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14장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거처에 대해 이르심
마무리를 잘해야 하는데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하려고 하십니까? 13-17장은 예수님께서 붙잡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사명의 완수를 앞두고 마무리하시는 것에 관한 말씀인데 그 가운데 14장은 예수님께서 거처를 마련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집에 거소를 예비해주시고 또한 성령님께서 속에 거하시도록 해주시고 아버지와 함께 거처를 함께 해주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4장 개요
✙✙✙ 14장 구절
요한복음 14장에서 대표적인 구절을 선정한다면 예수님께서 거처를 예비해주신다는 3절입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14장 주제
요한복음 13-17장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예수님께서 붙잡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사명의 완수를 앞두고 마무리하시는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14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거처에 대해 이르신다는 관점에서 이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4장은 예수님께서 사명의 완수를 앞두고 마무리하시면서 제자들을 대상으로 마무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거처에 대한 예수님의 강화말씀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1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거처를 마련해주심에 있어 아버지 집에 거처를 마련해주시고 성령님이 속에 거하시도록 해주시고 아버지와 함께 거처를 함께 해주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4장을 보면 이러한 흐름이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주제를 도출해 본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거처에 대해 이르심이 됩니다.
✙✙✙ 14장 구조
14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 예수님의 세 제자인 도마와 빌립과 가룟인 아닌 유다가 질문하고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유형이 세 번에 걸쳐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1-6절인데 예수님께서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을 예비하러 가셨다가 다시 오시겠다는 장면이고 중반부는 7-20절인데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주셔서 영원히 속에 함께 계시도록 하시겠다는 장면이며 후반부는 21-31절인데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함께 거처를 말씀에 순종하는 자와 함께 하시겠다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예수님께서 아버지 집에 가시는 길이 되신다는 것과 예수님을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라는 것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나타내주신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거처를 마련해주시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데 아버지 집에 거하는 거처와(2)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거처와(17)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함께 해주시는 거처(23)입니다.
이러한 것을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으로는 알지 못하게 되지만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보내주신 보혜사이시자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함께 해주시는 사람은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계명과 사랑의 관계도 살펴볼 수 있는데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계명에 순종하게 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게 되고 거처를 함께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가셨다가 거처를 예비하시면 다시 오시기 때문에 근심하지 말고 오히려 평안히 지내고 기뻐해야 한다는 것에 관해 말씀하신 것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14장에서는 거처를 마련해주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세 곳의 처소를 마련해주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버지 집에 거처를 예비하신다는 것과(2) 성령님께서 속에 함께 거하시도록 하신다는 것과(16, 17) 아버지와 함께 거처를 말씀에 순종하는 자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23)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4장은 세 제자가 질문하는 것이 반복해서 나오는데 도마는 가시는 길을 어떻게 압니까라고 하였으며(5) 빌립은 아버지를 보여 주옵소서라고 하였으며(8) 가룟이 아닌 유다는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고 하십니까라고 하는 것을(22)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예수님께서 길이 되신다는 것과(6) 예수님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며(9) 예수님과 아버지께서 상호내주하신다는 것과(10, 11)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나타내주시며(23)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사랑하시고 아버지의 명령대로 행하시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고 하셨다는 것을(31) 볼 수 있습니다.
14장은 도마와 빌립과 가룟인 아닌 유다가 질문한 3구절을 제외하면 모든 말씀이 예수님께서 친히 강화해주신 말씀입니다.
이러한 14장을 보면 삼위일체의 하나님을(16, 26) 볼 수 있으며 예수님과 아버지께서 상호내주하시는(10, 11)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제자들도 내주하게 되는(20)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상호내주하시고 성도들 안에 거하시는지 명백하게 잘 알 수 없지만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거하신다는 것은 사실이며(요 14:20, 23, 17:23, 골 1:27, 고전 3:16) 궁극적으로는 아버지 집인 천국에서 영원히 정착해서 거하게 된다는 것도 사실인 것입니다.
이러한 14장은 거처를 마련해주신다는 특별한 이야기이므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창 2, 민 4, 왕상 2, 왕하 1, 시 11, 잠 1, 사 5, 렘 8, 애 1, 겔 1, 합 1, 습 1, 마 1, 막 1, 요 3, 행 1) “거처”라는 용어를 요한복음에서는 14장에만 3구절(2, 3, 23)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비”라는 용어도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출 2, 민 1, 대하 1, 욥 1, 시 5, 잠 4, 사 2, 렘 1, 겔 3, 욘 4, 미 1, 마 3, 눅 1, 요 2, 롬 1, 고전 1, 엡 1, 딤후 1, 히 5, 벧전 2, 벧후 1, 유 1, 계 2) 용어인데 요한복음에서는 14장에만 2구절(2, 3)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거처와 관련된 말씀도 볼 수 있는데 “거할”(2), “거하고”(10, 11) “안에”(10, 11, 20) “함께”(16, 17, 23) “거하심”(17) “속에”(17)라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통틀어 요한복음에서만 볼 수 있는 “내가 아버지 안에”라는 말씀은 상호내주와 관련된 말씀인데 모두 5구절(10:38, 14:10, 11, 20, 17:21)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14장에 3구절 나오는데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11)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20)입니다.
그리고 거처를 예비하러 아버지께 가시므로 그러한 것과 관련된 말씀도 볼 수 있는데 “가노니”(2) “가서”(3) “감이라”(12) “갔다가”(28) “감을”(28)이라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제3부 13-17장은 아버지께 가시기 전에 마무리하시는 것을 다루고 있으므로 14장에 아버지께 가신다는 말씀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가시기만 하지 않으시고 오시기 때문에 오시는 것과 관련된 말씀인 “다시 와서(3)” “오리라”(18) “온다”(28)라는 말씀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실제적인 역사를 하시는 “성령”님에 대한 말씀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모두 10구절(1:32, 33, 3:5, 8, 34, 7:39, 14:26, 15:26, 16:13, 20:22) 나오는데 14장에는 1구절(26)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혜사”(16, 26)와 “진리의 영”(17)을 추가하면 성령님에 대한 언급이 조금 더 늘어나게 됩니다.
“진리의 영”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통틀어 요한복음 1구절과(14:17) 요한일서 1구절에만(4:6) 나오며 “보혜사”는 요한복음에만 4구절(14:16, 26, 15:26, 16:7) 나올 정도로 매우 독특한 용어인데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세상”과 관련된 구절을 살펴보면 요한복음이 56구절로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세상과 연관하여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17장이 12구절로 가장 많으며 16장과 14장이(17, 19, 22, 27, 30, 31) 6구절로 그 뒤를 이어 많이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4장은 길이신 예수님께서 마련해주시는 거처에 대한 말씀이므로 이와 대비되는 세상이 언급되고 세상의 임금(30)이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으로는 영원히 편안하게 거처를 마련해주지 못한다는 것이고 세상은 영원히 살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사랑”을 검색해보면 요한복음이 39구절로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14장에 6구절이 나올 정도로 사랑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에 대해 언급하신 것을 모두 찾아보면 6구절로 9곳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나를 사랑하면”(15) “나를 사랑하는 자니”(21) “나를 사랑하는 자는”(21) “나도 그를 사랑하여”(21) “나를 사랑하면”(23)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23) “나를 사랑하지”(24) “나를 사랑하였더라면”(28)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31)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을 살펴보면 특징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나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언급을 많이 하셨다는 것과 성격이 다른 사랑을 언급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격이 다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사랑을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관련지어 언급하신 것을 볼 수 있기(15, 21, 23, 24) 때문입니다.
14장에는 이러한 것을 강조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게 되어 있다는 것을 거듭해서 강조하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킨다는 말씀을 14장에 무려 세 차례나(15, 21, 23) 말씀하실 정도로 매우 강조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나의 계명”(15, 21)과 “내 말”(23, 24)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말씀이 중요하다는 것이며 그만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14장 개관
단락 | 단락별 개요 | |
1-6 | 예수님께서 아버지 집에 거처를 예비해주심 | |
7-20 | 예수님께서 성령님이 거하시도록 해주심 | |
21-31 |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함께 거처를 함께 해주심 |
14:1-6 예수님께서 아버지 집에 거처를 예비해주심
● 14:1-6 예수님께서 아버지 집에 거처를 예비해주심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아버지 집에 거처를 마련해주신다는 전반부 장면은 1-6절인데 예수님께서 아버지 집에 제자들을 위하여 “거처”(2)를 예비하러 가셨다가 “거처”(3)를 예비하시면 다시 오셔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영접하셔서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제자들도 있게 해주신다는 장면입니다.
잠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거처도 있어야 하겠지만 영원히 사는 천국에는 더욱 더 거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나그네 생활을(벧전 1:17, 2:11) 청산하고 영원히 정착할 곳은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궁극적으로 영원히 살 곳은 천국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귀한 일을 예수님께서 수고해주셔서 영원히 거할 처소를 마련해주신 것입니다.
이 장면의 말씀은 13장 마지막 부분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세 번 부인하게 된다고(38) 말씀하신 다음에 이어서 하신 말씀입니다.
마지막 부분인 13장 33절부터 보면 예수님께서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고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36)라고 하였는데 이에 예수님께서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36)고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하시자 베드로가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37)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8)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가시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고 부인하게 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근심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므로 예수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고 말씀하신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근심하지”의 원어원형은 “ταράσσω(타랏소)”인데 “뒤흔들다, 동요하다, 불안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동요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근심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고 하신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은 아버지 집인 것을 알 수 있으며 제자들을 남겨두고 혼자만 훌쩍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거처를 예비하면 다시 오셔서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에 함께 있게 해주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2-3).
“예비하”(2, 3)의 원어원형은 “ἑτοιμάζω(헤토이마조)”인데 “준비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가게 되면 거처를 준비해 놓고 다시 오셔서 영접하여 함께 있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예수님 이름의 뜻대로 “임마누엘”(마 1:23)해주셔서 예수님께서 함께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하신 예수님을 “믿으라”(1)는 것입니다.
이러한 14장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에 나오는 장면은 도마가 질문한 길을 배경으로 하여 예수님께서 아버지 집에 거처를 준비하시는 것을 밝히면서 예수님께서 그러한 것에 이를 수 있게 하시는 길이시라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에 대해 말씀하시자 도마가 그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4)고 하시자 도마가 말씀드리길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5)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는 길을 너희가 안다고 하셨으나 앞서 살펴본 시몬 베드로처럼 도마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6)고 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길이 될 수 없고 오직 예수님만이 길이시므로 예수님을 통해 종착지인 아버지께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거짓말하지 않고 실제로 “ἐγώ εἰμί(에고 에이미: 나는 나이다)”라고 자기선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누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속이려고 말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도 실제로 하나님 아버지께 가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 되셔서 아버지 집에 영원히 거할 처소를 마련해주시고 가게 해주시고 거하게 해주시는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14:7-20 예수님께서 성령님이 거하시도록 해주심
● 14:7-15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고 하심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7-20절은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속에 영원히 거하시게 해주신다는 중반부 장면에 대한 것입니다.
이 장면은 두 장면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 장면은 7-15절입니다. 예수님과 아버지께서 상호내주하신다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안에 거하시고 “아버지”께서는(10, 11) 예수님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70)고 하시자 빌립이 말씀드리기를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8)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직접 볼 수는 없지만(요 5:37, 6:46)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이신 예수님을(고후 4:4, 골 1:15, 히 1:3) 본 것이 아버지를 본 것인데 빌립이 보고도 그러한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반부에 나오는 장면은 빌립이 질문한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것을 배경으로 하여 예수님을 본 것이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밝히면서 예수님과 아버지께서 상호내주하신다는 것과 성령님이 속에 거하게 되신다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알았고 보았다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자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9)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어서 계속 말씀하시기를 상호내주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10)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어서 또다시 상호내주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11)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상호내주하시면서 말과 일을 통해 역사하시는 것을 믿으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믿는 사람은 그도 할 것이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것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12)고 하셨습니다.
더 큰 일을 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예수님께서 가시면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기(16) 때문입니다.
사람은 미약하지만 보혜사 성령님의 능력은 무한하시지 않습니까? 그러하신 성령님께서 거하시면서 역사해주시면 놀라운 일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13-14)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간절히 구해야 한다는 것을(눅 11:5-13)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고 예수님께서 행하여주시면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어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15)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11)고 하신 말씀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11)고 하신 말씀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14)고 하신 말씀도 믿고 그대로 순종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 14:16-20 성령님이 거하시도록 해주심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16-20절은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속에 영원히 거하시게 해주신다는 중반부의 두 번째 장면인데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영원히 함께 있게 해주신다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또 다른 보혜사”(16)이시자 “진리의 영”(17)이신 “성령”(26)님을 함께 있게 해주시고(16) 속에 계시게 해주신다는 것을(17)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몸은 이렇게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인 “성령의 전”(고전 6:19)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그 사람은 멸하게(고전 3:16-17)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성도들의 몸은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인 것을 믿고 탐욕과 음행과 같은 불의의 무기로 사용하지 않고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몸이 되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아버지께 구하셔서 보내주십니다.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셔서 영원하도록 제자들과 함께 있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16)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통틀어 요한복음에만 4구절(14:16, 26, 15:26, 16:7) 나오는 정도로 매우 독특한 용어인 “보혜사”(16)의 원어원형은 “παράκλητος(파라클레토스)”인데 “돕는 자, 변호자, 위로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요청하셔서 그러하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므로 영원히 함께 하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영원히 함께 계신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으로 거듭난 이후의 삶에 대한 것인데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에 이어서 진리의 성령님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는데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7)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진리의 영을 알지 못하므로 받지 못하지만 제자들은 안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진리의 성령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거하시고 제자들 속에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함께 계시므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님은 예수님을 증언하시기도(15:26) 하시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도(16:13) 해주십니다. 진리의 성령님께서 이렇게 해주시므로 알게 될 수밖에(고전 2:10-14)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어서 계속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8)고 하셨습니다.
또한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19-20)고 하셨습니다.
이곳에서도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상호내주하신다는 것을 10-11절에 이어 또다시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0-11절과 다른 것은 이번에는 제자들과도 상호내주해주신다는(20) 것입니다.
상호내주의 신비로운 방식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잘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함께 거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14:21-31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함께 거처를 함께 해주심
● 14:21-24 아버지와 함께 거처를 함께 해주심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21-31절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함께 거처를 함께 해주신다는 후반부 장면에 대한 것입니다.
이 장면은 두 장면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 장면은 21-24절입니다. 예수님과 아버지께서 거처를 함께 해주신다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아버지께서 사랑해주시고 “우리가”(23) 그에게 가서, 즉 예수님과 아버지께서 가셔서 거처를 함께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계명을 지키는 자가 사랑하는 자라는 것과 그러한 자가 사랑을 받게 될 것이고 나타내어주신다는 것을 말씀해주셨는데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21)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자 가룟인 아닌 유다가 예수님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22)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후반부에 나오는 장면은 가룟인 아닌 유다가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나타내지 아니하시는 것에 관해 질문하는 것을 배경으로 하여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나타내주신다는 것과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사랑하시고 아버지의 명령대로 행하시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고 하셨다는 것을 밝히면서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함께 거처를 함께 해주신다는 것과 성령님을 보내셔서 알게 해주신다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23)고 하셨습니다.
21절에 이어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1절에서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으며 23절에서는 이를 바꾸어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가 하는 말을 기뻐하면서 지키는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도 그 이상으로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과 예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없다거나 있어도 거의 지키지 않는다고 가정해보면 그 중요성을 크게 깨달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말씀이 없으면 무엇을 믿어야하는지도 모르게 되고 그리하여 믿지 못해서 구원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치 자기의 소견대로 행한 사사시대의 사람들처럼(삿 17:6, 21:25) 불완전한 사람의 생각과 기준대로 행하다보면 점점 부패하고 타락하고 상황이 나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으며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잘 순종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순종을 잘하는 사람은 아버지께서 사랑해주시고(21, 23) 예수님께서도 사랑해주셔서 나타내주시고(21) 아버지와 함께 오셔서 거처를 함께 해주시기도(23) 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됩니까?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의 계명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것과는 반대가 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는데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24a)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24b)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스스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계신 아버지께서(10-11)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 14:25-31 성령님을 보내셔서 알게 하심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29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30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25-31절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함께 거처를 함께 해주신다는 후반부의 두 번째 장면인데 예수님께서 “성령”(26)님을 보내주셔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주신다는 것과 관련된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는 직접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으나 떠나가신 이후에는 보내주시는 보혜사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25-26).
예수님께서 떠나가시면 제자들이 근심할 수 있으므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1)고 하신 말씀에 이어 또다시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27).
예수님께서 이어서 계속 말씀해주셨는데 갔다가 다시 오므로 나를 사랑하였다면 아버지께 가는 것을 오히려 기뻐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28).
예수님은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나님과 동등하시나 자신을 비우시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빌 2:6-8) 예수님이십니다.
이렇게까지 하시는 예수님이시므로 28절에서는 아버지가 나보다 더 크시다고 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일이 일어난 때에 제자들이 믿도록 하시려는 것인데 말씀하시기를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29)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말씀하신 것을 14장 마지막 부분에 볼 수 있습니다.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30-31).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사랑하시므로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추후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죽기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앞서 살펴본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게 된다는 말씀의 좋은 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사랑하시고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시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고 하셨다는(31) 것입니다.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재개정일 2024년 1월 12일
개 정 일 2020년 9월 17일
발 행 일 2018년 9월 5일
지 은 이 이서영
출 판 사 퍼플
출판등록 제300-2012-167호 (2012년 9월 7일)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1번지
대표전화 1544-1900
홈페이지 www.kyobobook.co.kr.
ISBN 978-89-24-12034-9
ⓒ 이서영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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