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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자료/그리스도인의참자유

[그리스도인의 참 자유] 제5장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by 이서영 목사 2015. 5. 15.

[그리스도인의 참 자유] 제5장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제5장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5장 개요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호와는 어떤 분이십니까? 여호와는 만유의 주가 되십니다. 그러하신 하나님을 멸시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드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관심을 가지면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안식일을 잘 지키고 십일조를 잘 드리면 됩니다. 안식일과 십일조의 표징을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시간이든 물질이든 그 무엇이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둑질을 하지 말고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라는 것입니다( 20:19-20,  31:13,  3:8-12).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므로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요 하나님의 성령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몸입니다(고전 3:16). 그러므로 거룩하게 가꾸고 거룩한 곳에 사용해야 합니다(고전 3:17). 온갖 정욕대로 사용함으로써 강도의 소굴을 만들 것이( 21:13) 아니라 항상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는 성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6:18).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역사하신다는 이 간단한 사실을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알고 믿고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십니다( 11:6). 이러한 것을 믿을 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보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33:6).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 2:11)해야 합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있는 것입니다.

 

5장 내용

 

 

1. 힘써 여호와를 압시다!

 

 

부흥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회개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손상 받은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회복되어지고, 이웃을 사랑하여 열매를 맺음으로써 회복되어 지는 것이 부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6:9).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15:8).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게 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왕하 18:5-7).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그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더라”(대하 17:3-5).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고 살 때가 너무나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14:11).

나쁘게 이야기하면 멸시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이 곧아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고 멸시했습니다. 그래서 화를 불러들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14:22-23).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잠언 1:29-31).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생으로 하여금 모르도록 해서 경외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11:33).

전무후무한 세계 최고의 지혜자인 솔로몬왕도 이를 인정했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7:14).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8:17).

그런데도 마치 무엇을 잘 아는 척 한다면 실족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6:3).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두려워 떨다가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8:9).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55:8-9).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 4:6, 14)고 호세아는 탄식하였습니다. 알지 못하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서 결국 멸망의 길로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6:3, 6).

우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13:17).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해야 합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24).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주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시요(요일 4:8), 정의로우신( 30:18) 하나님이 빠진 세상은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백성 없는 왕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라에는 왕과 백성이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친히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21:3-4).

여기에서 중요한 성경의 단어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함께라는 단어입니다. 이 용어는 신구약 성경을 통해 무수히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십니다( 3:14). 그러나 세상을 창조하시고 궁극적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회복하시는 것은 우리와 함께 지내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셔서 함께 하늘에 앉혀주신 것입니다( 2:3-7).

하나님 자신도 우리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17:22)라고 예수님은 중보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도 함께 되어 하나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끼리도 함께 하나가 된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 함께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함께 했을 때는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의 생각대로 모두 잘 되는 것은 형통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형통인 것입니다( 8:28).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39:2).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삼하 5:10).

그러므로 함께 하셔서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41:10)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관계가 단절이 되면 고통을 느낍니다. 외로워서 못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관계가 없이 혼자 살 수가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이러한데 하나님과의 단절은 상상조차 하기 싫고 두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혼자 살 수가 없고 혼자 천국에 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셔서 우리로 하여금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살전 5:10).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딤후 2:11-12).

이것을 사탄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타락 직후부터 남의 탓을 하도록 부추겨서 이간을 시키려 했습니다. 함께 하면 큰 일이 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이간시키고 우리끼리도 이간을 시키는 것입니다.

아담 때만이 아니라 지금도 우는 사자처럼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벧전 5:8). 하나님은 이를 아시고 우리와 함께 하사( 28:20,  18:10) 대적하여 물리치도록( 4:7) 하셨고 이기게 하셨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 할 것이며”( 20:4).

그리고 우리는 이웃과 함께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웃을 용서하고 먼저 대접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내 몸과 마찬가지인 이웃을 내 몸으로 여기고 돌보고 가꾸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자 살려고 하면 함께 죽게 되고 서로 살려주면 함께 살게 되는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하나입니다. 함께 이 세상에서 살고, 함께 천국에서 사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귀하게 여겨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내 이웃은 주님께서 피로 값을 치른 내 형제자매로 함께 영생을 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 2절과 3절에 보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성경은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하고, 이웃과 함께 하고, 환경과도 함께 해야 되는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천 년 전에 계셨던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예수님만을 생각함으로써 공허한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주관적인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20).

 

 

2. 만물의 주 하나님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십니다( 10:10). 이제 천지의 주재가 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써( 17:24-28)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요 왕이시요 천지 모든 만물의 머리이시고 주권자이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1:1).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43:15).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대상 29:11).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64:8).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32:39).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인정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성경을 꺼내어 창세기 1장을 읽어 봅시다. 1절부터 31절까지 주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목적어입니다. 26절과 27절에 사람을” 28절에는 그들에게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어입니까? 목적어입니까? 우리가 창조주입니까? 피조물입니까? 주인행세를 그만둬야 할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첫 장부터 어기지 않아야 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15:16).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요약하면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것입니다( 16:16,  1:2-4,  2:36, 5:42, 17:3, 18:5, 18:28).

예수님은 나의 구주시요 주님이십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은 간단한데 실제적으로는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조차도 구주로는 믿고 영생의 구원을 얻었지만 주님으로 모시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는 것은 범사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모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하는 것은 복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우리 각 사람의 주님으로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주가 되셔서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교회의 현실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말로는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시라고 합니다( 1:22-23). 그러나 교회와 헌물을 개인의 소유물로 여겨서 기업주 행세를 하지는 않습니까? 드린 헌금은 하나님의 것임에도 그것으로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봉사하고 나서 그 대가를 교회나 사람들로부터 기대하다가 채워지지 않으면 실망하고 떠나는 경우는 없습니까? 섬기는 직분이 아니라 군림하는 계급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섬기는 리더십이 아쉽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겠다라고 말씀하셨고 내 양을 치고 먹이라”( 21:15-17)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6:18).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0:28).

우리들의 것이 아니라 교회도 양도 모두 우리 주 예수님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인행세를 계속하게 된다면 예수님께서 슬퍼하시다 못해 분노하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21:12-13).

우리의 모든 삶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은 주 예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막상 무엇을 하려고 하면 우리의 욕심이 앞서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말로만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지 실제로는 우리의 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급할 때 부르고 필요할 때 부르는 종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신당하고 무시당하고 거부당한 것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느끼고 있습니까? 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런 취급을 받았을 때를 지금 떠올려 봅시다. 우리의 기분이 어떠했습니까? 견딜만했습니까? 지금 주님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봅시다. 우리의 주님이 아직도 여전히 우리 자신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었습니까?

과연 우리가 얻고 가진 것은 누구의 것입니까? 누가 얻게 하고 누가 가지게 하였습니까? 이것이 분명해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십일조와 같은 헌금과 봉사와 섬김과 나눔의 사역을 자원하여 은혜로 기쁨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고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8). 모든 것이 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8:17-18).

우리의 능과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주인은 예수님이시고 나는 이요 청지기란 것을 확실하게 믿고 따라야 자유하게 되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쓰겠다”( 19:31)고 하시면 언제든지 내어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역대상 29:14)라고 고백하면서 드린 것처럼 기쁘게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에게는 잘 돌볼 책임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2:15).

돌보는 기준은 내 감정과 내 정욕과 체면이 아니라 성경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 교회의 덕이 되는가? 이웃의 유익이 되는가? 입니다.

또한 종은 많은 일들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주님의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17:10).

주님께서 감당하게 하셨으므로 하였을 뿐입니다. 모든 영광은 주님께 돌려져야 합니다.

증인이라고 할 때도 우리 자신의 증인인지 하나님의 증인인지 구분이 잘 안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업적과 체면을 나타내기에는 바쁘지만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는 소홀하지 않습니까? 우리 얼굴을 알리는 데에는 물불 안 가리고 다니지만 정작 예수님 이름을 알려야 할 때는 그만 쑥 들어가 버리지는 않습니까? 세례 요한처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3:30)는 고백을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종 된 것을 전파하여야 할 것입니다(고후 4:5).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 또한 어려운 과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주먹을 믿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의한다는 신앙은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운행도 하신다는 것을 믿고 의뢰하고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2).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11:36).

이 사실을 의심 없이 굳게 믿는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나 못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금융기관에 맡기고 부동산에 투자하라고 하면 잘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잘 관리하여 멋지게 잘 해주시는 하나님은 잘 안 믿습니다. 하늘에 쌓는 것을 주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서 모으려고 해도 하나님이 세워주시지 않으시면 헛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127:1-2).

모든 것은 주 하나님께서 일을 지으시고 행하시고 성취하십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33:2-3).

하나님은 못 하실 일이 없으시고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습니다( 42:2).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으신 것입니다( 10:27). 전지전능하신 주님께서 그의 신실하심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왕하 19:31,  37:32)으로 이를 반드시 이루시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은 이 땅을 두루 감찰하셔서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대하 16:9). 그 사람은 형통하고 강성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살피신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언행심사를 훤히 바라보시고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이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내 생각조차도 숨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고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아노니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알고 환난궁핍과 인내한 것과 어디에 사는 것과 행위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바라보시고 계시는데 득죄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편으론 모든 사정을 알아주시므로 너무나 기쁘고 큰 위로를 받게 됩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대상 28:9).

그렇지 않으면 억울한 일과 수고한 것을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그러므로 바울처럼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 2:4)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139:1-7).

그런데 이렇게 엄연하게 살아 계시고 살펴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고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10:4).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데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지 않습니다( 14:1).

이들은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셔서 즉각적으로 죄에 대한 벌을 내리지 아니하시므로 죄의 심각성을 잘 깨닫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네가 나를 경외치 아니함은 내가 오랫동안 잠잠했기 때문이 아니냐”( 57:11)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은 죄에 대해서 신속하게 그때마다 벌을 내린다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고통받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찬양은 못 드릴지언정 멸시해서야 되겠습니까?

계속해서 멸시하게 되면 파멸이 홀연히 오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이사야 47 10절과 11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원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알지 못할 것이니라.”

이와 달리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147:11).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37:4).

이런 사람의 기도는 들으시고 눈물도 바라보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38:5). 뿐만 아니라 구하는 것보다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주십니다( 3:20).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건져주시고 높여주시고 응답하여 주시고 영화롭게 해주시고 장수하게 함으로 만족하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91:14-16).

하나님을 앙망하면 구원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셔서 친히 아버지가 되어 주십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14:13).

   “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45:21-22).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8).

가장 원천적이고 귀한 구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6).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기적이요 놀라운 사랑과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찬양! 찬양! 찬양!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면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해 주십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제자 삼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만들자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26). 곧 하나님의 형상이란 것입니다.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미리 택함을 받은 사실을 믿고( 8:29)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위해서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사랑으로 섬기고 계십니다. 주님이 보내주신 성령님은 곁에서 돕는 자라는 말뜻과 같이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14:16-17) 주무시지도 쉬지도 않으시고 도와주고 계십니다.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2:27).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6:10).

우리를 섬기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수고를 생각하고 감사를 드려 보았습니까?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13:6). 진실로 감사드릴 뿐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8:3),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7)고 하시면서 친히 섬기셨습니다. 피곤할 때 한적한 곳에 가서 쉬게 하시고( 6:31), 배고픈 무리를 불쌍히 보시고 먹을 것을 주셔서 배부르게 하셨고( 6:34-44), 친히 숯불에 생선을 굽고 떡을 준비하여 제자들에게 아침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21:9-13).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0:45).

이 땅에서 무한히 섬기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시면서 섬기셨던 것입니다. 또한 부활 승천하셔서도 하나님 아버지 보좌 우편에서 끝없이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면서 섬기고 계시는 것입니다( 7:25,  8:34).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3:14)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우리를 섬기고 계신다면 우리는 이웃을 어떻게 섬겨야 하겠습니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5-8).

예수님처럼 이웃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처럼 헛된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 45:2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59:21).

그러나 우리는 약속을 어길 때가 많습니다. 또 해 줄 능력이 없어서 어길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지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55:11).

하나님은 철저히 약속에 의해 행하십니다.

우리는 무엇에 따라 행하고 있습니까? 우리 생각대로? 우리 자존심대로? 우리 혈기대로? 우리 행동의 판단근거가 성경이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의 내적인 증거를 통해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습니다( 9:23). 우리 하나님은 철저히 성경에 의하고 입에서 나간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23:19).

   그래서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40:8)고 하신 것입니다.

 

 

 

3. 멸시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멸시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관심을 가지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하고 대충대충 생각하는 대로 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서 자기 멋대로 지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봅시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므로 반드시 읽어야 되는 성경구절인 것입니다.

 

  23:16-24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 보라 여호와의 노여움이 일어나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여호와의 진노가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그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끝날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을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23:28-32, 3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사용함이니라 하고.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로 대한 것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십니다. 우리는 착각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내 멋대로 해석하고 살 때가 많은 것입니다. 성경조차도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보았고 일을 할 때도 주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실상은 내 이름으로 해 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를 위해 일했다고 말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될 줄을 아시고 미리 우리에게 경고해 주셨습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7:21-24).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멸시한 적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2:17).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6).

살아계셔서 우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훤히 바라보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돌이켜서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엎드려 경배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주님을 아는 마음을 주셔서 감당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24:7).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32:40).

전심으로 돌이키게 됨으로써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주님의 마음을 잘 헤아렸습니까? 바울은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6)고 말하면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살전 2:8)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또한 모세가 여호와께 백성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하면서 그렇지 아니하시면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자기 이름을 지워 버려달라고 한 것처럼( 32:32), 바울도 자신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9:3).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0:24).

이 사실은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가결한 내용에 의해 확인됩니다.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15:25-26).

그러기에 두 분 모두 신구약 주요 성경을 기록하게 되는 등의 큰일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 역시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벧전 5:2-4)고 했습니다.

목자장이신 예수님도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0:11-15)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목숨을 잃고자 하는 자가 오히려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8:35).

하나님을 멸시하지 않고 섬기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안식일과 십일조의 예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안식일과 십일조의 표징을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시간이든 물질이든 그 무엇이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둑질하지 말고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라는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나의 율례를 따르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고,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리라 하였노라”( 20:19-20, 참고.  31:13).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3:8).

주일은 주님의 날로써 내 날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가고 싶은 대로 가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날만큼이라도 도둑질하지 말고 구별하여 드리라는 것입니다. 몸만 드리고 마음은 쏙 빼놓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과 마음까지 드려야 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11:42, 참고.  23:23).

이렇게 십일조를 드리고 안식일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말씀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3:10).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하는 사람,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 56:2).

우리는 예배를 드리든지 사명을 감당하든지 그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을 알고 믿는데서 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인정하는 행위는 기도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도움을 받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 없이 산다는 것은 곧 하나님 없이 자기가 산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4:15).

죄를 짓지 않고 죄를 지었으면 곧바로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의무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멸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22:40)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첫째 계명이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22:37-40).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5).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19:18).

또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7:12). 하나님을 먼저 대접하고 이웃을 먼저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흔히 접대는 반사이익이 크므로 기를 쓰고 합니다. 그러나 대접은 회피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아시고 접대를 하지 말고 대접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대접해야 합니까? 최고의 대접은 사랑인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은 힘과 마음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면 됩니다. 그 다음에 이웃을 사랑하는 법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이 하면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되 우선순위가 있는 것을 놓치면 안 됩니다.

주기도문에도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다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그 다음에 우리들이 일용할 양식을 먹으면서 서로 용서하고, 시험에 들지 않으면서 악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을 통해서도 열매를 맺음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신경도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님을 믿는 것이 우선인 것입니다.

십계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믿고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20:1-3).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여 하나님을 먼저 인정하고 섬겨야 함을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살펴볼 때 오직 하나님이 주권자이시므로 그 무엇이든 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백한 말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3:7).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물음에 답하면 알 수가 있게 됩니다.

 

힘을 달라고 하십니다. - 그런데 무엇에 힘을 쏟고 있습니까?

마음을 달라고 하십니다. - 그런데 무엇에 마음을 뺏기고 있습니까?

목숨을 달라고 하십니다. - 그런데 무엇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까?

 

이 결과에 의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유형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힘과 마음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아예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 이외에는 하나님을 사랑은 하지만 여러 형태로 사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힘을 다하지만 마음이 없는 경우가 있고, 마음은 있으나 힘을 다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힘과 마음을 다하지만 목숨을 다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과 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 유형으로는, 힘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과 정신, 물질과 시간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빠졌기에 자칫하면 의무감에서 율법적으로 하게 됩니다. 드려야 한다고 하니까 드리고 남들이 하니까 체면상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둘째 유형으로는,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 중심을 하나님께 드려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여러 가지 여건이 좋지 않지만 힘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쯤이면 신실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셋째 유형으로는,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명까지 바친 순교자로서의 사랑을 하는 사람입니다. 힘과 마음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바쳐 최고의 사랑을 하는 사람입니다. 정말 보기 드문 귀한 그리스도인입니다.

 

 

4. 하나님의 소유인 백성

 

 

이제까지는 만유의 주가 되신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인 우리는 누구인지 하나님과 관계는 어떠한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거룩하게 구별하여 속량하시고 지명하여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타락하여 거룩하지 못한 사탄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천국은 거룩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20:26).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로 대신 죽으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지명하여 불러주시고 구하여 주신 것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43:1).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46:4).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 되었습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43:7).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43:21).

찬송을 부르며 선한 일을 하고,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려고 창조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2:10).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는 증인이기도 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43:10).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1:27).

얼마나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지 하나님 자기 자신을 가리켜 맹세를 하고 복을 주고 복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6:13-14). 받은 그 복으로 자기를 위해서만 사용하지 말고 주님을 위하고 주님의 교회와 이웃의 유익과 덕을 세우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이때 복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1:3)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대상 4:10).

우리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기쁘시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슬픔의 나라가 아니라 기쁨의 나라인 것입니다( 14:17-18).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별로 기쁘지 않다면 믿음이 충만한 상태가 아니란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기에( 14:6) 마음에 들어오시면 활기가 넘치고 살맛이 납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한 것입니다( 4:4).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살전 5:16-18). 이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3:17).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65:18).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성령님이 계시는 거룩한 몸입니다(고전 3:16). 우리는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신다는 것을 진실로 인정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몸이 성령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란 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믿는다면 함부로 악에게 더럽히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거룩하게 가꾸고 거룩한 곳에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고전 3:17).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온갖 정욕대로 사용함으로써 강도의 소굴을 만들 것( 21:13)이 아니라 항상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는 성전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6:18).

우리는 우리의 신분과 역할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존재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7:29, 3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또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0:21)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신분을 분명하게 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아시고 그것을 이루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17:4).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신 것이 아니라 보내어 주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6:38-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4:43, 참고.  1:38).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9:10, 참고.  10:10).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5:32).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계속 머무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야망과 꿈을 이루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게 주신 사명을 깨닫고 힘써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1 1절을 통해 고백한 것에 대해서 우리의 이름과 직업을 넣어서 읽어봅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각자 이름) (각자 직업)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나는 누구이며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잘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를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면 주님께 혼나게 됩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12:47).

   그러나 인내하면서 뒤로 물러가지 않고 믿고 순종하면 잠시 잠깐 후면 오시는 주님으로부터 큰 상을 받게 됩니다( 10:35-38). 주님은 지금 즉시 오실지 나중에 오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개인적으로도 언제 인생을 마감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서 주님의 뜻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같은 믿음의 사람은 자기가 믿는 자를 알고, 자기에게 의탁한 것을 알고, 그것을 또한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알고 확신하였습니다(딤후 1:12).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1:25).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5:16).

   즉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하나님의 일을 알고 행하였으며, 하나님의 때에 이 모든 것이 확실하게 능히 이루어질 줄로 믿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산을 기업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57:13).

 

 

5. 멸시와 경외

 

 

이제까지 하나님과 우리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신다는 이 간단한 사실을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알고 믿고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십니다( 11:6). 이것을 믿을 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1:21).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인 것입니다( 9:10).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야 됩니다( 3:5).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고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3: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0:12-13).

예레미야 17 5절로부터 9절에서 하나님을 멸시하고 떠난 사람과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면서 경외하는 사람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이사야 31 1절에서 2절과 40 31절에서도 세상에 도움을 구하러 갈지언정 하나님을 앙모하지 않고 구하지도 않는 사람과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을 역시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우리는 하나님을 멸시하고 의지하지도 의뢰하지도 않는 사람에 해당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보다 세상의 혈육이나 권력을 더 우선적으로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보배로 여기고 있습니까? 우리의 보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33:6).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 2:11)해야 됩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진노 아래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 바 된 자요 버림 받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 62:11-12).

구속받은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가 자기 아들과 자기 딸을 아낌같이 우리를 아끼시고 아끼십니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3:16-18).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의 주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시다. 이방나라의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6:26-27).

이방나라의 왕이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25:1).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7:12).

 

 

 

[ⓒ 2023 로고스성경연구소 https://logosbibleinstitute.tistory.com 소장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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