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이 서 있어야 할 곳
2013.11.07 15:34 입력
최근 고신의 귀한 리더들이 많이 선출되셨습니다. 선출되신 모든 분들께 축하를 드리면서 부탁의 말씀도 아울러 드립니다. 고신의 리더들께서 우리 고신총회와 산하기관과 교회를 고신의 정체성에 맞게 잘 이끌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성경대로 살아내야 하는 구체화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대에 고신이 서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고민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고신은 수치와 크기 면에서 우위에 서 있어야 하는 교단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부심과 신앙은 순교정신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과 자신이 가진 모든 조건과 환경을 초월하여 오직 주님을 위해 살고, 오직 주님께서 주신 변치 않는 말씀을 붙잡고 사는 정신입니다.
이 정신이 살아있을 때는 순교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외부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세속의 권력과 물질과 평판에 유혹받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고신교단은 수치적인 크기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저 올바른 순교정신을 따르는데 힘써 왔고 그 정신을 확산하기 위해 힘써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형편은 어떠한지요? 우리의 정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선조들의 신앙을 내세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관인 순교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정신은 지극히 성경적인 정신입니다. 이 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자기부인의 순교정신은 하나님 사랑으로 나타나고 이웃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하면 하나님과 이웃을 자연히 멀리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부인의 순교정신을 이 시대에 다시 되살려내야 합니다. 우리 고신이 다시 앞장서야 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가면 결국은 세속화되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집행하면 결국은 세속화된 정책을 내놓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과 계획이 아닐 수 있습니다. 고신의 총회장을 비롯하여 고신대학교 총장 등의 리더들께서 앞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시면서 무엇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계시는지요?
고신교회는 교회의 크기를 추구하면 안 됩니다. 크기를 추구하면 세속화의 덫에 걸립니다. 그러므로 교단의 크기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고신정신을 추구해야 합니다. 고신의 자기부인의 순교정신을 따르다보면 교회가 건강해지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꼭 숫자로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큰 교회와 많은 교인과 많은 재정을 남긴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경제적으로 부유했으며 인기가 많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가운데 그들은 무엇을 하였으며 무엇을 남겼는지요? 면면히 흘러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주고 있는지요?
그렇다면 고신대학이 내세울만한 것은 무엇이 되어야 하겠는지요? 고신대학교의 크기를 확장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신실한 ‘코람데오형 기독학생’을 배출해내야 합니다. 크기를 추구하다보면 일반대학과 경쟁에서 밀립니다. 또한 덩치를 유지하기에도 급급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부족한 재정을 국가나 교회 등으로부터 후원을 잘 받아오는 사람이 총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총장선출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기독교대학의 총장의 자격에 이런 기준이 있어야 한다면 고신대학의 경쟁력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요?
대학의 경영을 무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성경적인 경영을 하자는 것입니다. 적어도 고신대학교는 세상 앞에 가서 엎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엎드려 이름 그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고신’(高神)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후원을 많이 받기 위해 애쓰는 고신대학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많은 대학과 세계 속의 많은 대학을 후원하는 고신대학이 되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열심히 주려고 할 때 우리 고신대학은 가치 면에 있어서나 재정 면에 있어서 더 튼튼해질 것입니다. 이러한 일에 힘쓰는 고신대학교가 되었으면 합니다.
교단의 리더 선출이 끝난 지금 우리는 우리의 고신정신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위치를 어디에 초점을 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고신을 설립해주시고 이제까지 공급해주시고 사용해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앞으로도 미리 준비해놓으시고 우리를 그 곳으로 인도해주시고 그곳에서 그의 일을 행하시기를 원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고 따르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새삼스럽게 ‘기독’(基督)이란 말의 뜻을 알아봅니다. ‘기독’은 ‘예수’입니다. 그러기에 겉은 ‘기독(예수)’교라 하지만 알고 보면 무신론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기독(예수)교 장로회’, ‘기독(예수)교 대학’, ‘기독(예수)교인’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는지, 그러한 기관이 되어 버렸는지는 않았는지를 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문제는 ‘성경말씀 따로, 현실 따로’인 것 같습니다. ‘신앙 따로, 삶 따로’이므로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자기가 죽지 못하니 성경말씀이 적용될 여지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성경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성경과 삶의 분리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의 것과 자기의 방식을 포기하고 주님의 것과 주님의 방식을 고집스럽게 지키고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우리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무신론적인 삶을 청산하고, ‘자기 앞에서의 삶’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회복하고 유일하신 주 하나님의 말씀을 삶 가운데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을 높여(‘高神’)드려야 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단에 대처하고 우상숭배에 대처한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들 안에 있는 우상과 이단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 아닌지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포기해야 할 것이 많고 희생해야 할 것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한국 교회의 영적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것을 기꺼이 잘 감수해야 합니다. 외형적인 크기와 평가 가운데서도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의 원리대로 꿋꿋이 나아가는 그것이야말로 세속의 가치를 따라가지 않는 고신의 자기부인의 순교정신일 것입니다. 이렇게 행하면서 가르칠 때 힘 있는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그러할 때 진정 힘 있는 교단이 될 것입니다.
고신이 서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지요? 교단과 대학과 교회의 리더들을 선출한 이 계절에 선출되신 모든 리더들께 축하드리면서 부탁드립니다. 세속화된 시스템으로 교단과 대학과 교회를 세속화시키지 않고 모든 영역에 있어 하나님의 시스템으로 진행시켜 주시고, 영적인 일에 먼저 가치를 두면서 지혜롭게 행하여 주시고, 나누고 베푸는데 힘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고신이 서 있어야 할 곳으로 잘 이끌어 주셔서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동행을 함께 해 나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 이서영 목사 / 참좋은제자들교회, 로고스성경교육원 원장
기독교보 ks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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