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사 41:8-14)
“죽을 만큼 아파서”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MC몽이 2010년 6월에 노래한 것인데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을 노래한 것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만나지 못하므로 힘들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가사 중에 그러한 뜻의 내용이 있습니다. “술에 만취해 봐도 마음이 안심되는 것도 잠시,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왜 낫지 않지? 수면제도 나를 돕지 않아.” 이리저리 애써 봐도 도움 받지 못하고 빠져나오지 못해 처절하게 외친 말이 “제발 지옥 같은 여기서 날 꺼내 줘!”입니다.
이 가사를 애절한 사랑의 관점이 아니라 오늘 본문의 상황에서 재해석하여 다른 각도에서 교훈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현재 그냥 이대로 사는 게 좋습니까?” 오늘날 전쟁 위험, 전염병 위험, 실직 위험, 건강 위험, 지진 위험, 재해 위험, 사고 위험,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경제도 불안하고 가정도 불안하고 치안도 불안합니다. 미국 학교 총기 사고, 보스턴 마라톤대회 참상. 우리나라는요? 학교에서 사고가 터졌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보고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씩 “요즈음 세상은 참 살기 좋은 세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과거와 비교해서 더 좋은 세상을 만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성도는 오죽하면 이렇게 말한다고 했습니다. “주님, 천천히 오세요. 좀 더 누리고 싶어요.”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을 만족해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요?
현대의 삶은 마치 살얼음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 관계가 깨지고 사건이 터질지 모릅니다. 모두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불안해합니다. 만약 이대로 영원히 살아야 한다면 이 자체가 지옥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제발 지옥 같은 여기서 날 꺼내 줘!” 학생이든 어른이든 이 지옥과 같은 상태를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세계적인 정치가도, 철학자도, 과학자도, 종교인도, 교육자도, 문화스포츠인도, 그 누구도 속 시원히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세한 차이로 세계 1위와 2위와 3위는 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해결을 못하는 난제가 수두룩합니다. 오히려 세계 경제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사회의 여러 가지 형태의 폭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경쟁적인 군사력의 확장으로 전쟁의 위험도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제발 지옥 같은 여기서 날 꺼내 줘!”
누가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근본적으로 해결하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때 세상의 모든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풀리게 됩니다. 그런데 매우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도와주고 싶어 하시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적극 도와주시면 되는데 하나님께서 실제로 얼마나 도와주시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참으로”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힘써 도와주려고 하시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도와주기를 원하십니다. “10절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13절 내가 너를 도우리라, 14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거듭거듭 강조하셨습니다. 참으로 도와주신다는 것을 표현하시려고 그렇게 반복하신 것입니다. “참으로”(아프)라는 말은 접속사로 복합적 의미일 때는 ‘진실로’(NASB, surely)라는 말이 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진짜로 도와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데 어떻게 도와주실까요? 본문에 나오는 ‘도와주다(아자르)’는 주로 군사적인 지원의 성격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이 단어로 표현할 때는 빈번하게 군사적 성격을 띱니다. 역대하 26장 6-8절에서 그 사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웃시야 왕이 블레셋 사람들과 싸울 때 성벽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성읍을 건축할 정도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또한 암몬 사람들이 웃시야 왕에게 조공을 바칠 정도로 크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하여 웃시야 왕이 매우 강성하여졌습니다. 이제 그의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습니다. 솔로몬 왕 시대 이후 가장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배후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7절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도우사 블레셋 사람들과 구르바알에 거주하는 아라비아 사람들과 마온 사람들을 치게 하신지라.” 하나님이 그를 도우셨으므로 대승을 거둔 것입니다.
그때든 오늘날이든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칼과 창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군사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군사력이 있어도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무엘상 17장에 그것을 증명할 역사적인 사건이 나옵니다. 결국 전투에서 쓰러진 쪽은 누구입니까? 칼과 창과 막강한 대군을 이끌고 큰소리 “뻥뻥” 치던 골리앗이 쓰러졌습니다. 오히려 자랑하던 자기 칼에 죽었습니다.
그 당시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보면 골리앗의 엄포에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 심지어 도망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울 왕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너무 다급해서 내놓은 생각이 골리앗을 죽이는 사람에게는 많은 재물을 주어 부하게 하고 집안의 세금도 면제시켜주고 자기 딸까지 결혼시켜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파격적으로 대우해준다고 해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도무지 승산이 없는 싸움에서 어떻게 어린 소년 다윗이 이길 수 있었습니까? 어린 소년 다윗은 “나는 여호와의 이름,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칼과 창에 있지 않다”라고 하면서 겁도 없이 골리앗과 정면 대결하였습니다. 사울 왕이 자기의 군복과 투구와 갑옷과 칼도 주었으나 다윗은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자 소년의 힘을 가지고도 작은 돌멩이를 가지고도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결을 받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누구도 위협을 주면서 큰소리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면 그것은 무용지물이 됩니다. 오히려 막강한 힘이 되어줄 줄 알았던 그것으로 인해 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어느 시대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때까지 그렇게 도와오셨습니다.
신약성경에도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9절과 20절을 보면 짐승이 패배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그 결말이 어떻게 납니까?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영적 전쟁에서도 승리합니다.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이 군사적인 성격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때 비군사적인 개념의 도우심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자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도우심을 표현할 때는 군사적인 성격이 더 강합니다. 그만큼 더 강력하게 도와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인 도우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것보다 군대를 파견한다는 것은 보다 더 강력하게 돕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명까지도 주면서 도와주겠다, 남아 있는 가족의 희생까지도 감수하겠다는 엄청난 도움입니다. 간접적으로 돕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명과 그 모든 것을 던지면서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군사적인 원조와 같이 강력하게 우리를 도와주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참으로 강력하게 도와주시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도와주시고 계십니까? 본문의 상황은 바벨론 포로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머나먼 이국땅에 군사적으로 대제국인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 있더라도 다시 회복시켜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군사적인 힘을 초월해서 도와주셔서 풀려나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실제로 그렇게 해주셨습니다. 아무리 철벽같은 성벽으로 둘러싸고 강력한 군사력으로 둘러싸도 손쉽게 풀려나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본문 10절은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네 하나님이다”라고 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도와주시는 그 분은 누구십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아빠 아버지께서 오늘날 우리를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참으로 도와주시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하나뿐인 아들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참으로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유명한 성경구절을 아시지요?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성령님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보혜사’(파라클레토스)이십니다. ‘돕는 자’(NASB, Helper)라는 뜻입니다. 헬라의 고전 문헌에는 ‘돕기 위하여 부름을 받은 자’라는 수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신약성경에서는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요청을 받아 우리에게 보내어진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한복음 14장 16절).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영원히 함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님을 통해 가르침을 받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렇게 참으로 우리를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도록 하심으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을 도와주시기도 하십니다.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주님으로 고백하게 해주셨습니다.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도 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의 여정동안 모든 일에 늘 함께 해주시면서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참으로 도와주시는 하나님께서 오늘날 세상을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안한 이런 상태로 영원히 지속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해주심으로 이 지옥과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십니다. 생명을 주시되 더 풍성함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벗어나게 하십니다. 죽이고 빼앗는 생지옥을 만들어버리는 마귀의 일을 강력하게 멸해버리시는 구주 예수님을(요일 3:8) 통해 우리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 됨과 게으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약속을 철저히 지키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좋지 못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키셔서 참으로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영생과 더 풍성함을 누리고 사명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힘써 참으로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아주 귀한 말씀이 이사야 49장 8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아멘.
하나님께서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아야 하는 날에 하나님께서 가만히 팔짱끼고 계시면 어떻게 되겠어요?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으로 도와주셔서 구원받게 해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성령님도 보내주셔서 구원해주십니다. 이렇게 참으로 도와주셔서 구원해주심으로 천국도 기업으로 상속받도록 도와주십니다.
이 뿐만 아니라 참으로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해주셔서 도와주고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해주셔서 크고 작은 일상 삶 가운데서도 늘 도와주고 계십니다. 여러 가지 불안한 상황에서도 벗어나도록 도와주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참으로 우리를 강력하게 돕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가정과 학업과 생업을 적극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영생과 더 풍성한 삶과 사명을 위하여 저와 여러분을 보다 더 많이 도와주시기를 간구합니다.
[2013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162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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