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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자료/성경적교회교육

[성경적 교회교육] 제2부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적 교회교육의 내용

by 이서영 목사 2023. 12. 14.

[성경적 교회교육] 제2부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적 교회교육의 내용

 

(※ 논문 원본의 원어 폰트가 깨지고 각주도 올리지 못하게 된 것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성경 본문에 기초한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적 교회교육의 내용과 방법과 목표를 제시하기 위해 먼저 골로새 교회의 상황과 교회교육부터 탐구하고자 한다. 골로새 교회가 형성된 배경과 골로새 교회가 처해 있는 현황과 사도 바울이 이에 대처해나가는 활동에서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적 교회교육의 출처와 원리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1. 골로새 교회의 상황과 교회교육

 

골로새 교회는 사도 바울이 직접 설립한 교회가 아니라 에바브라가 설립한 교회이며(1:7) 구성원은 빌레몬 가족과 회심한 오네시모 등이었다. 골로새 지역에 이단들이 들어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미혹하고 혼란하게 만들었다. 이에 에바브라는 로마에 있는 사도 바울을 찾아가 골로새 교회의 형편을 전해주었다. 이러한 사정을 사도 바울이 듣고 편지를 써서 두기고 편에 보냈는데 이것이 골로새서이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들어온 이단들 때문에 골로새서를 쓰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주게 되었다. 골로새 교회는 교묘한 말”(2:4)철학과 헛된 속임수”(2:8)의 이단으로부터 대처해야 하고,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2:8)으로부터도 대비해야 하고, 왜곡된 신학사상인 율법주의(2:16, 17)와 천사숭배(2:18, 19)와 금욕주의(2:20-23) 등도 경계해야 하고, 신앙의 약화를 막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그리스도인(1:28)으로 성장해 나가야하는 과제가 있었다. 이러한 것을 대처하기 위한 방법은 성도들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풍성하신지를 알게 해주고(1:27)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해주고(2:2)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해주는 것이었다(1:28). 또한 이단에 속지 않게 하고(2:4)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믿음에 굳게 서도록 하는 것이었다(2:6, 7).

사도 바울은 이러한 골로새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힘을 다해 수고하였다(1:24, 29, 2:1). 사도 바울은 이를 위해 골로새서를 쓰면서 먼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인사한 다음에(1:1, 2) 성도들이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듣고 열매를 맺어 성장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리고(1:3-6) 성도들이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인 에바브라에게서 배운 것을 언급하고(1:7, 8) 그러면서 성령님에 대해 쓴 다음에(1:8) 성부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을 쓰고(1:9-12)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에 대해 썼다(13-22).

골로새서는 이처럼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언급된 다음에 전개되고 있다. 18절은 성령론, 13-14절은 성부론, 15-18절은 성자론, 19-22절은 성부론을 말해주고 있다. 18절은 성령 안에서사랑을 알려주었다는 것에서 성령님에 관해 언급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9-12절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리는 내용이고 곧바로 이어서 13-14절에서 하나님 아버지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그가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셨고, “그의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므로 그 아들 안에서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은 것에서 성부 하나님에 관해 언급한 것을 볼 수 있다. 15-18절에서는 성자 예수님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고, “그에게서창조되었으며, “그로말미암고 그를위해 창조되었고, “그가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함께 섰으며, “그는몸인 교회의 머리시며 그가근본이시라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9-22절에서는 성부 하나님에 관한 것인데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게 하시고, 예수님의 육체의 죽음으로 화목하게 해주셔서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예수님 앞에 세워주려고 하셨다는 것에서 성부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먼저 언급한 다음에 골로새 교회를 위해 힘써 교회교육을 했다는 사실을 124-28절에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24절과 25절에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언급하면서 이를 위해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을 언급하였다. 교회의 일꾼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26절과 27절에 밝혔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비밀을 알게 하려는 구체적인 활동이 27절과 28절에 나타나 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활동을 통해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적 교회교육의 출처와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골로새서 118절을 보면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고 한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가장 근원적인 교회론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교회직분론도 찾아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주신 교회의 직분인 교회의 일꾼”(1:25)으로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1:24)고 하였다. 렌스키(R. C. H. Lenski)이 고난은 세상의 죄를 깨끗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대신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고난은 교회가 걸머질 짐으로서 남겨져 있는 짐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교회의 직분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직분을 수행하다가 겪는 고난인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것에 대해 박윤선은 교회의 수난은 교회가 그 목표를 향하여 완성되어 가는 도중에서 필연적으로 봉착하게 되는 것이고(1:9), 또 통과해야 할 것이다(14:22). 이는 곧, 교회의 성장, 완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하였다.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교회에 봉사하는 자는 교회 영역을 확장하고 신앙을 심고 교회를 과실에서 지키는 것으로써 그리스도의 일을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봉사가 고난과 고통과 희생을 동반한다면 이 고난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채우고 그것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봉사하여 받는 고난은 벌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권이요 명예다.

 

또한 골로새서 124-25절에서는 교회교육론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도 바울이 교회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울 정도로 힘쓴다고 하였다. 24절에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괴로움을 마다하고 수고하는 것을 밝혔으며, 25절에서는 내가 교회의 일꾼된 것은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내게 주신 직분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교회교육의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자신에게 주신 직분을 수행하였다고 했는데, 그것은 126-27절에 언급하고 있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활동이 27-28절에 나온다. 27절에서는 성도들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려 하였으며, 28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려 하였으며, 또한 28절에서 각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한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사도 바울이 교회를 위한 교회교육을 하였다는 것이다. 피터 오브라이언(Peter T. O’Brien)은 사도 바울의 활동을 다음과 같이 묘사해주고 있다.

 

자신이 복음의 일꾼이라는 바울의 진술(23)은 뒤따라오는 단락으로의 전환을 제공해 주는데, 여기서 그는 한 사람의 사도로서의 자신의 고난과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임무 사이의 관계를 기술하고 있다(24, 25). 그의 메시지는 이방인의 소망이신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지금 이미 드러나 있는 비밀의 공적 선포다(26, 27). 그러므로 사도로서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완전한 자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목표를 가지고 모든 사람을 조직적으로 가르치고 경고하면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2829). 우주적인 안목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 그의 활동은 특별히 골로새 회중에게 그리고 그를 알지 못한 리쿠스 계곡에 있는 다른 지역민들에게 적용된다. 자신의 사명으로 인하여 바울은 이 기독교인들을 교육하고 강화시켜 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교회교육을 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교회교육의 원리를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교회교육을 함에 있어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였는데 이 비밀”(1:26, 27)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1:27)시라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교육의 내용이 된다. “그를 전파하여”(1:28)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교회교육의 방법이 된다. 또한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1:28) 하였는데 이것은 교회교육의 목표가 된다. 이렇게 26-27절은 교회교육의 내용을, 28절은 교회교육의 방법과 목표를 각각 나타내고 있다.

 

2. 하나님의 비밀

 

골로새서 126-27절은 교회교육의 내용을 보여주는데 하나님의 비밀(musthvrion)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밝혀주고 있다. 비밀을 하나님의 구원 계획”(God’s plan of salvation)으로서의 비밀로 보는 관점도 있다. 이것은 성경 전체의 문맥에서 바라볼 때는 타당해보일 수도 있지만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Cristo;" ejn uJmi'n)시니라는 27절의 말씀대로 성도들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적인 교회교육을 하는 것은 이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1:27) 것이다.

골로새서 1장을 보면 9-12절까지 기도드린 다음에 13-14절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으며, 15-18절에서 그는이라고 시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해주고 있다. 그러면서 27절에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하였으며, 28절에 그를 전파하여라고 하였다. “그를(o}n: Him) 가리키는 것은 27절의 그리스도이시다. 교회교육의 내용은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여야 하는데 그 비밀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실(3:1) 뿐만 아니라 성도들 (ejn)에도 계신다는 것이다. 이처럼 교회교육의 내용은 127절에서 말한 것처럼 성도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적인 교회교육을 할 때 성도들에게 알게 해야 할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126절과 27절에서 이 비밀에 대해 언급한 이후에 21절에는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라고 하면서 그것이 무엇인가를 22절에 밝혔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고 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교회교육을 함에 있어 복음의 일꾼(1:23)과 교회의 일꾼(1:25)으로서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알게 하려고 힘써 수고하였다. 이처럼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적인 교회교육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도록 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적인 교회교육을 하려면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필수적으로 알게 해야 하는 것이다.

제자훈련에 대해 옥한흠은 제자훈련의 대헌장(1:28, 29)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제자훈련의 주제는 그리스도이신 것을 밝히고 그 외의 다른 것을 보태면 안 된다. 예수님만 보여야 한다. 목사의 제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만이 주제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하였다. 성경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예수님이시다(24:27, 44; 5:39, 46). 다시 말해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이 비밀은 감추어져 있기도 하지만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알려졌지만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는 비밀로 남아 있다.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는 비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혀주고 있다.

 

본래부터 인간의 이지로는 이해하기가 불가능함을 의미하기 보다는 자연인의 생각으로는 미칠 수 없는 비밀스런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비밀을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에게 계시하셨고 밝혀주셨습니다. 신약성경의 모든 가르침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비밀에 들어갔고 그들에게 비밀이 계시되었다는 것을 기반으로 합니다. 구원의 진리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비그리스도인에게만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와 자비하심 속에서 그리스도인에게 그 비밀을 밝히시고 계시하시기를 작정하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의 열려진 비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에게 모든 것이 알려진 것은 아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성부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으나(28:18) 재림의 시간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고유한 권한으로 남겨두셨다(24:36). 하나님 아버지의 본체 역시 여전히 비밀이며 영원한 비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다만 아들을 통해 그 형상을 볼 수 있을 뿐이다(고후 4:4; 1:15; 1:3; 1:18, 14:7-9).

할레스비(O. Hallesby)성경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3:4). 예수님의 이름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가장 큰 비밀입니다. 하늘에는 이 비밀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땅 위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모든 것을 알게 된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유일신이 되실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인간의 한계를 알게 되고 피조물인 것도 알게 되어 창조주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으셨을 수도 있다. 다만 구원의 역사에 필요한 것은 보여주셨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시는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고 세상 마지막 날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약속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다시 오셔서 완전한 천국에서 완전하게 된 그리스도인들이 완전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해주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그리스도인에게 알려지셨다. 그리고 더 풍성하게 알려지길 원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들로 하여금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다 깊이 알 수 있도록 교회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3. 그리스도

 

실제적인 예수 그리스도(!Ihsou'" Cristov")를 알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적인 교회교육이 된다. 이론적인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실제로 죽으시고 실제로 부활하시고 실제로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고 따르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머리로 아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도움을 받음으로 해결을 받아 성숙하게 살아가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골로새서 219절에 쉼비바조메논(sumbibazovmenon: 연합하여)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원형은 쉼비바조(sumbibavzw)인데, “(suvn: )비바조(bibavzw: 가게하다)로 되어 있다. 이처럼 연합한다는 것은 함께 가는 것을 의미한다. 접두어인 (suvn)함께를 뜻하는데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몸인 그리스도인들이 결합해 있고 공급받고 있는 것을 말해준다. 생명이신(14:6)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생명력이 생겨 자라나게 되고 열매 맺히게 된다(15:5). 연합하여 있을 때 풍성한 생명을 충만하게 공급받아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을 풍성하게 알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체험적이면서도 실천적인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적인 교회교육을 할 때 보다 온전한 성경적 교회교육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적인 동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나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어 은혜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지식(ejpivgnwsi")은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깨닫게 한다(2:2). 그리하면 이미 오신예수 그리스도와 다시 오실예수 그리스도와 지금 함께 하시는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지식은 하나님을 참되게 아는 지식인 신지식(神知識)이다. 이 신지식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1:9)에서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1:10) 앎과 삶이 연결되는 살아 있는 지식이 된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의 일치인 지신일치(知信一致)와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의 일치인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지식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살아 있는 신지식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것에 있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삶 가운데 믿고 행동하게 만드는 지식인 것이다.

 

(1) 그리스도의 의미

 

골로새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열거해보면,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1:15),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1:15),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됨(1:16),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해 창조됨(1:16), 만물보다 먼저 계심(1:17),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음(1:17), 교회의 머리(1:18), 근본이심(1:18),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신 이(1:18), 만물의 으뜸이심(1:18), 모든 충만이 거하심(1:19),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심(1:20), 육체의 죽음으로 화목하게 하심(1:22)이라고 하고 있다. 127절에서는 너희 안에 계신분이시라고 소개해주고 있으며 이후를 찾아보면 모든 풍성함(2:2), 하나님의 비밀(2:2),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음(2:2), 주가 되심(2:6),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심(2:9),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이심(2:10), 모든 죄를 사하심(2:13),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3:1), 생명이심(3:4),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심(3:11) 등으로 소개해주고 있다.

개역개정 성경기준으로 골로새서에서 예수님과 관련된 용어를 세어보면 66회 나온다. “예수” 1, “주 예수” 1, “” 11, “그리스도” 20, “그리스도 예수” 4, “주 그리스도” 1, “주 예수 그리스도” 1, “” 27회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탁월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 안에 계신다(1:27).

127절의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에서 시니에스틴(ejstin)에이미(eijmiv)의 현재 능동형이다. 현재형의 의미는 과거에 한번 오셨다가 지금은 떠나버리신 것을 말한다거나 미래에 오셔서 계시겠다는 의미가 아닌 것을 말해준다. 언제나 현재적으로 계신다는 의미이다. 지금 현재 그리스도인과 함께 계속 계신다는 것이다. 그것도 성도들 안에 계신다는 것이다. 또한 능동형이기도 하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마지못해 피동적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기쁘게 그리스도인 안에 찾아오신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찾아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그리스도인을 사랑하시고 찾아오신 것이다. 이러한 것이 비밀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비밀의 풍성을 누리고 있으며 점차 더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변종길은 이단들의 주장과 대비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단들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유치하다고 보고 자기들은 더 높고 더 깊은 것을 추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비밀과 지혜, 지식을 강조하고 충만을 자주 말하였다.사도 바울은 이들의 주장에 대해 그리스도의 위대함높으심’, ‘충만함완전성을 강조하고 있다.이런 맥락에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감사를 강조하고 있다(1:3, 12, 2:7, 3:15, 17, 4:2). 왜냐하면 그리스도 밖에 무슨 지혜나 지식이 있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보화나 충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가 우리의 충만이 되고 만족이 되고 모든 보화가 되시기 때문이다.

 

리로이 아임스(Leroy Eims)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객관적인 요소와 주관적인 요소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는 것은 객관적인 요소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님이시라는 것은 주관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재권에 관해 토의할 때는 항상 두 가지 요소가 고려되어야만 합니다. 첫째는 객관적인 요소인데,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있는 로마군의 백부장 고넬료에게 한 강력한 설교에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선포함으로써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만유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10:36)라고 그의 설교의 핵심을 분명히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도 역시 성경을 읽을 때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베드로와 동일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객관적인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주재권과 연관된 두 번째 요소를 밝혀야 할 차례인 바, 그것은 곧 주관적인 요소입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면,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신가? 나는 나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그리스도의 주재권에 굴복시켰는가? 나의 모든 것을 그분께 굴복시켰는가?

 

주와 그리스도의 의미에 대해 임영효는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일 때 예수님은 내 삶에 주인이 되어 주신다. 사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 되시기 위해 구세주가 되셨다는 것을 밝혀주면서 주일날과 신앙적인 일을 할 때만이 아니라 모든 활동과 영역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께서 구주가 되셔서 주장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밝혀주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지적으로도 잘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나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도록 교회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다.

 

(2)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나 동일하게 변함없으신 예수 그리스도(!Ihsou'" Cristov")께서 그리스도인과 함께 하시면서 그 은혜를 누리게 해주시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는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이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의 관념과 허공에 계시는 분이 아니시다. 매우 실제적인 구원을 주시는 주님이시다. 내주(內住)하시는 예수 그리스도(1:27)의 충만하심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게만 머문다면 그리스도인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실제적인 그리스도가 되실 수 없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구원의 은혜가 그리스도인에게도 베풀어주시고 그 충만하심 속으로 거하게 해주시므로 실제적인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이다.

골로새서에서 그리스도는 성도들과 밀접하게 관련된 그리스도이신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해주시고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 없는 자로 세워지게 됨(1:22), 비밀이 성도들에게 나타남(1:26), 성도들 안에 계심(1:27), 주로 받게 됨(2:6), 그 안에서 충만하여 짐(2:10),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음(2:12), 그와 함께 살려주시고 성도들의 모든 죄를 사해주심(2:13), 머리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공급함을 받고 연합함(2:19),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3:3), 그리스도인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성도들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게 됨(3:4) 등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 은혜를 함께 누리고 있으며 앞으로 누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은혜를 풍성하게 누릴 수 있으므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 있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교회교육의 성공 여부도 먼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확신하는데 있다. 닐 앤더슨(Neil T. Anderson)은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성공적인 삶을 경험하기 전에 우리의 신학(神學)을 확고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즉 하나님이 누구시며 또 그가 이루신 일의 결과로 우리가 어떤 신분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열매 맺는 행동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확고한 믿음의 결과이다 제자훈련의 첫 번째 목표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분을 확인하는 일이다.

 

골로새서 128장에서 말하는 완전한(tevleion) 사람은 에베소서 413절에도 나오는데 여기서 말하는 온전한(tevleion)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충만하게 이른 사람을 말한다. 안다는 것과 믿는 것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지적으로 안다는 것과 믿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다르다. 그러므로 관념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그리스도로 믿고 받아들이고 교제할 수 있어야 한다. 리로이 아임스(Leroy Eims)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친밀한 교제에 대해 옥한흠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과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다른 말이다라고 하였다. 관계와 교제에 대한 의미를 그가 한 다음의 말에서 알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하나님과 만나서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종종 보면 분명히 그 집안의 자식인데, 부모와 담을 쌓고 사는 아들이나 딸들이 있다. 이것은 자식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부모와 좋은 교제를 나누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잘못하면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사이가 그렇게 될 수 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건강하고 기쁘게 유지하려면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는 영적 교제를 잘해야 한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알고 있는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시험하는 것을 볼 수 있다(4:6). 마귀는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구원을 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믿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장면은 성경 여러 곳에 나온다. 누가복음 441절에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실제적인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권면한 후에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에 대해 그리스도 이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마음속에 들어오게 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함께 거하실 때 당신의 마음은 풍요로워지고 만족을 얻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찰스 스펄전(Charles H. Spurgeon)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가장 탁월한 학문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지혜이신 그분과 교제하면 지혜로워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친교를 나누면 능력을 못 받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실제적인 만남이 있는 살아 있는 신앙에 대해 프릿츠 리데나워(Fritz Ridenour)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기독교는 종교이상이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그 추종자들이 자신들의 노력으로 신에게 도달하고자, 신을 발견하고자, 또 신을 기쁘게 해드리고자 한다는 공통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모든 종교는 인간이 신에게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오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종교 이상이다.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찾으셨다고 선언한다.죽은 신앙은 삶과는 별로 관계도 없는 무미건조한 신조나 교리 등과 같은 지적 체계 위에 기초를 둔 신앙이다. 반대로 살아 있는 신앙은 신조나 교리 등에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 이상으로서 하나님과 살아 있는 만남을 가지는 것이다. 살아 있는 신앙은 힘이 있다.

 

찰스 스탠리(Charles Stanley)묵상이란 바로 우리들의 개인적인 주님이시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친밀하고 풍성한 교제 가운데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우리들을 예수와 함께 있던 자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임영효는 벤허(Ben-Hur)를 쓴 류 웰리스(Le Wallace)장군이 기독교에 대해 그것의 진정성이나 허위성에 관해 6년 간 편견 없이 연구한 후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의 메시아시며 세상의 구세주이시고 나의 개인적인 구세주이시라는 신중한 결론에 도달하였다라고 언급한 것을 소개해주었다. 포사이스(P. T. Forsyth)영혼의 기도(The Soul of Prayer)를 보면 김회권이 쓴 감수의 글에서 포사이스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세주로 영접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1848년에 스코틀랜드의 애버딘에서 태어난 포사이스는 한때 자유주의 신학 노선을 취하였으나, 1870년대 어느 시점에 복음주의적 회심을 경험한 후 그리스도의 대속사역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특히 1909년의 십자가의 중대성’(The Cruciality of the Christ), 1910년의 그리스도의 사역’(The Work of Christ)]. 애버딘 대학교에서 공부한 후 포사이스는 신칸트학파의 거두인 알버트 리츨과 헤겔이 가르치던 괴팅겐 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리츨로부터 자유주의 신학(윤리적 주의와 인간성에 대한 낙관론 강조)을 배웠으나 십자가의 대속적인 은혜에 대한 자각을 통해 복음으로 돌아왔다. 그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에서 믿는 자, “사랑을 사랑하는 자”(윤리적 단계에 머무는 기독교인)에서 십자가의 구속 은혜의 수혜자로 바뀌는 대전향을 경험하였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기독교적 의식과 교양을 가진 문화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임을 각성한 것이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지적으로 알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주로 믿게 되면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실제적인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되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실제적인 의미에서의 그리스도(Cristov")를 체험하게 되므로 보다 분명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실제적인 그리스도로 믿고 받아들이고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교회교육을 통해 이끌어주어야 할 것이다.

 

 

 

(3) 그리스도의 충만하심

 

골로새서는 이단에 대처하기 위한 목적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Ihsou'" Cristov")의 충만하심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모든 것에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이 그리스도인에게도 주어지므로 그 충만하심이 그야말로 충만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인의 주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실력과 생활과 사명 가운데서의 충만함으로 말미암아 충만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되고 영광 돌리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충만하심이 있으시다. 골로새서 119절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충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충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채워주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충만한 상태가 되도록 하신 것이다. 이 사실을 29절에 다시 반복하기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육체로 거하신다는 것이다. 모든 것에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이시다.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에 관해 다음과 같이 밝혀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전적 충족성과 우월성에 대해 공격한 것은 분명히 이단이다. 그러나 바울의 서한 중에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양한 견해를 서술하거나 그리스도의 완전함과 그리스도의 궁극성을 주장한 것은 다시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고 그 안에 모든 것이 충만하다(1:15, 19).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배가 감추어져 있다(2:2).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2:9). 그리스도에 대해 이 이상 훌륭한 증언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은 위대하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충만으로 끝이 나면 무의미해진다. 그리스도인도 충만해져야 한다. 워렌 위어스비(Warren W. Wiersbe)는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 127절에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요함에 관해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왕처럼 살아야 할 때 거지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반면에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갖지 못한 것들에 관해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갖고 있는 무진장의 자원을 활용한다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충만해지고 그리스도인에게는 텅텅 비어있다면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이 그리스도인에게도 채워질 때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한 후의 땅의 상태는 창세기 12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공허(WhBo, 보후)한 상태였다. 아직 천지만 창조하시고 채워놓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빈 상태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야 한다면 몹시 힘들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동식물과 심지어 사람까지 창조하셔서 땅에 가득 채워주셔서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daom], 메오드) 좋았더라(b/f, 토브)”(1:31)고 하셨다. 모든 것이 충만하게 아름답게 가득 채워진 것을 보시고 매우 좋아하신 것을 볼 수 있다.

골로새서 119절을 GNT 헬라어성경에서 보면 유도케센(eujdovkhsen)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뻐하셨다는 의미인데 NIV 영어성경은 “was pleased”로 번역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충만하게 되신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기뻐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다음에 우주만물과 모든 생물과 사람을 창조하셔서 가득 채우신 후에 심히 기뻐하신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충만하게 채워지게 된 것을 보시고 기뻐하신 것이다.

이러한 충만이 예수 그리스도께만 충만하고 끝이 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안에도 채워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에게도 충만해지는 것이다. 충만해진 그리스도인의 그런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기뻐하실 것이다. 성령님과 말씀이 충만해지고, 은혜와 평강, 믿음과 사랑, 지혜와 은사, 인격과 실력이 생활과 사명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에게 충만하게 가득 채워지면 그리스도인 자신 또한 기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에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이 그리스도인의 안에도 충만하게 가득 채워지기에 큰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다.

127절의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포함된(is contained) 모든 비밀과 하늘의 지혜(heavenly wisdom)의 모든 풍성함(riches)이 그들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가질 때 얻어진다(are obtained)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을 골로새서 29절에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충만하신 것을 언급한 다음에 곧 이어 그 충만이 그리스도인에게도 충만하여졌다고 210절에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라고 밝혀주고 있다.

이러한 충만으로 말미암아 풍성해지므로 골로새서 127절에서는 이러한 것이 얼마나 풍성한지를알게 하려고 한 것을 볼 수 있고, 22절에도 풍성함을 깨닫게 하려고 한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것에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충만하심이 있으시고 모든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naiv, 나이: 고후 1:20)만 있게 된 것이다. 그 충만이 가져다주는 모든 영역에서의 충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인에게도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에 대한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적인 교회교육은 윤리적이거나 종교적인 예수를 본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충만하게 역사해주시는 실제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주게 된다. 더 나아가 거룩한 충만과 세속적 충만을 분별하게 해준다. 자신을 위한 본능적이고 목적을 상실한 맹목적인 충만은 세속적 충만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목적이 뚜렷한 충만은 거룩한 충만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하고 함께 누리고 함께 섬기려는 목적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충만은 거룩한 충만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복 자체를 추구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세속적 충만은 기복적인 충만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의 거룩한 충만은 참된 충만이라는 것을 알고 거룩한 충만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충만으로 그치지 않고 이웃으로 확장되어간다. 강용원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영적 성숙이란 자신에게 얽매인 삶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에게로, 인류와 세계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살아가다보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이 볼 때는 마치 낯선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낯선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처럼 행동하기 때문이고 살아가는 목적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James Montgomery Boice)는 이러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려고 노력하면 세상은 우리를 낯선 이방인 취급을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본질이니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알고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이 집처럼 편안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런 기대를 갖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았거나 그분을 멀리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신분은 나그네이기도 하면서 타국인이기도 하다. 보기에 생소하게 여겨지는 생소인(生疎人, stranger)이기도 하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것을 잘 알고 모든 것에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숙한 제자로서의 삶과 사명을 잘 감당해나가야 한다. 그리하면 모든 것에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을 함께 누리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을 보다 강력하게 알도록 하지 아니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의 사역자들은 이러한 것을 알게 하는 교회교육을 함으로써 성도들이 실제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을 누리고 나눌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 2023 성경적 교회교육 신학석사학위논문 로고스성경연구소 소장 이서영 성경적 교회교육]

(논문명 "골로새서 1 24~28절에 나타난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적 교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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