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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강해설교

[잠언 7장] 내 말을 간직하고 지켜라

by 이서영 목사 2015. 6. 25.

 

[잠언 7장 강해설교] 내 말을 간직하고 지켜라

  

잠언의 주제는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면 마치 하나님은 자기 밖에 모르는 분인 것처럼 여길 수 있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위해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 군림하려는 독재자인 것처럼 평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자기밖에 모르는 분이실까요? 군림하는 독재자이십니까? 그래서 경외하라고 하십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참으로 희한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면 경외할수록 누가 덕을 보느냐 하면 하나님이 아니라 경외하는 사람이 덕을 봅니다. 그 사람은 가면 갈수록 좋아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공경하면서 경외하였을 뿐인데 돌아오는 것은 오히려 자기 자신이 잘 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경외하게 만들어서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경외하라고 하신 이유는 경외할 때 경외하는 사람이 복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면 당연히 어떤 자세를 가지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잘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하므로 잘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언약하신 대로 순종하게 되니 언약하신 대로 복을 받게 되므로 잘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만 잘 되게 만들지 않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게 만듭니다. 몸담고 있는 가정, 직장, 학교, 지역, 사회, 나라, 온 세상과 미래까지 잘 되게 만듭니다. 말씀대로 생각하고 말씀대로 말하고 행동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살아가도록 만들어 함께 말씀대로 살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함께 잘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잘 경외할 줄도 모르던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나라가 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반만 년 동안 헛되게 섬겨왔던 우상들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려고 몸부림치기 시작하자 일어서게 된 것입니다. 경외하면서 나타난 현상이 무엇입니까? 성경 말씀에 대한 사모와 보급입니다. 성경책이 번역되고 성경책이 국민들의 손에 들려지고 방방곡곡에서 성경 말씀 사경회가 일어나게 되자 나라가 일어서게 된 것입니다. 이전부터 내려오던 잘못된 관습을 버리고 성경 말씀대로 실천하고 성경 말씀에 입각한 원리들이 사회 전반에 적용되어 뿌리내리게 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욕심이 많아서 경외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군림하고 싶어서 경외하라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경외하라고 하신 이유는 우리 모두가 잘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신명기 10장 12절과 13절에 잘 요약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이제까지 잠언을 살펴본 바에 의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해서 그대로 경외하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삶들이 복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잠언 7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7장에서 말하는 명령들을 잘 듣고 지키면 우리 모두가 잘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전보다 더욱 더 잘 듣고 지키셔서 하나님을 보다 더 잘 경외하게 되시고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모든 삶들도 더 잘 잘 되기를 바랍니다.

  

잠언 7장에서는 어떤 명령을 주셨습니까? “내 말을 간직하고 지키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바꾸어 말씀드리면 “너희가 살고 싶으냐? 그러면 내 말을 간직하고 지켜라”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내가 하는 말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

  

소중한 것은 소중한 곳에 소중하게 보관을 합니다. 금괴를 소중하게 여기면 소중한 금고에 소중하게 보관하게 됩니다.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소중한 곳에 소중하게 보관하게 됩니다. 소중할수록 더욱 더 철통같이 간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고 철통같이 간직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길수록 소중한 곳에 소중하게 간직하게 됩니다. 보고 듣고 묵상하여 간직하게 됩니다. 말씀은 어디에 소중하게 보관할 수 있습니까? 우리 마음입니다. 말씀을 우리 마음에 소중하게 간직할 때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고 지킬 수 있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담긴 것이 없으면 자기 생각과 자기 기준대로 살아갑니다. 잘되는 것처럼 보여도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마음에 올바른 기준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기준에 의해 잘못된 생각이 나오고 잘못된 말과 행동이 나오게 되니까 잘 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패가망신 당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이 그 마음에 담겨져 있다면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말씀이 소중하게 담긴 사람은 어긋날 수 없게 됩니다. 말씀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니까 사소한 실수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올바르게 생각하고 올바른 길로 가게 됩니다. 길이 되는 성경 말씀이 올바른 길로 가게 만들고 올바른 결과를 가져오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면 손가락에 매고 마음판에 새기라고 하였습니다. 금반지를 만들어 손가락에 끼우고 다니듯이 말씀을 늘 가깝게 지니고 다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금같이 여겨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금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마음에 담고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책을 들고 다니고 가방 속에 보관하고 책장에 보관하고 스마트폰에 저장하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록된 돌판의 상태로 머물지 않게 하여야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마음판에 새겨져(히 10:16, 벧후 1:19) 살아서 역사하는 말씀이 되게 하여 언제 어디에서나 곧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옵니까? 지킴을 받게 됩니다. 지키면 지킴을 받습니다. 말씀을 지키면 잘못된 것으로부터 지킴을 받게 됩니다. 4-5절에 그러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솔로몬 왕은 지킴을 받는 예로 음녀와 이방 여인을 등장시켜 말해주었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담겨져 있는 사람은 음녀와 이방 여인에게 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씀이 담겨져 있지 않는 사람은 마음 내키는 대로 하다가 그만 푹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잘못된 음녀와 이방 여인의 유혹을 이기는 길은 말씀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지키며, 지켜, 지키라”고 세 번씩이나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킬 때 이것이 지키게 해준다는 것을 5절에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키지 못하면 지킴을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지키면 지킴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면 음녀와 이방 여인으로부터 지킴을 받습니다. 솔로몬 왕은 잘못된 것의 대표로 음녀와 이방 여인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지키면 이러한 잘못된 것으로부터 지킴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면 바로 이러한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경외하게 되면 말씀을 지키게 되고 말씀을 지키니까 음녀와 같은 온갖 미혹에 빠지지 않고 지킴을 받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철저하게 음녀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6장까지는 음녀와 관련해서 호색하지도 음행하지도 간음하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7장에서는 음녀에게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특별히 당부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음녀가 유혹하는 장면을 보다 자세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음녀의 유혹이 생각보다 끈질기고 마음을 녹게 만들고 대담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로몬 왕은 음녀가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런 수법을 잘 알아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잘 듣고 마음판에 새기고 지켜서 음녀의 유혹으로부터 지킴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1-5절에 음녀를 예로 들면서 내린 이러한 명령은 마치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에 나오는 “쉐마”([m'v], 들으라)의 명령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시렵니까? 사랑하는 방법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과 24절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 2장 4절과 5절에 말하였습니다.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라면 달이라도 따주려고 합니다. 사랑하면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경 말씀을 잘 듣고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손목에 맬 정도로 소중하게 여기고 잘 간직하고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명기 5장 32절에서 33절에서 말한 대로 삶을 얻고 복을 얻어 길이길이 잘 살게 됩니다.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

  

또한 신명기 6장 3절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령하신 이유를 신명기 6장 24절에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중요한 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차지한 땅에서 날이 길고 크게 번성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축복과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이 힘썼습니까? 그런 과정을 거쳐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땅을 차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차지한 다음에 어떻게 좋게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겨우 차지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차지한 땅에서 크게 번성하게 해준다는 복을 보장해주고 있기에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좋은 사람과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힘써야 하고 절제하여야 하고 정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것은 학교에 입학하고 회사에 입사하고 결혼식을 올리고 난 이후입니다. 이것은 더 긴긴 날이 됩니다.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행복의 명암이 갈립니다. 그러므로 좋은 땅을 차지한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들어가서 어떻게 지낼 것이냐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우선적으로 예수님을 필수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지내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학교든 직장이든 결혼생활이든 신경을 더 많이 쓰고 더 잘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더 잘해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잘 지키려면 무엇보다 먼저 잘 들어야 합니다. 들은 게 있어야 간직한 게 있어야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들으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듣기만 하려는 게 아닙니다. 들을 때만 은혜받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무턱대고 듣기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들은 말씀을 새겨서 잘 간직하고 삶 가운데 그대로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지키려고 들어야 합니다. 지키기 위하여 먼저 잘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솔로몬 왕은 “내 말을 간직하고 지켜서 살아라”고 힘주어 말한 것입니다. 음녀에게 끌려가면 죽는다. 살게 되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새겨서 간직하고 지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듣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잘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야 살 수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우리는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겸손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일평생 배우면서 삽니다. 그러나 교만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더 배울 것이 없다고 하면서 귀를 막고 듣지 않습니다. 자기를 가르치지도 말라고 합니다. 폐쇄적인 국가나 개인이나 조직이 잘 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개방적이고 수용적일 때 점점 발전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듣고 개방하고 수용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를 벗어나서는 수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무조건 수용하면 우선은 크게 되겠지만 결국은 분별력이 떨어져서 세속화되고 병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로 분별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말씀을 잘 듣고 마음에 새기고 지켜야 합니다. 그럴 때 음녀와 이방 여인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차지한 땅에서 크게 번성하게 되고 또한 그럴 때 그러한 믿음의 행동이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솔로몬 왕은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고 지키길 원하였던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말씀을 지키는 것과 관련하여 음녀를 예로 들었는데 그 음녀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6-12절에 소상하게 밝혀주었습니다. 먼저 음녀가 먹이감을 찾아 어슬렁거리다가 지혜롭지 못한 젊은이를 만나는 장면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다보다가 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 쪽으로 가는데,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여인이 그를 맞으니, 이 여인은 떠들며 완악하며 그의 발이 집에 머물지 아니하여, 어떤 때에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또 모퉁이마다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만난 다음에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유혹하는 장면이 13-20절에 나옵니다. 음녀가 어떻게 유혹하고 있습니까? 음녀는 속입니다. 솔로몬 왕은 음녀가 어떻게 속이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 여인이 그를 붙잡고 입 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그에게 말하되, 내가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오늘 갚았노라.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내 침상에는 꽃무늬 요와 애굽의 무늬 있는 이불을 폈고,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 날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음녀가 어떻게 속이고 유혹하고 있습니까? 그를 붙잡고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공격대상이 정해지면 집요하게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물고 늘어진다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을 하다가 날마다 동침하자고 집요하게 졸라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창 39:10). 음녀는 이처럼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말합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뻔뻔하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입을 맞추면서 말한다고도 하였습니다. 음녀는 입을 맞추는 행위로 인사성이 꽤나 좋아 보이는 것으로 포장합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엉큼한 속마음은 속이고 최대한 생글생글 환하게 웃는 얼굴로 간이라도 빼줄듯이 친절하게 싹싹하게 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접근하는 사람을 삼가 조심하여 진심으로 그렇게 대하는지 아니면 속이고 유혹하고 사기를 치려는 것이 아닌지 잘 분별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오늘 갚게 되었다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교묘하게 하나님을 터무니없이 들먹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너를 만나게 된 것은 기도 응답을 받은 것이라는 식으로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너를 맞이하려고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다고도 하였는데 내가 바라던 이상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널 만나려고 하였는데 드디어 나의 이상형인 너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 응답을 받았다느니 이상형이니 운운하면서 접근해 올 때 우리는 더욱 조심하여 분별하여야 합니다.

  

음녀는 젊은이가 자기에게 넘어왔다고 생각하자 이제 노골적으로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신경을 쓰지 않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환경도 잘 마련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먼저 멋지게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침대를 소개하면서 고급스럽고 화려한 침대이며 향수까지 은은하게 뿌려진 멋진 침대라는 것입니다. 그 침대에서 아침까지 흡족하게 실컷 서로 사랑하며 즐기자고 하였습니다. 그 사랑은 무슨 사랑입니까? 왜곡된 사랑이고 해서는 안 될 동물적인 본능의 사랑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사랑이라고 속이면서 유혹하고 있습니다.

  

음녀는 보다 더 확실하게 쐐기를 박으려고 말합니다. 우리가 즐기는 것을 방해할 훼방꾼도 없다는 것입니다. 걸림돌이 없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있지만 집을 떠나 멀리 출장을 떠났고 여비까지 풍족하게 가져갔으니 빨라도 보름이 지나야 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젊은이가 볼 때는 모든 것이 잘 구비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붙잡고 늘어지면서 싹싹하게 대하고 기도 응답이니 이상형이니 하는데다가 장소도 제공해주고 걸림돌도 없다는 생각이 드니 좋아라고 따라갔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말씀에 대한 분별력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담겨 있으면 지킴을 받습니다. 속지 않습니다. 지키면 지킴을 받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는 말씀이 마음에 담겨있지 못하니까 음녀의 모든 것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만 음녀에게 홀딱 반해 따라갔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참혹한 결말을 맞게 되는 장면이 21-23절에 나옵니다. “여러 가지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 같도다.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

  

음녀에게 마음이 끌려 속아서 따라간 결과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사냥당해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명예도 잃어버리고 남은 것은 수치만 남겨 되었습니다. 고결한 자신의 몸도 더럽히고 잃게 되었습니다. 왜 이러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까? 모르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23절을 보면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알면 속지 않습니다. 알면 당하지 않습니다. 모르면 속고 모르면 당합니다. 사기든 유혹이든 알면 속지 않고 알면 당하지 않습니다. 젊은이는 몰랐기 때문에 눈을 뻔히 뜨고도 속고 당하였습니다. 모르니까 마음이 끌리고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몰랐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몰랐습니다. 왜 몰랐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이 담겨져 있는 성경 말씀을 몰랐던 것입니다. 음녀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말씀과 음녀가 유혹하는 수법에 관한 말씀을 평소에 마음에 담고 새기고 지켰더라면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담긴 말씀이 없어 모르니까 그릇된 길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고 마음에 잘 간직하고 지켜야 지킬 수 있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솔로몬 왕은 거듭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당부하였습니다. 내가 하는 말을 듣고 간직하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24-27절에 결론을 내리면서 다시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아들들아 내 말을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의 집은 스올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24절의 “이제”(hT;['w])는 “그리고”(w, 와우, and)와 “지금”(hT;[', 앗타, now)이라는 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는 “And now, Now then, Now therefore”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음으로, 그러므로 이제”라는 의미인데 이제까지 들어본 결과가 어떠냐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말한 것을 결론적으로 정리하여 말하자면”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음녀에게 빠진 불쌍한 젊은이를 보고나서 자기 아들들에게 거듭거듭 당부하게 된 것입니다. 결말이 이러하므로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마음판에 새기고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솔로몬 왕은 음녀를 철저하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음녀를 따라가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음녀를 비유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음녀는 유혹하고 속이는 세상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간음은 세상과 영적으로 간음하는 행위라는 것을 성경 말씀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이 그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사도 요한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을 하려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하나님께서는 친히 십계명을 통해서도 간음하지 말기를 명령하셨습니다. 7계명은 육적인 간음행위를 말하며, 2계명은 우상숭배와 같은 영적인 간음행위를 말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죄를 갚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지킬 때 음녀와 음녀의 상징인 세상으로부터 구원받고 하나님과는 친밀한 사랑을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에는 큰 음녀에게 내릴 심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땅의 임금들도 음녀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음녀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였습니다. 그 음녀가 자주 빛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음녀는 결국 망하게 되고 벌거벗기게 되고 그 살이 먹히고 불로 아주 사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음녀가 유혹하고 속이는 그 길은 넓고 평탄하고 쾌락을 주기에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길은 결국 사망의 길이 됩니다. 그런 음녀는 우리 주변에도 많습니다. 마음을 사로잡는 것, 마음을 빼앗는 것, 그것이 주님께 향하는 것을 방해하고 주님이 원하지 않으시고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음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주기보다 파멸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길로 가까이 가지도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아들들이 음녀에게 유혹을 받아 멸망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명령을 잘 듣고 간직하고 지키기를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아들들이 말씀을 지켜서 음녀의 집에는 가까이도 가지 말아서 지킴을 받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명령을 듣고 지켜서 음녀에 빠지지 않아야 할 것을 당부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켜서 음녀의 유혹에 빠지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요셉은 끈질긴 유혹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라고 하면서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기에 분별력이 있었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이 끌리지 않고 오히려 뿌리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요셉을 지켜준 것입니다. 그 말씀이 아무리 유혹해도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지켜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국무총리가 되어 민족을 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요셉이 유혹에 넘어갔으면 종신토록 감방신세를 졌거나 목숨까지 잃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인생은 끝장났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무총리에 오르지도 못하여 요셉을 통한 이스라엘 민족의 번성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처신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 그치지 않고 그 한 사람이 몸담고 있는 가정, 학교, 직장, 지역, 사회, 나라와 민족, 온 세계와 미래까지 막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고 마음에 잘 새겨서 간직하고 삶 가운데 잘 지켜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 말씀이 음녀와 이방 여인과 같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장치가 되어줄 것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어긋난 집으로 가지 않도록 지켜줄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행동들이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차지한 땅에서 크게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은혜를 입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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