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야고보서 (재개정판) 4장 형제들아 비방하지 말라
4장 개요
✙✙✙ 4장 구절
야고보서 4장에서 대표적인 구절을 선정한다면 형제들에게 비방하지 말라고 언급하고 있는 11절입니다.
4: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 4장 주제
야고보서를 행함의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행하는 형제가 되라는(1:22) 것입니다.
그렇게 행할 때 믿음이 온전해지고(2:22)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게 된다는(1:25)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고 그러한 믿음으로는 자기를 구원하지 못한다는(2:14)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형제들에게 이러한 행함을 강조하면서 행함을 위하여 행함에 대한 다섯 가지의 실천과제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4장은 비방하지 말라는 실천과제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판단하고 비방하는 형제가 되지 말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장은 이러한 흐름이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주제를 도출해 본다면 형제들아 비방하지 말라가 됩니다.
✙✙✙ 4장 구조
야고보서 4장은 형제들에게 비방하지 말라는 것에 대한 것을 언급해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은 다툼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는데 형제와 다투고 하나님과 다투고 자신과도 다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투게 되는 것은 정욕 때문이고 판단하기 때문이고 그렇게 되는 것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형제 사이에 교만하고(1-3, 11-12), 하나님께도 교만하고(4-10),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교만하다는(13-17) 것입니다.
교만하기에 정욕과 판단을 앞세워 서로 다투게 되고, 교만하기에 세상과는 벗이 되면서 하나님과는 원수가 되고, 교만하기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장사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교만하여 판단하고 비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고 율법의 판단자가 아니라 준행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싸우고 다투는 것은 교만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겸손하고 형제 간에는 비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관계가 회복이 됩니다. 형제 간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회복이 됩니다.
교만한 것을 버리고 겸손하게 형제를 존중하게 되므로 싸우지 않게 되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므로 더욱 큰 은혜를 받게 되고,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므로 오판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4장에서는 비방하지 말라는 관점에서 풀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4장은 모두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10절은 겸손한 형제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11-17절은 서로 비방하고 판단하지 말라 입니다.
첫 번째 부분인 1-10절은 형제들 내의 다툼을 해결해주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투는 것은 교만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1-3절은 다투는 현상을 설명하고, 4-10절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1-3절은 서로 다투고 싸우는 상황에 대한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정욕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4-6절은 벗과 원수에 대한 것인데 세상과 벗이 되면 하나님과는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7-10절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하기 위한 권면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주 앞에서 낮추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부분인 11-17절은 비방과 판단에 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만하기에 형제를 판단하고 비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만하기에 자기 자신도 판단을 잘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11-12절에서는 형제들 간에 서로 비방하거나 판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13-17절에서 장사하는 사람을 예로 들면서 사람은 잘 판단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4장 개관
단락 | 단락별 개요 |
1-10 | 겸손한 형제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
11-17 | 서로 비방하고 판단하지 말라 |
4:1-10 겸손한 형제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야고보서의 주제는 행하라는 것이고, 4장의 주제는 비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1-10절 단락은 겸손한 형제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1-10절은 형제들 내의 다툼을 해결해주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투는 것은 교만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1-3절은 다투는 현상을 설명하고, 4-10절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1-3절은 서로 다투고 싸우는 상황에 대한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정욕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4-6절은 벗과 원수에 대한 것인데 세상과 벗이 되면 하나님과는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7-10절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하기 위한 권면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주 앞에서 낮추라고 하였습니다.
● 4:1-3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1-3절은 서로 다투고 싸우는 상황에 대한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정욕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싸움과 다툼이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싸운다는 의미를 가진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싸움과 다툼은 정욕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욕이 있으면 구한다고 하여도 받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1절은 싸움과 다툼의 출처에 대한 것입니다.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와 너희 지체 중에서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형제들 내에서 발생하는 싸움과 다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싸우고 다투는 정도가 아니라 용어의 의미를 보면 마치 전쟁터와 같은 싸움과 다툼이라는 것입니다.
형제로서 성령에 따라 말씀을 따르는 행함이 부족하고 사람의 속에 내재 된 죄의 본성에 따라 살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 싸우는(στρατευομένων, 스트라튜오메논)은 στρατεύομαι(스트라튜오마이: 군인으로 복무하다, 전쟁을 하다)의 동분사 현재형 속격 복수입니다.
⚫ 정욕으로(ἡδονῶν, 헤도논)는 ἡδονή(헤도네: 즐거운 것, 쾌락의 추구, 쾌락)의 복수로 “정욕들로”라는 뜻입니다.
형제들과의 싸움과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하면 지체들의 싸워대는 정욕들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에 따라 행하지(갈 5:16, 18, 25, 롬 8:3-4, 딤후 1:14)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의 속에 잠재되어 있던 싸우고 다투기를 좋아하는 죄의 본성이 튀어나오게 되고 그러한 정욕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서로 싸우고 다투게 되는 것입니다.
4: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2절은 다툼과 싸움의 결과에 대한 것입니다. 다투고 싸우면 얻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투고 싸우면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다투고 싸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투고 싸우다 보면 구하지도 못해 결국은 얻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 얻지…얻지(ἔχετε, 에케테)는 ἔχω(에코: 가지다, 소유하다)의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2인칭 복수입니다.
⚫ 시기하여도(ζηλοῦτε, 젤루테)는 ζηλόω(젤로오: 열정적이다, 열심이다, 시기하다)의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복수입니다.
⚫ 취하지(ἐπιτυχεῖν, 에피튀케인)는 ἐπιτυγχάνω(에피튕카노: 얻다, 도달하다)의 동부정사 과거 능동태입니다.
⚫ 다투고(μάχεσθε, 마케스데)는 현재형인데 원어원형은 μάχομαι(마코마이)로 “싸우다, 다투다, 논쟁하다”라는 뜻입니다.
⚫ 싸우는도다(πολεμεῖτε, 폴레메이테)는 πολεμέω(폴레메오: 싸우다, 전투하다, 전쟁하다)의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복수입니다.
현재형이므로 여전히 계속해서 다투고 싸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투고 싸우다 보면 욕심을 내어도 가지지 못하고 살인하고 열심을 내어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투고 싸우다 보면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얻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확장해 보면 서로 다투고 싸우다가 마음이 상한 상태에서 상대방을 위해 구해준다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서로 얻지 못하는 것은 서로 다투고 싸우다 보니까 꼴이 보기 싫어 서로를 위해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용서하고 오히려 축복해주고 합심하여 서로를 위해 기도하면 응답이 잘 됩니다(마 18:18-19).
그리고 정욕에 허비하려고 구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와 하나님 아버지의 의를 구하면 응답이 잘 되는 것입니다(마 6:33).
이렇게 되면 구하게 되고 구하는 것을 얻게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서 얻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3절은 정욕의 결과에 대한 것입니다. 구하기는 구하여도 받지 못하게 되는 이유에 대한 것을 언급해주고 있습니다.
⚫ 쓰(δαπανήσητε, 다파네세테)는 δαπανάω(다파나오: 소비하다, 낭비하다, 다써버리다)의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복수입니다.
구한다고 다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욕에 낭비하려고 잘못 구하면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정욕에 쓰려고 구하지 말아야 하고 서로 다투고 싸우면서 구하지 말고 서로 합심하여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욕에 허비하려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5:16).
● 4:4-6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4-6절은 벗과 원수에 대한 것인데 세상과 벗이 되면 하나님과는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교만하여 하나님과 다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만하기에 하나님은 멀리하고 세상과는 친하게 지내게 되므로 결국에는 하나님과는 원수로 지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간음한 여인들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모하시는데 그 손을 뿌리치고 배척한다는 것입니다.
교만하여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멀리하고 응답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이렇게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물리치시지만 겸손한 형제에게는 더욱 큰 은혜를 주십니다. 이렇게 되면 기도의 응답도 더 잘 되는 것입니다.
4: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4절은 간음한 여인들에 대한 것입니다. 간음을 예로 들면서 세상과 벗이 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욕을 앞세우게 되면 형제들 내에서 지체들 사이에 다투고 싸우게 됩니다.
이러한 정욕으로 세상과 간음하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적대관계가 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간음한 여인들아(μοιχαλίδες, 모이칼리데스)는 μοιχαλίς(모이칼리스: 간음한 여인, 창녀)의 호격 복수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영적인 간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육적인 간음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경고하고 있다고(2:11, 3:17, 4:4) 볼 수 있습니다.
행함의 실천과제를 제시하면서 언어와 재물과 건강에 대한 실천과제는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음에 대해 별도로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영적으로 간음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보면 육체적으로도 당연히 간음하지 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 원수(ἔχθρα, 에크드라)는 “증오, 적의, 적대”라는 뜻입니다.
정욕을 참지 못하고 간음한 여인처럼 세상과 간음하여 세상의 친구가 된다면 하나님과는 적대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 벗(φίλος, 필로스)은 “친구”라는 뜻입니다.
⚫ 스스로…것이니라(καθίσταται, 카디스타타이)는 καθίστημι(카디스테미: 가지고 들어오다, 임명하다, 지명하다, 어떤 사람을 어떤 것이 되게 하다, 그를 어떤 위치나 상태에 두다, 어떤 곳에 두다, 어떤 것이 되다)의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입니다.
만일 세상과 친구가 되려고 하는 형제는 스스로 하나님을 적대하는 자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4: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4절은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려는 것을 볼 수 있고 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모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시기하시기까지 사모하신다는 것입니다.
⚫ 거하게 하신(κατῴκισεν, 카토키센)은 κατοικίζω(카토이키조: 살게 하다, 거주하게 하다)의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단수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주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러하신 성령께서 시기를 하시기까지 하나님께서 사모하신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 말씀을(γραφὴ, 그라페)은 “기록물, 성경”의 명사 주격 단수입니다. 성경을 뜻합니다. “성경이”라는 뜻입니다.
⚫ 느냐(ἤ, 에)는 접속사로 의문문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거주하신 성령께서 시기하시기까지 사모하신다고 한 성경이 헛된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모하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6절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형제와 겸손한 형제를 예로 들어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형제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형제에게는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 주시나니, 주신다(δίδωσιν, 디도신)는 “주다, 하사하다”의 뜻입니다.
⚫ 물리치시고(ἀντιτάσσεται, 안티타쎄타이)는 현재형으로 원어원형은 ἀντιτάσσω(안티탓소)인데 “대항하다, 대적하다”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에게 대적하시고 그러나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잠언 3장 34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모하시고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은혜의 수혜자가 되는 것은 어떤 형제가 되느냐에 따라 다르게 됩니다.
이러하므로 우리가 어떤 형제가 되느냐가 관건입니다. 교만한 형제가 되느냐 아니면 겸손한 형제가 되느냐입니다.
● 4:7-10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7-10절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하기 위한 권면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주 앞에서 낮추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7-10절은 교만한 형제가 아니라 겸손한 형제가 되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더 큰 은혜를 주셔서 그러한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는 대적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주님 앞에서 낮추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7-10절은 겸손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주님 앞에서 낮추라”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이켜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만해서 두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벗으로 삼고 지내던 것을 겸손하게 통회하면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리하면 즉 이렇게 겸손하게 돌이키면 더 큰 은혜를 주시는데 마귀가 피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가까이해주시고 주께서 높여주십니다.
“복종하고 대적하라 그리하면(7), 가까이하라 그리하면(8), 낮추라 그리하면(10)”이라는 구조를 볼 수 있습니다.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7절은 겸손에 대한 것입니다. 겸손하게 복종해야 할 대상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해야 하고 마귀에게는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런즉(οὖν, 운)은 “그러므로”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라는 의미입니다.
⚫ 피하리라(φεύξεται, 픀세타이)는 φεύγω(퓨고: 도망하다, 피하다, 사라지다)의 미래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에게는 대적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너희들에게서 도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형제는 대적하시고 겸손한 형제에게는 은혜를 주시므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하게 복종하라고 해서 마귀에게도 겸손하게 복종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마귀에게는 오히려 대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망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7절에 이어 8절에서도 겸손에 대한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을 가까이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만해서 세상과 벗이 되지 말고 돌이켜서 겸손하게 하나님을 가까이하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벗이 되어 세상의 손을 잡고 세상을 섬긴 손을 깨끗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벗이 되어 두 마음을 품고 있는 마음을 성결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가까이하라(ἐγγίσατε, 엥기사테)…가까이하시리라(ἐγγιεῖ, 엥기에이)의 원어원형은 ἐγγίζω(엥기조)인데 “접근하다, 가까이 오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까이 오십니다.
이렇게 가까이하려면 손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순결하게 하여야 합니다.
세상의 손을 잡고 세상을 마음에 품어 세상의 벗이 되게 한 손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순결하게 하면 됩니다.
돌이켜서 세상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마귀는 멀리하여 대적하고 하나님께는 가까이하여 복종하는 이러한 형제가 겸손한 형제가 되고 겸손한 형제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4: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9절도 8절에 이어 회개에 대한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겸손하려면 회개하여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과는 벗이 되고 하나님과는 원수가 된 것을 깨끗이 청산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복종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회개하여야 하는데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울지어다(κλαύσατε, 클라우사테)는 κλαίω(클라이오: 울다, 크게 울다)의 동사 명령법 능동태 2인칭 복수입니다. 크게 울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에 대해 계속 언급하기를 웃음과 즐거움을 애통과 근심으로 바꾸라고 하였습니다.
⚫ 바꿀지어다(μετατραπήτω, 메타트라페토)는 μετατρέπω(메타트레포: 돌리다, 바꾸다)의 동사 명령법 수동태입니다.
이처럼 슬퍼하고 애통하고 울고 웃음을 애통으로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철저하게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은(빌 2:18, 4:4)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6).
그런데 애통으로 바꾸고 근심으로 바꾸라고 한 것은 정욕에 젖어서 세상과 벗하면서 좋아서 웃는 것에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숨을 쉬면서 슬프게 살아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쁘게 사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이러하므로 웃음과 즐거움을 애통과 근심으로 바꾸라고 한 것은 슬프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면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 그러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아니하시고(시 51:17) 소생시켜주십니다(사 57:15).
하나님께서 돌이키고 살라고 하셨습니다(겔 18:32, 33:11, 사 55:7). 이러하므로 돌이키면 살게 되어 있으므로 돌이키면 되는 것입니다.
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10절에서는 겸손에 대한 보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주시는데 교만한 형제는 물리쳐버리시고 겸손한 형제에게는 은혜를 주십니다.
높아지려고 하는 형제는 낮아지게 되고 낮아지려고 하는 형제는 높아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주(κυρίου, 퀴리우)는 속격으로 “주님의, 주인의”라는 뜻입니다.
⚫ 앞에서(ἐνώπιον, 에노피온)는 “목전에, 앞에, 면전에”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면전에서 역설적으로 낮추어질 때 높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높아져서 높아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낮아짐으로써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싸우고 다투는 것은 자신의 정욕에 의한 것으로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 교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형제는 이러한 것과는 반대로 정욕을 버리고 형제와 다툼이 없고 하나님 사이에 다툼이 없는 형제입니다.
세상과 벗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다른 형제는 존귀하게 대하고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 복종하고 가까이하고 낮추는 자입니다.
이러한 형제는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은혜를 주셔서 주님께서 높여주시고 더욱 가까이해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형제의 기를 죽이고 다른 형제를 깎아내리려고 비방하지 않고 오히려 칭찬해주고 기를 살려주면서 높여주는 형제로 살아가면 이러한 복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만과 겸손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1-10절은 곧바로 이어서 나오는 11절에 비방하지 말라는 것을 언급하기 이전에 하나님에 대한 자세를 먼저 바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비방한다는 것은 준행자가 아니라 판단자의 입장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하므로 사람은 판단자가 될 수 없고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언급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에 대한 자세를 정립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다투고 원수지간이 된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겸손한 자세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형제를 비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방하면 관계가 악화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회복하여 겸손의 복도 받고 형제와의 관계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수직관계와 수평관계가 모두 좋아지라는 것입니다.
형제들이 안정되고 행복한 신앙생활과 삶을 살려면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형제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11-17절 서로 비방하고 판단하지 말라
야고보서의 주제는 행하라는 것이고, 4장의 주제는 비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11-17절 단락은 비방하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11-17절은 비방과 판단에 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만하기에 형제를 판단하고 비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만하기에 자기 자신도 판단을 잘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장사하여 이익을 보려고 하는 자들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겸손하지 않기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하여져서 판단자가 아니라 준행자가 되어 형제를 판단하거나 비방하지 않고 존중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겸손하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나 형제으로부터 더 큰 은혜를 받게 되고 화평을 누리면서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11-12절에서는 형제들 간에 서로 비방하거나 판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판단할 수 있는 분은 구원하기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시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라는 언급하였습니다.
이러하므로 사람은 판단을 잘 할 수 있는 판단자가 아니라 준행하여야 하는 준행자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13-17절에서 장사하는 사람을 예로 들면서 사람은 잘 판단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 4:11-12 비방하는 형제는 율법을 비방하는 것이라
11-12절은 언어생활에 대한 것인데 서로 비방하지 말라는 것을 율법을 들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형제는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을 준행하는 준행자가 아니라 율법을 판단하였기에 준행자가 아니라 재판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비방하고 판단하는 기준은 율법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준을 정할 수 있는 분은 한 분밖에 없습니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시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이러하므로 율법을 준행하여야 하는 형제는 율법의 입법자와 재판관이 된 것처럼 형제를 제멋대로 비방하거나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4: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1절은 비방하거나 판단하지 않으려면 율법의 재판관이 아니라 율법의 준행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11절을 시작하면서 형제들아라고 하면서 서로 비방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이라고 호칭한 것은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비방에 대한 언급이 무려 세 개나 되는 것을 보면 형제들 간에 서로 비방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비방하지(καταλαλεῖτε, 카탈랄레이테)…비방하는(καταλαλῶν, 카탈랄론)…비방하고(καταλαλεῖ, 카탈랄레이)의 원어원형은 καταλαλέω(카탈랄레오)인데 “-의 험담을 하다, 욕하다, 비방하다, 중상하다, -를 거스려 말하다”라는 뜻입니다.
⚫ 판단하는(κρίνων, 크리논)…판단하는(κρίνει, 크리네이)…판단하(κρίνεις, 크리네이스)의 원어원형은 κρίνω(크리노)인데 “분리하다, 판단하다, 결정하다, 결심하다”의 뜻입니다.
판단에 대한 언급도 세 개입니다. 이것도 역시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형제를 비방하는 형제는 율법을 비방하는 것이 되고 형제를 판단하는 형제는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이라는 용어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모두 네 개나 됩니다. 이것 역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 율법을(νόμου, 노무)…율법을(νόμον, 노몬)…율법을(νόμον, 노몬)…율법의(νόμου, 노무)의 원어원형은 νόμος(노모스)인데 “율법, 법, 규범”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율법을 판단하는 자가 아니라 준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준행자가(ποιητὴς, 포이에테스)는 “행하는 자, 수행자, 실행자, 시인”의 뜻입니다.
이렇게 행하는 자에 대한 용어는 앞서 1장 22절의 행하는 자, 23절의 행하지, 25절의 실천하는 자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행함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행하는 자의 개념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11절에서는 율법을 실행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판단해서 비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단한다면 율법을 실행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결정을 내리고 판단하는 재판관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만일 율법을 판단하게 된다면 율법을 실행하는 실행자가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재판하는 재판관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4: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12절은 판단하는 기준을 결정하는 주관자에 대한 것을 언급해주고 있습니다.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시냐 아니면 누구이냐는 것입니다.
기준을 결정하시고 판단하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뿐이십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판단하실 수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오직 실행하는 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데 너는 누구이기에 형제를 판단하느냐는 것입니다. 무슨 자격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형제를 비방하거나 형제를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구원하기도(σῶσαι, 소사이)는 σώζώ(소조: 구원하다, 해 받지 않게 하다, 보존하다)의 동부정사 과거형입니다.
⚫ 멸하기도(ἀπολέσαι, 아폴레사이)는 ἀπόλλυμι(아폴뤼미: 멸망시키다, 잃어버리다)의 동부정사 과거형입니다.
그 어떤 사람이 아니라 구원하시고 멸망시킬 수 있으신 하나님만이 율법의 입법자와 재판관이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만드시고 율법을 수여하시고 율법의 실행 여부를 판단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 이웃을(πλησίον, 플레시온)은 대격으로 “이웃을, 가까이 있는 사람을, 동포를”의 뜻입니다. 야고보서의 문맥으로 보면 형제를 의미합니다.
⚫ 판단하(κρίνων, 크리논)의 원어원형은 κρίνω(크리노)인데 “분리하다, 판단하다, 결정하다, 결심하다”의 뜻입니다.
구원하시고 멸하시는 하나님만이 입법자와 재판관이 되시므로 사람은 이웃의 형제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이시며 지극히 높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하기를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창 14:19, 히 7:1).
그러면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하였습니다(창 14:20).
아브라함도 소돔 왕에게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창 14:22).
이외에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에 대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총회에게 노래의 말씀을 들려줄 때(신 32:8), 느부갓네살 왕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가까이 가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불러낼 때(단 3:26), 느부갓네살 왕이 천하에 조서를 내리면서(단 4:2, 17, 24, 25, 32, 34),
다니엘이 손가락으로 쓴 글자를 벨사살 왕에게 해석해주면서(단 5:18, 21), 다니엘이 환상을 물었을 때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의 곁에 모셔 선 자들 가운데 하나가 해석해줄 때(단 7:18, 25, 27),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를 알려줄 때(눅 1:32, 35), 세례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언할 때(눅 1:7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실 때(눅 6:35), 스데반이 공회에서 설교할 때(행 7:48) 등이 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것은 하나님을 잘 모르던 이방인이 뒤늦게 깨닫고 조서를 내린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이 내린 조서입니다(단 3:29).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다리오 왕이 내린 조서에서도 알 수 있는데(단 6:26-27)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는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는 것을 보면(욥 42: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이시며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고 구원하시고 전능하시고 주권을 가지고 행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에서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1:1), 후하게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고 주시는 하나님(1:5),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는 하나님(1:12),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1:13),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빛들의 아버지(1:17),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아버지(1:17), 진리의 말씀으로 낳아주신 아버지(1:18), 영광의 주가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2:1),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2:5),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시는 하나님(2:5), 한 분이신 하나님(2:19), 주가 되신 아버지(3:9),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시는 하나님(4:5),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4:6), 가까이 해주시는 하나님(4:8), 높여주시는 하나님(4:10), 입법자와 재판관이신 하나님(4:12),
만군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5:4), 강림하시는 주님(5:7, 8), 심판주이신 하나님(5:9), 결말을 주시는 주님(5:11),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5:11), 병든 자를 일으켜주시는 주님(5:15)이십니다.
이에 비해 사람은 판단을 잘하지도 못하고 내일 일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누구이기에 어떻게 해서 형제를 판단하고 비방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잠언을 보면 잠언의 처음과(1:7) 중간과(9:10) 마지막 부분에(31:30)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근본인 것을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는 하나님만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외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랑은 결국에는 복이 되어 되돌아와서 자기 자신을 잘 되게 만들어 주게 됩니다.
이러하므로 경외한다는 것은 알고 보면 하나님만 위한 것이 아니라 형제와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주제는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행하려면 하나님을 잘 믿어야 잘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만큼 행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만해져서 형제를 판단하거나 하나님을 업신여기지 아니하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말씀에 따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언급이 필요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 4:13-17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도다
13-17절은 앞서 언급한 11-12절에 이어서 장사하는 사람을 예로 들면서 사람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13절에서는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고 한다고 하였고, 14절에서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고, 15절에서는 주의 뜻이면 하리라고 한다고 하였고, 16절에서는 허탄한 것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판단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판단자가 아니라 실행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7절에서는 그러한 실행자로서 선을 행하여야 하는데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라는 것입니다.
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3절은 사람에게는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장사하여 이익을 보려고 하는 자들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일 년을 머물려고 한다는 것은 시간을 얼마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도시에 가서라고 한다는 것은 장소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머물면서 장사하여 이익을 보려고 한다는 것은 마음먹은 대로 머물게 되고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판단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 들으라(Ἄγε, 아게)는 동사 명령법으로 “자, 이봐”라는 뜻입니다.
무엇이라고 말하는 자들에게 주의를 집중시켜서 들려주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 머물며(ποιήσομεν, 포이에소멘)는 ποιέω(포이에오: 만들다, 창조하다, 행하다)의 동사 직설법 미래형 1인칭 복수입니다. “우리가 지낼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 이익을 보리라(κερδήσομεν, 케르데소멘)는 κερδαίνω(켈다이노: 얻다, 이익을 얻다)의 동사 직설법 미래형 1인칭 복수입니다. “우리가 이익을 얻을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자신만만해 하나 마음먹은 대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생각한 것을 차질 없이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4절에서는 13절에 이어 판단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호언장담하는 사람의 존재를 안개에 비유해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큰 소리를 친다는 것입니다. 생명만 보더라도 마치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앞날을 알지도 못하고 자신의 생명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연약한 존재이면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처럼 큰 소리를 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하여도 상황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사람의 판단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알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이므로 형제를 판단하고 비방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 없어지는(ἀφανιζομένη, 아파니조메네)은 ἀφανίζω(아파니조: 사라지다, 쇠잔하다, 멸망하다)의 동분사입니다.
사람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자신의 생명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잠깐 눈앞에 보이다가 금방 사라지고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런 존재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판단을 잘하지 못하는 유한한 존재인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형제를 비방하거나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5절에서도 13-14절에 이어 사람이 계속 자신만만해하는 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심지어 주님의 뜻까지도 끌어들여서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여야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매우 권장할 만합니다. 겸손하게 주님의 뜻에 따라 산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정욕에 맞추려고 주님의 뜻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의 정욕은 자신의 판단을 그르치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이 아닌데도 자신의 판단을 주님의 뜻이라고 여기면 그렇게 됩니다.
⚫ 도리어(ἀντὶ, 안티)는 “-의 대신에, -을 위하여, 때문에, -에 반대하여”의 뜻입니다.
이러하므로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은 “너희들이 반대하여 말하기를”이라는 뜻입니다.
⚫ 하리라(ποιήσομεν, 포이에소멘)는 앞서 13절에서 언급한 머물며(ποιήσομεν, 포이에소멘)와 동일합니다. ποιέω(포이에오: 만들다, 창조하다, 행하다)의 동사 직설법 미래형 1인칭 복수입니다.
장소적으로는 이 도시에 살고 시간적으로는 한 해를 살면서 이런저런 장사를 하여서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 주의(κύριος, 퀴리오스)는 주격이므로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 뜻이면(θελήσῃ, 델레세)은 θέλω(델로: 바라다, 원하다, -하려고 하다)의 동사 가정법입니다.
자신의 판단대로 장사하면서도 이러한 것은 주님이 바라시던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라고 하는 너희들의 말이 잘못된 말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반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판단하는 능력이 없어서 거꾸로 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뜻이 아닌데도 반대로 말하기를 그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람은 판단을 잘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형제를 판단하고 비방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4: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6절도 역시 13-15절에 이어서 계속 사람은 판단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허탄한 자랑을 한다는 것입니다. 판단을 잘하지 못하므로 자랑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한 자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 허탄한 자랑을(ἀλαζονείαις, 알라조네이아이스)은 명사 여격 복수이므로 “허풍떰들로, 자랑함들로, 자만함들로”라는 의미입니다.
⚫ 하니(καυχᾶσθε, 카우카스데)는 καυχάομαι(카우카오마이: 자랑하다)는 동사 직설법 2인칭 복수입니다. “너희들은 자랑한다”라는 뜻입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자만하여서 자랑한다면 그러한 자랑은 악한 것이 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서 자신이 원하는 직업으로 자신이 원하는 수익을 올리려고 하는 것은 악한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사람은 안개와 같은 존재로서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존재입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판단을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판단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보면 악을 행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정욕에 사로잡혀 세상과 벗하면서 하나님과는 원수가 되어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판단대로 살아가는 이러한 사람의 자만심에 가득한 자랑은 악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4: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17절은 형제가 선을 행하여야 하는 것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라고 하였습니다.
⚫ 선을(καλὸν, 칼론)은 καλός(칼로스: 선한, 좋은, 아름다운, 고상한)의 형용사 대격 단수입니다. 실명사로 본다면 “선한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 행할(ποιεῖν, 포이에인)은 동부정사이며, 행하지(ποιοῦντι, 포이운티)는 동분사인데 원어원형은 ποιέω(포이에오)로 “만들다, 창조하다, 행하다”라는 뜻입니다.
선한 것을 행하여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지 아니하면 행하지 아니한 자신에게 죄가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행함이 중요한 주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함에 관한 실천과제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실천과제를 4장에서 찾아보면 서로 판단하거나 비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판단하지 말고 서로 비방하지 말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판단하고 비방하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언급하고 있는 것은 형제들 내의 화평과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비방하지 말고 서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외부적으로 박해 받는 상황 아래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형제들이 판단과 비방으로 살기가 더 힘들어지지 않도록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눈에 보는 야고보서 (재개정판)
재개정일 2024년 1월 12일
개 정 일 2021년 11월 3일
발 행 일 2021년 8월 13일
지 은 이 이서영
출 판 사 퍼플
출판등록 제300-2012-167호 (2012년 9월 7일)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1번지
대표전화 1544-1900
홈페이지 www.kyobobook.co.kr.
ISBN 978-89-24-12015-8
ⓒ 이서영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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