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적강해/기타설교

(마 12:7) 주일을 주일답게 지키려면

by 이서영 목사 2016. 12. 11.



(마 12:7) 주일을 주일답게 지키려면



--------------------------------------------------------------------

사도신경, 즐겁게 안식할 날(새 43장), 대표기도, 성경봉독

--------------------------------------------------------------------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다가 배가 고파 이삭을 잘라먹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보고 안식일에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했다고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예로 들어(3, 4) 배가 고파 먹는 것은 안식일을 어긴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대답하셨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장면인데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신 것도 마찬가지 이치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밀밭에서 회당에 들어가시니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은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11, 12)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다른 손처럼 멀쩡하게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안식일에 배가 고파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몸이 아파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여 함께 안식을 누리게 하는 것이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주일에 예배당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으로 주일 성수했다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 함께 안식을 누리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의미하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합독하겠습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아멘.


주일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알았다면 자비를 베풀어 배가 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주고 몸이 아파 괴로워하는 사람을 고쳐줄지언정 정죄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보면 매우 꼬박꼬박 주일을 지키고 예배드리고 헌물을 드렸다고 봐야 합니다. 이들의 경건생활을 누가복음 18장 11절 말씀과 12절 말씀에 나오는 기도하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바리새인들은 토색하지 않고, 불의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을뿐더러 기도도 하고 금식도 하고 십일조까지 드렸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빠진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3장 23절에 말씀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아멘.

 

여기서 “긍휼”이란 단어가 바로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자비”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원어원형을 보면 두 단어 모두 “e[leo"(엘레오스)”인데 “자비”(mercy)라는 뜻과 “긍휼(compassion)”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단어가 주는 의미는 불쌍하게 여기고 도와주므로 불쌍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 없게 되어 다 함께 안식을 누리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바리새인들에게 빠진 것은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꼬박꼬박 잘 지켜서 매우 경건한 것처럼 보였지만 자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규정은 중요하게 여기고 지켰지만 불쌍히 여기지는 않았으므로 먹여주고 고쳐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외식한다고 책망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경건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라고 하였듯이 참된 경건은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비를 베풀어주는데 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부장 고넬료의 경우에 그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 10:2). 아멘. 경건한 사람으로 불린 것은 하나님을 섬길 뿐만 아니라 백성을 많이 구제하였기 때문입니다.


과연 어떠합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는 어떠합니까? 주일에 예배당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 못지않게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습은 주일에 예배를 잘 드리는 것으로만 증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어떻게 해야 주일을 주일답게 잘 지킬 수 있겠습니까?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도 드려야 하지만 무엇을 또 해야 합니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이렇게 자비를 베푸는 이유는 하나님의 성품이 그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 말씀처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은 호세아 6장 6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아멘.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자비”는 구약성경 말씀에 나오는 “dseje(헤세드)”의 역어로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호세아 6장 6절 말씀에 나오는 “인애”가 바로 그 단어입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9장 13절에서도 인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의 집에서 음식을 드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아멘.

   

여기에서는 “긍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역시 오늘 본문 말씀의 “자비”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반복해서 강조하시는 것은 긍휼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자비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 자체가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4-6절 말씀을 보면 그러하신 성품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아멘.


이처럼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하신 성품으로 말미암아 허물로 죽은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살려주시고 일으켜주셔서 하늘에 앉혀주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그러하신 성품을 베드로전서 1장 3절 말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아멘.


그리고 디도서 3장 5절 말씀에서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아멘.


하나님은 이처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므로 우리도 긍휼히 여기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33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용서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아멘.


그러므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성품과 동떨어진 주일 성수가 아니라 자비를 베푸시는 자비의 하나님의 성품이 묻어나는 주일을 지킬 때 주일의 의미를 살린 주일 성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6절 말씀을 보면 그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아멘.


이웃에게 자비를 베푼 예화로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을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해서 물을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는 장면 가운데 나오는 말씀인데 누가복음 10장 30-37절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아멘.

 

이때 나오는 “자비”(37)가 바로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자비”와 같은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불쌍하게 여겨 자비를 베푸는 자가 이웃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면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37)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가서 이와 같이 자비를 베풀어야 하겠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 하거나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등으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순종하여 이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병이 들어 아파하는 자를 위로하며 고쳐주므로 자비를 베푸는 주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셔서 우리 모두가 함께 안식을 누리게 되는 진정한 의미의 주일다운 주일을 지키시길 바랍니다.


--------------------------------------------------------------------

합심기도(주일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자비를 베풀어 함께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





[ⓒ 2016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cafe.daum.net/truegooddisciples]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