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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개관/갈라디아서

한눈에 보는 갈라디아서 (재개정판) 1장 다른 복음과 그리스도의 복음

by 이서영 목사 2020. 5. 29.

한눈에 보는 갈라디아서 (재개정판) 1장 다른 복음과 그리스도의 복음

 

 

[제1부] 이신칭의(以信稱義)가 주는 자유

 

갈라디아서 1-2장은 자유를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믿음에 의해 의롭다함을 얻게 됨으로써 자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갈라디아서 1-2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해주셔서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해주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으며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워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장별 주제
1 다른 복음과 그리스도의 복음
2 이신칭의의 자유

 

 

1장 다른 복음과 그리스도의 복음

 

 

1장 개요

 

 

✙✙✙ 1장 구절

 

갈라디아서 1장에서 대표적인 구절을 선정한다면 다른 복음이 없다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7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 1장 주제

 

갈라디아서 1-2장은 이신칭의(以信稱義)가 주는 자유에 대한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해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1장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와 대조되는 다른 복음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은 율법의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이행성의(以行成義)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다른 복음은 율법의 행위로부터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의 종이 되게 합니다.

이러하므로 다른 복음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복음의 출처와 사도의 내력을 밝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력하게 변증하고 있습니다.

1장은 이러한 흐름이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주제를 도출해 본다면 다른 복음과 그리스도의 복음이 됩니다.

 

 

✙✙✙ 1장 구조

 

갈라디아서 1장은 다른 복음과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1장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는 다른 복음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심지어 저주를 받으라고 할 정도입니다.

이에 비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력하게 변증하기 위해 복음의 출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도가 된 내력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1장은 모두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5절의 사도로서의 인사말과 6-10절의 다른 복음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11-24절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강력한 변증입니다.

1-5절은 사도로서의 인사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력하게 전하기 위해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된 것을 언급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로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기원해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죄를 대속해주신 그리스도께 영광 돌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6-10절은 다른 복음에 대한 강력한 경고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는 것이므로 그러한 것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라고까지 하였습니다.

11-24절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강력한 변증입니다. 다른 복음처럼 사람의 뜻에 따라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강력하게 변증하기 위해 사도가 된 내력에 대해 소상하게 밝혀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장 개관

 

단락 단락별 개요
1-5 사도로서의 인사말
6-10 다른 복음에 대한 강력한 경고
11-24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강력한 변증

 

 

1:1-5 사도로서의 인사말

 

1-5절은 사도로서 드리는 인사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력하게 변증하기 위해 사도가 된 출처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 이후에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의 몸을 주신 그리스도께 영광 돌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1 사도가 된 출처를 밝힘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력하게 변증하기 위해 자신이 사도가 된 출처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사람에 의해 인위적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한 권위가 있고 믿을 만하므로 자신과 자신이 전해주는 서신을 신뢰해도 된다고 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1절의 사람들은 복수이고 사람은 단수인 것을 보면 어떤 사람들이 모여 결의한 바에 의해 사도가 된 것도 아니고 어떤 개인에 의해 사도가 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고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의 출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절의 사도(πόστολος, 아포스톨로스)보내다를 뜻하는 ποστέλλω(아포스텔로)에서 유래되었으므로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사도는 단순히 보낸다는 의미보다는 임무를 주어서 보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사도가 되고 싶다고 사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가 되게 해주셔야 보내심을 받은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내심과(9:15, 22:21, 26:16-18) 하나님의 뜻에 따라(고전 1:1, 고후 1:1, 1:1, 1:1, 딤후 1:1)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러하므로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만한 권위가 있고 그만한 신뢰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1:2-3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기원함

 

1: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1: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과 사도 바울과 함께 하고 있는 모든 형제들이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들에게 편지하였습니다.

편지하면서 3절처럼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해주고 있습니다.

3절의 로부터(πὸ, 아포)“-에서, -에서부터, -으로부터라는 뜻인데 기원의 의미가 있습니다.

성도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처럼(11:11-12)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은혜와 평강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절의 은혜(χάρις, 카리스)은혜, 호의라는 뜻입니다. 값없이 기쁘게 호의로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러한 은혜를 갈라디아서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16절의 그리스도의 은혜로, 115절의 그의 은혜로, 29절의 내게 주신 은혜를, 221절의 하나님의 은혜를, 54절의 은혜에서, 618절의 그리스도의 은혜가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보게 되는 은혜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대속해주신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고 자유하게 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절의 평강(ερήνη, 에이레네)평화, 복지, 번영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샬롬(שָׁלוֹם: 평화, 복지, 번영)입니다.

이러한 평강은 평화를 비롯해 복지와 안전과 건강과 번영과 같은 의미를 포괄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내려오는 이러한 평강이 있어야 신앙생활도 가정생활도 직장도 나라도 그리고 교회도 든든하게 설 수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모든 성도들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이러한 은혜와 평강을 필수적으로 충만하게 힘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622-2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그들이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하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축복의 내용은 24-26절에 나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길 원하시고 평강을 주시길 원하시는 이러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아울러 은혜와 평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와 평강을 사도 바울과 사도 바울과 함께 있는 모든 형제들이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들에게 기원해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도 이들처럼 이러한 은혜와 평강을 서로 기원해줌으로써 우리 모두가 다함께 그러한 은혜와 평강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1:4-5 죄를 대속해주신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림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1: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기원해준 이후에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면서 그리스도께서 대속해주신 것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갈라디아서의 주제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행위로부터 자유를 주셨다는 것인데 그러한 것을 알게 해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앞으로 전개할 내용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본론에 그리스도께서 대신 저주를 받으셔서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주셨다는 것과(3:13) 그러하신 그리스도께서 자유를 주셨다는 것에(5:1) 대해 펼쳐나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 분명하게 잘 알아야 갈라디아서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고 갈라디아서의 내용을 더 잘 깨달을 수 있게 되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를 실제로 더 잘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4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져주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주셨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속하기 위하여(πὲρ, 휘페르)는 속격이므로 “-대신에, 대신하여라는 뜻이 됩니다. 죄를 대신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도저히 처리할 수 없는 수많은 죄를 대신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자기 자신을 주셨습니다.

자기 몸을(αυτὸν, 헤아우톤)αυτο(헤아우투: 그 자신의)의 대격이므로 그 자신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고(딤전 2:6), 자기를 제물로 드리셨다는 것입니다(7:27, 9:14).

이러한 것을 갈라디아서의 주제와 문맥에 따라 해석해본다면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율법의 저주를 받으셔서 우리를 종의 멍에인 율법의 행위에서 자유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하신 그리스도이시므로 마땅히 세세토록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영광을 알게 되면 알수록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도 보다 더 영원무궁하도록 영광을 올려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1:6-10 다른 복음에 대한 강력한 경고

 

6-10절은 다른 복음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저주를 받으라고 할 정도로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고한 것은 다른 복음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우리나 천사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1:8)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강조하기 위해 너희가 받은(1:9)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6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름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바울이 사도로서 인사말을 마친 이후에 다른 복음에 대한 것을 언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6절에서는 죄를 대속해주신 그리스도의 은혜로 불러주셨는데 그렇게 해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6절의 부르신 이는 누구를 가리키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17절에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115-16절의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이라고 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314절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6절의 떠나의 원어원형은 μετατίθημι(메타티데미)인데 바꾸다, 변절하다, 옮기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따르는 대상을 바꾸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리스도의 은혜로 불러주신 분을 속히 변절해버리고 다른 복음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너무도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이하고 놀랍다는 것입니다.

6절의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의 원어원형은 θαυμάζω(다우마조)인데 기이히 여기다, 놀라다, 이상히 여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른 복음은 이행성의(以行成義) 즉 율법의 행위로 의를 이루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게 되지 못합니다(2:16, 3:11). 만일 이렇게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2:21)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으셔서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주신 것이(3:13) 헛되게 되고,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셔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해주신 것이(4:4-5) 헛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5:4) 하였습니다.

이처럼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게 되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변절해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려는 이행성의(以行成義)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이 너무도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1:7 다른 복음은 없음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7절에서는 다른 복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속히 변절하여 엉뚱하게도 다른 복음을 따르자 이를 이상하게 여기고 이러한 일을 중단시키고 다른 복음에 대해 경각심을 주려고 다른 복음은 없다고 한 것입니다.

7절의 교란하여의 원어원형은 ταράσσω(타랏소)인데 뒤흔들다, 교란하다, 혼란하게 하다, 선동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7절의 변하게의 원어원형은 μεταστρέφω(메타스트레포)인데 돌리다, 변하다, 변화시키다, 왜곡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뒤흔들어 혼란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돌려서 왜곡시키고 변질시켜버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속량해주신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율법의 행위로 뒤바꾸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8-9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라고 함

 

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8-9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려고 하기에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라고 할 정도입니다.

8절과 9절의 받을지어다의 원어원형은 στω(에스토)인데 너는 -이 되라는 뜻입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저주를 받으라고 한 것은 저주가 되라고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가 되어 저주덩어리가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은 저주가 되어버린다는 의미이므로 얼마나 크고 강력한 경고를 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저주가 되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 자신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매우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은 적극 전하여야 하나 다른 복음은 꿈속에서도 전하지 말아야 할 정도로 결코 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10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지 아니하였음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0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다른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좋게 하지도 않았고 사람들에게 기쁨도 구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인이신 그리스도께 맞추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 맞추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닐 수 있으나 하나님께 좋게 하였으므로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0절의 좋게 하랴의 원어원형은 πειθώ(페이도)인데 납득시키다, 확신시키다, 설득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의 기분과 생각에 맞추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그렇게 하려고 하였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10절의 기쁨을기쁨을 구하였의 원어원형은 ρέσκω(아레스코)인데 원래의 의미는 긍정적인 관계를 세우는 것을 의미하므로 기쁘게 하려고 애쓰다, 기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제쳐놓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애쓴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11-24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강력한 변증

 

11-24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강력하게 변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다른 복음처럼 사람의 뜻에 따라 된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가 된 내력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강력하게 변증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직분에 대해서도 변증하여 2장 후반부부터 전개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11-12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음

 

1: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사도 바울이 전해준 복음은 다른 복음처럼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력하게 변증해주고 있습니다.

11-12절을 보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2절의 계시의 원어원형은 ποκάλυψις(아포칼륍시스)인데 덮개를 벗김, 드러냄, 폭로, 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추어져 있던 것을 나타낸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사람이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서 보여주셔야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은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복음의 출처가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줌으로써 앞으로 전개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13-14 교회를 박해하고 전통에 열심이 있었음

 

1: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3절 이후에 나오는 13-24절을 보면 11-12절에 언급한 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해준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았다는 것에 대한 변증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13-14절은 사도가 되기 이전에 처해 있었던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13절을 보면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13절의 행한 일을의 원어원형은 ναστροφή(아나스트레포)인데 생활방식, 행동, 처신이라는 뜻입니다.

사도가 되기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의 생활방식이 어떠했는가를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두 가지가 있는데 극명하게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비우호적으로 심히 박해하고 하나는 우호적으로 열심히 믿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3절의 상황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파멸하려고 하였고 14절의 상황은 누구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활방식은 결과적으로는 비우호적이든 우호적이든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둘 다 비우호적인 것입니다.

조상의 전통을 따르는 것은 유대교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우호적이라고 볼 수 있으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입장에서 보면 도움을 주는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배척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14절의 연갑자의 원어원형은 συνηλικιώτης(시넬리키오테스)인데 같은 연령의 사람, 동년배, 동갑내기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었는데 자신의 동족 가운데 그 어떤 같은 연령의 사람들보다 더 지나칠 정도로 열심을 내었으므로 얼마나 배척하였는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15-17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하지 않았음

 

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5-17절도 전하게 된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변호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비우호적이었던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돌이키게 되었으나 사람을 만나려고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돌이키게 되었을 때 혈육과도 상의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사도들도 만나지 않고 오히려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15-1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부르심을 받아 돌이키게 되는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불러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자기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15절의 택정하시고의 원어원형은 φοριζω(아포리조)인데 분리하다, 따로 떼어놓다, 지명하다, 임명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미 태중에 있을 때부터 사도 바울을 따로 세워서 사도로 임명해 놓으셨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6절에 나오는 나타내시기를의 원어원형은 ποκαλύπτω(아포칼륍토)인데 덮개를 벗기다, 드러내다, 나타내다, 폭로하다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덮개를 벗겨서 나타내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나타내주셨다는 것입니다.

앞서 12절에서 살펴본 계시(ποκάλυψις, 아포칼륍시스: 덮개를 벗김, 드러냄, 폭로, 계시)ποκαλύπτω(아포칼륍토)에서 유래한 명사형이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그 당시에 받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후에 나오는 17절을 보면 어떤 권위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배웠다거나 그들로부터 받게 된 것을 언급하지 않고 아라비아와 다메섹 지역으로 갔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사도 바울이 전해주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1:18-20 예루살렘에서 사도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남

 

1: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1: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18-20절에서는 삼 년이나 지나서 사람을 만났으나 극히 일부의 사람을 만났고 그것도 짧은 시간 동안 만났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삼 년이 지난 후에 예루살렘에서 게바, 즉 사도 베드로를 만났으나 십오 일 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를 만났으나 다른 사도들은 만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사람에게서 받거나 배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강력하게 변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20절을 보면 이렇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0절의 거짓말이의 원어원형은 ψεύδομαι(프슈도마이)인데 거짓말하다, 거짓말로 속이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거짓말로 속이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강력하게 사도 바울이 전해주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1:21-24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의 교회들이 영광을 돌림

 

1: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1: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1:23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1: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21-24절에서는 변화된 사도 바울의 소식을 듣고는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난 이후에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교회들이 얼굴로는 사도 바울을 알지 못하고 박해하던 자가 이제는 거꾸로 파멸키시려던 믿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러한 사도 바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13-24절까지 사도 바울이 자서전적으로 쓴 내력을 보면 11-12절에 강력하게 피력한 내용을 변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에 따라 된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았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도 바울을 신뢰해도 된다는 것이고 그만큼 사도 바울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뢰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한눈에 보는 갈라디아서 (재개정판)

재개정일 2024년 1월 12일

개 정 일 2020년 9월 7

발 행 일 2020년 5월 12

지 은 이 이서영

출 판 사 퍼플

출판등록 300-2012-167 (2012 9 7)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1번지

대표전화 1544-1900

홈페이지 www.kyobobook.co.kr.

ISBN 978-89-24-12227-5

ⓒ 이서영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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