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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강해설교

[잠언 3장]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라

by 이서영 목사 2015. 6. 25.

 

[잠언 3장]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라

 

솔로몬 왕은 3장에서는 여호와를 인정하고 의지하여야 하는 것을 사랑하는 아들에게 특별히 당부하였습니다. 자기의 명철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인정하고 의뢰하게 되면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3장에서는 지혜의 말씀에 순종하면 얻게 되는 축복을 “~하라, 그리하면 ~”이라는 구조를 무려 다섯 번씩이나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혜의 가치에 대하여 말하였으며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것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호와를 인정하고 의지하고 이웃에게 선을 베풀게 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됩니다.

 

솔로몬 왕은 1장과 2장과 마찬가지로 먼저 “내 아들아”라고 부른 다음에 말하였습니다. 본문 1절과 2절입니다.“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나의 명령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책은 어떤 책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언약이 담겨져 있는 책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을 우리 인간들에게 언약하시면서 나타내어주신 형태가 구약과 신약이란 성경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언제나 변함없이 성취하고 계십니다.

 

본문 1절을 통하여 성경책이 어떤 책인지를 살펴보면 “나의 법”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법이 담겨져 있는 책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려면 하나님 나라의 법이 꼭 필요한데 그 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법을 잊지 말고 잘 기억하고 그 법대로 잘 지켜야 합니다.

 

또한 성경책은 명령의 책이기도 합니다. 1절을 보면 “나의 명령”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복된 삶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그 명령을 기록한 책이 성경책입니다. 이처럼 성경책은 어떤 사실을 단순히 소개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성경책은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를 괴롭게 만들고 짐을 지우는 명령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짐을 벗겨주고 우리를 복되게 만들어주는 명령입니다. 그 명령을 따를 때 의롭고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 왕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나의 명령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하면 어떤 결과가 온다고 하였습니까? 장수하게 되고 평강을 누리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장수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저 오래 살기만 하면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프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인간관계가 불편하고, 불안하고, 사건사고를 당하면서 오래 산다는 것은 오히려 생지옥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과 명령을 잘 지키면 단순히 장수만 하지 않고 평강하면서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평강”(샬롬)의 의미는 단순히 평안하고 강건한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평화와 복지와 번영과 행복이 포함된 뜻이며 아울러 건강과 안전도 포함된 뜻입니다. 그러므로 장수하되 평강하다는 것은 이처럼 장수하되 건강하고, 장수하되 경제적으로 풍성하며, 장수하되 인간관계가 좋고, 장수하되 안전하게 복되게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귀한 복을 주시려고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법을 주셨고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책이란 형태로 우리 손에 들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과 명령인 성경 말씀을 잘 기억하시고 잘 지키셔서 장수하시되 평강도 더해지시길 바랍니다. 잘 기억하시고 잘 지키시므로 장수하시되 평강하시면서 장수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나의 법”과 “나의 명령”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잠언 3장 내에서 보면 3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솔로몬 왕은 3절부터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법과 명령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1절과 2절에서 말한 법과 명령이 무엇인지를 3절 이하에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3절과 4절입니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인자와 진리를 목에 매고 마음 판에 새겨서 떠나지 말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때 “인자”는 무엇을 말합니까? “헤세드”라고 하는데 “친절, 자비, 자애”를 뜻합니다. 자비롭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까칠하게 대하지 말고 너그럽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자하게 대하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멸시천대를 받으면서 사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존중을 받으면서 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는 비결이 바로 인자와 진리를 마음 판에 새기고 떠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진심으로 인자하게 대할 때 돌고 돌아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존중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알아달라고 하지 않아도 인자와 진리를 행하면 자연스럽게 그런 결과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자하게 대해주시고 진리에 따라 행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셔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솔로몬 왕은 또 하나의 법과 명령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법과 명령입니다. 5절과 6절입니다.“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씀은 매우 중요한 말씀이므로 다른 성경에도 많이 나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5절을 보면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나옵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시편 55편 22절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잠언 16장 3절은 여호와를 믿고 의지하여 맡길 때 우리가 하는 일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이렇게 여호와께 의지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맡아주셔서 이루어주시는 은혜와 능력의 삶을 살게 됩니다.

 

다윗 왕이 그 모든 원수와 사울 왕의 손에서 구원받은 후에 여호와께 고백한 것이 시편 18편 29절, 38절과 39절에 나옵니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내가 그들을 쳐서 능히 일어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발 아래에 엎드러지리이다. 주께서 나를 전쟁하게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이 내게 굴복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의지한 다윗 왕에게 능력으로 띠를 띠어주셔서 적군에 달리게 하시고 담을 뛰어 넘게 하셔서 승리하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사자와 곰을 물리치게 되었고(삼상 17:34-36) 골리앗도 물리치게 되었습니다(삼상 17:45-51). 골리앗과 다윗은 둘 다 큰 소리 “뻥뻥” 쳤습니다. 하지만 큰 소리 치는 이유가 달랐습니다. 골리앗은 자신의 힘을 믿고 의지하였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 것이 달랐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5-47절에 다윗이 하는 말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이후로도 다윗 왕이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사무엘하 8장 6절과 14절이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이와 같이 다윗 왕은 하나님께 철저히 의지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셨고 다윗 왕은 이를 찬양하면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이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한 아버지 다윗 왕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이러한 승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을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아들들에게도 여호와를 의지하여야 하는 것을 당부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시고 의지하심으로 범사에 인도받으시고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되시길 바랍니다.

 

솔로몬 왕은 이제 또 다른 하나의 법과 명령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7절과 8절입니다.“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하나님을 의지하려면 자신의 지혜가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혜를 대단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혜를 높이는 악을 행하지 말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5-8절을 통해서도 이러한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5,6).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믿는 등의 행위는 악을 행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문맥상으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7장 앞에 나오는 16장을 보면 이러한 행위들이 악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메마름뿐입니다.

 

하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면 그 반대 결과가 옵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7,8).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메말라지지 않고 오히려 청청해집니다. 본문 8절도 그러한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고 그러한 악을 버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면 이것이 몸에 양약이 되어 골수가 윤택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골다공증의 염려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악을 버리시고 여호와를 의지하셔서 이것이 몸에 양약이 되시고 골수가 윤택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솔로몬 왕은 여호와를 의지하도록 한 다음에 어떻게 하여야 의지하는 것인지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말해주었습니다. 9절과 10절입니다.“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처음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처음 것으로 드린다는 것은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며 주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믿는 믿음의 표시입니다. 이처럼 처음 것을 드린다는 것은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이요, 그의 말씀을 인정한다는 것인데 곧 여호와를 의지하고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 것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먼저 드리고, 그 나머지를 감사함으로 귀하게 쓰는 믿음을 보일 때 하나님께서는 크게 감동하셔서 창고가 차고 넘치도록 해주십니다.

 

처음 것의 유형으로 십일조가 있습니다. 내가 한 달 동안 열심히 힘써 벌었으므로 모든 수입이 내 것이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알게 모르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벌게 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 받아야 십일조를 보다 더 정성껏 드릴 수 있습니다. 신명기 8장 17절과 18절 말씀이 그러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거두어들였고 자신의 힘으로 살게 되었다고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앞에 나오는 8장 11-16절에 소상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주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인식할 때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십의 아홉을 내 것으로 먼저 제쳐 놓은 후에 십의 일을 마지못해 떼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십의 일을 처음 것으로 구별하여 드릴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십일조를 아예 드리지 않는 구실로 구약에만 있다든지 의무사항이 아니라든지 신약에는 없다든지 하는 핑계도 대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십일조를 드리되 종교적인 행위로 물질만 드리지 말고 정의와 긍휼과 믿음까지 더해서 정성을 다하여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둘 다 하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되 마음까지도 다하라는 것입니다.

 

주일 성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주일 중에 육 일을 먼저 살고 난 다음에 주일을 주말로 여겨 주일성수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일을 한 주간의 첫 날로 구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 수확물도 많이 있습니다. 첫 월급, 첫 용돈, 첫 수확, 첫 수입, 첫 생일 등이 있습니다. 처음 것으로 시간도 있는데 한 해의 첫 날, 한 달의 첫 날, 하루의 첫 시간 등이 있습니다. 처음 것을 구별한다는 것은 그만큼 여호와를 믿고 인정하고 의지한다는 표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것을 소중하게 구별하시고 마음을 다하여 정성껏 하나님께 드리셔서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는 믿음을 보여드리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셔서 창고가 가득차고 넘치는 복도 아울러 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이제 솔로몬 왕은 다른 측면에서 여호와를 인정하고 의지하는 것에 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징계는 여호와를 경외하도록 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11절과 12절입니다.“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징계는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더 가깝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여호와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참 아들인 경우에 징계 받음을 생각하고 달게 받고 돌이키기를 당부하였습니다. 이러한 징계는 큰 사랑의 표시로서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7절에서 11절을 보면 징계에 대한 내용이 보다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우리가 때론 하나님의 징계로 힘들어 할 때도 있지만 달게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의 매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친 자녀인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더욱 더 하나님의 자녀답게 만들어주시고 의의 길로 인도해주시고 평강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당하여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시고 오히려 달게 받으시고 잘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솔로몬 왕은 이러한 지혜와 명철을 얻은 사람의 복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13절에서 18절입니다.“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지혜와 명철을 얻은 사람은 이 세상의 그 모든 금은과 보화보다 값진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알 것을 모르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가질 것을 가지 못하면 아무리 모든 것을 가져도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됩니다. 겉으로 보기에 가진 것이 많아보여도 잠언을 통해 바라보면 빈털터리로 보이는 것입니다. 반면에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여도 지혜와 명철을 가진 사람은 그 모든 것보다 가장 값진 것을 가지고 있는 부유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장수와 부귀가 어디에 있다고 하였습니까? 즐거움과 평강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혜와 명철을 얻은 자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명철’은 무슨 뜻입니까? “타분”이라고 하는데 “이해력(understanding), 지력(intelligence)”의 뜻이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지혜와 명철을 가진 사람은 복되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 세상의 어떤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혜와 명철을 가지셔서 복된 사람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솔로몬 왕은 지혜와 명철을 얻은 사람이 받을 복에 관해 말한 후에 여호와의 지혜가 어떤 지혜인지에 대하여 말해주었습니다. 전도서에도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 12:1)고 하였는데 잠언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19절과 20절입니다.“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창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치밀한 계획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오묘한 지혜와 명철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능력이 있어야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방식으로 창조하신 지혜의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명철과 지식의 신이신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임하시면 당연히 지혜와 명철과 지식이 충만해집니다. 이사야 11장 2절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물론 이 말씀은 문맥상 예수님에게 임하실 것을 예언적으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영이 임하게 되면 우리에게도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막을 만들 때 브살렐에게 지혜와 총명과 지식이 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5장 30-33절을 보면 모세가 그러한 것을 증언하는 것이 나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금과 은과 놋으로 제작하는 기술을 고안하게 하시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여러 가지 정교한 일을 하게 하셨고.”

 

그러므로 우리가 의지하려는 하나님은 모든 시작이 되시는 창조자이신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모든 지혜와 명철과 지식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하시고 믿고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셔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명철과 지식으로 새롭게 창조해나가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하셔서 우리 가운데도 새로워지는 역사가 많이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솔로몬 왕은 이렇게 말한 다음에 지혜의 유익에 대하여 계속 말해주었습니다.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는 사람의 복을 말한 것입니다. 21절에서 24절입니다.“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네가 네 길을 평안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근심걱정이 많을수록 잠이 오지 않습니다. 괴롭고 답답하고 우울하고 슬프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잘 되어 갈 때에는 편안하게 잠을 잡니다. 잠이 달게 됩니다. 이렇게 진정으로 잠을 달게 자려면 어떻게 하면 된다고 하였습니까? 평안히 행하고 발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누우면 잠이 달게 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눈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면 됩니다. 지혜가 있고 근신하는데 걸려 넘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단어의 뜻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근신”(미브타흐)은 “신뢰, 확신”을 의미하는데 믿을 만하게 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완전한 지혜”(투쉬야)는 건전하고 효과적인 지혜를 의미하는데 이 지혜는 실제적인 성공으로 인도하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잘못 갈 수 없고 잘못 판단할 수 없고 잘못 처리할 수 없습니다. 건전하고 효과적으로 행하고 믿을 만하게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잘 지키시고 지혜와 근신을 눈앞에 항상 두시고 지키셔서 영혼의 생명이 되시고 목의 장식이 되시고 평안히 행하시고 잠을 달게 주무시게 되시길 바랍니다.

 

솔로몬 왕은 3장의 주제인 여호와를 의지하여야 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또 다시 말해주었습니다. 25절과 26절입니다.“너는 갑작스러운 두려움도 악인에게 닥치는 멸망도 두려워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면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 발걸음이 걸려 넘어지지 않을까 불안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맡아주시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지하여야 할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아시고 더욱 더 하나님을 잘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솔로몬 왕은 이러한 말을 한 다음에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랐는데 이웃을 돌아보도록 하였습니다. 이웃을 향한 선행에 대한 당부도 솔로몬 왕은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웃도 반드시 사랑하게 됩니다. 자신만 평안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도 나 자신처럼 여기고 다함께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27절에서 31절입니다.“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고 에베소서 2장 10절에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웃에게 선을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이어서 악인에게 임할 저주와 의인에게 임할 복에 대하여서도 말해주었습니다. 악인은 이웃을 평안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해악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인은 이웃에게 복을 주기에 자기 자신도 보다 더 많은 복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32절과 33절입니다.“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패역”은 “루즈”인데 “떠나다, 비뚤어지다, 정도에서 빗나가다, 옆으로 빗나가다, 길을 잘못 들다”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도리에 어긋나게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삐뚤어지지 않고 정직한 사람과는 교통하십니다. 교통하심의 복이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임마누엘의 복이 임합니다. 이 복을 받은 의인의 집은 점점 더 잘 순종할 수 있게 되어서 점점 더 순종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의 평안을 위하여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마시고 선을 베푸시면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복은 진실로 겸손한 사람이 받게 된다는 것을 솔로몬 왕은 말해주었습니다. 왜냐하면 패역하지 않고 겸손한 사람이 더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행위가 여호와를 믿고 인정하고 의지하는 것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34절입니다.“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겸손과 은혜의 관계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면, 야고보서 4장 6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리고 베드로전서 5장 5절과 6절에도 있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겸손한 사람이 여호와를 인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고 의지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겸손한 지혜로운 사람은 영광을 얻게 된다는 것을 솔로몬 왕은 말하였습니다. 35절입니다.“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

 

이처럼 하나님께서 거만한 사람은 비웃으시고 겸손한 사람에게는 은혜를 주시기에 지혜로운 사람은 영광을 받고 미련한 사람은 수치를 받는 것입니다. 교만하면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외면당합니다. 좋은 것을 받지 못합니다. 들어오는 복을 막는 격이 됩니다. 은혜 입을 기회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결국은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자기가 생각할 때는 자기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교만이 자신도 모르게 사이에 자신의 미련함이 되어 자기 자신에게 수치를 안겨다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겸손하면 하나님께도 쓰임을 받고 사람으로부터도 쓰임을 받습니다. 자다가도 떡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한 개라도 더 주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시고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겸손하면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좋은 것을 점점 더 많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도 많이 입게 됩니다. 그리하여 존중도 받게 되어 영광을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

 

“기업”은 히브리어로 “나할”인데 “물려받은 것, 상속(inherit)”이라는 뜻입니다. 상속은 자격이 있으면 자동으로 주어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는 것을 연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격은 부모와 자녀관계입니다. 이처럼 겸손한 지혜로운 사람도 당연히 자격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어떤 기업을 물려받게 되는데 그것은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겸손하게 아버지의 원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던 그 순간은 우리가 구원 받느냐 못 받느냐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순간에 자신의 유익보다 아버지의 뜻을 위하고 한없이 사랑하는 나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기로 결단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날 사랑하시므로 날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구원을 받게 되었고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까? 이렇게 구원을 받은 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겸손하게 따르셨기 때문입니다. 겸손하게 따르셨을 때 나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었고 세상을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세세토록 영광을 받으시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뜻이 아니라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위하고 이웃을 위할 때 우리도 살아나게 되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많은 사람도 살리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영광을 기업으로 받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전보다 더 겸손하게 여호와를 인정하고 의지하시고 이웃에게 선을 베푸셔서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은혜와 존중을 더 많이 입으시고 영광도 더 많이 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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