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움을 밝혀주시는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인간적으로 잘 나가던 때의 바울은 성공한 인생, 대낮과 같은 인생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산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했고 성경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생활도 바르지 못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색출하는 일에 앞장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빛이 비추이자 영적인 어두움이 사라졌습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둠이 물러갈 수밖에 없듯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바울의 옛사람은 새로운 피조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하는 자에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전파하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전의 자신은 죄인 중의 괴수이었으며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인간적으로 보면 성공한 인생을 산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배설물에 해당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말년에 사도 바울이 갇혔던 지하 감옥의 환경은 몹시 컴컴하고 자유가 없고 어두운 것 같지만 빛이신 예수님께서 등불을 켜주심으로 대낮처럼 밝고 환하게 살았습니다.
이것을 볼 때 환경이 좋다고 밝은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환경이 어둡다고 어두운 것이 아닙니다. 밝고 어두운 차이는 무엇입니까? 기준은 무엇입니까? 어떤 조건과 환경이든 예수님 안에 있으면 어둡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면 아무리 잘 된 것처럼 보여도 어두운 것입니다.
영적인 대낮과 인간적인 대낮은 다릅니다. 영적으로 대낮에 해당하는 영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간적으로 보면 마치 실패한 사람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손해 볼 것도 많고 버려야 할 것도 있고 내려놓아야 할 것도 많기 때문입니다. 바보스럽게 살기도 해야 하고 가난과 비천함을 자천하기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영적인 성공은 자타가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본인 스스로 의기소침해 하거나 주눅이 듭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인간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으스댑니다. 자랑하고 업신여깁니다. 이렇게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영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오히려 대접 못 받고 사람 취급 못 받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인간적으로 보여줄 것이 없으면 무시당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잘 못 믿어서 그렇다. 제대로 못 믿고 제대로 순종하지 못해서 그렇다. 능력이 없다.”는 등의 별별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쟁에서 지지 않고 이기려고 합니다. 대접받으려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세속화 됩니다. 이러한 것이 싫어서 중심 없이 경쟁하다보면 세상 사람과 똑같아집니다. 세속화의 길을 걷게 됩니다.
영적인 성공은 인간적인 성공과 다른 점이 많습니다. 세상적인 방식으로 똑같이 경쟁하지 않다보니 때론 손해보고 희생할 일도 많이 생깁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생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그러다보면 인간적으로 보면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 않고 마치 복을 받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외적인 외형을 보고 쉽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과거에 비해 얼마나 잘 살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우고 있는지 모릅니다. 모든 외형적인 조건과 환경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릅니다. 가정적으로나 학교나 사회나 국가적으로 볼 때 세계인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이전보다 더 못살겠다고 아우성입니까? 상대적 빈곤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유지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적으로는 사랑이 식어가고 있고 정신적으로는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고 영적으로는 신앙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면 판단기준과 경쟁기준이 인간적인 것이 앞서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선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우선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우선이 아니라 사람이 말하는 것이 우선이 됩니다.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은 철저히 외면당하시고 인간이 그 자리에 앉아서 통치하게 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무신론적인 일에 앞장서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이 깨어난다면 교회가 바로 서고 가정이 바로 서고 학교가 바로 서고 사회와 나라와 민족까지 바로 서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이 이것입니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물질우선주의 정책이 더 기승을 부릴 수 있습니다. 내 코가 석자라고 하면서 개인주의로 치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공존번영하지 못하고 결국 공멸할 우려가 큽니다. 그러므로 외형적인 성장이나 외형적인 모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심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갱신하고 개혁해나가야 합니다.
무질서하고 난폭하고 음란하고 타락한 이 어두움을 누가 깨울 수 있습니까? 아무리 어둡고 침체되어도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깨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우리 교회와 우리 민족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이 일에 기독교인이 나서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의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와 자녀와 민족에 희망이 있습니다.
(이서영 참좋은제자들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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