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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개관/요한복음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18장 예수님께서 붙잡혀 심문을 받으심

by 이서영 목사 2018. 10. 2.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제4부 18-21장 예수님께서 사명을 완수하시고 아버지께 가게 되심

 

  요한복음 18-21장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예수님께서 붙잡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사명을 완수하시고 세상을 떠나 다시 아버지께로 가게 되시는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18-19장은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붙잡혀 심문을 받으시고 죽으시는 것을 볼 수 있으며 20-21장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마지막 부분인 18-21장에서는 대부분 예수님께서 사명을 완수하시는 것을 기록한 말씀이기에 교훈에 대한 것보다는 믿음의 대상이 되시고 영생을 이루시기 위해 구원의 역사를 실제적으로 이루어나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18장에서는 붙잡혀 심문 받으심에 관한 것을, 19장에서는 죽으심에 관한 것을, 20장에서는 부활하심에 관한 것을, 21장에서는 사명주심에 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별 주제
18
예수님께서 붙잡혀 심문을 받으심
19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
20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심
2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심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18장 예수님께서 붙잡혀 심문을 받으심

 

  붙잡혀서 심문 받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영생을 위해 그러한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셨습니다. 18-21장은 예수님께서 붙잡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사명을 완수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18장은 예수님께서 붙잡히시고 심문 받으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18장 개요

 

✙✙✙ 18장 구절

 

요한복음 18장에서 대표적인 구절을 선정한다면 예수님을 결박하여 잡아가서 심문하는 12-13절과 37절입니다.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 18장 주제

 

요한복음 18-21장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예수님께서 붙잡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사명을 완수하시고 세상을 떠나 다시 아버지께로 가게 되시는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18장은 그러한 예수님의 사명 가운데 붙잡혀서 대제사장과 빌라도에게 심문 받으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18장을 보면 이러한 흐름이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주제를 도출해 본다면 예수님께서 붙잡혀 심문을 받으심이 됩니다.

 

✙✙✙ 18장 구조

 

18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붙잡혀 심문 받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1-14절인데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가 데리고 온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에게 결박당해 끌려가시는 장면이고, 중반부는 15-27절인데 베드로가 캐묻게 되자 세 번 부인하고 대제사장이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해 심문하시는 장면이고, 후반부는 28-40절인데 빌라도와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에 대한 것을 심문하시고 대답하시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아니라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는 장면입니다.

이처럼 18장은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가 데리고 온 사람들에게 붙잡히시는 장면과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에게 심문 받으시는 장면과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 받으시는 장면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시는 장면에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가운데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을 응하시는 것을 볼 수 있고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심문 받으시는 장면에서는 잘못한 말이 없고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하시고 내가 왕이라고 하시면서 이를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고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문을 받은 결과 말을 잘못한 것도 없고 아무 죄도 찾지 못하게 되었지만 예수님께서 억울하게 붙잡혀 심문 받게 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자를 하나도 잃지 않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주신 잔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18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사명을 완수하시는데 있어 시작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 붙잡히시고 심문 받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고별강화하시고(13-16) 아버지께 고별기도를 드리신(17) 다음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붙잡히시고 심문을 받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장면 가운데 붙잡히시는 장면에서는 아버지께서 주신 자를 잃지 않으려고 하시고(8, 9)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마시려고 하시는 것을(11) 볼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에게 심문 받으시는 장면에서는 베드로가 심문 받자 부인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며(17, 25, 27) 대제사장이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교훈에 대해 심문하고(19) 예수님께서 잘못한 것이 있다는 그러한 것을 증언해 보라고 하시는 것을(23) 볼 수 있습니다.

빌라도에게 심문 받으시는 장면에서는 유대인의 왕에 대해 심문 받으시는 것을 볼 수 있으며(33) 예수님께서 왕이라고 하시면서 이를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고 하시는 것을(37) 볼 수 있습니다.

18장에서 보다 많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를 살펴보면 말씀을 응하게 하려”(9, 32)라는 말씀입니다.

붙잡히시는 장면 가운에 나오는 9절에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가운데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다고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빌라도에게 심문 받으시는 장면 가운데 나오는 32절에서는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마시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시면서(11) 절대순종하시는 예수님에게는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져야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고 그 말씀을 믿고 따를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또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져야 혼란스럽지 않게 되고 사랑과 구원의 역사가 완성될 수 있고 완성된 그 좋은 모든 것이 영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으므로 예수님께서 견디기 힘들다고 회피하시거나 도망치시거나 무력으로 제압하지 아니하시고 이러한 영생을 위해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순순히 붙잡히시고 심문을 받으신 것입니다.

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는 팔고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황당한 일이 일어나서 인간적으로는 심한 배신감이나 비참함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말씀대로 이루신 것입니다.

 


     18장 개관

 

단락
단락별 개요
1-14
예수님께서 붙잡히심
15-27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으심
28-40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심

 


             18:1-14 예수님께서 붙잡히심

 

18:1-14 예수님께서 붙잡히심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2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3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1-14절은 18장 가운데 전반부에 해당되는 말씀인데 예수님께서 붙잡히시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가 데리고 온 사람들에게 붙잡혀 결박당해 안나스에게 끌려가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기준으로 이러한 장면이 주는 의미를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을 응하게 하려는 것과(9)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시는 것을(11) 볼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은 한 사람도 붙잡히지 않도록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붙잡히는 것이 아버지께서 주신 잔에 해당되므로 순순히 붙잡히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별기도를 마치신 후에(1)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에 있는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님을 파는 유다도 그곳을 알았었습니다.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을 데리고 등불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오자 예수님께서 그 닥칠 것을 모두 아시고 나아가셔서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4)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모하고 사랑하고 배우고 따르기 위해 찾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붙잡으려고 찾은 것입니다. 그것도 군인들을 포함해 무기까지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대답하기를 나사렛 예수요라고 하자 내가 그니라”(5)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내가 그니라”(6)고 하시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힘도 펴지 못하고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그니라”(5, 6, 8)고 하신 말씀은 원어로는 γώ εμί(에고 에이미)입니다. “나는 나이다라는 뜻입니다.

이전에 본 바와 같이 요한복음에는 이러한 자기선언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모든 인류를 통틀어 그 누구도 이러한 선언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선언을 하시자 그들은 추풍낙엽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7)라고 물으시자 그들이 나사렛 예수요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8)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찾으면 제자들은 가도록 해주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9)라고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도 잃지 아니하셨다는 말씀은(6:39, 17:12, 18:9) 그 당시의 제자들만 잃지 아니하셨다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성도들을 포함해 세상 끝날까지 믿는 모든 성도들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셨다는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반드시 지켜지고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9)고 하신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루신 말씀의 역사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성도들을 하나도 잃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때 시몬 베드로가 검을 빼서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를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11)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힘으로 제압하실 수 있으시지만 검으로 해결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뜻으로 승부하신 것입니다.

붙잡히는 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잔이고 그렇게 하여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붙잡히지 않으시려고 숨어버리시거나 무력을 동원하셔서 물리치셨다면 아버지께서 세우신 모든 구원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성도들의 구원도 영생도 물거품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묵묵히 감당하시고 순순히 붙잡히시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주셔서 영생을 얻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결박하여 먼저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인 안나스에게로 끌고 갔습니다.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11:50) 자입니다. 안나스도 대제사장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3:2, 4:6).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붙잡혀 대제사장에게 끌려가게 되신 것입니다. 가장 먼저 알아보고 가장 먼저 믿고 섬겨야 할 직분에 있었으면서도 안타깝게도 거꾸로 한 것입니다.

 

             18:15-27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으심

 

18:15-18, 25-27 베드로가 심문을 받음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15-27절은 중반부의 말씀인데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에게 심문 받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장면을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부터 심문을 받으시는 장면과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집에서 심문 받게 되는 장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15-18절과 25-27절의 장면은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심문 받으시는 대제사장의 집에서 문 지키는 여종과 사람들과 대제사장의 종이 각각 캐묻자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고 세 번 부인하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장면을 두 단락으로 나누어 예수님께서 심문 받으시는 장면을 중간에 배치한 것은 예수님께서 심문 받으시는 것을 보다 극적으로 돋보이게 하려고 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시몬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 문 밖에 있었는데 또 다른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기에 집 뜰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그가 문 밖에 서 있는 베드로를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해서 데리고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제자가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그의 제자들”(19)에 대해 심문하는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세 부류의 사람들이 유독 베드로에게 캐물은 것만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공관복음인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과 다른 것은 베드로가 깨닫고 돌이켜 통곡하는 장면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요한복음 마지막 부분에 예수님께서 세 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15, 16, 17)라고 하시는 장면이 있으므로 그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생략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세 번 부인한 것에 대해 깊이 뉘우쳤기 때문에 예수님의 세 번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부인하는 장면을 보면 문 지키는 여종이 너도 이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냐라고 캐물었을 때 부인하고 불을 쬘 때 사람들이 너도 그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냐라고 하자 부인하고 대제사장의 종 가운데 하나로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자 역시 부인하였습니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부인할 때 나는 아니라”(17, 25)고 한 것을 보면 부인한 것은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고 부인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예고하면서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13:38)고 하셨는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공관복음인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직접 부인하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요한복음에는 볼 수 없습니다. 세 부류의 사람들이 캐물은 것도 예수님의 제자가 맞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과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과의 차이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의 중복을 가능한 피하고 있기에 예수님을 부인했다는 언급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고 한 것을 바꾸어보면 예수님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예수님도 부인하고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도 부인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철저하게 부인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8:19-24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심문함

 

19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19-24절의 장면은 베드로가 심문을 받는 장면 사이에 나오는 장면인데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에게 심문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는 대제사장인 안나스가 예수님께 예수님의 제자들과”(19) 예수님의 교훈에”(19) 대해 심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심문을 받게 되자 예수님도 부인하고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라고 부인하였지만 예수님은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20)고 하시면서 부인하지 아니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부인한 베드로와는 다르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을(19) 부인하지 아니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살아남으시려고 모든 사람을 부인하기 시작하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인하셨다면 영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자기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시기 위해(6:39, 17:12, 18:9) 자기 사람을 한 사람도 부인하지 아니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교훈도(19) 부인하지 아니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하신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는데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20-21) 하셨습니다.

공개적으로 가르치시고 말씀하셨으므로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은밀하게 하지 아니하셨다는 것은 숨길 이유도 없고 숨길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알도록 해야 하고 그렇게 알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에 곁에 서 있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님을 치면서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23)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숨어서 악한 일을 꾸미신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올바른 말씀을 하셨기에 그 어떠한 잘못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처벌하려고 애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안나스는 예수님을 결박당한 그대로 그 해의 대제사장인(11:49, 18:13) 가야바에게로 보냈습니다.

 

             18:28-40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심

 

18:28-32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김

 

28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30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28-40절은 후반부의 말씀인데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 받으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장면을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는 장면과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장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28-32절의 장면은 예수님을 가야바에게서 빌라도가 있는 총독관저로 끌고 가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른 아침에 왔지만 더럽히지 않고 유월절 음식을 먹으려고 총독관저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을(1:29, 36, 5:12, 7:10, 14) 눈앞에 두고도 알지 못하고 유월절을 종교적인 행사로 치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은 눈이 멀고 마음이 완고해서(12:39-40, 13:14-15) 일어난 일입니다.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면 보이게 되고 믿게 되는데 안타까운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보게 되는 복을(13:16, 10:23)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총독관저에 들어가지 않자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였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사람이 악을 행하는 자가 아니었다면 당신에게 넘기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하자 빌라도가 너희가 그를 데리고 가서 너희의 법에 따라 재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심문하는 속셈을 나타낸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권한이 없기에 총독의 권한을 빌려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이러한 속셈을 훤하게 아시면서도(18:4) 순순히 응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32)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 있어서는 말씀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시고 그 말씀대로 행하셔서 말씀대로 이루어나가신 것입니다.

그리하셔서 예수님께서는 예만 되시고(고후 1:19) 아멘이 되신(3:14) 것입니다.

 

18:33-40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함

 

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40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33-40절의 장면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장면인데 유대인의 왕에 대해 집중적으로 심문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는 유대인들은 죄를 찾아내서 처벌하여 죽이려고 빌라도에게 끌고 왔지만 이러한 심문을 통해 오히려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고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시라는 것이 밝혀지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빌라도가 밖에 있다가 다시 총독관저로 들어와서 예수님을 불러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34)라고 하셨습니다.

빌라도가 내가 유대인이냐라고 하면서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행하였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후의 대답을 보면 놀라운 말씀을 보게 되는데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고 내가 왕이라고 하시고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다고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6절을 보면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이 세상에 속하였다면 예수님의 종들이 싸워 넘겨지지 않게 하였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신 것을 보면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36절에 세 번 나오는 속한 것을 원어성경에 보면 마지막에 나오는 용어의 원어원형은 στί(에스티)”인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는(그녀, 그것은) ~이다라는 뜻입니다. 세상에 있지 않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성도들의 신분도 그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늘에 있는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3:20) 하나님의 가족으로(2:19)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37)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내가 왕이라고 하시면서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다고 하신 말씀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러한 것을 명확하게 알려면 원어를 살펴보면 되는데 왕이니라앞에 나오는 τι(호티: ~때문에)”증언하려앞에 나오는 να(히나: ~하기 위하여)”를 감안해서 해석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대로 직역해보면 네가 말한 대로 내가 왕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것을 위하여 태어나게 되었고 이것을 위하여 세상에 왔다,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으로서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태어나게 되셨고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임금과(1:49) 이스라엘의 왕으로(12:13) 칭함을 받기도 하시고 예수님을 임금으로(6:15) 삼으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총독으로서 이러한 것을 보고 듣고는 예수님을 세상 나라에 속한 정치적인 유대인의 왕으로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왕으로서의 역할도 있긴 하지만 그러한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현세와 내세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시지만 세상에 왕으로 오신 것은 진리이신(14:6)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진리를 전파하셔서 진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나가시고 통치해나가시기 위해 오신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것에 왕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증언하는데 왕으로서의 왕권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태어나게 되셨고 이것을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의 나라는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지만 예수님께서 세상에 왕으로 오신 것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왕과 진리에 대하여 말씀하시자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하고는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38)의 원어원형은 ατία(아이티아)”인데 원인, 이유, 근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유죄를 인정할 만한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빌라도는 이러한 것을 찾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밖에 나간 빌라도는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주는 관례가 있으므로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크게 소리쳐서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바라바는 강도였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예수님의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의 왕이 아니시기 때문에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강도를 풀어달라고 할 정도였던 것입니다.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재개정일 2024년 1월 12일

개 정 일 2020년 9월 17일

발 행 일 2018 9 5

지 은 이 이서영

출 판 사 퍼플

출판등록 300-2012-167 (2012 9 7)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1 1번지

대표전화 1544-1900

홈페이지 www.kyobobook.co.kr.

ISBN 978-89-24-12034-9

 이서영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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