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라 (눅 11:1-13)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준 것과 같이 저희들에게도 가르쳐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떻게 기도하면 되는지 가르쳐주셨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본문 2-4절에 나오는 주기도문을 먼저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주기도문은 기도하는 내용과 기도하는 형식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이 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다음에 기도에 대해 더 가르쳐주셨습니다. 본문 5-8절에 나오는 친구 비유를 통해 가르쳐주셨습니다. 친구가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밤중에 여행 중에 찾아온 친구, 그 친구에게 먹을 것을 대접하려고 한 친구, 그 친구가 찾아왔을 때 먹을 떡을 준 친구입니다. 이 비유는 기도의 단계를 말해줍니다. 본문 9절과 10절에서 말하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세 단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본문 11-13절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의 비유를 통해 이 기도의 단계를 사용해서 무엇을 구해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할 때 생선 대신에 뱀을 주고 알을 달라고 할 때 알 대신에 전갈을 줄 아버지가 어디 있겠느냐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이 아버지와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성령을 구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처럼 친구 비유를 통해 기도의 단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 먼저 구하고, 구한 다음에 찾고, 찾은 다음에 문을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이 기도의 단계에 따라 구해야 할까요? 아버지와 아들의 비유를 통해 성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좀 더 살펴보기 위해 세 단계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성령을 구하는 단계입니다. 옆 사람과 서로 말씀해보세요. “성령을 구하십시다.” 5절을 보면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떡을 꾸어 달라고 했을까요? 그 해답은 6절에 나옵니다. “내 친구가 여행 중에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친구가 밤에 왔으나 친구에게 대접할 것이 없어서 떡을 빌려서라도 대접하려고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니라 친구를 위해서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단계는 이처럼 친구를 위해 밤중에라도 먹을 것을 대접하려고 구하는 단계입니다. 이렇게 구하러 다닌 친구의 마음이 어떤지를 살펴보면 간절한 마음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절에 ‘밤중에’라는 말은 밤의 한 가운데(mid-night, 메소스: 한 가운데-뉙스: 밤)를 말합니다. 밤이 가장 깊은 시간을 말합니다. 그런 시간대에 친구가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녔다는 것은 간절한 심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8절을 보면 ‘간청함을 인하여’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또한 간절히 구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친구인 이웃을 위해 간절히 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구하는 자가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9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10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구하는 자가 받게 됩니다. 비유대로 말씀드리면 떡을 구하는 자가 떡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이 떡은 무엇을 말할까요? 이 떡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떡은 성령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가르치신 다음에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13절에 나옵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주시는 자는 3인칭 단수로 되어 있고 받는 자는 남성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주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지만 받는 사람은 여러 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영혼을 위해서 성령을 갈망하고 성령을 간절히 구해서 성령을 함께 받으라는 것입니다.
부흥은 무엇입니까? 나 혼자 잘 되는 것을 말할까요? 아닙니다. 함께 잘 되는 것입니다. 부흥은 나 혼자 잘 되고, 나 혼자 회개하고, 나 혼자 변화 받고, 나 혼자 능력 받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도 함께 잘 되고, 함께 회개하고, 함께 변화 받고, 함께 능력 받는 것을 말합니다. 천국은 바로 그런 곳이 천국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에도, 우리 학교에도, 우리 직장에도 부흥을 체험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에도, 우리 교회에도 이러한 부흥을 체험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부흥은 개인의 지식이나 재능이나 다른 그 어떤 것으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가진 힘으로는 부흥이 오지 않습니다. 스가랴 4장 6절에 말합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이 말씀은 스룹바벨 총독이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려고 했을 때 받은 말씀입니다. 사람의 권세와 재능과 물질을 가지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건축되었습니다. 스룹바벨 총독이 재건하려고 할 때 주위의 반대가 무척 심했습니다. 그런데 에스라 3장 8절에서 6장 22절을 보면 성전 건축을 방해하던 여러 가지가 제거되고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특명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막지 말고 유다 총독과 장로들이 하나님의 이 성전을 제자리에 건축하게 하라”(6:7).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한 다음에 즐거움으로 이레 동안 무교절을 지킨 이유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즐겁게 하시고 또 앗수르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로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는 손을 힘 있게 하도록 하셨음이었더라”(6:22).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셔야 부흥이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도 성령이 임하셔서 크게 부흥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성령을 구하라고 할 때 어떤 성령을 구해야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받는 성령은 구하지 않아도 받습니다. 그때의 성령은 거듭나게 해주시는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그때 받은 성령은 바람처럼 언제 왔는지 모르는 성령입니다(요 3:8).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성령을 받고 다시 태어납니다. 이 성령에 대해서는 구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선물로 받듯이 선물로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성령으로 충만해지려면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친구의 영혼을 위해 한 밤중에라도 나가서 구하는 열정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친구인 이웃을 위해 한 밤중에라도 대접할 것을 구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친구인 이웃과 함께 큰 부흥을 체험하길 원한다면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는 비결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과 기도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을 충만하게 받습니다. 사도행전 4장을 보면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말씀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튿날 감옥에서 풀려나서 동료들에게 가서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드렸습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29,30절).
이렇게 기도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31절). 우리가 성령을 충만하게 받는 비결은 이렇게 간절하게 뜨겁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크고 놀라운 부흥이 옵니다. 그러므로 나도 내 친구인 이웃도 함께 잘 되고, 함께 회개하고, 함께 변화 받고, 함께 능력 받기 위해 성령으로 충만해지길 간절히 구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단계는 성령을 찾는 단계입니다. 옆 사람과 서로 말씀해보세요. “성령을 찾으십시다.” 구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으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본문에 나오는 친구는 집에 찾아온 친구를 위해 떡을 구해줘야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 떡이 어디에 있는지 찾았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찾아냈습니다. 본문 5절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라고 한 것을 보면 떡이 있는 곳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친구에게 떡이 있는지를 알고는 그 친구 집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찾다(제테오)’라는 동사의 원뜻은 지식을 탐구하거나 철학적인 탐구를 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세밀하게 깊이 생각하면서 찾는 것을 말합니다. 떡이 누구 집에 있는지 세밀하게 찾아보았다는 것입니다. “떡을 구하긴 꼭 구해야 하는데, 누구 집에 있지?” 그러다가 무릎을 “탁” 쳤습니다. “맞아, 그 친구 집에는 떡이 있을거야.” 탐구하듯이 찾았을 때 그는 드디어 떡이 있는 곳을 찾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찾아야하는 이유는 찾는 자가 찾기 때문입니다. 9절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10절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이때 ‘찾아낸다(휴리스코)’는 동사는 ‘찾아 발견하다’라는 뜻입니다. 찾을 때 발견하게 됩니다. 떡을 찾을 때 떡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그 떡은 무엇이라고 했지요? 성령입니다. 성령을 찾는 사람이 성령을 찾게 됩니다. 거듭난 성도, 즉 다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으로 계속 충만해져야 합니다. 숨을 쉬는 것을 한꺼번에 일 년치를 미리 마셔놓을 수가 없습니다. 매 순간마다 숨을 쉬어야 합니다. 성령도 한 번 받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성령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구하고 찾아야합니다. 부흥은 무엇이라고 했지요? 나와 우리 모두 함께 잘 되고, 함께 변화 받고, 함께 능력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부흥을 위해 우리는 성령을 찾아 충만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성령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 가면 찾을 수가 있을까요? 친구처럼 깊이 탐구하면서 찾아보십시다. 성령은 어디에 가면 찾을 수가 있을까요? 누구에게 가면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해답을 주셨습니다. 먼저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기도는 누구에게 해야 합니까? 본문 2절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시고 난 다음에 “아버지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니 아버지께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13절에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는 성령을 어디서 찾을 수가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가면 찾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예수님은 성령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아서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집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집에 가야 합니다. 친구에게 떡을 주기위해 친구집을 찾아간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친구인 이웃에게 성령을 받도록 하기 위해 아버지집에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성령을 찾는 것은 성령을 받을 때 부흥이 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서 부흥시키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예수님 자신도 성령을 충만하게 받고 부흥시키셨기에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도 성령으로 충만해지길 바란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서도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을 계속 충만하게 받을 때 계속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계속 잘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찾아야 합니다. 왜 성령을 찾아야 합니까? 성령은 가만히 있으면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아버지집에 찾아가서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집에서 성령을 찾아 우리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 단계는 아버지집 문을 두드리는 단계입니다. 옆 사람과 서로 말씀해보세요. “아버지집 문을 두드립시다.” 5절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라고 했습니다. 가서 말했다는 것입니다. 구하려고 애쓰기만 하고, 찾으려고 애쓰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구하였고, 찾았고, 찾게 되자 가서 말했습니다. 떡이 있는 곳을 찾아내기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그 떡을 가질 수 없습니다. 떡이 있는 곳을 찾았으면 가서 떡을 달라고 말해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친구를 보면 가서 말했습니다. 한 밤중이지만 친구 집에 가서 떡을 달라고 문을 “쾅쾅쾅” 두드렸습니다.
그것도 그냥 한두 번 말하지 않았습니다. 8절을 보면 ‘간청(아나이데이아)’했다고 했습니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 가운데 여기에 한 번만 나오는데 부끄러움이나 염치를 불구하고 간절히 구한 것을 말합니다. 친구가 한사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본문 7절을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친구야,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라. 나는 이미 잠을 자려고 문단속을 끝내고 잠자리에 누웠다. 아이들도 나와 함께 누웠으니 일어나서 떡을 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문을 세차게 “쾅쾅쾅”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결국 일어나서 주게 되었습니다. 떡을 받아든 친구는 가서 여행 중에 방문한 친구를 대접하게 되었습니다. 떡 문제를 해결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8절에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친구 관계 때문에 준 것이 아니라 간청하기 때문에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자녀의 사이이기 때문에 자동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달라고 해야 준다는 것입니다. 없으면 못살겠다고 간청해야 주겠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쓸 준비물을 부모님에게 준비해 달라고 해야 부모가 준비해줍니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으면 줄 수가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모르실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부르짖으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렘 29:12). 그러므로 우리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부르짖고 간청해야 합니다. 본문 9절과 10절은 겉으로 볼 때는 내용이 서로 비슷합니다. 그러나 문법의 인칭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이 9절에서는 2인칭 복수이지만 10절에서는 3인칭 단수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말씀을 여러 사람이 듣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긴 그 한 사람만 구한 것을 받고, 찾은 것을 찾고, 두드린 것이 열린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간청하면서 아버지집을 두드려야 합니다. 9절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절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립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친구집 문을 염치불구하고 세차게 두드릴 때 문이 열린 것처럼 우리도 아버지집 문을 그렇게 두드리면 열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친구가 문을 두드려 떡을 얻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집 문을 두드려 우리 아버지께서 문을 열어주셔서 우리 모두가 성령을 충만하게 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성령은 한 번 받았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숨을 쉬어야 하듯이 계속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구하는 사람이 받고, 성령은 찾는 사람이 찾아내고, 아버집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문이 열려서 성령을 충만하게 받습니다. 그러면 부흥이 옵니다. 잘 됩니다. 회개하고 변화를 받습니다. 능력을 받습니다. 사랑과 믿음과 지혜가 충만해집니다. 어떤 길로 가야할지 인도를 받습니다. 인생을 방황하지 않고 사는 목표가 생기고 사는 목적도 생깁니다.
이렇게 좋은 성령은 간절히 기도하고 찾고 두드릴 때 충만하게 받습니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성령이 충만해지면 능력이 달라집니다. 능력의 사람이 될 때 다른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기도요 성도가 해야 할 일도 기도입니다. 특히 친구인 이웃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할 때 친구인 이웃도 성령으로 충만해집니다. 그러면 함께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함께 부흥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꼭 충만하게 받아야겠다는 마음의 소원을 품으시고, 우리 모두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 달라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간청하시길 바랍니다.
[2011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64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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