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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강해설교

[잠언 서론] 내 말을 보이리라

by 이서영 목사 2015. 6. 25.

[잠언 서론 강해설교] 내 말을 보이리라

 

 

옛날에 덕이 많고 매우 선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가장 지혜로운 청년을 뽑기 위해 각 동네에 널리 알렸습니다. 그러자 많은 청년들이 몰려왔습니다. 부자가 많이 모여 있는 청년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 집에 있는 것 중에서 한 가지만 가져간다면 무엇을 가져가겠습니까?”

 

그러자 청년들이 앞 다투어 말했습니다. “나는 돈, 나는 땅, 나는 하인 거느리는 것…” 여기저기서 많은 말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 지혜로운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딸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자 부자는 그 청년에게 딸을 주었습니다. 그 딸과 함께 재산 상속권과 하인 거느리는 권세까지도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께서도 이 세상에서 딱 한 가지만 가지라고 한다면 무엇을 가지겠습니까? 모든 것을 가지신 선한 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한 가지를 가지라고 하신다면 무엇을 가지겠습니까? 동산과 부동산입니까? 명예입니까? 아니면 큰 사업체입니까? 우리도 지혜로운 청년처럼 잘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만 가지라고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안에 모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 예수님과 함께 그 모든 것을 주십니다. 로마서 8장 32절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아멘. 

 

그렇다면 예수님 안에 무엇이 있다고 하였습니까? 요한일서 5장 11절과 12절을 보면 생명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얻으면 생명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아멘.

 

또한 예수님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2장 2절과 3절입니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잠언에는 이러한 것을 잘 깨닫게 해주는 지혜의 말씀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지혜를 얻으면 귀중한 많은 것도 덩달아 깨닫게 되고 풍성하게 얻게 됩니다. 앞으로 계속되는 잠언 설교를 통해 이러한 지혜가 무엇인지 지혜를 어떻게 하면 얻게 되는지 그 비결을 하나씩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러한 비결을 깨닫게 되면 신앙생활하는데 가정생활, 직장생활, 사회생활하는데 보다 큰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보다 더 하나님을 잘 경외하게 되고, 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보다 풍성하고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또한 깊은 영성도 회복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더 나아가 칠력도 더해질 줄로 믿습니다. 칠력이란 영력, 심력, 지력, 체력, 재력, 권력, 관력을 말합니다. 먼저 영력이 있어야 신앙생활의 중심이 잡힙니다. 그리고 심력도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권력 있고, 돈 있고, 건강 있고, 지성 있고, 미모가 있어도 마음이 깨지면 그만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력도 있어야 하고 체력도 있어야 합니다. 체력이 없으면 앞의 모든 것을 가져도 아무 소용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가 재력도 있어야 합니다. 돈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권력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력이 있어야 합니다.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앞의 것 다 갖추고 있어도 관력이 좋지 않으면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야 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좋아야 하고, 자신과의 관계 역시 좋아야 합니다.

 

주의하여야 할 것은 탐욕에 물든 칠력은 오히려 화가 되기에 탐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안의 선한 칠력은 있을수록 좋기에 우리 모두에게 더욱 더 풍성해지길 바랍니다. 이러한 진귀한 지혜들이 잠언에 많이 담겨져 있으므로 잠언 말씀대로 잘 따르면 칠력이 더해질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잠언 말씀에 귀를 잘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제가 은혜를 받아 돌이키기 전에는 제 자신이 주인이 되어 저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후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변화받기 전에는 하나님도 성경도 잘 몰랐지만 이제는 “오직 하나님! 오직 하나님 말씀!”을 외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은혜를 나누어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더욱 잘 경외하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전해드리는 잠언 말씀을 잘 깨닫고 잘 적용하셔서 세상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로 세상과 나를 이기면서 지혜롭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잠언의 주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잠언은 특히 지혜를 강조하고 있는데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근본이란 말은 시작이란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잠언에는 창조에 대한 것이 많이 나옵니다. 창조의 하나님을 잘 알아서 근본을 알고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잠언의 목적은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 지혜를 깨닫게 하고 깨달은 지혜대로 행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지혜의 시작도 하나님으로부터 창조의 시작도 하나님으로부터 된 것을 깨달아 만물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를 확장하여 모든 관계 속에서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도 있습니다. 여기서 ‘근신함’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근신함”의 원형은 히브리어로 ‘hM;zIm'’(메짐마)입니다. “계획, 의도, 분별, 꾀”라는 의미가 있는데 “악한 생각, 악한 계교” 등의 의미도 있습니다. 이 의미대로 번역한다면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 잠언의 목적이라고 하였으므로 악한 꾀를 주기 위한 것이 잠언의 목적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뜻도 있습니다. 잠언에서는 악을 꾀하는 사람들이란 부정적인 개념을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중함”(discretion)이라는 긍정적인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개념으로 사용될 때는 악을 꾀하는 사람과 함께 사용되지만(12:2, 14:17) 긍정적인 개념으로 사용될 때는 지식이나 명철이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됩니다(1:4, 2:11, 5:2, 8:12). 긍정적인 개념의 ‘근신함’은 악한 것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한 것을 분별해내고 사려 깊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언의 내용은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자기 자신과의 관계와 가족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잠언의 내용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 곧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마 22:37~40). 특히 이웃 사랑은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되기에 자기 자신의 사랑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용서해야 다른 사람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혜를 잘 깨달아 모든 관계가 회복되어 관계가 좋아지시고 아름다운 사랑이 회복되시길 바랍니다.

 

잠언의 형식은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교훈하는 형식입니다. 솔로몬 왕과 아굴, 그리고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귀한 지혜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음녀와 지혜, 악인과 의인 등을 대구법 형식을 사용하여 대조하면서 생명을 얻도록 지혜의 말씀을 듣고 지키라고 훈계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도 저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꼭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면 바로 이 잠언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 아들에게 『내 아들아』라는 책을 써서 주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께도 이러한 말씀을 전해 드리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애틋한 사랑으로 자신의 자녀들에게 간절히 말씀하시는 분은 살아계시는 참 좋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되실 것입니다.

 

잠언은 아들에게 주는 말이므로 “내 아들아!”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1-8장과 31장에 많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먼저 아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이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자신의 아들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시 2:7). 그런데 아들이란 말은 아들과 딸, 곧 자녀를 대표하는 말입니다.

 

잠언에서는 ‘아들’이란 말을 사용했지만 이사야서와 스가랴서 등에서는 ‘딸’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62장 1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스가랴 9장 9절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이사야 60장 4절에서는 아들과 딸을 모두 언급하고 있습니다.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성경에서는 이처럼 아들, 딸, 아들과 딸을 문맥과 상황에 맞게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모로 보는 아들과 딸의 구별 없이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아들이라고 부르든지 딸이라고 부르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인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아시길 바랍니다.

 

자녀가 되는 근거는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고후 6:18)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놀라운 사랑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성령님도 친히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십니다. 로마서 8장 16절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5절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아이들은 자기 아버지가 아니면 아무리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여도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아버지이면 아무리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해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진정으로 자연스럽게 부르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아버지”이니까 당연히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사람입니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나라의 호적인 생명책에 올라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잊지 않으시고 항상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십니다. 우리 이름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점점 희미하게 사라질 수 있습니다. 선생님, 친구, 직장 동료, 친인척들에게서. 역사 속에서 이름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억 속에는 영원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 이름이 생명책에 영원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바닥에 우리 이름을 새겨 놓았다고 하실 정도로 영원토록 기억해주십니다. 우리를 알아주십니다. 나를 알아주십니다. 내 이름을 기억하십니다. 나를 기억하십니다. 

 

이사야 49장 14절에서 16절입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외롭고 힘들고 알아주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순간에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기억해주시고 함께 해주십니다. 영원토록 내 이름을 불러주시고 사랑해주시고 함께 해주십니다. 마치 손바닥에 깊이 새겨놓으실 정도입니다. 결코 나를 잊지 않으시고 결코 내 이름을 잊지 않으시고 영원토록 나를 기억해주시고 영원토록 내 이름을 기억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그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그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20장 36절입니다.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히 죽지도 않지만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도 영원히 끊어질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가 나빠졌다고 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끊어지지는 않습니다. “꼴도 보기 싫다”라고 하면서 부자 관계를 아무리 부인한다고 하더라도 피는 부인할 수 없고 유전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피는 없애거나 바꿀 수 없고 유전자 역시 바꾸거나 없앨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하나님의 피와 하나님의 유전자로 인해 결코 부인당할 수가 없고 끊어질 수가 없습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8절과 39절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처럼 아들이든 딸이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한 번 자녀가 된 순간에 이미 영원한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지혜롭게 되는지 잠언 말씀을 통해 깨달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잠언 말씀을 계속 잘 배우고 잘 익혀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혜롭게 행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잠언의 구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언의 장수는 총 31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잠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1장부터 9장까지로 주로 지혜의 본질에 관한 것입니다. 후반부는 10장부터 31장까지로 주로 지혜의 실천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과의 관계와 나 자신과의 관계와 다른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이렇게 잠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인 1장부터 9장까지는 “지혜를 들으라”는 구조이고, 후반부인 10장부터 31장까지는 “지혜를 행하라”는 구조입니다. 듣고 행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잠언의 성경 여부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언의 저자는 1장부터 29장까지는 솔로몬 왕의 잠언, 30장은 아굴의 잠언, 31장은 르무엘 왕의 어머니의 잠언입니다. 잠언을 보면 저자들이 귀한 지혜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잠언의 저자들이 자신들이 깨달은 지혜를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성경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21절입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이와 같이 잠언도 잠언의 저자들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감동해주셔서 말씀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잠언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잠언의 말씀을 성경 말씀으로 받아들이시고 힘써 배우고 지켜나가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잠언에는 어떤 하나의 원리가 있습니다. 잠언의 주제와 목적, 내용, 형식과 구조를 볼 때 잠언에는 일정한 원리가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시는데 그 명령의 내용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고 그런 다음에 그 명령을 따를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하나님의 영으로 행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에스겔 36장 26절과 27절을 보면 그러한 원리가 나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책임하게 순종하라고 명령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하나님의 영으로 행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원리가 잠언에도 나옵니다. 우리의 행사를 맡김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이것을 잠언 16장 3절이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돌이키라는 명령을 따르면 성령님 충만, 말씀 충만해집니다. 명령을 듣고 돌이켜 따르면 따를수록 더욱 더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잠언 1장 2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책망을 듣고 돌이키면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이리라”의 동사 원형은 히브리어로 ‘[d'y:’(야다)인데 “알다, 이해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듣고 돌이키면 깨닫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잠언의 전체 구조와 같이 먼저 지혜가 무엇인지 지혜가 들리도록 해주시고 그런 다음에 깨달은 지혜를 실제로 행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잘 들으시고 돌이키셔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이 예수님을 통해 더욱 더 충만하여지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셔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더 잘 깨닫게 되시고, 더욱 더 잘 행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 결과 더욱 더 지혜로워지시고 칠력도 보다 더 충만하여지셔서 하나님 나라와 우리 모두를 위해 귀하게 쓰임 받게 되시길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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