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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강해설교

[잠언 1장] 지식의 근본은

by 이서영 목사 2015. 6. 25.


[잠언 1장 강해설교] 지식의 근본은

 

 

솔로몬 왕은 잠언 1장에서 9장은 지혜를 알게 하고 행할 일을 훈계하고 있습니다. 10장에서 29장은 지혜를 알고 훈계를 받은 대로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격언 형식으로 대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30장과 31장도 실천에 관한 것인데 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잠언 가운데 잠언 1장부터 9장까지는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의 잠언입니다. 본문 1장 1절이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곧 이어 잠언을 쓴 목적을 2절에서 4절에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잠언의 목적은 지혜를 알고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그 지혜대로 행할 일에 대해 훈계를 받아 실제적으로 지혜롭게 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목적은 성경 전체의 목적이기도 하기에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서 17절에도 나옵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구원의 지혜를 알고.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교육을 받아.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니라” - 행하게 함.

 

이처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먼저 지혜를 알고 그런 후에 훈계를 받아야 합니다. ‘훈계’는 히브리어로 ‘rs;Wm’(무사르)인데 “훈련, 훈계, 징계, 교훈”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의미 가운데 훈련을 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훈련 없이는 행할 수가 없습니다. 훈련은 교육을 통해 숙달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숙달 되어야 능숙하게 할 수가 있기에 각 나라에서도 의무적으로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군인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훈련을 받아야 하고 의사가 사람을 살리려면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훈련 없이는 사람을 살릴 수가 없고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동안 고된 훈련을 시키고 또한 그 훈련을 달게 받고 있는 것입니다.


잠언도 이렇게 지혜를 알고 훈련을 받아서 온전한 사람이 되어 여호와를 잘 경외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훈련을 잘 받으셔서 여호와를 경외함에 능숙한 사람이 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에 능숙한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먼저 저자와 기록 목적을 말씀하신 후에 그 결과에 대한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5절과 6절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그리고 솔로몬 왕은 세계 최고의 지혜로운 사람답게 세상 모든 지혜 중의 지혜가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7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근본’은 히브리어로 ‘tyvioare’(레쉬트)인데 “첫째, 최초, 처음, 시작, 기초, 본질”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시작을 잘해야 합니다. 단추를 처음부터 잘 꿰어야 마지막까지 잘 꿰어집니다. 처음에 잘못 꿰면 다 꿰고 나서 어긋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단추를 잘 꿰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마지막에 가보면 천국에 도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잘못된 가짜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갈 줄 알고 열심히 단추를 꿰었지만 끝까지 꿰어보면 마지막에 어긋나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지옥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고 땅을 치면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단추를 잘 꿰어야 합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제대로 경외하는 사람은 시작을 잘한 것입니다. 하지만 경외하지 않고 멸시하는 사람은 시작부터 잘못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시작을 함에 있어 여호와 경외를 우선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가까이 하시길 바랍니다. 처음 단추를 잘 꿰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언을 말씀드리기 전에 솔로몬 왕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는데 말년에 쓴 전도서를 통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솔로몬 왕은 한 때 방탕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또한 이방 여자와 결혼함으로써 우상의 산당을 지어주는 등의 큰 잘못을 하였습니다(왕상 11:1~10). 세상적인 쾌락을 누리는 실수도 범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그 당시에 가장 부요하며 가장 명성이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자신의 마음에 말하였습니다. “자, 내가 시험 삼아 너를 즐겁게 해야 되겠다. 너는 낙을 누려 보아라.”

 

그리하여 사업도 크게 하고 집들도 짓고 포도원도 일구었습니다. 여러 동산과 과원도 만들고 거기에 각종 과목을 심었습니다.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해 못도 팠습니다. 남녀 노비도 많이 사고, 소와 양떼도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가졌습니다. 은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쌓기도 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이 마시는 그릇과 궁궐의 모든 그릇이 정금일 정도였습니다. 은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솔로몬 왕의 재산이 천하 열 왕보다 컸습니다. 노래하는 남녀들과 처와 첩도 많이 두었는데 후궁이 칠백 명이고 첩이 삼백 명이었습니다. 이렇게 솔로몬 왕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금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든지 마음에 즐거워하는 것은 막지 않고 즐겨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즐거움과 쾌락이 솔로몬 왕을 더 이상 기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모든 쾌락과 수고는 헛된 것임을 알게 되어 “이 모든 것이 바람 잡는 것이 되었구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솔로몬 왕은 값진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3:14). 그리고 다시 한 번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12:8)라고 하면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12:13,14)고 힘써 증언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솔로몬 왕을 알고 나면 잠언을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지식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더 잘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1장 7절 말씀을 되새겨 보겠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하나님을 잘 아는 것이 똑똑한 사람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잘 알아도 이것을 모르면 알 것을 모르니 무지한 것입니다. 모든 지식의 시작과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렇게 솔로몬 왕은 잠언의 주제를 말씀하신 후에 드디어 사랑하는 자기 아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8절과 9절입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영광이 주어집니다.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선수는 머리에 월계관을 쓰게 되고 목에 금메달을 메게 됩니다.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도 이와 같은 영광을 받게 됩니다. 아름다운 관, 즉 아름다운 “화환”(‘hy;w]li’, 리위야)을 쓰게 되고 목에 금 사슬, 즉 황금 “목걸이”(‘qn:[;’, 아나크)를 걸게 됩니다.

 

그리고 꼭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육안에 보이는 모자와 금목걸이로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안으로 각 사람의 머리에 쓰여진 화환과 목에 걸려 있는 금목걸이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가치를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 왕은 이렇게 간곡하게 “내 아들아”라고 부르면서 아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후로 7장까지 계속하여 “내 아들아”라고 꼭 먼저 부르고나서 진지하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8장 후반에서도 “아들들아”라고 하면서 “내게 들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잠언 1장에서 9장의 전체적인 형식은 “내 아들아, 내 말을 들으라”는 형식입니다.

 

이렇게 주의를 환기시킨 다음에 악한 자와 지혜의 서로 다른 초청을 대조시켜 사망과 생명을 대조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지식의 근본이신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였습니다. 10절입니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악한 자의 유혹을 설명하려고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11절에서 14절입니다.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스올 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들 같이 통으로 삼키자.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을 채우리니.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지라도.”

 

그들이 이렇게 말한다고 해도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5절과 16절입니다.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 솔로몬 왕은 그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17절에서 19절입니다. “새가 보는 데서 그물을 치면 헛일이겠거늘, 그들이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도둑이 살림보태주고 가는 것을 보셨습니까? 축나게 만듭니다. 빼앗아 갑니다. 신종 도둑도 많이 생겼습니다. 보이스피싱, 파밍, 스미싱 등의 방법을 사용합니다. 통장에 돈을 저금해주지 않고 오히려 빼내 갑니다. 지적 도둑도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큰 도둑은 마귀입니다. 생명을 빼앗아 가고(요 10:10) 말씀을 빼앗아 갑니다(마 13:19). 그의 하수인들은 성도들을 미혹하여 빼앗아가려고 합니다(갈 2:4, 딤후 3:6, 벧후 2:1, 유 1:4). 이 모든 것은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최후가 어떤지에 대해 요한계시록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19장 20절입니다.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20장 10절입니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21장 8절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속여서 빼앗는 자의 최후가 어떤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화제를 바꾸어 솔로몬 왕이 지혜를 의인화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초청하고 있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20절과 21절입니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이제 지혜가 본격적으로 외치기 시작합니다. 22절과 23절입니다.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사도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행 2:38)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의 수가 삼천 명이나 더했습니다. 깨끗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누가 더러운 그릇에 음식을 담아먹겠습니까? 모두가 다 깨끗한 그릇에 담듯이 하나님께서도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셔서(딤후 2:21) 성령님을 부어 주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지혜가 이렇게 아무리 외쳐도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멸시하였습니다. 24절과 25절입니다.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그러므로 지혜는 매우 실망하였습니다. 그래서 지혜는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26절과 27절입니다.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지혜는 부를 때에 응답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렇게 재앙을 만난 후에야 뒤늦게 부르짖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28절에서 31절입니다.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이미 때가 늦은 것을 말씀해줍니다. 뒤늦게 후회해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에서가 장자의 축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놓치고 나서 후회하였지만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7절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우리 역시 때 늦은 후회를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지혜를 버리고 지혜를 업신여긴 결과로 그만 화를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하는 말씀을 듣는 사람은 평안하게 살게 됩니다. 그래서 지혜는 다시 말하였습니다. 32절과 33절입니다.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요즈음 안전을 많이 외칩니다. 진정한 안전은 어디로부터 옵니까? 지혜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평안히 살고 재앙의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퇴보’는 히브리어로 ‘hb;Wvm]’(메슈바)인데 “뒤로 돌아감, 되돌아감, 배신, 변절”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를 죽이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퇴보입니까? 누구에게서 뒤돌아가서 멀어진다는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뒤돌아서서 멀어지면 어떤 결과가 옵니까? 지옥입니다. 이 땅에서의 생지옥입니다. 하나님은 계시지 않고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요 10:10) 마귀가 우글거리는 곳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퇴보는 이처럼 자기를 죽이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령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마태복음 12장 28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귀신이 없어야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거꾸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계셔야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퇴보를 자청하면 자기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또한 ‘안일’은 히브리어로 ‘hw:l]v’(샬와)인데 “무사안일”한 평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옵니까? 퇴보와 마찬가지로 역시 자기를 멸망시킵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이 있으나 마나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뒤돌아 멀어지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이 마치 없는 것처럼 천하태평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자신을 믿고 살다가 그만 자신도 모르게 자기를 지옥에 던져 넣고 생지옥에 던져 넣어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혜가 하는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은 평안히 살고 재앙의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살아갑니다. 내세의 천국은 이 모든 조건이 완전 성취되는 곳입니다. 평안히 삽니다. 재앙의 두려움이 없습니다. 안전합니다.


현세의 천국에도 이와 같은 일이 성취됩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사람의 몫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입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이렇게 천국은 지혜가 하는 말씀을 잘 듣고 돌이키는 사람이 차지하게 됩니다.

 

솔로몬 왕은 이처럼 아들에게 지혜를 의인화하여 지혜를 얻도록 하였습니다. 지혜의 초청을 물리치지 말고 잘 받아들이길 바라셨습니다. 그리하여 책망을 듣고 돌이켜서 하나님의 영을 받고 말씀이 보이게 되길 원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천국이 있고 하나님이 계시고 말씀이 있어도 회개하여 돌이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아무런 혜택이 없습니다. 주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것과는 상관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으로부터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지내는 것으로부터 회개하여 돌이켜야 합니다. 사람의 본분은 무엇입니까? 지식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초청을 받아들이셔서 여호와를 더욱 더 잘 경외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셔서 더욱 더 평안히 살고 재앙의 두려움 없이 보다 안전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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