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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주일설교

[부활주일] 부활이 없다면 (고전 15:12-22)

by 이서영 목사 2015. 7. 17.

[부활주일] 부활이 없다면 (고전 15:12-22)

 

  여러분 화장을 좋아하세요? 대부분 화장(化粧)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화장(火葬)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화장하는 것을 보면 시뻘건 불에 살과 뼈가 바싹 타버리고 재만 한 그릇 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이 뭐가 두렵겠습니까? 뜨겁기나 하겠습니까? 그런데 살아 있는 지금 상황에서 생각하니까 겁이 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맹렬하게 타들어가는 불을 보면서 진짜 두렵게 여겨야할 불은 까마득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불은 무슨 불일까요? 그 불은 지옥불입니다. 지옥불은 맹렬하게 뿜어대는 화산보다 더 활활 타오르는 유황불입니다. 거기다가 영원히 꺼지지도 않는 심히 무서운 불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옥불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 지옥불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됩니다. 그러면 이 지옥불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옥불에 들어가지 않도록 구원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큰 은혜입니까? 그러므로 여기에 모이신 분은 한 분도 빠짐없이 예수님을 믿으셔서 구원 받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불에 들어가게 됩니까? 우리 모든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지옥불에 들어가야 합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태어나면서부터 무조건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좀 잘 나간다고 해도 모두 지옥불행이 예약되어 있습니다. 이 예약은 취소가 불가능한 예약이기 때문에 지옥불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지옥불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계신 분 가운데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 짐승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해도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사람은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확실히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우리의 시조, 곧 우리의 최초의 조상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조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아름답고 행복한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에덴동산에 있는 여러 가지 모든 과일을 마음껏 따먹으라고 했습니다. 다만 그 가운데 딱 한 과일만 빼고 모두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 과일 이름이 무엇이지요? 선악과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입니다. 그런데 이 과일을 아내인 하와가 먼저 따먹고 함께 있는 남편인 아담에게 주자 아담도 먹었습니다.

 

  우리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만 불순종의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류에게 대재앙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큰 재앙은 없습니다. 그때부터 인류는 태어나면서부터 이 아담과 하와의 죄를 안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어 모든 사람이 죽고 모든 사람이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영원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큰 죄인인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나름대로 정직하게 선하게 살아왔는데 무슨 큰 죄가 있다고 하십니까?” 아닙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잘했던 잘못했던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죄인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씀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나는 억울합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담과 하와의 탓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자신이 인류의 시조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우리 자신과 아담과 하와의 역할과 바꿔볼까요? 우리 자신을 시조로 여기시고 그동안 행동하신 것과 앞으로 행동하실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아담과 하와는 자신의 자유 의지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자신의 자유 의지를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동안 어떻게 해오셨습니까? 하와처럼 “선악과를 먹어보세요. 얼마나 맛이 좋은지 몰라요”라고 권하셨습니까? 아니면 “선악과는 절대로 따먹지 마세요”라고 말렸습니까?

 

   “교회 일을 열심히 해봅시다. 신앙생활을 잘 해봅시다. 예수님을 꼭 믿으세요.” 이런 유익한 생명의 언어를 얼마나 자주 하셨습니까? 이러한 일을 열심을 내서 꼭 하라고 얼마나 잔소리하시고 바가지를 긁으셨습니까? 아니면 날이면 날마다 하와처럼 졸라댔습니까? “멋진 명품이 있던데 꼭 사다 주세요. 그 아파트를 사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대요.” 여러분은 어떤 바가지를 긁으셨고 어떤 잔소리를 하셨습니까? 무엇을 요구하셨고 무엇이 좋다고 권하셨습니까?

 

  앞으로는 또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삶을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세상이 주는 보기에도 탐스러워 보이고 지혜로워 보이는 선악과를 따먹는 삶을 사시겠습니까? 그렇게 사시면 우리의 후손이 나중에 우리를 보고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우리 선조는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기도로 심으시고 물질로 심으시고 선교로 심으셨습니다. 우리 선조는 예수님을 잘 섬기셨고 예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셨던 분이십니다.” 아니면 그 반대로 이야기 할까요? “우리 선조는 믿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좋아보여서 세상의 풍속을 따라 살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역시 아담과 하와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조를 탓할 것이 못됩니다. 우리 역시 잘 할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의 자유 의지를(벧전 2:16) 잘못 사용해서(벧후 2:19)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있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대로 살지 못하고 예수님을 더 사랑하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잘 동참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나 저나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죄인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지옥불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계실 것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나는 절대로 지옥불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해서 지옥불에 안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 지옥불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의인이어서 자동으로 천국에 들어간다면 구원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이유도 없고 부활하실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도 구원이 빠진 경건한 삶을 사는 하나의 종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소망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인 것은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자신의 죄 값으로 죽을 수밖에 없고 지옥불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해주셨습니다.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고 멸망당할 수밖에 없지만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기(고전 15:3-4) 때문에 죽게 된 죄인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을 믿는 사람마다 지옥불에 들어가지 않고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님을 꼭 믿으셔서 이 귀한 구원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쌀은 볍씨를 빻아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볍씨를 보면 꼭 죽은 것 같습니다. 싹이 난 것도 아니고 숨을 쉬는 것도 아니고 눈으로 보아서는 죽은 볍씨나 살아있는 볍씨나 똑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모내기할 때 물을 댄 논에 뿌리면 알 수 있습니다. 죽은 볍씨는 썩어버립니다. 생명이 있어야 싹이 나는데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볍씨는 싹을 냅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안에도 생명이 있기에 다시 살아납니다. 예수님은 부활과 생명이시기에 예수님을 믿는 성도도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이 있어서 죽어도 살아납니다(요 11:25). 성도가 죽는다고 진짜 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있기 때문에 죽지 않고 때가 되면 다시 살아납니다. 영원히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서 지옥불이 아니라 에덴동산보다 더 좋은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우리가 지옥불에 들어가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와 악과 허물을 깨끗하게 청산시켜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도 역시 부활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살아나서 지옥행에서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아 둘 것이 있습니다. 부활한다고 하면 예수님을 믿는 성도만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부활합니다. 다만 부활을 해도 부활의 종류가 다릅니다. 부활에는 영벌의 부활과 영생의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9절입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사도 바울도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24장 15절입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신자는 영생의 부활로 천국에 들어가고 불신자는 심판의 부활로 지옥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부활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난다고 로마서 6장 5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아멘. 한 번 따라 해보세요!  “예수님 죽음, 내 죽음. 예수님 부활, 내 부활!” 부활은 이처럼 우리가 죽어도 다시 살아나게 만듭니다. 누가복음 20장 36절은 이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이처럼 성도의 부활은 큰 축복이 됩니다. 이 큰 축복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오늘 본문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릇된 주장이 도움을 줄 때도 있습니다. 그릇된 주장에 논리적으로 반박하다보면 더 귀한 교리가 세워지고 더 큰 은혜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역시 부활이 없다는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하다보니 부활의 진리가 더 명확하게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주장처럼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1)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실 일이 없습니다(13절, 15절, 16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예수님도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려내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야 하는데 부활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다시 살려내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전파하는 것은 헛것이 되고(14절) 거짓증인이 됩니다(15절). 복음의 상징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우리도 함께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만 있고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반쪽 복음, 아니 죽은 복음이 되어 헛것이 됩니다. 헛것을 전하는 거짓증인이 됩니다.

 

  3) 우리가 믿는 믿음도 헛것이 됩니다(14절, 17절).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헛것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고 있는 복음도 헛것이 됩니다. 매튜 헨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하지 않으면 그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죽음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나서 아름답고 행복한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니 우리가 믿는 믿음도 헛것이 됩니다. 

 

  4)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습니다(17절). 우리가 죽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병들어서? 늙어서? 수명이 다해서? 숨을 쉬지 않아서? 아닙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 6:23). 죄 때문에 죽습니다. 죽음 가운데 있다는 것은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죄를 용서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옥불에서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5) 예수님 안에서 잠자고 있는 사람도 망합니다(18절). 살아서 예수님을 철썩 같이 믿는 사람만 헛것이 되어 망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도 똑같이 망합니다. 다시 살아날 줄로 믿고 간절히 기다렸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지 못하고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6) 우리는 더욱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19절). 다시 살아나는 것이 없다면 지금 현재의 성도들도 불쌍하게 됩니다. 죽음이 끝이라면 살아서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그 모든 것이 헛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끝이라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즐기고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살아왔는데 허무하게 되어버립니다. 정말 불쌍하게 됩니다. 

 

  부활이 없다면 이처럼 그 모든 것이 허탈하게 되고 헛것이 되어버립니다. 다시 살아나지 못하므로 천국에서 영원히 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부활을 위해 죽은 사람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은 사람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20절).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죽게 된 것처럼 예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21-22절). 예수님의 부활은 이처럼 위대하고도 놀랍습니다. 예수님께서 첫 열매가 되셔서 우리 믿는 성도들의 한 생명, 한 생명의 열매를 거두게 해주셨습니다. 그래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서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리고 깊이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주일을 맞이해서 생각해봐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 소망을 가지고 살려면 먼저, 세상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나서 아름답고 행복한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산다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소망이 없는 이 세상을 끝까지 붙잡고 살 것이 아니라 부활한 다음에 영원히 살 천국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만 모든 것을 쌓으려고 하실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귀하게 여기시고 하늘에 귀한 보물을 쌓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다시 서게 되는 날에 거룩하고 순전한 모습으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몸이 잘못된 행실로 얼룩덜룩하게 더럽혀진 몸이 아니라 올바른 행실로 깨끗해진 몸으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 다음 교훈은 장례에 관한 것입니다. 무덤이나 납골당 같은 것을 만들지 말자는 것입니다. 만드는데 비용이 들고 관리하는데도 계속 비용이 들어갑니다. 오고가느라 시간이 많이 들고 절차도 복잡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돌아가신 분께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일평생 큰 짐을 지웁니다. 자손 대대로 짐을 지웁니다. 국토 면에서도 큰 짐이 됩니다. 그러므로 화장장에서 화장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화장한 재는 무덤이나 납골당에 둘 것이 아니라 화장장 안에 있는 지정된 장소에서 뿌리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성도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치장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합니다. 자손들이 소망이 없는 헛된 무덤과 납골당을 붙잡고 살도록 해서야 되겠습니까? 성도는 무덤과 납골당보다 더 중요한 부활이 있다는 것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장례를 잘 지내고 무덤과 납골당을 멋지게 만들어야 부활도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겉이 아무리 화려해도 속은 지옥불이 타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본인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부활해서 영원히 천국에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손들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역시 부활해서 영원히 천국에서 함께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 교훈으로는 자손에 관한 것입니다. 자손들이 함께 모여서 무덤이나 지키고 납골당이나 지켜서야 되겠습니까? 함께 모여서 돌아가신 분의 업적과 은혜와 사랑을 되새기고 후손에게 그것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무덤과 납골당을 물려줄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의 신앙과 정신과 재능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책이나 영상물 등의 대중매체로 제작해서 물려주면 좋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강조를 드립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영원히 죽고 영원히 지옥불에서 지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살아나게 하셔서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예수님께 감사와 영광을 크게 돌리시는 부활주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2011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66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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