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불을 꺼야 한다?”
2012.09.26 16:47 입력
어느 시의 기독교연합회는 십자가의 불을 비추지 않고 십자가의 탑도 작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높은 십자가를 달지 않는 교회도 늘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꼭 맞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환호한다고 해서 다 맞는 것은 아닙니다. 빛이 공해라면 모든 간판의 불까지도 모두 꺼야합니다. 왜 유독 십자가의 불만 꺼야 속이 시원합니까?
새벽종소리가 시끄러워 소음이라고 끄라고 한 이후로 나라는 오히려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물질은 발달한 것 같은데 영혼이 파괴되어 이혼율, 자살율, 성폭력율 등의 온갖 사회적 병폐는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교회가 중대한 역할을 감당했을 때는 어려운 시대를 극복하고 영육 간에 큰 부흥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멀리하고 기독교를 철학화시켜 교회가 쇠태하자 경제든 심령이든 깊이 병들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을 멀리하고 교회를 멀리하면 사회 역시 쇠하고 덩달아 개인과 가정, 학교와 기업도 쇠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눈치를 보고 세상이 원하는 것을 하다보면 결국은 다 양보하게 됩니다. 사회를 위해 잘 봉사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사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됩니다. 교회가 든든히 서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든든히 서야 합니다. 다른 것으로 자꾸만 세상에 맞추어나가려고 하면 병이 듭니다. 오히려 신앙의 약화를 가져옵니다. 사회를 잘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비위를 맞출 것이 아니라 건강한 ‘기독교 세계관’(基督敎 世界觀)을 이 땅에 심어줘야 합니다.
단순히 십자가를 내리고 새벽종소리를 울리지 않는 것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복음의 본질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들이 신앙이 약화된 표징이라고 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를 약화시킨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십자가가 내려가듯이 신앙마저 내려가고 새벽종소리를 잘 들을 수 없듯이 하나님의 음성마저 잘 들을 수 없다면 기독교인이 많아도 기독교계 인사가 많아도 하나님 나라의 제자로서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미 그런 시대가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안으로 뜯어보면 도무지 기독교라 할 수 없는 교회와 교계 인사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성경과는 상관없이 인간중심의 사상이 앞서있는 하나의 종교를 신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비성경적이고 비기독교적인 견해를 내놓고 행동합니다. 오늘날 이들이 오히려 인기를 더 크게 끌고 여론의 주도적인 세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이단도 매우 주의해야 하지만 더 경계해야 할 대상은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인본주의적 신학과 신앙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요구에 맞추어주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오늘날 필요 중심의 신학(need centered theology)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필요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기준이 없이 그 장단에 춤추다보면 어디까지 들어줘야하겠습니까? 들어준다고 만족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함 있는 믿음의 삶과 우리 교회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니까 자꾸만 사회가 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사라지고 있으니까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생각이 앞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다시금 요청되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가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소극적으로 십자가의 불을 끌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마음속의 십자가의 불을 더 환하게 밝혀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속의 십자가의 불을 밝힐 때 교회 위의 십자가는 더 돋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참된 의미의 십자가를 마음에 품은 기독교계의 인사와 그런 그리스도인을 보게 된다면 누가 십자가를 탓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외적인 모습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보다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면 세상은 교회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존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닭 없이 예수님을 미워한 것처럼 우리도 역시 미움을 받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때론 외면당하고 인기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있어 좋은 평판을 듣지 못한다고 해서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왜곡된 세상에서는 잘해도 욕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비위를 무조건 맞추어서는 안 됩니다. 때론 진리 편에 서서 영적 싸움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가운데 성경과 개혁주의 전통의 틀 안에서 시대를 잘 분별하여 십자가의 능력과 사랑과 지혜로 잘 행해나가십시다.
그러면 십자가는 우리의 기쁨이요 자랑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이서영 목사 / 참좋은제자들교회
기독교보 kdkb@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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