자신의 문제, 자녀와 부모의 문제, 더 나아가 직원과 상사의 문제까지 해결 받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열쇠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의 문제까지도 해결해줍니다. 믿음은 정말 놀랍습니다. H. L. 멘컨(Henry Louis Mencken)은『편견』이란 책에서 말했습니다. “신앙이란, 있음직하지 않은 일의 발생을 불합리하게 믿는 것이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믿음은 이해되지 않고 불합리해보입니다. 그런 일을 해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의 문제까지도 해결해줍니다.

 

누가복음 5장 17절에서 26절을 보면 중풍병에 걸린 알고 지내는 사람의 병을 고침 받는 기적이 나옵니다.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 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아멘.

 

이번에도 역시 믿음이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었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믿음 때문에 그 사람의 병이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이 역시 예수님의 말씀에 해답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주님으로부터 우리 자신의 문제와 자녀와 부모의 문제, 그리고 직원과 상사의 문제와 알고 지내는 사람의 문제까지 해결 받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 자신과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이웃의 문제를 해결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본문 21절에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만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아멘.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기도하면 산이 바다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치료와 회복의 역사를 보면 산이 바다에 빠지는 일들입니다. 의심하지 않고 믿고 기도하면, 즉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고 그 주님께 간구를 드리면 믿음대로 무엇이든 다 응답받습니다.

 

눈먼 거지 바디매오가 어떻게 해서 눈을 뜨게 되었습니까? 소리 질러서 해결 받았습니다. 간절히 기도드렸다는 것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은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려 간구하였습니다. 백부장의 종은 어떻게 죽을 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까? 역시 예수님께 종을 구해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알고 지내는 사람의 중풍병은 어떻게 해결 받았습니까?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든 사람을 침상째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렸습니다. 얼마나 간구하였습니까? 잉렇게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가 부르짖는 사람은 도무지 풀 수 없는 문제가 술술 풀리게 됩니다.

 

믿음은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우리 자신 앞에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우리 자녀와 부모 앞에, 우리 직원과 상사 앞에 우리가 알고 지내는 이웃 사람들 앞에 어떤 문제가 가로막고 있습니까?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도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전혀 해답이 없어 보이는 문제입니까?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열쇠로 푸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계십니다. 앞서 살펴본 사람들의 부르짖음에 대해 예수님께서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믿고 기도할 때 예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우리도 믿고 부르짖으면 난공불락의 문제라할지라도 반드시 주님께서 응답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외침이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모두 들으시고 모두 응답해주시는 것을 믿으시고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태산과 같은 문제도 옮겨버립니다. 태산이 높다고 하지만 하늘 아래에 있습니다. 태산과 같은 문제를 바라보면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태산이 아니라 태산보다 훨씬 높은 하늘을 보면 희망이 있습니다. 첩첩이 쌓인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면 태산의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지구에는 높은 산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등의 높은 산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산이라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앞동산보다 더 작습니다. 창세기 7장 19절을 보면 노아 홍수 때 상황을 말해줍니다.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아무리 높은 산, 아무리 큰 문제라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다 잠겨버립니다.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거리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문제투성이의 산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태산과 같은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과 환경을 넘어 역사하시는 위대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초점을 산에 맞출 것이 아니라 주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높은 산도 맥을 추지 못하고 사라져버립니다. 스가랴 4장 7절은 말합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하나님 앞에서는 태산도 평지가 되어버립니다.

 

이스라엘에 블레셋이 쳐들어왔을 때 사울 왕과 이스라엘 장군과 병사들은 거인 골리앗을 보고 모두 벌벌 떨었습니다. 싸울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소년 다윗은 거인 골리앗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돌아와 보고했는데 믿음이 달랐습니다. 12명의 정탐꾼 가운데 10명은 가나안 땅의 심히 크고 견고한 성읍과 강한 거주민과 네피림의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고 겁에 질렸습니다. 정복할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메뚜기”(민 13:33)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그들은 우리의 먹이”(민 14:9)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인도하여 들여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문제를 본 것이 아니라 약속을 지켜주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주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의 믿음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갔습니다. 믿음의 열쇠로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문제를 바라보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자포자기할 것이 아니라 태산과 같은 문제라할지라도 평지와 같이 만들어 해결해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의 열쇠로 우리 자신의 영생의 문제와 더 풍성함의 문제와 신앙의 문제와 사역의 문제를 해결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녀와 부모의 문제, 그리고 직원과 상사의 문제와 알고 지내는 이웃의 문제까지도 해결 받으시기 바랍니다. 

 

 

[2012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108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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