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19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
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영생을 위해 그러한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셨습니다. 18-21장은 예수님께서 붙잡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사명을 완수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19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19장 개요
✙✙✙ 19장 구절
요한복음 19장에서 대표적인 구절을 선정한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신다는 30절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 19장 주제
요한복음 18-21장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예수님께서 붙잡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사명을 완수하시고 세상을 떠나 다시 아버지께로 가게 되시는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19장은 예수님의 그러한 사명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돌아가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19장을 보면 이러한 흐름이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주제를 도출해 본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됩니다.
✙✙✙ 19장 구조
19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1-27절인데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해 달라고 하자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는 장면이고, 후반부는 28-42절인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요셉의 새 무덤에 장사지내는 장면입니다.
이처럼 19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장면과 예수님께서 돌아가셔서 장사지내는 장면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장면에서는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위에서 주지 아니하시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다고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장사지내는 장면에서는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빌라도나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없고 예수님께서 죄도 찾지 못하였지만 순순히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위에 계신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것이고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다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19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사명을 완수하시는 과정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고별강화하시고(13-16장) 아버지께 고별기도를 드리신(17장) 다음에 붙잡혀 심문을 받으시고(18장)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장면 가운데 십자가에 넘겨지시는 장면에서는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11)고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돌아가시고 무덤에 장사지내는 장면에서는 “다 이루었다”(30)라고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19장에서 보다 많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를 살펴보면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24)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28)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36)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응하게”라는 말씀은 신약성경 가운데 사도행전에 나오는 2구절을(13:27, 29) 제외하면 요한복음에서만 8구절을(13:18, 15:25, 17:12, 18:9, 32, 19:24, 28, 36)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9장은 18장의 2구절에 이어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고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37절에는 “또 다른 성경에···하였느니라”고 하는 말씀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37)고 한 말씀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과(37) 응하게 하려는 말씀을(24, 28, 36) 19장 말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말씀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응하게 된 세 장면을 살펴보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장면 가운에 나오는 24절에서는 군인들이 제비를 뽑아 옷을 나누어 가지려고 하신 말씀을 응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돌아가시는 장면 가운데 나오는 28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것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시려고 “내가 목마르다”(28)라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돌아가시는 장면 가운데 나오는 36절에서는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고 한 성경이 응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역사는 말씀을 이루신 역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일에서 어긋나지 않고 그대로 성취하셨으므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28) 아셨으며 “다 이루었다”(30)라고 하신 것입니다.
19장은 이렇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새 무덤에 장사지낸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참된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님이시므로 왕권을 동원하셔서 무력으로 얼마든지 물리쳐버릴 수도 있으시지만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다 이루시기 위해 오히려 죽기까지 하신 것입니다.
19장 개관
단락 | 단락별 개요 | |
1-27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 | |
28-42 | 예수님께서 돌아가심 |
19:1-27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
● 19:1-16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넘겨줌
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2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3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1-27절은 19장 가운데 전반부에 해당되는 말씀인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장면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장면과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는 장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1-16절의 장면은 빌라도가 풀어놓아주려고 힘썼으나 결국은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넘겨주는 장면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으므로 풀어주려고 하였지만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달라고 크게 소리치고 왕이라고 하는 자를 풀어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고 하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빌라도가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다는(18:38, 19:4, 6) 것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데려다가 채찍질을 하고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히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고 하면서 손으로 때렸습니다.
빌라도가 다시 밖으로 나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4) 알게 해주려고 하였습니다. 죄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런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관을 쓰게 되시고 수모를 당하셨습니다.
이러한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시지만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크게 소리쳐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빌라도는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면서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6)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우리 법대로 하면 당연히 죽어야 하는데 그것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는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다시 총독관저에 들어가서 예수님께 “너는 어디로부터냐”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대답을 주지 아니하셨습니다.
빌라도가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11)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위에서 주시는 분께서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하시는 분이시기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빌라도에게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 계시는 분이 권한을 가지고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자기에게 권한이 있는 줄 알았는데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라고 하시고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가 더 크다고 하시자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힘썼습니다.
“힘썼으나”(12)의 원어원형은 “ζητέω(제테오)”로 “찾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풀어주려는 방법을 찾으려고 애쓴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죄가 없으시므로 빌라도가 풀어주려고 힘쓰자 유대인들이 크게 소리쳐서 “이 사람을 풀어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닙니다. 자기를 왕이라고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11)라고 하신 것처럼 더 큰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넘겨준 자의 죄가 더 크다고 하셨으므로 빌라도의 죄가 더 큰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을 비롯해 넘겨준 자들의 죄가 더 큰 것입니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끌고 나가서 재판석에 앉았습니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보라 너희 왕이다”라고 하자 그들이 크게 소리쳐서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없이 하소서”(15)의 원어원형은 “αἴρω(아이로)”인데 “들어올리다, 빼앗아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들어올려 달라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게 해달라는 의미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렇게 해서 없애 달라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계속해서 왕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제사장들이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참된 유대인의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의 왕으로 인정하지도 아니하고 모시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죽여 없애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19:17-27 십자가에 못 박히심
1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18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20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22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23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4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17-27절의 장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빌라도가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붙이고 군인들이 옷을 나누어 가지고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히브리어로 골고다인 해골이라고 하는 곳에 나가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그 곳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다른 두 사람도 예수님과 함께 좌우편에 못 박고 예수님은 가운데 계셨습니다.
좌우편에 죄인인 두 강도가(마 27:38) 있었다는 것은 죄인들이 못 박히는 십자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십자가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지만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셨고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되셨습니다. 그동안 들리게 된다고(3:14, 12:32)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버지께서 주신 자를 하나도 잃지 않으시기 위해(18:9)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마시기 위해(18:11) 위에서 주신 것이므로(19:11) 기꺼이 지신 것입니다.
빌라도가 나사렛 사람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였습니다. 못 박히신 곳은 성에서 가까우므로 많은 유대인이 이 명패를 읽는데 히브리어와 로마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십시오”라고 하니 빌라도가 “내가 쓸 것을 썼다”라고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유대인의 왕”(18:33, 39, 19:19)이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너희 왕”(18:37, 19:14, 15)이라고도 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자기를 왕이라고 하면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라고(19:12) 할 정도인데 총독의 신분이면서 왕으로 호칭해준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쓴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아무 죄도 찾을 수 없고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였기에(7-8) 풀어주려고 힘쓰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왕으로 불러준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인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왕으로 불러주고 심지어 반대를 무릅쓰고 유대인의 왕이라고 명패를 붙인 것은 예수님은 참된 유대인의 왕이시라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섭리로 인정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것을 통해 예수님은 영원불변하신 유대인의 왕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모른다고 하거나 아니라고 한다고 해서 유대인의 왕께서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아무리 부인한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은 영원불변하신 유대인의 왕이신 것입니다.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의 겉옷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한 부분씩 가지고 속옷은 통째로 짠 것이므로 찢지 말고 제비 뽑아 나누어가지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은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24)고 한 것입니다. 군인들이 이런 일을 하였습니다.
그 무엇이든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져야 하기에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말씀의 중요성을 다시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예수님의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26)라고 하시고 또 그의 제자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27)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만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인 요셉의 아들로서의(1:45, 6:42) 역할도 감당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르반”(막 7:11)이라고 하여 하나님께만 드리면 되고 부모님께는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균형이 잡힌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도 드리고 부모님께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19:28-42 예수님께서 돌아가심
● 19:28-37 영혼이 떠나가심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37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28-42절은 19장 가운데 후반부에 해당되는 말씀인데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장면을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가시는 장면과 예수님을 장사지내는 장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28-37절의 장면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30)라고 하시고 예수님께서 이미 죽으셨으므로 다리를 꺾지 않고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것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28)라고 하셨습니다.
앞에서 제비 뽑아 옷을 나눈다는 말씀을 “응하게 하려”(24)는 것에 대해 살펴보았고 조금 후에 살펴볼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한다는 “성경을 응하게 하려”(36)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24절과 36절의 “응하게”의 원어원형은 “πληρόω(플레로오)”인데 “채우다, 충만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28절의 “응하게”의 원어원형은 “τελειόω(텔레이오오)”로 “완성하다, 이루다, 끝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이 응하게 된다는 의미는 같지만 다 이루어졌다는 문맥에 보다 적절한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8절을 보면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것을 아시고”라고 하고 있으며 30절을 보면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28절의 “이루어진”과 30절의 “다 이루었다”의 원어원형이 “τελέω(텔레오)”로 “끝내다, 완성하다, 성취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말씀이 응하게 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님의 입에 대니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다 이루었다”(30)라고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떠나가셨습니다.
“떠나가시니라”(30)의 원어원형은 “παραδίδωμι(파라디도미)”인데 “넘겨주다, 전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영혼이 떠나가시니라”(30)를 직역해보면 “영혼을 넘겨주셨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으심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영혼이 떠나는 것은 죽는 것을 의미하기(눅 8:55, 12:20, 23:46)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버지께서 지라고 하신 십자가를 예수님께서 지심으로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일들이 다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30)의 원어를 보면 “Τετέλεσται(테텔레스타이)”인 것을 알 수 있는데 완료 수동형이므로 “다 이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완성되고 끝내게 되고 성취하게 된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조금도 어긋나는 것이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다 이루셨으나(창 2:1)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는데(롬 3:23) 보내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다 이루어져서(요 18:10, 19:30) 만물을 새롭게 만들어(계 21:5) 주시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만물을 새롭게 하시고 새 창조를 해주셔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서 모든 것이 완벽한 새 하늘 새 땅에서 영원무궁하도록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은 준비일이어서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고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달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을 종교적인 절기로는 꼬박꼬박 잘 지키려고 하면서도 안식일에 불치병으로부터 안식을 주시는(5:9, 9:14) 안식일의 주인으로서(마 12:8) 안식일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은 죽이고 시체마저 다리를 꺾어 치워달라고 하는 어리석음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요청에 따라 군인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었습니다. 예수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군인들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36) 한 것입니다.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37)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장면 사이에 언급된 것을 보면 이것을 본 사람이 증언한 것을(35)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증언을 한 사람은 사도 요한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이고(19:26, 27) 요한복음을 마치면서 “이 이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21:24)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이 응하였다는 것을 반복해서 계속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 19:38-42 새 무덤에 장사지냄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42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38-42절의 장면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새 무덤에 장사지내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요청하고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을 새 무덤에 장사지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이지만 유대인이 두려워서 그러한 것을 숨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허락하자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갔습니다.
이처럼 두려워하게 되면 숨기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12장 42절을 보면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눈보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게 되면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도 그러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떠한 일을 당하더라도 무릅쓸 각오를 하게 되었기에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요청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더 합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전에 예수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 쯤 가지고 왔습니다.
이러한 니고데모도 유대인의 지도자였지만 밤에 찾아왔던(3:1-2)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리마대 사람 요셉처럼 예수님을 장사지내러 왔습니다. 그것도 귀한 향품(ἄρωμα, 아로마)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에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에 따라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었고 그 동산 안에는 아직 아무도 장사된 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습니다. 그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고 또 무덤이 가깝기 때문에 예수님을 그곳에 두셨습니다.
장사지낸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위해 귀하게 섬겼다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재개정일 2024년 1월 12일
개 정 일 2020년 9월 17일
발 행 일 2018년 9월 5일
지 은 이 이서영
출 판 사 퍼플
출판등록 제300-2012-167호 (2012년 9월 7일)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1번지
대표전화 1544-1900
홈페이지 www.kyobobook.co.kr.
ISBN 978-89-24-12034-9
ⓒ 이서영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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