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장 강해설교] 지혜를 간절히 찾고 구하면
다윗 왕은 아들 솔로몬 왕에게 죽음을 앞두고 유언을 남깁니다. 열왕기상 2장 1-3절입니다.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다윗 왕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이기에 그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 왕이 남긴 말씀 가운데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는 말씀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말씀이겠습니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셔서 모압 땅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언약의 말씀을 하도록 하신 가운데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명기 29장 9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이와 같은 말씀을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모세 이후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장 1절과 7-8절입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직접 하신 이 말씀은 모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과도 같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신 29:9). 다윗이 솔로몬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도 바로 그와 같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 2:3).
보십시오. 어떻습니까? 말씀을 듣고 배우고 지켜 행하는 것의 중요성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형통함의 비결은 그 어떤 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시점마다 이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다윗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마지막 유언으로 이와 같은 말씀을 남긴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노년에 자기 아들들에게 잠언을 통해 그러한 말씀을 남기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잠 10:1)는 격언형식이 시작되는 10장 이전에 나오는 1장에서 9장을 보면 솔로몬 왕은 먼저 “내 아들아”라고 부르면서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라”는 형식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잘 듣고 잘 지켜야 지혜로워져서 형통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사화복의 비밀을 깨닫게 되고 생명과 복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생사화복의 비밀은 이 말씀 속에 있습니다. 모세가 모압 땅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언약의 말씀을 전하는 장면이 신명기 29장에 이어 30장에도 계속 됩니다. 이 가운데 30장 15절과 16절을 보면 생사화복에 관해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솔로몬 왕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본문 2장을 통해 이러한 지혜를 간절히 찾고 구하라고 한 것입니다. 지혜가 해결책이므로 지혜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본문 1절과 2절에서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잘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이렇게 말한 후에 먼저 지혜를 구하고 찾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경외하기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잘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황금덩어리와 성경책을 앞에 두고 가져가고 싶은 것 하나만 가져가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답은 확실합니다. 어느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느냐에 따라 가져가게 됩니다. 돈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황금덩어리를 가져갈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성경책을 가져갈 것입니다. 이처럼 지혜는 분별력을 가지게 합니다. 생사화복과 형통의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황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책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전도서 12장 13절에서 모든 사람의 본분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잠언 1장 7절에서 지식의 근본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를 멀리하지만 똑똑한 사람은 지혜를 가까이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지혜를 가지기 위해 은을 구하듯이 구하고 보배를 찾듯이 간절히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더 잘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됩니다. 이것을 3-5절을 통해 솔로몬 왕이 말하고 있습니다.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그러므로 지혜를 간절히 찾고 구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지혜를 찾고 구하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지혜를 간절히 찾고 구하는 사람에게 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6절과 7절을 통해 솔로몬 왕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이 말씀 가운데 ‘대저’는 히브리어로 ‘yKi’(키)인데 접속사로 “왜냐하면, 그 이유는”(For)이라는 원인을 나타냅니다. 여호와께서 지혜를 예비해놓으시고 지혜를 구하는 사람에게 지혜를 주시기 때문에 지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구하는 사람에게 지혜를 후하게 주신다는 것을 야고보서 1장 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은 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특별히 간절히 찾고 구하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7장 8절에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저 얻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얻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찾고 구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이렇게 간절히 찾고 구하셔서 지혜를 많이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는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8절입니다.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이곳에도 ‘대저’가 나옵니다. 지혜를 주시는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고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시려는 것입니다. 누가 성도인 우리의 길을 지켜주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우리 길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고 계십니다.
솔로몬 왕은 이 세상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이 처음부터 그런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아버지 다윗 왕은 어린 솔로몬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역대상 22장 5절입니다. “다윗이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은 어리고 미숙하고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성전은 극히 웅장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그것을 위하여 준비하리라 하고 다윗이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 거대하고 웅장한 성전을 지어야 하는데 다윗 왕이 보기에 솔로몬이 어리고 미숙하게 보였습니다.
솔로몬 왕 자신도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3장을 보면 일천 번제를 드린 후에 기브온에서 밤에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셨을 때 솔로몬 왕이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내용 가운데 발견할 수 있습니다. 7절입니다.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9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그런 솔로몬 왕이 어떻게 가장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까? 그런 솔로몬 왕이 어떻게 가장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까?
솔로몬 왕이 일천 번제를 드린 후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해줄 것인지 물어보셨을 때 백성을 재판할 지혜가 부족하므로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구하였던 지혜만 주신 것이 아니라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까지 주셨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가장 뛰어난 지혜를 얻고 부귀와 영광까지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지혜는 간절히 찾고 구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일천 번제에 들어간 희생제물인 가축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왜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과 사람들을 동원하였겠습니까? 은을 구하듯이 구하고 보배를 찾듯이 찾으라고 말씀한 것은 지혜가 그만큼 값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최고이므로 총동원해서라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오직 하나님만이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계시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고 그 하나님께 온 힘을 다해 간구한 것입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놀라운 지혜를 얻어 재판을 지혜롭게 하게 되었습니다. 두 여자가 서로 자기 아이라고 우겼는데 이때 솔로몬 왕이 칼로 그 아이를 반으로 나누어 가지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한 여자는 아이를 반으로 나누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 여자는 나누지 말고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솔로몬 왕은 가짜 어머니와 진짜 어머니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누지 말라고 한 여자가 아이의 진짜 어머니라고 판결하였습니다.
이러한 지혜를 얻게 된 결과를 솔로몬 왕은 말했습니다. 9~12절입니다. “그런즉 네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요.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 내리라.” 지혜가 들어오면 모든 선한 길을 깨닫게 됩니다. 공의도 깨닫게 되고 정의도 깨닫게 되고 정직도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지혜가 마음에 들어오면 우리 영혼을 즐겁게 까지 합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영혼이 즐겁게 되어야 모든 것이 즐겁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간절히 찾고 구하셔서 지혜가 마음에 들어와 모든 선한 길을 깨닫게 되시고 모든 것이 즐겁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지혜가 들어오면 커다란 유익이 있는데 솔로몬 왕이 그것을 본문 2장 11절과 12절을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 내리라.” 지혜가 들어오면 악한 자의 길과 패역에서 건짐을 받습니다. ‘패역’은 히브리어로 ‘hk;Puh]T'’(타흐푸카)입니다. “삐뚤어짐, 그릇됨, 정도를 벗어남”(perverseness) 등의 뜻이 있는데 도리에 어긋나도록 거역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혜는 말씀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줍니다. 우로나 좌로 치우치지 않고 삐뚤어지지 않도록 지켜줍니다.
이때 악한 자는 악한 사람뿐만 아니라 악한 것도 포함시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악한 것에는 악한 마귀와 악한 세상, 탐욕에 물든 돈과 권력과 지식과 성욕 등이 있습니다. 돈, 권력, 지식, 성을 올바르게 잡으면 세상을 잡게 됩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이것에 붙잡히게 되면 세상도 잃고 자기 자신도 잃게 됩니다. 이것을 따라가다가 이것에 사로잡힌 사람치고 세계 역사에 올바르게 기록된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돈을 벌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돈 없이는 못삽니다. 돈 없이는 생활할 수 없고, 돈 없이 정을 나누지도 못합니다. 돈 없이 선교도 구제도 교회유지도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권력도 있어야 하고, 지식도 있어야 하고, 성생활도 있어야 합니다. 다만 진리 안에서 의로움 안에서 행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그 자체가 악은 아니지만 절제하지 못하고 다스리지 못하고 도리어 노예가 되면 그 순간부터 악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하나님의 지혜로 잘 선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잠언에서 이것을 주의하라고 신신당부하면서 지혜를 가지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것을 많이 가지고 누리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지혜가 없다면 세상에서는 잠깐 통할지 몰라도 영원하지는 못합니다. 그러기에 이런 것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로 이 모든 것을 잘 누리시고 잘 선용하시길 바랍니다.
솔로몬 왕은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악한 무리의 특성이 어떤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13~15절입니다. “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나니,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니라.” 하지만 지혜는 이 모든 것에서 구원해줍니다. 16절입니다.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이방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자기 신앙이 약해지고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가 되어(마 10:36) 가정까지 불화할 수 있습니다. 세상과 벗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원수 맺는 것이 됩니다(약 4:4). 그러므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할 수만 있다면 같이 메면 안 됩니다(고후 6:14). 결혼할 배우자의 선택은 이처럼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과 결혼해야 합니다. 물론 비신자와의 결혼의 유익도 선교적 관점 등에서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는 조건을 제시하고 결혼함으로써 천하 보다 귀한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칫하면 신앙이 약화되거나 잃게 될 우려도 있으므로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자와의 결혼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은 두 사람만 만나는 것이 아니기에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두 집안끼리의 만남도 되기 때문에 믿는 집안과 결혼해야 합니다. 집안의 가치관과 문화, 심지어 가장 중요한 신앙생활에까지 영향을 많이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집안과 연합하게 되면 협조와 이해보다는 신앙관과 가치관과의 충돌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가문과의 결혼이 너무 중요합니다. 과거부터 누적된 기도와 말씀 순종의 유산이 매우 크고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서 서로 도움을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훨씬 더 은혜롭다고 봅니다.
솔로몬 왕이 이방 여자와 결혼했기 때문에 그들이 가져온 많은 우상에게 제사를 하는 등의 잘못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얻게 되면 음녀와 이방 여자에게서 구원받는다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어떤 여자인지 말씀하셨습니다. 17~19절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의 짝을 버리며 그의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그의 집은 사망으로, 그의 길은 스올로 기울어졌나니,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 길을 얻지 못하느니라.”
잠언에는 ‘스올’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스올(ap;r:, 라파)은 “음부, 죽은 자들의 곳, 중간지옥” 등으로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죽게 되면 가서 고통 받는 곳입니다. 이 스올은 최후 심판 후에 사망과 함께 영원한 지옥인 불 못에 영원히 던져집니다(계 20:11~15). 예수님께서 어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음부의 모습을 말씀해주셨습니다(눅 16:19~31).
거지는 죽어서 천사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서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사로는 위로를 받고 부자는 고민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두 곳은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서로 건너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나사로를 살아있는 자기 다섯 형제에게 보내서 증언하여 제발 이곳에 오지 않도록 회개할 기회를 주자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에 보낼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음부의 모습을 설명하기도 하였지만 한 번 결정되면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권함을 받고 회개할 기회가 있지만 죽으면 더 이상 기회가 없기 때문에 죽기 전에 살아 있을 때 복음을 듣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계실 때 예수님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게 된 사람도 살아 있을 때에만 복음을 전할 수 있으므로 살아 있을 때 부지런히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초상집에 가서 죽은 사람에게 빌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분들에게도 그분들이 살아 계실 때 복음을 열심히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음녀의 집은 이렇게 사망과 스올로 가게 하므로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생명 길도 얻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되돌릴 수도 없고 다시 시작할 수도 없으므로 아예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음녀는 사탄과 그의 하수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에게 끌려가면 죽음의 집인 지옥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지혜가 구원해주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답게 속이는데 천재입니다. 음녀는 말로 호리는데 금메달감입니다. 그러므로 속아서 사망길로 가지 않도록 지혜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지혜가 생명길로 가게 하고 의인의 길로 가도록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 왕은 지혜가 이렇게 악한 것에서 구원을 얻게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20절입니다. “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이렇게 지혜를 찾는 사람은 땅을 영원히 차지하지만 지혜를 버린 악인은 땅에서 끊어집니다. 솔로몬 왕은 이것을 21절과 2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이러한 말씀은 아버지 다윗 왕이 쓴 시편 37편 27절에서 34절에도 나옵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하며,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여호와는 그를 악인의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이렇게 솔로몬 왕이 쓴 잠언에서는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시니느라”(2:8)라고 하였으며, 다윗 왕이 쓴 시편에서는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37:28)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잠언에서는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2:21)고 하였으며, 시편에서는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37:29)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지켜주셔서 땅을 영원히 차지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의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땅도 차지하고 새 하늘과 새 땅까지도 차지하게 되지만 악인과 사탄은 그 땅에서 영원히 끊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은 이렇게 땅을 차지하는 것과 땅에서 끊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저주 받은 땅을 차지하고 결국에는 영원히 저주받은 지옥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사탄과 거짓 선지자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은 모두가 그 황폐하고 고통스러운 땅에 들어가 살게 됩니다. 우리 성도는 이것을 최후 심판 때 생생하게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성도들은 축복과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로워진 성도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지옥과 천국의 갈림길 앞에서 어떤 성도가 머뭇거리면서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그때 하나님께서 즉각 대답하셨습니다. “어디긴 어디야, 천국이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바라볼 때도 나라든 지역이든 예수님을 잘 믿는 성도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은 대부분 좋은 땅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진 땅이라 해도 성도의 수가 점점 줄어들게 되면 저주받은 땅으로 점점 황폐하게 됩니다. 반면에 아무리 조건이 좋지 않은 땅이라 해도 성도의 수가 점점 늘어나게 되면 축복의 땅으로 점점 흥왕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전체를 볼 때도 그렇습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을 볼 때도 그러합니다. 어느 지역이든 기독교인의 비율이 높은 곳이 그 지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땅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시 37:34)라고 말씀하신 대로 똑똑히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하시고 간절히 찾고 구하셔서 하나님의 지혜를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지혜를 잘 받아들인 성도님들이 되셔서 여호와를 잘 경외하게 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잘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셔서 모든 선한 길을 잘 깨닫게 되시고 영혼이 즐겁게 되시고 악한 자와 음녀에게서 구원을 받으시고 우리가 살고 있는 땅과 새 하늘 새 땅까지 차지하시는 커다란 유익과 축복과 은혜를 길이길이 누리시고 선용하게 되시길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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