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십시오 (마 6:25-34)
롯데 이대호 선수가 지난주에 3연타석 홈런을 쳤습니다. 놀라운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대호 선수는 2001년 고졸 선수로 롯데에 입단하여 2군 투수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볼 스피드가 좋지 않고 그나마 부상당한 이후로 130킬로미터 수준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2군 감독이 타자를 해보라고 권해서 타자로 바꾸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성장을 하여 프로야구 최우수 선수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좌절과 실패를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잠재된 능력을 우리의 감독이신 주님께서 개발시켜주시고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롯데는 이대호의 눈부신 활약에도 불구하고 그만 패배했습니다. 그것도 친정선수인 한화의 가르시아가 끝내기 투런 홈런을 쳐서 역전패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이대호 선수의 3연타석 홈런은 그만 빛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먼저 혼자 잘한다고 해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함께 잘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승리하려면 끝까지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간에 아무리 잘해도 마지막이 좋지 못하면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야구기록은 중간결과로 순위를 매기지 않습니다. 경기가 끝난 결과에 따라 순위를 매깁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잘해야 합니다. 최후의 승자가 승자입니다.
우리의 삶도 무엇이든 끝까지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끝까지 잘해야 합니다. 끝까지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계 2:25,26).” 그래서 히브리서 3장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예수님은 끝까지 잘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하신 말씀도 그러합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
이처럼 끝까지 잘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끝까지 잘할 수 있습니까? 옛날에 잘한 것으로는 안 됩니다. 지금 잘하고 있는 것으로도 안 됩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죽는 날까지 잘하는 것입니다. ‘나는 죽는 날까지 끝까지 잘하리라’고 결단하고 끝까지 잘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간적으로만 끝까지 잘할 것이 아니라 내용적인 면에서도 끝까지 잘해야 합니다. 죽는 순간까지 잘해야 하겠는데 무엇을 잘해야 하겠습니까? 막연히 잘해야 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끝까지 잘해야 할 것들을 산상수훈을 통해 알려주셨습니다.
끝까지 잘하려면 하나님 우선의 신앙생활을 해야 끝까지 잘할 수 있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우선의 생활을 할 때 무엇이든 끝까지 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좋은 신앙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으로 많은 무리 앞에서 대중 설교하신 말씀 가운데 오늘 본문의 설교 말씀이 들어있습니다. 이 설교 가운데 좋은 신앙이 무엇인지를 설교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신앙이란 어떤 신앙일까요? 우선권이 바로 된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 먼저” 자세로 사는 것이 좋은 신앙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을 우선하는 하는 것, 이것이 좋은 신앙의 표시입니다. 자신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을 우선하는 것이 될까요?
1.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 하나님을 우선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우선하는 신앙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손으로 지은 성전에 머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성전을 지으라고 하십니까? 성전 자체보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고 따른다는 것을 표시하고 있기에 그런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성전을 건축하라는 말씀입니다.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은 좋은 신앙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신앙의 표시입니다. 학개 1장 1절에서 2장 9절을 보면 성전에 대한 주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학 1:1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학 1: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학 1: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학 1: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학 1: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학 1: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학 1: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학 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학 1: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학 1:10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학 1:11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
학 1:12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학 1:13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학 1:14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학 1:15 그 때는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었더라
학 2:1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학 2: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학 2:3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학 2: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학 2: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학 2: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자신의 나라에 많은 관심이 있다는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성전에 많은 관심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앞에 봉독해드린 말씀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건축할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어림없는 말이다. 성전은 황폐한데 너희들 집은 호화롭기만 하다. 그래서 너희가 많이 수고할지라도 수입이 적고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고 먹어도 배부르지 못한 것이다. 너희가 아무리 모으려고 해도 구멍이 뚫어진 지갑에 넣는 것이다. 너희가 많은 것을 바라고 집으로 가져갔으나 나는 그것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내 집은 황폐한데 너희 집을 짓는 데는 재빨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도 내 것이고 금도 내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을 건축하라. 그러면 내가 그것을 기뻐하고 그것으로 인해 영광을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곳에 평강을 주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 마음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결국에는 알아도 모른척했을 것입니다. 자기 집이 중요하지 성전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학개 선지자의 말을 듣고 성전을 짓기는 했습니다만 솔로몬 성전을 본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온 동네가 떠나갈듯이 대성통곡할 정도로(스 3:12) 보잘 것 없이(학 2:3) 대충 지었습니다. 이후로 이스라엘이 성전을 스스로 건축했다는 기록을 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방인인 헤롯왕이 정치적 동기로 이스라엘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을 건축했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하나님의 성전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이 잘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나라는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고 유랑자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정은 무너지고 사업도 무너지고 사는 게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를 우리는 학개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면 본문 말씀처럼 먹고 입고 마실 것이 풍부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마셔도 흡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가정과 우리 자신의 하는 일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오래 전부터 이미 교회당을 건축하여 헌당하는 불타는 소원이 생겼습니다. 이번에 비록 임차해 들어가지만 성전을 확장하여 이전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새로 들어갈 성전을 위해 이 무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매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건축하여 헌당하는 심정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리고 찬양을 드리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도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거나 건축헌금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자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은 몰라도 건축하는 것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아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감동이 되면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하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한 것이 됩니다. 그러면 또 다른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하고나서는 자신의 공로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시험에 듭니다. 그러나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감동주시고 물질을 주셔서 드린 것은 시험에 빠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것을 드리게 하셨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역대기상 29장 14절에서 그런 유명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다윗은 그러한 자세로 하나님의 성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성전을 짓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영원히 위대한 이름과 왕위를 받게 되었습니다(삼하 7:1-17). 그러므로 우리도 그러한 자세로 힘써 성전 건축에 참여하셔서 다윗과 같은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힘써 성전 건축에 참여하되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건축하게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위대하신 일을 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완성되면 그러한 영광을 여러분은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하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건축하시는 것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풍랑에 휩싸이는 것은 예수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머리와 몸이십니다. 예수님은 계십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주무셔서 풍랑을 만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깨워서 예수님께서 하시도록 기도드리면 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위대하게 건축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 체험을 많이 하시고, 그런 간증이 많아지시길 바랍니다.
2. 교회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을 우선하는 것입니다.
교회 건물만 덩그러니 있으면 안 됩니다. 교회에 충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위하는 것이요 주님의 나라를 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와 몸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위한다면 당연히 교회를 위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세우려면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 세워진 교회를 위해 충성해야 합니다. 그 일은 바로 예수님께 충성하는 것이 됩니다. 누군가는 그 교회를 위해 충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 일을 할 것입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을 주님께서는 모두 아시고 바라보시고 갚아주십니다.
그렇다면 충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린도전서 4장 1절과 2절입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가 맡은 일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잘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맡겨주신 일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위치와 자기 할 일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어디에 신경을 집중하고 어디에 신경을 써야 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알게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다음으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충성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일차적으로 충성하시고 그런 다음에 지금 몸담고 있는 교회에 충성하십시오. 그 다음으로 다른 교회와 기관 위해 일하십시오. 그러나 다른 곳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면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편의를 위한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자기 교회 두고, 자기 가정 두고, 자기 직장 두고 다른 데 신경 써주면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르게 충성하여 바른 상급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3. 교회 밖에서 봉사하는 것도 하나님을 우선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끌려가라는 것도 세상을 배척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 속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라는 것입니다(마 13-16). 세상을 주도하는 것입니다. 소금이 주도하고 빛이 주도합니다.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창 1:28). 이것이 주님을 위하는 것이요 주님의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나라를 기억하고 주님을 우선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금은 무슨 역할을 합니까? 거룩하게 하고 맛이 나는 세상을 만듭니다. 빛은 무슨 역할을 합니까? 구원의 복음을 전파합니다. 구제 활동만 하면, 맛이 나는 세상만 만들면, 세상 행복에 빠지도록 해서 복음에서 멀어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소금과 빛의 역할을 모두 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든 직장이든 학교든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그 어디든 균형 잡힌 봉사를 잘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면서 도전을 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이 없다면 교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있기에 세상 속에 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속에서 교회를 세우고, 세운 그 교회에 충성하고, 그 교회 밖에서도 봉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교회를 건축하는데 힘쓰고, 건축한 교회에 충성하고, 교회에서 받은 은혜와 그 힘으로 교회 밖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을 요약하면 무슨 말씀입니까?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우선하는 신앙생활이 좋은 신앙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모든 것을 보상받습니다. 경건은 범사에 유익이 있다고 했습니다. 금생과 내생에 유익이 있습니다(딤전 4:8). 필요한 생활필수품 등을 공급받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것도 공급받습니다. 본문을 보면 공중의 새가 창고가 없어도 산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창고를 지어 잔뜩 쌓아두고 ‘이젠 걱정 없이 살겠구나’라고 생각했을 때 그날 밤에 부자의 영혼을 거두어간다면 누구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눅 12:16-21). 그의 영적인 창고가 비어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우선 신앙의 사람은 그 창고가 차고 영혼의 창고도 가득 찹니다.
그리고 백합화는 옷을 비유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게 하십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더 귀하고 값진 옷은 예수님의 피로 씻은 의로운 옷입니다. 이런 옷을 누가 입혀줍니까? 그리스도와 합할 때 그리스도의 옷을 입게 됩니다(갈 3:27; 롬 13:14). 그리고 키에 대한 비유도 나오는데 이것은 성장을 의미합니다. ‘키가 1센티미터나 더 커진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키가 자라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영적인 키를 자라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라나게 해주십니다(고전 3:7).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분은 누구입니까? 거짓말하지 않고 철썩 같이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염려 걱정과 억눌리고 붙잡힌 것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잘못된 생각과 습관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25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3절).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우선하는 신앙생활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지시고, 하는 일도 좋아지시고, 건강도 좋아지시고, 가정도 좋아지시고, 인간관계도 좋아지시고 영적인 일도 좋아지시길 바랍니다.
[2011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87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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