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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주일설교

바람, 바람, 구원의 바람 (사 57:10-13)

by 이서영 목사 2015. 7. 17.

바람, 바람, 구원의 바람 (사 57:10-13)

 

  ‘봄’의 말뜻은 무엇일까요? ‘봄이니까 봄이지 별다른 뜻이 있겠어?’ 그렇게 생각해도 됩니다만 봄의 어원은 ‘본다’입니다. 겨울 내내 꽁꽁 얼어붙었던 땅이 녹으니까 볼 것이 참 많다는 것이겠지요? 추워서 움츠리고 있다가 활기차게 뛰노는 아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들에 가면 팔짝팔짝 뛰는 개구리나 파릇파릇한 새싹과 화사한 벚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도 봅니다.

 

  그런데 봄만 되면 유난히 바람이 자주 부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봄바람은 봄에 큰 역할을 맡습니다. 바람이 없으면 봄은 존재하지 못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 역할은 어떤 역할일까요? 바람이 불어야 땅이 더 잘 녹고 나뭇가지에 수액이 더 잘 공급됩니다. 찬바람은 나무도 움츠리게 하지만 봄바람은 나무를 비롯하여 만물을 기지개켜게 만듭니다. 봄바람이 불면 생기가 돕니다.

 

  우리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란 말을 많이 합니다. 이백의 시에서 유래한 말인데 ‘말의 귀에 동풍이 불어도 아랑곳하지 아니한다’라는 뜻입니다.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아니하고 지나쳐 흘려버리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말(馬)의 귀에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와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부드럽고 따뜻한 좋은 말(言)이라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귀는 어떤 귀인가요? 설마 마이동풍 귀는 아니겠지요? 우리 성도님의 귀는 말씀을 잘 귀담아 듣는 복된 귀인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에도 동풍과 서풍이 있습니다. 동풍은 북아프리카에 불어오는 바람인데 덥고 건조하고 세차게 부는 뜨거운 바람입니다. 서풍은 이와 반대로 이스라엘 서쪽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동풍과 서풍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풍으로 메뚜기떼를 불러 모으기도 하시고 서풍으로 사라지게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똑같은 상황에서 애굽은 심판을 받고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본문을 보면 이러한 출애굽 당시의 상황과 너무 일치되는 말씀인 같습니다. 그러므로 본문과 출애굽 사건을 연관시키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신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한쪽은 심판을 받고 다른 한쪽 편은 구원을 받습니다. 최후 심판 때도 똑같습니다. 사람은 죽고 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아니라 반드시 최후 심판을 받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심판을 받아 영원히 지옥에 들어가게 되고,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아 영원히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차이는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1박 2일을 보면 정말 재미있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이승기가 나 PD의 말을 기차게 흉내를 잘 냈습니다. 정말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나 PD도 스스로 냉정한 사람이니까 절대 웃지 않는다고 내기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이승기의 쏙 빼닮은 흉내에 여지없이 웃음보를 터뜨렸습니다. 그 흉내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말은 “땡”과 “안 됩니다”입니다. 특유한 “땡”과 “안 됩니다”의 소리는 아무도 흉내를 낼 수 없는 압권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그냥 웃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상상을 한 번 해봅시다. 예수님을 믿지 않은 상태에서 최후 심판대 앞에 서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심판자가 판결하실 것입니다. “땡, 탈락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어요? 마치 1박 2일 팀이 졸라대는 것처럼 지옥에 가지 않으려고 하소연하겠지요. “한번만 봐 주세요.” 그러면 심판자가 뭐라고 대답하실까요? 이승기가 흉내를 낸 나 PD의 말처럼 “안 됩니다”라고 하겠지요.  

 

  그러므로 우리 모두 “땡”이란 소리를 듣지 않게 되시길 바랍니다. 살아 있을 때 꼭 예수님을 믿어서 최후 심판대 앞에서 “안 됩니다”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딩동댕, 합격”이란 기분 좋고 기쁜 소리를 들으시길 바랍니다.           

 

  1박 2일의 특징 가운데 또 다른 한 가지는 야외취침과 실내취침입니다. 야외는 추운데 정말 고생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서로 야외취침을 안하려고 사투를 벌입니다. 그러나 결국 한쪽은 야외취침, 한쪽은 실내취침으로 결정됩니다. 한쪽은 따뜻하고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어서 크게 기뻐하고 환호합니다. 그러나 한쪽은 고생할 것을 생각이 들어서 한숨을 푹 쉽니다. 지옥과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는 지옥과 천국을 성 밖과 성 안이라는 비유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지옥과 천국을 1박 2일식으로 말하면 지옥은 야외취침, 천국은 실내취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기분 좋게 실내취침하시길 바랍니다.

 

  이처럼 심판과 구원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심판을 받거나 구원을 받습니다. 출애굽기 10장을 보면 메뚜기 재앙이 나오는데 심판이 되기도 하고 구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메뚜기 재앙을 당한 바로 왕은 고집이 대단했습니다. 무려 일곱 번까지 지독한 재앙을 당해도 계속 고집을 피우고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여덟 번째 재앙인 메뚜기 재앙을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동풍과 서풍을 사용하셔서 메뚜기를 불러오기도 하시고 사라지게도 하셨습니다. 10장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메뚜기를 불러들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이 되매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 들인지라.”

 

  메뚜기가 동풍을 타고 애굽의 온 땅에 도착해서 사방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러자 애굽에서 전무후무한 메뚜기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메뚜기가 얼마나 많았던지 온 땅을 뒤덮자 땅이 어두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메뚜기가 앞서 일어난 우박 재앙에 상하지 않고 남아있던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어치웠습니다. 그러자 애굽의 온 땅에 있는 나무나 밭에 있는 채소의 푸른 것은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바로 왕이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 말했습니다. “이번만 더 나의 죄를 용서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은 내게서 떠나게 하라.” 한 번만 봐 달라고 하자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강렬한 서풍을 불게 하셔서 메뚜기를 홍해에 몰아넣으시니 애굽의 온 땅에 그 많던 메뚜기가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출 10:14-19).   

  

  그런데 이 메뚜기 재앙은 바로 왕과 애굽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구원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여부, 하나님의 백성의 여부에 따라 메뚜기를 불러들인 똑같은 바람이지만 심판의 바람이 되기도 하고 구원의 바람이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바람을 타시길 원하십니까?      

 

  바로 왕은 온갖 재앙을 그렇게 당하고서도 또 고집을 피웠습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당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주었지만 다시 마음이 변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최후의 일격인 장자의 죽음 재앙으로 자기의 맏아들, 다시 말하면 왕위를 이을 세자가 죽임을 당했는데도 끝까지 고집을 피웠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최정예 군대를 동원해서 뒤따라갔습니다.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총동원하였습니다. 바로 왕은 자신의 말과 병거와 마병과 군대를 이끌고 홍해까지 뒤따라갔습니다.

 

  바로 왕은 자신의 수많은 병거와 마병과 군대가 곧 처참하게 수장당하는 줄도 모르고 기고만장했습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길이 멀어서 피곤할지라도 헛되다 말하지 아니함은 네 힘이 살아났으므로 쇠약하여지지 아니함이라.” 이 말씀과 같이 바로 왕은 자신의 권력을 믿고 힘이 있었으므로 약해지지 않았기에 재앙을 당해 피곤해도 헛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10절에 나오는 ‘헛되다(야아쉬)’는 단어는 ‘절망하다. 희망이 없다.’는 뜻입니다. 전도서 2장 20절을 보면 솔로몬 왕이 이 단어를 사용해서 자신의 모든 수고가 자신을 절망하게 만들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솔로몬 왕처럼 헛된 것을 빨리 깨달아야하는데 바로 왕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안타깝게도 세상 일이 헛되고 우상을 섬기는 일이 헛된 것을 알아야 하는데 세상의 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바로 왕은 자기 힘이 살아있으므로 쇠약해지지 않은 것 때문에 엄청난 심판을 불러들였습니다. 힘이 없으면 하나님을 찾겠지만 힘을 가졌으므로 하나님을 생각하지도 마음에 두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매튜 헨리는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죄를 범하고서 번영을 누리는 것은 죄에서 개심하려 할 경우 큰 장애가 된다. 그들은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대한다.” 적절한 지적입니다. 바로 왕도 힘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기에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힘이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잘 안 먹힙니다. 힘을 너무 가지면 아예 먹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힘을 가지셨습니까? 그 힘이 우리 자신을 지탱해주고 우리를 구원해줄까요?

 

  하나님께서 본문 12절에 말씀하십니다. “네 공의를 내가 보이리라 네가 행한 일이 네게 무익하니라.” 본문에 ‘보이다(나가드)’는 ‘눈에 띄다’인데, ‘말하다, 알게 하다, 선언하다’ 등을 의미합니다. 분명하게 생생하게 알도록 선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을요? 너희가 힘써 행한 일이 너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문 13절 상반절이 말해줍니다. “네가 부르짖을 때에 네가 모은 우상들에게 너를 구원하게 하라 그것들은 다 바람에 날려 가겠고 기운에 불려갈 것이로되.” 본문에 바람에 ‘날려 가다(나사)’는 ‘들어올리다, 나르다, 가지고 가다, 취하여 가다’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모으려고 해도 바람이 취하여 가지고 가버린다는 뜻입니다.  

 

  매튜 헨리는 이것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네가 동무로 삼은 너의 우상신과 네가 그토록 신뢰했던 동맹군으로 하여금 너를 구원하게 하라. 그것은 다 바람에 떠나간다.”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마치 이 말씀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네가 열심히 모으고 믿고 있는 우상과 힘이 너를 구원해주는가 봐라. 천국에 가게 해주는지, 천국 땅을 밝게 해주는지,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얻게 해주는지 봐라.”  이처럼 하나님 이외 다른 것을 의지하면 보장받지 못합니다. 언제 바람처럼 사라질지 모릅니다.

 

  과거에 인기가수였던 김범용이 불렀던 ‘바람 바람 바람’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 날 울려놓고 가는 바람” 이처럼 하나님 이외의 것은 쉽게 사라지는 바람입니다. 날 울려 놓고 사라지는 바람입니다. 원뜻과는 다르지만 가사 내용을 바꾸어 생각해보겠습니다. ‘바람, 바람, 바람’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무슨 바람을 말할까요? 선풍기에 있는 미풍, 약풍, 강풍을 말할까요? 아닙니다. 첫째 바람은 자연풍, 둘째 바람은 심판풍, 셋째 바람은 구원풍을 말합니다. 자연의 바람, 심판의 바람, 구원의 바람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 가지 바람 가운데 어떤 바람을 택하시겠습니까? 객관식으로 문제를 내겠습니다. 1번 자연풍, 2번 심판풍, 3번 구원풍입니다. 몇 번을 택하셨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1번 자연풍과 3번 구원풍을 타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 이외 다른 것을 의지하면 보장받지 못합니다. 2번 심판풍을 타게 됩니다. 그러면 언제 바람처럼 사라질지 모릅니다. 구원의 바람을 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바람은 누가 만들고 다스립니까? 아모스 4장 13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이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 시편 135편 7절에서도 말했습니다. “안개를 땅 끝에서 일으키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를 만드시며 바람을 그 곳간에서 내시는도다.”  그러므로 바람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으로 믿고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바람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어떤 결과가 올까요? 본문 13절 하반절에 말해줍니다. “나를 의뢰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겠고 나의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얻으리라.” 본문에 ‘나를 의뢰하는 자는’이라고 하였는데 이때 ‘의뢰하다(하사)’는 ‘도피하다, 피난하다, seek refuge’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분문에 약속하신 대로 땅을 차지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얻을 것입니다. 이때 ‘기업으로 얻다(야라쉬, 또는 야레쉬)’는 ‘상속하다’를 의미합니다. 상속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왕이 열 가지 재앙을 당한 후에도 고집스럽게 계속 뒤를 따라오자 이번에는 심판의 바람으로 홍해에 수장시켰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뚜기 재앙 때처럼 이번에도 구원의 바람을 탔습니다. 출애굽기 14장 21절입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 모세의 노래를 보면 그때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원수가 말하기를 내가 뒤쫓아 따라잡아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내 욕망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 하였으나, 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거센 물에 납 같이 잠겼나이다”(9, 10). 바로 왕과 애굽의 군대는 물에 푹 잠겨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땅도 그들을 삼켰습니다.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12).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바로 왕과 애굽의 군대는 물에 잠기고 땅에 묻혀 삼켜졌으나 하나님의 백성은 약속대로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마른 땅을 지나가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노래를 보면 약속대로 주의 거룩한 산에도 들어가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13, 17). 본문의 말씀처럼 땅을 차지하고 거룩한 산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장면을 매튜 헨리는 “나 만을 의뢰하는 자는 영육 간에 복을 누리며 이승과 저승에서 복을 누릴 것이다. 세상에서 교회의 특권을 누리며 결국에는 천국의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은 어떤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신 것을 아시고 하나님만을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약속의 땅을 차지하시고 거룩한 산을 상속받으시길 바랍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실제로 엄청난 구원의 바람을 탄 사람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2장 11절에 나옵니다.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엘리야는 회오리 바람을 타고 하늘에 올라갔습니다. 엘리야가 타고 올라간 바람은 구원의 바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도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께서 불어주시는 구원의 바람을 타시고 천국에 올라가 천국 땅을 영원히 밟게 되시길 바랍니다.

 

 

[2011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62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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