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을 잘하는 사람 (마 18:18-20)
자동차가 꽉 막힐 때가 간혹 있습니다. 그럴 때 답답합니다. 그래서 “빵빵”거리면서 빨리 가자고 재촉합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버스 종점에서 손님 한 분이 버스를 탔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곧바로 출발하지 않고 다른 손님이 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손님이 짜증내면서 말했습니다. “이 똥차 언제 출발합니까?” 기사는 점잖게 대답했습니다. “똥이 차야 출발하지요.”
자동차가 막히면 답답합니다. 변기나 하수구가 막혀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줄이 막히면 더 답답합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답답한 것은 무엇입니까? 말이 막힐 때입니다. 의사소통(意思疏通)이 안 될 때입니다. 말이 안 통하는 것보다 더 답답한 것은 없습니다. 도로를 건설할 때 산이 막히면 터널을 뚫고 강이 막히면 다리를 놓습니다. 그렇다면 사람 사이에 막힌 의사불통은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습니까?
김진우님이 ‘의사소통’이란 노래를 불렀습니다. “벌써 만난 지 몇 년째인데, 왜 이렇게 대화가 안 될까?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서로 “따따따!”거리면서 대화하는 벌거벗은 쌍둥이 꼬마의 동영상을 보면 우습고 귀엽고 깜찍합니다. 그러나 서로 의사불통이 되어 답답해합니다. 이렇게 막혀버린 의사불통을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주 동네에 있는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치료실의 벽면에 이런 글이 붙어 있었습니다. “통즉불통(通則不痛), 불통즉통(不通則痛)”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말입니다. 기(氣)와 혈(血)의 흐름이 통하면 아프지 않고, 흐름이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뜻입니다. 한의사의 치료 특징은 ‘소통’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기와 혈이 잘 흐르지 못하면 담(痰)이나 어혈(瘀血)과 같은 노폐물이 몸 구석구석에 쌓여서 통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이것을 시원하게 뚫어줍니다.
사람 사이도 통해야 합니다. 통하지 않으면 관계에 있어서 통증을 느낍니다. 그러나 시원스럽게 잘 통하면 통증이 없습니다. 의사소통(communication)은 사람의 의사나 감정의 소통을 말합니다.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뜻이 서로 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의사소통이 잘 될 때 관계가 좋아지고 아픔 대신에 사랑과 행복이 넘치게 됩니다. 답답함이 사라지고 일하는 재미가 있고 공부하는 재미가 있고 사는 재미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꽉” 막힌 의사불통이 시원스럽게 “뻥” 뚫려 의사소통이 잘 되셔서 서로 생각이 잘 통하고 서로 뜻이 잘 통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재미 있는 이야이가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오르막길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보니 무릎 아파하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할멈, 업어줄까?” 할머니는 업히면서 너무 좋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말했습니다. “영감, 무겁지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그럼, 무겁지. 머리는 돌머리고, 얼굴은 철판이고, 심장은 강심장이어서 무거워.” 얼마쯤 올라가다가 이번에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업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업히면서 말했습니다. “할멈, 생각보다 가볍지?” 할머니는 곧바로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가볍지요. 머리는 든 것이 없고, 허파는 바람만 잔뜩 들었고, 속은 비어서 엄청 가벼워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웃자고 한 것인데 그만 속이 상해서 집으로 오는 길에 서로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 함께 병원에 가니 의사가 강연하고 있었습니다. “음식을 잘못 먹으면 설사가 나고 건강을 해치니까 잘못된 음식을 먹으면 안 됩니다. 이 가운데 혹시 음식을 잘못 먹고 큰 고통을 겪었던 분이 계십니까?” 할아버지는 손을 “번쩍” 들고 대답했습니다. “네, 웨딩케이크요.”
두 사람의 사이는 더 나빠졌습니다. 그러던 할아버지가 그만 중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집으로 모시고 임종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할머니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때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부침개 냄새가 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숨을 겨우 쉬면서 할머니에게 부탁했습니다. “할멈, 저 부침개 좀 갖다 주게.”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부침개는 안 됩니다. 장례식 손님에게 대접할 음식입니다.”
할아버지는 안타깝게도 더 이상 살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장례식 날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관을 들고 장례식장을 나가는데 그만 잘못해서 “쿵” 하고 벽에 부딪쳤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깨어나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하면서 축하해주었습니다. 그 후 십년이나 더 건강하게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 날 관을 들고 장례식장을 나갈 때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이보시오, 벽에 부딪치지 않게 조심하시오.”
우리는 말을 잘해야 아픔을 겪지 않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3장 3절은 말(馬)의 입에 재갈을 물리듯이 말(言)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말의 힘은 매우 큽니다. 그래서 엔진의 힘을 측정하는 단위로 마력(馬力, horsepower)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마력은 18세기 후반에 스코틀랜드 공학자인 제임스 와트가 말로 실험해서 결정했습니다. 1마력은 말 한 마리의 힘에 해당하는 일의 양인데, 1초당 746줄(joule)에 해당하는 노동량으로 746와트(W)의 전력에 해당합니다.
말(馬)의 힘이 크듯이 말(言)의 힘도 매우 큽니다. 힘센 말(馬)을 통제하지 못하면 날뛰어서 큰 낭패를 당하듯이 말(言)도 통제를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말이든 말이든 통제를 잘하면 유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말이든 말이든 제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말(馬)은 어떻게 제어합니까? 재갈을 물리면 됩니다. 말과 말을 타고 있는 기수가 서로 의사소통이 잘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만드는 것이 재갈입니다. 재갈은 의사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래서 말(言)에도 의사소통을 잘하기 위해서 이런 재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馬)에 재갈을 물리는 요령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재갈을 잘못 채우면 말이 날뛰고 다칩니다. 성질이 고약한 말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므로 먼저 말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재갈이 위험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말은 차가운 금속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체온정도로 온도를 높인 다음에 재갈을 물려야 합니다. 이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습니다. 이것을 잘 따라야 재갈을 쉽게 물릴 수 있고 이 재갈을 통해 말과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입에도 재갈을 물려야 합니다. “그래 맞아, 그 사람 입에 꼭 재갈을 물려야 돼.”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입에 재갈을 물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재갈을 물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입을 꽁꽁 묶고 다니면 됩니까? 아니면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 다니면 됩니까? 그러다가 꼭 필요한 말을 할 때마다 묶어놓은 끈을 풀거나 붙여놓은 테이프를 뜯어내면 됩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원하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입을 길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말(馬)에 재갈을 물리는 요령과 연습처럼 말(言)하는 법을 반복해서 연습하고 반복해서 훈련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연습하고 훈련해야 할까요? 의사불통의 대화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의사불통의 대화를 박필 교수는『예수님께 배우는 대화의 법칙』에서 걸림돌 대화라고 했습니다. 그는 무엇이 걸림돌 대화인지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대화 스타일에 대해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예수님께서 허셨습니다(엡 2:14).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보장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헌신하는 것만큼 그것을 잘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가깝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안 되어 여전히 하나님과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보통 일방적인 대화 스타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도 그런 대화로 막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열린 사람이 되면 하나님과도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합니다. 대화의 능력을 갖는다는 것은 단순히 대화를 잘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신앙, 가정, 직장, 교회 등 모든 곳에서 엄청난 영향력이 나타납니다. 인간관계에서 묶였던 것들이 풀어지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묶였던 것들이 풀어져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열리면 모든 갈등이 풀어지고 모든 것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연이 있습니다. 아내가 화장을 하는데 기다리다 못한 남편이 “그렇게 열심히 화장한다고 바퀴벌레가 나비가 되나?”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그 말이 너무 섭섭했습니다. 남자들은 별 의미 없이 단순히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여자에게는 심각한 것입니다. 여자는 자신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상처를 준 그 한 마디가 가슴 깊이 자리하게 되는 법입니다. 남편의 그 말 한마디가 집 한 채를 날려버렸습니다.
사랑은 말할 때 시작됩니다. 사랑은 말할 때 표현됩니다. 사랑은 말할 때 나타납니다. 사랑은 말할 때 전해집니다. 사랑은 말할 때 이루어집니다. 말이 없을 때 사랑을 느낄 수 없습니다. 사랑은 말할 때 이루어지는데 어떤 말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를 잘 모릅니다. 그리고 관계를 깨뜨리는 말 즉 걸림돌 언어(roadblocks)가 사용될 때 대화가 단절되고 갈등이 일어납니다. 특히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계를 깨뜨리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갈등과 다툼이 많습니다.
대학을 다니던 아이가 사업을 배우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취직하겠다는 상황을 가정할 때 흔히 나타나는 부모의 걸림돌 언어의 유형입니다. (1) 지시와 강요 :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지식하고 강요하는 경우입니다. 지시받고 강요당할 때 마음이 닫힙니다. “그건, 안 돼! 학교는 졸업해야 해!” (2) 경고와 위협 : 원하는 대로 안하면 대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에 즐거워할 사람은 없습니다. “학교 그만두고 취직하려면 아예 집에서 나가!” (3) 훈계 : 교훈을 줌으로 따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훈계 듣는 것도 좋아할 사람이 없습니다. “사업도 좋지만 머리에 든 게 있어야지!”
(4) 설득 : 타당성을 앞세워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뜻을 설득함으로 꺾으려고 할 때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해야 사업해도 더 대우를 받을 수 있다!” (5) 충고와 제안 :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받아들이도록 요구하는 것입니다. “쉽게 결정하기보단 한 학기만 더 다녀보고 결정해봐” (6) 비난과 비판 : 공격적으로 비난하고 판단하는 말입니다. “너는 생각하는 게 아직도 어린애야” (7) 부정적 칭찬 : 상대가 싫어하는 것이나 납득되지 않는 칭찬을 할 때 상대에게 부정적인 것이 됩니다. “너는 머리가 좋잖아, 그러니 공부를 해야지” (8) 비웃음 : 비웃고 조롱하는 말입니다. “네가 사업할 수 있으면 강아지도 사업하겠다!”
(9) 욕설 : 인격적으로 모욕하는 말입니다. “병신 뭐 한다더니 참나···” (10) 분석 : 원인을 분석하는 말입니다. “친구가 사업한다니까 공부하기 싫은가 보다” (11) 추궁과 따지기 : 말 그대로 추궁하고 따지는 것입니다. “왜 사업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 (12) 회피와 전환 : 곤란한 상태를 모면하기 위해 다른 주제로 대화를 바꾸는 것입니다. “너 다음 학기 때는 영어연수 한번 가보는 게 어때?” (13) 비교 :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무시하는 말입니다. “네 친구 누구는 착실히 공부 잘하는데 넌 왜 그래?” 우리는 주로 어떤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이런 걸림돌 언어를 사용하면 대부분 상대에게 거부감을 주고 자존심을 상하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모욕감, 열등감을 주므로 관계가 깨어지고 심하면 충돌이 일어납니다.
박필 교수가 잘 지적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걸림돌 언어가 어떤지를 잘 알았을 것입니다.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바로 이러한 언어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러한 갈등을 일으키는 걸림돌 언어와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에 대해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하나씩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걸림돌 언어를 말하지 않도록 우리 입에 재갈을 물려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잘 되고 하나님과도 의사소통이 잘 되어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사랑과 행복이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통(通)하면 통(通)합니다. 다시 말해 사람 사이가 통하면 하나님과도 잘 통합니다. 그러나 통(通)하지 않으면 통(痛)하게 됩니다. 불통하면 아픔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과도 하나님과도 통하지 않아서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3장 7절은 부부 사이가 잘 통하지 않으면 기도가 불통된다고 했습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기도가 막히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과 막힙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먼저 소통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역시 그런 뜻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난 다음에 만 달란트 빚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마 18:23-35). 주인이 현재 돈으로 환산해서 4조 2천억 원의 빚을 탕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탕감을 받은 사람이 가서 7백만 원을 빚진 사람의 목을 잡고 갚으라고 하면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 소식을 주인이 들었습니다. 불쌍해서 탕감해주었는데 이와 같이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으므로 빚을 갚도록 옥졸에게 넘겼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마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용서받고 풀려났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풀어주지 않으면 묶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풀면 풀리고 묶으면 묶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통하면 통하게 되고 불통하면 통증을 느끼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남편만 아내에게 소통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내도 남편을 잘 받들지 못하면 역시 기도가 막힌다고 고린도전서 11장 13절에 말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남자가 머리라는 것입니다(고전 11:3-5). 종합해보면 남자든 여자든 모두 사람 사이가 소통되어야 하나님과 소통이 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베드로전서 3장 8-12절을 계속해서 보면 그런 뜻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남녀 구분 없이 좋은 날을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혀를 금하고 악한 말을 그치고 화평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 주님의 눈은 그러한 의인을 향하시고 주님의 귀는 그러한 의인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신다고 했습니다.
잠언에서도 악인의 기도는 귀를 막으시고 의인의 기도는 통한다고 말해줍니다.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15:8).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28:9).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15:29). 본문 19절과 20절에도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두 세 사람이 서로 잘 소통하면 그들이 부르짖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그들을 위해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신 예수님께서 서로 잘 소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계시면서 기도가 잘 응답되도록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풀면 풀리고 묶으면 묶입니다. 다시 말해 통(通)하면 통(通)하고 통(通)하지 않으면 통(痛)합니다. “통즉불통(通則不痛), 불통즉통(不通則痛)” 통(通)하면 아프지 않고 통(通)하지 않으면 아픕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꽁꽁” 묶고 불통시켜서 서로 마음 아파하지 마시고, 서로 풀고 또 풀어서 막힌 것을 잘 소통시키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이 되셔서 사람과도 잘 통하고 하나님과도 잘 통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1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72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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