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에베소서 (재개정판) 6장 사회생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6장 개요
✙✙✙ 6장 구절
에베소서 6장에서 대표적인 구절을 선정한다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2절입니다.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 6장 주제
에베소서 4-6장은 성도들의 생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의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를 성도들의 생활에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6장은 풍성한 은혜의 수혜 기관인 사회의 생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녀와 부모 사이의 관계를 종과 상전의 관계로 확장하여 그리스도께 하듯이 순종하고 그리스도께서 하시듯이 보살피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는 하나님의 여섯 가지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아울러 기도하게 되면 보다 더 풍성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6장은 이러한 흐름이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주제를 도출해 본다면 사회생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됩니다.
✙✙✙ 6장 구조
에베소서 6장은 풍성한 은혜의 수혜 기관인 사회의 생활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6장에서는 사회와 연관된 것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6장은 모두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4절 사회의 기초, 5-9절 사회의 확장, 10-17절 사회의 대적, 18-20절 사회의 간구, 21-24절 사회의 안녕입니다.
첫 번째 단락인 1-4절은 사회의 기초에 관한 것인데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와 같이 사회의 대표적인 원리인 순종과 양육의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와 부모 사이는 가정생활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가정을 구성하는 아내와 남편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5장으로 분류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자녀와 부모에 대한 언급은 사회생활을 다루고 있는 6장에 나오므로 자녀와 부모 사이를 가정생활의 연장으로 보면서 사회생활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가정생활의 자녀와 부모 사이처럼 사회생활에 있어서 자녀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순종하여야 하고 부모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양육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락인 5-9절은 사회의 확장에 관한 것인데 종과 상전의 역할에 대한 것으로 종들은 순종하고 상전들은 위협을 그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5-8절은 종들의 역할에 대한 것인데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로부터 그대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9절은 상전들의 역할에 대한 것인데 종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는 것입니다. 종들과 상전들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분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단락인 10-17절은 사회의 대적에 관한 것인데 마귀를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진리와 의와 평안의 복음과 믿음과 구원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6:14-17).
이러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사회생활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도 필수적인 것입니다. 아래의 단락도 마찬가지입니다.
네 번째 단락인 18-20절은 사회의 간구에 관한 것인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사도 바울을 위하여서도 구하라는 것입니다.
본 단락은 앞 단락의 영적전쟁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에 이어서 비밀무기인 기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기도해주고 있고(1:15-19, 3:14-19) 기도 요청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6:18-20).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하였고(6:18) 사도 바울이 말씀을 잘 전파할 수 있도록 구하라고 요청한 것입니다(19-20).
다섯 번째 단락인 21-24절은 사회의 안녕에 관한 것인데 두기고를 통해 위로하고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과 은혜가 있기를 기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은혜를 풍성하게 부어주시는데 그러한 것을 실제로 받게 되면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6장 개관
단락 | 단락별 개요 |
1-4 | 사회의 기초: 자녀와 부모 |
5-9 | 사회의 확장: 종과 상전 |
10-17 | 사회의 대적: 하나님의 전신갑주 |
18-20 | 사회의 간구: 사도 바울의 기도 요청 |
21-24 | 사회의 안녕: 사도 바울의 인사 |
6:1-4 사회의 기초: 자녀와 부모
1-4절은 사회의 기초에 관한 것인데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와 같이 사회의 대표적인 원리인 순종과 양육의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와 부모 사이는 가정생활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가정을 구성하는 아내와 남편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5장으로 분류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자녀와 부모에 대한 언급은 사회생활을 다루고 있는 6장에 나오므로 자녀와 부모 사이를 가정생활의 연장으로 보면서 사회생활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가정생활의 자녀와 부모 사이처럼 사회생활에 있어서 자녀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순종하여야 하고 부모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양육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은혜를 풍성하게 부어주시는데 이에 바르게 응답해서 순종하면 사회생활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1-4절은 사회의 기초에 관한 것인데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와 같이 사회의 대표적인 원리인 순종과 양육의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1절은 자녀들이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 순종하라(ὑπακούετε, 휘파쿠에테)는 ὑπακούω(휘파쿠오: 말을 듣다, 순종하다)의 동사 명령법 현재 능동태 2인칭 복수입니다.
⚫ 옳으(δίκαιον, 디카이온)는 “의로운”이라는 뜻입니다.
자녀들이 주님 안에서 자신의 부모들에게 말을 듣고 순종하는 것은 의롭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올바른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때 주 안에서(ἐν κυρίῳ, 엔 퀴리오) 순종하라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말라고 하는 말에도 잘 순종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사를 지내라고 하는 말에도 잘 순종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진리 안에서 주님 안에서 잘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의 예를 들면 자녀가 부모를 주님 안에서(1) 순종하는 것은 종이 상전을 주님께 하듯이(5, 6, 7) 그렇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1-4절은 사회의 기초에 관한 것인데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와 같이 사회의 대표적인 원리인 순종과 양육의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2절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앞부분은 출애굽기 20장 12절과 신명기 5장 16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 공경하라(τιμά, 티마)는 τιμάω(티마오: 가격을 정하다, 존경하다)의 동사 명령법 현재 능동태입니다.
⚫ 첫(πρώτη, 프로테)은 “첫째의, 최고의, 처음에”라는 뜻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존경하여야 하는데 이러한 것은 누구에게나 약속 안에 있는 첫째의 계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존경하여야 부모를 올바르게 섬길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를 존경하지 않으면 부모를 우습게 여기고 섬기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하므로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인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존경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첫 번째 돌판은 하나님 사랑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 돌판은 이웃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한 이웃 사랑 가운데 첫째는 부모 공경입니다. 그러한 공경에 대한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존경하면 이어서 언급하고 있는 3절과 같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 6: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1-4절은 사회의 기초에 관한 것인데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와 같이 사회의 대표적인 원리인 순종과 양육의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3절은 부모 공경에 대한 결과인데 부모를 공경하면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출애굽기 20장 12절과 신명기 5장 16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 잘(εὖ, 유)은 “잘, 좋게”라는 뜻입니다.
⚫ 장수(μακροχρόνιος, 마크로크로니오스)는 형용사 주격 단수로 “오래 사는”이라는 뜻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자신에게 잘 되게 하고 땅에서 오래 살도록 해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잘 되지 못해서 늘 아프고 궁핍하고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그렇게 오래 사는 것은 더 힘이 듭니다.
그런데 일이 좋아져서 잘 되면서 오래 사는 것은 자신에게나 가까운 사람들에게나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됩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면 그렇게 된다고 이웃 사랑의 첫 계명에서 약속하고 있으므로 부모를 잘 공경하면 그러한 복을 누리면서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1-4절은 사회의 기초에 관한 것인데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와 같이 사회의 대표적인 원리인 순종과 양육의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4절은 부모의 역할에 관한 것인데 아비들이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 노엽게 하지(παροργίζετε, 파로르기제테)는 παροργίζω(파로르기조: 격노시키다, 노하게 하다, 성나게 하다)의 동사 명령법 현재 능동태 2인칭 복수입니다.
⚫ 교훈(παιδείᾳ, 파이데이아)은 παιδεία(파이데이아: 교육, 양육, 훈련)의 여격 단수입니다.
⚫ 훈계(νουθεσίᾳ, 누데시아)는 νουθεσία(누데시아: 훈계, 경고)의 여격 단수입니다.
아버지들이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고 오히려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자녀들을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부모 자신에게도 유익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부모 공경을 더 잘할 수 있게 해주고 그리하여 자녀들이 더 잘 되고 더 장수하게 되는 복을 받도록 해주게 되는 것입니다.
6:5-9 사회의 확장: 종과 상전
두 번째 단락인 5-9절은 사회의 확장에 관한 것인데 종과 상전의 역할에 대한 것으로 종들은 순종하고 상전들은 위협을 그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5-8절은 종들의 역할에 대한 것인데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로부터 그대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9절은 상전들의 역할에 대한 것인데 종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는 것입니다. 종들과 상전들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분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은혜를 풍성하게 부어주시는데 이에 바르게 응답해서 순종하면 사회생활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 6: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5-9절은 사회의 확장에 관한 것인데 종과 상전의 역할에 대한 것으로 종들은 순종하고 상전들은 위협을 그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5-8절은 종들의 역할에 대한 것인데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로부터 그대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5절에서는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 두려워(φόβου, 포부)는 φόβος(포보스: 공포심, 두려움, 놀람, 공경, 존경, 경외)의 명사 속격 단수입니다.
⚫ 떨며(τρόμου, 트로무)는 τρόμος(트로모스: 떨림, 두려움으로 전율함, 떠는 것)의 명사 속격 단수입니다.
⚫ 순종하기를(ὑπακούετε, 휘파쿠에테)은 ὑπακούω(휘파쿠오: 말을 듣다, 순종하다)의 동사 명령법 현재 능동태 2인칭 복수입니다.
종들은 육체의 주인들에게 두려움과 떨림과 함께 그리스도께 하는 것처럼 마음을 다해 성실하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주인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이렇게 두려워하고 떨면서 심지어 그리스도께 하듯이 마음과 정성을 다해 성실하게 순종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원리대로 종은 주인을 그러한 방식으로 공경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녀와 부모 사이는 가정생활의 연장이자 사회생활의 기초가 되고 이러한 관계가 종과 주인 사이에 적용이 되면 사회생활의 확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듯이 종도 주인에게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께 하듯이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5절에서는 그리스도께 하듯, 6절은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7절은 주께 하듯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면 8절에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 6: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5-9절은 사회의 확장에 관한 것인데 종과 상전의 역할에 대한 것으로 종들은 순종하고 상전들은 위협을 그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6절은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 눈가림만(ὀφθαλμοδουλίαν, 옾달모둘리안)은 대격 단수로 “눈앞에서만 일하기를, 눈가림 봉사를”이라는 뜻입니다.
⚫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ἀνθρωπάρεσκοι, 안드로파레스코이)는 ἀνθρωπάρεσκος(안드로파레스코스: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자,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의 형용사 주격 복수입니다.
⚫ 마음(ψυχῆς, 프쉬케스)은 ψυχή(프쉬케: 영혼, 목숨, 생명)의 명사 속격 단수입니다.
눈앞에서만 일하므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하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영혼까지 다할 정도로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주인의 눈을 속이려고 눈가림만 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몸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까지 다해 전심으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언행심사(言行心事)를 바라보시고 아시므로 그러하신 하나님 앞에서 주인의 눈앞에서만 일하지 말고 주인이 없어도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일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 6: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5-9절은 사회의 확장에 관한 것인데 종과 상전의 역할에 대한 것으로 종들은 순종하고 상전들은 위협을 그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7절은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님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기쁜 마음(εὐνοίας, 유노이아스)은 εὖ(유: 잘, 좋게)와 νοῦς(누스: 마음, 이해력, 이성, 사고)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속격 단수이므로 “호의의”라는 뜻입니다. “좋은 마음의”라는 의미입니다.
⚫ 섬기기를(δουλεύοντες, 둘류온테스)은 δουλεύω(둘류오: 종이 되다, 예속되다, 섬기다, 종노릇하다, 종의 의무를 수행하다, 복종하다)의 동분사(명령적) 현재 능동태 2인칭 복수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종노릇하기를 주님께 하듯이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과 상전을 원어로 보면 κύριος(퀴리오스: 주님, 주인)로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5절에서 육체의 상전이라고 구분해주고 있습니다.
이중적인 의미로 보면 주님도 잘 섬기고 상전도 잘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주님인 상전을 섬김에 있어 그리스도이신 주님을 섬기듯이 잘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 6: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5-9절은 사회의 확장에 관한 것인데 종과 상전의 역할에 대한 것으로 종들은 순종하고 상전들은 위협을 그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8절은 상전을 주님을 섬기듯이 잘 섬기게 되면 받게 되는 결과에 대한 것입니다.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님께로부터 그대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 그대로(τοῦτο, 투토)는 대격 단수로 “이것을”이라는 뜻입니다.
⚫ 받을(κομίσεται, 코미세타이)은 κομίζω(코미조: 가지고 오다, 받다, 도로 받다, 가져오다)의 동사 직설법 미래 중간태 3인칭 단수입니다.
선을 행한 것이 있다면 이것을 도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라도 선을 행한다면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각자가 주님께로부터 행한 것을 도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한 것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선을 행한 사람에게 되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하듯이 상전을 섬긴 것이 사라지지 않고 마치 주님께서 섬김을 받으신 것처럼 주님께로부터 되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주님께 하듯이 상전에게 한 것은 주님께 한 것과도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주님께 하듯이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성도를 박해하는 것이 예수님을 박해하는 것이 되고(행 26:9-15) 예수님의 제자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되는 것과(마 10:40)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안에서(1) 순종한다는 것은 종이 상전을 주님께 하듯이(5, 6, 7) 그렇게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녀가 부모에게 선을 행하든 종이 상전에게 선을 행하든 행한 그대로 주님께로부터(8) 도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 6: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5-9절은 사회의 확장에 관한 것인데 종과 상전의 역할에 대한 것으로 종들은 순종하고 상전들은 위협을 그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9절은 상전들의 역할에 대한 것인데 종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는 것입니다.
종들과 상전들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분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 그치라(ἀνιέντες, 아니엔테스)는 ἀνίημι(아니에미: 놓아주다, 풀어주다, 늦추다, 단념하다)의 동분사(명령적) 현재 능동태 2인칭 복수입니다.
⚫ 하늘(οὐρανοῖς, 우라노이스)은 οὐρανός(우라노스: 하늘, 창공)의 여격 복수입니다.
⚫ 계시고(ἐστιν, 에스틴)는 εἰμί(에이미: 내가 있다, 나는 -이다)의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인칭 단수입니다.
⚫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προσωπολημψία, 프로소폴렘프시아)는 προσωπολημψία(프로소폴렘프시아: 차별대우, 편파심, 편견)의 주격 단수입니다.
종들이 상전들에게 그리스도께 하듯이 하는 것들을 종들에게도 그리스도께 하듯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위협하는 것을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들과 상전들의 주인이 하늘들에 계시고 차별대우를 하지 아니하시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들이라는 것은 하늘의 모든 영역에 계신다는 것이므로 하늘의 어느 곳에서라도 계신다는 것입니다(3장 10절 주해 참고).
그러한 하늘들에 계신다는 것은 모든 것을 훤하게 바라보시고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하신 하나님은 사람의 겉모습을 보시고 불공평하게 대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종과 상전을 차별대우하지 아니하시고 똑같이 대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늘들에 계신 하나님께서 상전과 종으로 구분해서 보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전들은 이것을 잘 알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종들은 상전들에게 주님께 하듯이 순종하여야 하고 상전들도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하시듯이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든 것을 아시므로 그러하신 하나님 앞에서 종들에게 겁을 주는 등으로 위협하는 것을 그만 두고 주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시고 따뜻하게 보살펴주신 것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종과 상전의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녀와 부모처럼 순종과 양육의 관계로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종과 상전의 관계는 어디를 가도 있게 마련입니다. 학교나 직장에 가면 선배와 후배, 스승과 제자, 상사와 부하, 고용주와 고용인 등의 관계를 피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종의 위치에 놓이기도 하고 때로는 상전의 위치에 놓이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종의 위치가 되면 종의 역할을 다하고 상전의 위치가 되면 상전의 역할을 다하면 됩니다.
이러한 사회생활은 생업과 삶의 활동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사회생활의 성공 여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교차됩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장이나 학교에서 서로 다투고 불행하게 되면 사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면 직장이나 학교에 다닐 때 행복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는 것이 즐겁습니다.
이러한 사랑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시므로 순종하여 풍성하게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단락인 1-9절에 대한 언급을 추가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십계명의 이웃 사랑의 첫 계명은 부모 공경입니다. 그러므로 아내와 남편은 가정생활의 기초이고 자녀와 부모는 가정생활의 연장이자 사회생활의 기초를 이루게 됩니다.
이러하므로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관계의 원리를 확장하면 종이 상전에게 순종하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와 종과 상전과의 관계를 보면 순종(6:1)과 노여움 금지(6:4), 순종(6:5)과 위협 금지(6:9)의 관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랫사람은 순종하고 윗사람은 보살펴주라는 것입니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그리스도께 하듯이(6:1, 5, 6, 7) 순종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하시듯이(5:25, 29) 노여워하거나 위협하거나 미워하지 말고 양육하고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임하게 되면 순종하고 공경하게 되어 있습니다. 노여움을 금지하고 주님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게 되고 위협을 그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녀와 부모 그리고 종과 상전에게 어떤 결과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선을 행한 것이 사라지지 않고 돌아오게 되어 있는데 모두가 잘되고 장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6:10-17 사회의 대적: 하나님의 전신갑주
10-17절은 사회의 대적에 관한 것인데 마귀를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사회생활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도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진리와 의와 평안의 복음과 믿음과 구원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6:14-17).
전쟁터에서 전신갑주가 필수적이듯이 영적전쟁에서도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요소라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치명상을 입게 되고 패배하고 죽음에 이르게 될 수 있으므로 온전히 잘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씨름은 영적인 씨름이므로 혈과 육의 씨름이 아니라 오히려 통치자들과 권력자들과 이 어둠의 세상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의 씨름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씨름은 단순히 육체적인 씨름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들과의 씨름은 영적인 것으로 씨름해야 하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제대로 된 씨름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은혜를 풍성하게 부어주시는데 이에 바르게 응답해서 순종하면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 6: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0-17절은 사회의 대적에 관한 것인데 마귀를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10-13절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것입니다.
이러한 10절은 주님 안에서와 주님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는 것입니다.
이후를 보면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힘의(ἰσχύος, 이스퀴오스)는 ἰσχύς(이스퀴스: 힘)의 속격단수입니다.
ἰσχύς(이스퀴스)는 ἴσχω(이스코: 저지하다)에서 유래하였습니다.
1장 19절의 힘의(ἰσχύος, 이스퀴오스)와 동일합니다.
⚫ 능력으로(κράτει, 크라테이)는 κράτος(크라토스: 세력)의 여격 단수입니다.
1장 19절의 위력으로(κράτους, 크라투스)의 원어원형도 κράτος(크라토스)입니다.
이처럼 6장 10절에 나오는 힘의 능력으로라는 뜻은 1장 19절에 나오는 힘의 위력으로라는 뜻과 동일합니다.
주님 안에서 그리고 주님의 힘의 세력으로 강해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힘의 세력으로 강해지라고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실제로 실현되어 실제적인 은혜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사도 바울이 기도해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힘의 위력으로 역사해주시고(1:15-19)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주시기를(3:14-19) 기도한 것입니다.
사람의 힘이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고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에 역부족입니다. 기도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하여 능력의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심으로 실제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10-17절 단락에서는 그러하신 힘의 역사로 강하여져서 마귀를 대적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그러한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서로 간절히 기도해주어서 강건해지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제대로 잘 입어서 영적으로 잘 무장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0-17절은 사회의 대적에 관한 것인데 마귀를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11절은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 간계를(μεθοδείας, 메도데이아스)은 μεθοδεία(메도데이아: 음모, 교활함, 궤계)의 대격 복수입니다.
4장 14절의 사한(μεθοδείαν, 메도데이안)도 동일한 어원입니다.
⚫ 대적(πρὸς, 프로스)은 대격으로 “-에서부터, -을 향하여, 쪽으로”라는 뜻입니다.
⚫ 하기(στῆναι, 스테나이)는 ἵστημι(히스테미: 서다, 세우다)의 동부정사 과거 능동태입니다.
마귀의 궤계를 향하여 설 수 있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궤계에 대하여 넉넉하게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완전무장한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보호하고 마귀는 대적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무장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라는 것입니다.
●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0-17절은 사회의 대적에 관한 것인데 마귀를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12절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한다는 것입니다.
⚫ 상대하는 하는 것이(πρὸς, 프로스)와 상대함(πρὸς, 프로스)은 대격으로 “-에서부터, -을 향하여, 쪽으로”라는 뜻입니다.
⚫ 권세들(ἐξουσίας, 엨수시아스)은 ἐξουσία(엨수시아: 선택의 자유, 권리, 통치력, 권력자)의 대격 복수입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 권세를 의미합니다.
3장 10절의 통치자들(ἀρχαῖς, 아르카이스)과 권세들에게(ἐξουσίαις, 엨수시아이스)와 동일한 어원입니다.
⚫ 세상 주관자들(κοσμοκράτορας, 코스모크라토라스)은 κοσμοκράτωρ(코스모크라토르: 세상의 통치자, 세상의 지배자, 주관자)의 대격 복수입니다.
⚫ 하늘(ἐπουρανίοις, 에푸라니오이스)은 ἐπουράνιος(에푸라니오스: 하늘의, 하늘에 있는, 하늘에 속한)의 여격 복수입니다.
3장 10절의 하늘(ἐπουρανίοις, 에푸라니오이스)과 동일합니다.
우리에게 씨름은 혈과 육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치자들과 권력자들과 이 어둠의 세상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향한 씨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씨름은 영적인 씨름이므로 혈과 육의 씨름이 아니라 오히려 통치자들과 권력자들과 이 어둠의 세상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의 씨름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씨름은 단순히 육체적인 씨름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들과의 씨름은 영적인 것으로 씨름해야 하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제대로 된 씨름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0-17절은 사회의 대적에 관한 것인데 마귀를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13절은 영적인 씨름을 해야 하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διὰ τοῦτο, 디아 투토)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통해, 이것 때문에”라는 뜻입니다. 1장 15절의 이로 말미암아(Διὰ τοῦτο, 디아 투토)와 5장 17절의 그러므로(διὰ τοῦτο, 디아 투토)와 동일합니다.
⚫ 대적하고(ἀντιστῆναι, 안티스테나이)는 ἀνθίστημι(안디스테미: 대적하다, 대항하다, 거역하다, 반대하다)의 동부정사 과거 능동태입니다.
⚫ 서기(στῆναι, 스테나이)는 ἵστημι(히스테미: 서다, 세우다)의 동부정사 과거 능동태입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악한 날에 대적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씨름 때문에 악한 날에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무장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적하기 위한(ἀντιστῆναι, 안티스테나이) 것과 서기 위한(στῆναι, 스테나이) 것을 살펴보면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귀와는 대적해서 맞서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하게 서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대적하면 피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똑바로 서서 대적해야 합니다(약 4:7, 벧전 5:8-9).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물리쳐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서야 합니다(약 4:6, 벧전 5:5).
이러한 것을 거꾸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마귀와 세속의 것에는 겸손해져서 약하여지고 하나님과 영적인 것에는 교만해져서 대적하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마귀와 세속적인 것은 대적하고 하나님과 영적인 것에는 많은 것을 순종하여 겸손하게 설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0-17절은 사회의 대적에 관한 것인데 마귀를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14-17절은 하나님의 전신갑주의 내용에 대한 것인데 모두 여섯 가지 장비입니다. 허리띠, 호심경, 신발, 방패, 투구, 검입니다.
이러한 것이 의미하는 것은 진리, 의, 평안의 복음, 믿음, 구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전쟁터에서 전신갑주가 필수적이듯이 영적전쟁에서도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요소라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치명상을 입게 되고 패배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고 패배할 수 있으므로 온전히 잘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14절은 서서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는 것입니다.
⚫ 띠고(περιζωσάμενοι, 페리조사메노이)는 περιζώννυμι(페리존뉘미: 둘러서 졸라매다, 띠를 띠다)의 동분사(명령적) 과거 중간태 2인칭 복수입니다.
⚫ 호심경을(θώρακα, 도라카)은 “흉갑을”이라는 뜻입니다.
⚫ 붙이고(ἐνδυσάμενοι, 엔뒤사메노이)는 ἐνδύω(엔뒤오: 옷을 입히다, 옷을 입다)의 동분사(명령적) 과거 중간태 2인칭 복수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인 진리로 허리를 둘러서 졸라매고 서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전신갑주인 의의 흉갑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진리와 의라는 것입니다. 진리를 행하고 의를 행할 때 마귀는 대적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하게 바르게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허리를 둘러 졸라매라는 것은 허리띠가 풀리거나 내려오면 힘을 쓰지 못하므로 허리띠를 졸라매서 힘을 쓰라는 것입니다.
전쟁할 때 아무리 모든 장비와 무기를 막강하게 준비하더라도 사소하게 보이는 허리띠가 풀려 있으면 힘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처럼 진리로 철저하게 무장해서 진리로 힘을 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흉갑을 입으라는 것은 가슴을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가슴이 화살에 맞거나 칼에 찔리게 되면 죽게 되므로 심장이 있는 가슴을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심장을 비롯한 오장육부가 있는 몸통을 보호하기 위해 방탄조끼를 입고 전쟁하게 됩니다.
이처럼 의로움으로 철저하게 무장해서 굳건하게 지켜서 마귀는 대적하고 하나님 앞에서는 바르게 서라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진리와 의를 보다 철저하게 지키고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 6: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0-17절은 사회의 대적에 관한 것인데 마귀를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15절은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는 것입니다.
⚫ 평안의(εἰρήνης, 에이레네스)는 εἰρήνη(에이레네: 평화, 복지, 번영)의 속격 단수입니다.
⚫ 복음이(εὐαγγελίου, 유앙겔리우)는 εὐαγγέλιον(유앙겔리온: 기쁜 소식, 복음)의 속격 단수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준비한 평안의 복음의 신발을 신으라는 것입니다.
평안의 뜻은 신발을 벗고 다니면 발이 부딪치거나 찔리게 되는 등으로 평안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발을 신고 다녀야 발이 평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전쟁할 때에는 일반적인 신발이 아니라 발을 보호할 수 있도록 군화를 신습니다. 발이 아프거나 발을 다치면 걸을 수 없게 되고 전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평안하려면 복음이란 신발을 신어야 평안해집니다. 그러므로 평안의 복음이 전해지는 곳곳마다 평안하게 됩니다.
그런데 평안하지 않으면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아프고 병들고 쪼들리고 다투는 등으로 평안하지 못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해지면 평안하게 됩니다. 물적으로 평안해지고 심적으로도 평안해지고 영적으로도 평안해집니다. 심지어 환경적으로도 평안해집니다.
이러하므로 평안의 복음을 잘 준비해서 곳곳마다 잘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발을 신고 전할 때 곳곳마다 평안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안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아름답고 복된 것입니다.
이렇게 평안의 복음이란 신발을 신고 전하게 되면 마귀는 대적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는 바르게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평안의 복음을 풍성하게 누리고 그러한 복음을 널리 다니면서 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 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0-17절은 사회의 대적에 관한 것인데 마귀를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16절은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라는 것입니다.
⚫ 가지고(ἀναλαβόντες, 아날라본테스)는 ἀναλαμβάνω(아날람바노: 집어 올리다, 데리고 가다, 취하다)의 동사 명령법 과거 능동태 2인칭 복수입니다.
⚫ 소멸하고(σβέσαι, 스베사이)는 σβέννυμι(스벤뉘미: 끄다, 진화하다, 억누르다, 사라지다)의 동부정사 과거 능동태입니다.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들을 끌 수 있기 위하여 모든 것들 위에 하나님의 전신갑주인 믿음의 방패를 집어 올리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가 쏘아대는 불붙은 화살을 끄려면 믿음의 방패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쟁할 때 방패는 막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날아드는 화살을 막아내서 보호해줍니다.
이처럼 영적인 전쟁에서도 방패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방패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헛된 것에 속지 않게 되고 자신을 지키게 됩니다.
믿음으로 무장하여 악한 영과 악한 사람들이 유혹하는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믿음으로 구원의 삶을 누리게 되고 믿음으로 치유받게 됩니다.
무엇보다 믿음이 있어야 행할 수 있게 되므로 믿음이 중요하고 모든 것을 가리는 방패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허리띠를 매고 흉갑을 입고 신발을 신어도 불화살이 날아와서 맞으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이러하므로 그러한 모든 것을 가려주고 막아주는 방패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이란 방패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불화살은 믿음이 가져다주는 풍성한 축복과 은혜를 누리지 못하도록 믿음이 아니라 믿지 못하도록 불신의 불화살을 쏘아댑니다.
믿음은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얻게 해주는데 이렇게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생명을 비롯해서 모든 것과 모든 관계를 죽이고 빼앗고 태워버리려고 쏩니다.
이러하므로 방패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란 방패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치열한 영적 전쟁터에서 태워서 사라지게 하고 패배시키려고 날아오는 의심과 불신의 불화살을 막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0-17절은 사회의 대적에 관한 것인데 마귀를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17절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 가지라(δέξασθε, 뎈사스데)는 데코마이(δέχομαι: 받다, 받아들이다)의 동사 명령법 과거 중간태 디포넌트 2인칭 복수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인 구원의 투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전신갑주인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투구가 없으면 머리를 다치게 됩니다. 머리 없는 몸이 있을 수 없으므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투구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방어무기인 투구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머리를 지켜주듯이 구원이 그렇게 지켜준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지 못하면 부귀영화나 모든 지식과 아름다움 등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없이 몸을 치장하거나 아무리 많은 군사장비를 갖다주어도 무용지물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은 이처럼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구원을 얻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이란 투구를 우리가 가지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투구를 무기창고에서 가져와서 쓰듯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무기창고에서 투구를 가져와서 갖다줄 때 비로소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를 풍성하게 베풀어주시므로 구원이란 투구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구원의 투구를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구원이란 투구를 모두 다 받아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이미 받아들여서 쓰게 되었다면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므로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2:8).
그다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제까지는 하나님의 전신갑주 가운데 방어용에 대해서 언급하였으나 이제부터는 공격용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영이신(요 14:17) 성령의 검으로 공격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검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께서도(요 14:6)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셨습니다(마 4:1-11).
그 가운데 보면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음식을 먹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최신장비로 무장하여도 배고프고 굶주리면 전쟁할 수 없게 되고 패배하게 됩니다.
이처럼 영적전쟁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영적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적을 물리치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마귀든 이단이든 미혹하고 속이는 그 어떤 것이든 말씀으로 무장하고 있으면 물리칠 수 있고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적인 세계관을 확립하게 되면 그 어떤 곳에서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말씀에 비추어 살아가므로 말씀으로 승리하고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굳건하게 세울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이 든든하게 뿌리는 내리지 못하고 약하면 세상의 풍조를 쉽게 따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가정이든 나라든 교회든 직장이든 학교든 날이 갈수록 부패하게 되고 불의하게 되고 변질되고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이 사회생활이나 교회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해주고(6:10)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게 해주는(6:11) 것입니다.
그리하면 세상 풍조에 휩쓸려가거나 자신의 사상이나 견해나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게 되고 결국에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게(6:13) 되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하나님의 공격용 전신갑주인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말씀이므로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딤후 4:2).
에베소서에서 말씀에 대한 것을 살펴보면 진리의 말씀(1:13),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5:26), 하나님의 말씀(6:17), 내게 말씀을 주사(6:19)입니다.
사도들이 말씀을 사역에 있어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구제를 일삼는 것은 마땅하지 아니하므로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겠다고 한 것입니다(행 6:1-4).
이러하므로 6장 17절에서도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라고 하였고 이어서 6장 18-20절에서는 말씀 전파를 위하여 기도를 요청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하나님 없이 산다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도 기도해주고 있고(1:15-19, 3:14-19) 기도 요청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6:18-20).
이처럼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실제로 실현이 되므로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함으로써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말씀이 힘 있게 전파될 수 있고 은혜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무장하여서 강건하여지고 마귀를 대적하게 되고 바로 설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6:18-20 사회의 간구: 사도 바울의 기도 요청
18-20절은 사회의 간구에 관한 것인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사도 바울을 위하여서도 구하라는 것입니다.
기도 요청에 관한 것은 사회생활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도 모두 필수적인 것입니다.
본 단락은 앞 단락의 영적전쟁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격용 전신갑주인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에 이어서 감추어진 비밀무기인 기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영적전쟁에서 이기려면 반드시 기도가 필요하므로 기도를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기도해주고 있고(1:15-19, 3:14-19) 기도 요청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6:18-20).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하였고(6:18) 사도 바울이 말씀을 잘 전파할 수 있도록 구하라고 요청한 것입니다(19-20).
이처럼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실제로 실현이 되므로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은혜를 풍성하게 부어주시는데 이에 바르게 응답해서 순종하면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8-20절은 사회의 간구에 관한 것인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사도 바울을 위하여서도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18절은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는 요청입니다.
이러한 18절은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는 것입니다.
⚫ 항(παντὶ, 판티)은 πᾶς(파스: 모든, 온갖, 각각의 모든)의 여격 단수입니다.
⚫ 상(καιρῷ, 카이로)은 καιρός(카이로스: 시간, 시점, 순간)의 여격 단수입니다.
⚫ 기도하고(προσευχόμενοι, 프로슈코메노이)는 προσεύχομαι(프로슈코마이: 기도하다)의 동분사(명령적) 현재 2인칭 복수입니다.
⚫ 깨어 구하기를(ἀγρυπνοῦντες, 아그륖눈테스)은 ἀγρυπνέω(아그뤼프네오: 깨어 있다, 깨어 지키다)의 동분사(명령적) 현재 능동태 2인칭 복수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모든 시간에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모든 인내와 모든 성도들을 위한 간구에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여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모든 것을 인내하면서 모든 성도들을 위한 간구에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러한 기도법을 단순하게 열거하면 기도할 때 모든 시간에 기도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인내하면서 기도하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성령의 은사인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고 기도할 때 성령의 역사하심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기도하게 되면 정욕으로 구할 수도 있고 자신을 위하여 이기적인 기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하심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하게 되면 헛된 것을 구하지 않게 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아버지의 의를 구하게 되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대신하여 간구해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해주시는 것입니다(롬 8:26-27).
그리고 하나가 되게 해주시는 성령이시므로(4:3) 성령의 역사하심과 성령의 도우심을 받게 되면 서로 미워하고 다투는 상태에서 기도하도록 두지 아니하십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도와주셔서 서로 사랑하도록 하여 한마음이 되게 해주십니다.
그런 상태에서 합심하여 기도할 수 있도록 역사하시고 도와주시므로 응답을 훨씬 더 잘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역사하심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하게 되면 올바른 기도를 하게 되고 기도에 대한 응답도 더 잘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여야 하는가 하면 자신을 위해서도 당연히 기도하여야 하나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데 사용하여야 합니다.
기도 응답을 받아 자기 혼자만 잘 된다고 해서 평안하게 잘 지낼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사역할 수도 없습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기도 응답을 받아 함께 잘 되어야 함께 평안하게 지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사도 바울이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구하라고 하였는데 마땅히 그렇게 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 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18-20절은 사회의 간구에 관한 것인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사도 바울을 위하여서도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19-20절은 사도 바울을 위하여 구하라는 요청입니다.
이러한 19절은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해달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 위하여 구할 것은(ὑπὲρ, 휘페르)은 속격으로 “-을 위하여, 대신하여, 때문에, -에 대하여”라는 뜻입니다.
⚫ 주사(δοθῇ, 도데)는 δίδωμι(디도미: 주다, 하사하다)의 동사 가정법 과거 수동태 3인칭 단수입니다.
나를 위하여서도 기도해주라는 것입니다. 요청한 내용은 말씀이 주어지고 그리하여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알릴 수 있도록 기도해주라는 것입니다.
사사로운 정욕에 쓰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주셔서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더 잘 알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를 요청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4장 3-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전도할 문을 열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해주시기를 기도 요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말씀을 받게 되는 것도 말씀을 알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도 역시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게 되고 기도를 요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인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도 기도를 통해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가 있게 되므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알리는 것은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격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 되도록 서로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고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 말씀이 되도록(히 4:12) 기도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의 역사로 영혼이 소생하게 되고 힘을 얻게 되고 모든 것이 바로 세워지는 은혜의 역사가 풍성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씀의 역사가 크게 흥왕하여 담대하게 널리 알릴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 6: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18-20절은 사회의 간구에 관한 것인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사도 바울을 위하여서도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20절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 당연히(δεῖ, 데이)는 “반드시 -해야 한다”라는 뜻입니다.
⚫ 담대히 하게(παρρησιάσωμαι, 파르레시아소마이)는 παῤῥησιάζομαι(파르레시아조마이: 터놓고 말다, 공공연하게 말하다, 담대히 말하다)의 동사 가정법 과거 중간태 디포넌트 1인칭 단수입니다.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알리기 위하여 사슬에 매인 사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알리기 위한 사신으로 마땅히 담대하게 말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라는 것입니다.
비록 갇혀 있어도 얼마든지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알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가 응답이 되면 입이 열려서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잘 알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든지 복음의 비밀을 마땅히 담대하게 알릴 수 있도록 서로 기도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섭리로 여러모로 꼼짝도 못하는 갇혀 있는 상태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가 오히려 복음의 비밀을 보다 잘 전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무 낙심하지 말고 주어진 환경과 처지에서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복음의 비밀을 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6:21-24 사회의 안녕: 사도 바울의 인사
21-24절은 사회의 안녕에 관한 것인데 두기고를 통해 위로하고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과 은혜가 있기를 기원한 것입니다.
기원에 관한 것은 사회생활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도 필수적인 것입니다.
본 단락은 에베소서를 마치면서 사정을 알리고 위로하기 위해서 두고기를 보내었다는 것과 사랑과 은혜를 기원해주고 있습니다.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기를 기원해주고 은혜가 있기를 기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은혜를 풍성하게 부어주시는데 이러한 것을 실제로 받게 되면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 6: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21-24절은 사회의 안녕에 관한 것인데 두기고를 통해 위로하고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과 은혜가 있기를 기원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21절은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님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알리리라는 것입니다.
⚫ 나의(ἐμέ, 에메)는 “나, 나를”이라는 뜻입니다.
⚫ 사(κατ ̓, 캍)는 κατά(카타)의 대격이므로 “-을 따라, -으로, -을 향하여, -에 대하여, -때문에, -으로 인하여”의 뜻이 됩니다.
⚫ 정(τὰ, 타)은 ὁ(호: 이것, 저것, 이 사람, 저 사람)의 대격 중성 복수입니다.
이러한 것의 의미는 “나에 대한 것을”이라는 뜻입니다.
⚫ 내가…하는지(πράσσω, 프랏소)는 “성취하다, 행하다”라는 뜻인데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1인칭 단수입니다.
⚫ 알리(εἰδῆτε, 에이데테)는 εἴδω(에이도: 보다, 알다, 경험하다)의 동사 가정법 완료 능동태 2인칭 복수입니다.
⚫ 진실한(πιστὸς, 피스토스)은 “믿을만한, 신실한, 신뢰하는, 신임하는, 믿는”이라는 뜻입니다.
⚫ 알리리라(γνωρίσει, 그노리세이)는 γνωρίζω(그노리조: 알리다, 알게 하다)의 동사 직설법 미래 능동태 3인칭 단수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나에 대한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형제요 주님 안에서 신뢰하는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것들을 너희들에게 알려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두기고는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형제이고 신뢰하는 일꾼이라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 4장 7절에서도 두기고와 관련하여 비슷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받고 인정받는 일꾼이 된다는 것은 귀한 일이고 또한 그렇게 사랑해주고 인정해준다는 것도 역시 귀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한 귀한 일꾼들을 통해 사역들이 신실하게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정이 부끄럽다면 숨길 것이나 떳떳하게 밝히고 알려준다는 것은 갇힌 상태이지만 그만큼 신실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렇게 사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숨길 것이 많은 사역자나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있게 알려줄 수 있을 정도로 신실하게 사역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 6:22 우리 사정을 알리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21-24절은 사회의 안녕에 관한 것인데 두기고를 통해 위로하고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과 은혜가 있기를 기원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22절은 우리 사정을 알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특별히 그를 보내었다는 것입니다.
⚫ 우리(ἡμῶν, 헤몬)는 속격으로 “우리의”라는 뜻입니다.
⚫ 사(περὶ, 페리)는 속격으로 “-에 관하여, -에 대하여, -때문에, -위하여”라는 뜻입니다.
⚫ 정을(τὰ, 타)은 ὁ(호: 이것, 저것, 이 사람, 저 사람)의 대격 중성 복수입니다.
이러한 것의 의미는 “우리에 관한 것을”이라는 뜻입니다.
⚫ 알리고(γνῶτε, 그노테)는 γινώσκω(기노스코: 알다, 이해하다)의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2인칭 복수입니다.
⚫ 위로하기(παρακαλέσῃ, 파라칼레세)는 παρακαλέω(파라칼레오: 소환하다, 초청하다, 권하다, 훈계하다, 격려하다, 애원하다, 간구하다, 위로하다)의 동사 가정법 현재 능동태 3인칭 단수입니다.
⚫ 특(αὐτὸ, 아우토)은 αὐτός(아우토스: 그는, 그녀는, 그것, 자신, 바로 그)의 대격 중성 복수입니다.
⚫ 별(τοῦτο, 투토)은 대격 단수로 “이것을”이라는 뜻입니다.
⚫ 히(εἰς, 에이스)는 대격으로 “-안으로, -로 향하여, -을 위하여, -으로, -까지, -에 대하여”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특별히의 의미는 “바로 이것을 위하여”라는 뜻입니다.
우리에 관한 것을 알게 하고 너희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바로 이러한 것을 위하여 그를 너희들에게 보내었다는 것입니다.
22절은 나에 대한 사정을 알리고 23절은 우리에 대한 사정을 알린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23절은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두기고를 특별히 보냈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4장 8절에서도 두기고와 관련하여 비슷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로는 교회생활에서나 가정생활에서나 사회생활에서나 정말 중요한 덕목입니다.
기도와 말씀과 몸에 쓸 것을 주고 다정한 말과 같은 것으로 따뜻하게 위로해주면 낙심하였다가도 힘이 솟아나게 됩니다.
이렇게 서로가 위로하고 위로받게 되면 살 맛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위로가 필요한 것입니다.
지치고 피곤하고 속이 상하고 돈에 쪼들리고 사람에게 시달리고 아파서 힘든 사람에게 위로는 천군만마를 얻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40장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로가 풍성할 때 사회생활의 안녕을 가져오고 교회생활과 가정생활에도 안녕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위로가 필요하고 위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므로 서로 위로하고 서로 위로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 6:23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21-24절은 사회의 안녕에 관한 것인데 두기고를 통해 위로하고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과 은혜가 있기를 기원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23절은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있으라는 것입니다.
⚫ 평안…있을지어다(Εἰρήνη, 에이레네)는 명사 주격 단수인데 “평화, 복지, 번영”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שָׁלוֹם(샬롬: 평화, 복지, 번영)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평강(1:2), 평안(2:17, 4:3, 6:15, 6:23), 화평(2:14, 15)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기를 기원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평안과 믿음과 사랑은 사회생활에서뿐만 아니라 교회생활과 가정생활에도 모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평안이 있어야 평안하게 지낼 수 있고, 믿음이 있어야 구원을 얻게 되며 행함으로 구원의 삶을 누리게 되고, 최고의 법인 사랑이 있어야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그러한 것이 모든 생활 가운데 풍성하게 실제로 실현될 수 있도록 기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를 마치면서 특별히 형제로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1절에서는 두기고를 향해 사랑을 받은 형제라고 하였고 23절에서는 기원하면서 형제들에게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형제라는 호칭을 보면 사도 바울이 수신자들을 형제로서 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한 수신자들도 형제간이므로 서로 형제로서 대하여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인사 가운데 나오는 6장 23절의 평안이라는 용어를 보면 에베소서를 시작하면서 1장 2절에서는 평강이라고 하였습니다.
시작도 평안이고 마지막도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평안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평안이 있어야 사회생활을 평안하게 할 수 있고 아울러 교회생활과 가정생활도 평안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마치 하늘에서 비가 내려와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천수답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평안이므로 모든 성도들에게 위로부터 내려오는 이러한 평안이 필수적으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한 평안을 마지막 인사말을 통해 기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서로 평안을 기원해주어야 하고 그리하여 모두가 평안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이 최고입니다(약 2:8). 이러하므로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한 것입니다(고전 16:14).
이렇게 중요한 사랑이므로 믿음과 함께 하는 사랑을 기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우리도 서로 사랑하면서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를 위하여 기원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 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21-24절은 사회의 안녕에 관한 것인데 두기고를 통해 위로하고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과 은혜가 있기를 기원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24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으라는 것입니다.
⚫ 은혜가 있을지어다(χάρις, 카리스)는 명사 주격 단수로 “은혜, 호의”라는 뜻입니다. 값없이 기쁘게 호의로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끝까지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은혜가 있기를 기원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마지막으로 인사하면서 23절에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있기를 기원하여 주었고 이어서 24절에 은혜가 있기를 기원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풍성한 은혜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하게 부어주셔서 모든 생활 속에서 풍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를 마치면서 은혜에 대한 것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여러 세대의 성도들에게 나타내신다는 것은 동서고금, 남녀노소, 빈부귀천, 유대인과 이방인 등에 관계가 없이 모든 성도들에게 은혜를 풍성하게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신다는 것인데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은 한 시대도 풍성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풍성한 은혜가 부어지면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은혜가 떨어지고 부어지지 않는 곳에는 다툼과 분열이 일어납니다.
천국은 온전한 풍성한 은혜가 부어지므로 다툼도 없고 분열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 됨만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 됨, 이웃과 하나 됨, 환경과도 하나 됨이 됩니다.
그런데 부조화는 고통을 당하게 되고 서로 해치게 되고 서로 피해를 입히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부어지면 그런 것이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중보기도를 드리셨습니다(요 17:11, 21, 22, 23).
에베소서에서도 둘이 하나가 되는 것과 성령께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엡 4:3).
천국은 하나가 되는 곳입니다. 화목제물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렇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풍성한 은혜가 임하므로 악한 영과 대적자들은 물리쳐 버려주십니다. 하나가 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을 제거해주십니다.
죄와 저주를 제거해주시고, 세상과 하나가 되는 것도 제거해주셔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니다.
이러한 풍성한 은혜가 교회와 가정과 사회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에베소서의 주제를 도출하면 성도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입니다.
이제까지 살펴보면서 알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 은혜를 풍성하게 나타내시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부어주셔서 교회생활과 가정생활과 사회생활 속에 나타내셔서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한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시작과 끝에서 기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우리도 그러한 은혜를 풍성하게 누릴 수 있도록 서로를 위하여 기원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이와 같은 은혜라는 용어를 신약성경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으므로 은혜는 에베소서의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가 20구절로 가장 많으나 16장 가운데, 고린도후서가 16구절로 13장 가운데, 그다음으로 에베소서가 12구절이나 6장 가운데 12구절이므로 가장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러한 놀라운 은혜를 풍성하게 부어주시는데 그러한 것을 실제로 받게 되면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교회생활과 가정생활에서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우리의 모든 생활에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그 놀라운 풍성한 은혜를 실제로 풍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눈에 보는 에베소서 (재개정판)
재개정일 2024년 1월 12일
개 정 일 2021년 11월 3일
발 행 일 2021년 9월 30일
지 은 이 이서영
출 판 사 퍼플
출판등록 제300-2012-167호 (2012년 9월 7일)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1번지
대표전화 1544-1900
홈페이지 www.kyobobook.co.kr.
ISBN 978-89-24-12226-8
ⓒ 이서영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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