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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강해설교

(마 24:30 강해설교) 예수님의 오심(1)

by 이서영 목사 2018. 11. 18.


(마 24:30 강해설교) 예수님의 오심(1)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예수님의 오심과 연관된 구절을 신약성경에서 살펴보려고 하는데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어떤 분이시며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고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마태복음에서 그러한 것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장면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전파하는 장면입니다.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였는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에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고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곧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3장 3절입니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길을 준비하고 곧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깊고 긴 계곡을 지나갈 때는 다리를 놓고 크고 높은 산을 지나갈 때는 터널을 뚫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고 곧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것은 죄를 회개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죄가 계곡이나 산처럼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을 막고 있으므로 죄를 회개하여 길을 평탄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상황을 보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세례 요한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3:5-6).


그들에게 세례를 준 세례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오는 것을 보고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3:8) 하면서 내 뒤에 오시는 예수님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고 성령님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3장 11절입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이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하시자 세례 요한이 말리면서 말씀드렸습니다.


마태복음 3장 14절입니다.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세례 요한이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님은 자기보다 능력이 많으시므로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고 자기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성령님과 불로 세례를 베푸신다고 하였는데 그러하신 예수님께서 실제로 눈앞에 오시자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능력이 많으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성령님과 불로 세례를 베푸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많은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셔서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져주셨습니다. 그러자 열병이 떠나가고 일어나서 예수님께 수종을 들었습니다(8:14-15).


이러한 소문이 사방으로 금방 퍼져나갔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날이 저물자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주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16절입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러한 것을 보면 예수님은 과연 능력이 많으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귀신들을 쫓아내주시고 병을 고쳐주시니 얼마나 크신 능력입니까?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귀신과 불치병을 전 세계가 달려든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해결되지 않으니 악한 영인 귀신이 그대로 있고 병을 고치지 못하기에 불치병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과학과 의학과 기술이 해결하지 못하는 귀신과 불치병의 문제를 거뜬하게 해결해주시니 그 능력이 얼마나 크십니까?

 

세 번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셔서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셨습니다. 그러자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왔는데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죄를 사해주시고 고쳐주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2절입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러자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고 하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중풍병자에게 네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고 하시자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9:3-7).


이 역시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병만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죄까지도 사해주셨습니다.


불치병을 고쳐주는 것도 어려운데 죄까지 사해주시니 이 세상에서 그 누가 이러한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권능을 가지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가 있으신 것입니다.

 

네 번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죽은 한 관리의 딸을 고쳐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금식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면서 방금 죽은 내 딸이지만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주시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마태복음 9장 18절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셔서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에게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시자 그들이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내보내신 후에 들어가셔서 소녀의 손을 잡으시자 일어났습니다(9:23-25).


능력의 예수님께 이번엔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산 사람의 불치병을 고쳐주신 것만 아니라 이번에는 죽은 사람을 살려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보면 죽은 사람을 살린다고 하면 당연히 비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능력은 죽음도 가로막지 못하고 항복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알 수 있는 또 다른 교훈은 이제까지 즉 두 번째에서 네 번째 장면까지 고쳐주신 것을 보면 예수님께 나오면 해결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8장 16절에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9장 2절에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9장 18절에 “와서 절하며 이르되”라고 한 것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예수님께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오니까 해결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고쳐주신다는 소문만 듣고 가만히 있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고침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림의 떡으로 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침을 받게 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왔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 오게 되자 고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왔을 때 다 고쳐주신 것을 볼 때 우리도 예수님께 오게 되면 해결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도 고침을 받고 해결 받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고(10:1) 내보내시면서 명령하시는 가운데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3절입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긴 오십니까? 네,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신다고 하신 말씀대로 오십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시 오시지 아니하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원히 죄악 가운데 있어야 하고, 영원히 마귀 세상에서 살아야 하고, 영원히 박해 가운데 있어야 하고, 영원히 아프고 병들고 다투어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러한 저주 받은 모든 것을 말끔하게 해결하여주시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사역을 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이 보낸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는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이신 것에 대해 여쭈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3절입니다.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전파하였지만 풀려나지 못하고 갇혀 있는 처지에 놓이게 되자 여쭈어보았을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등의 대답을 해주시는 것을(11:4-6)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떠나자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세례 요한에 대해 말씀해주시고는(11:7-19)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책망하시는 것을(11:20-24)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이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러한 말씀 가운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해주겠다고 하시는 말씀을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해서 쉬게 해주겠으니 오라고 하시므로 우리는 예수님께로 오면 됩니다.


앞서 예수님께 와서 고침을 받은 사람들처럼 예수님께 오게 되면 귀신과 병과 죄와 죽음과 같은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짐을 해결 받고 쉬게 되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다음에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셔서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내시는 동안에 제자들이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14:22).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셔서 혼자 계셨는데 제자들이 탄 배가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14:23-24).


그때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5절입니다.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그러자 제자들이 놀라서 유령이라고 하면서 무서워하여 소리를 질렀는데 예수님께서 안심하라 나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14:26-27). 그러자 베드로가 주님이시면 나를 명하셔서 물 위로 오라고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8절입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이에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시자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서 가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9절입니다.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이와 같은 일들이 있고 난 다음에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치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32절입니다.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이러한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연을 초월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위급한 상황에 처할 때 찾아오신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시면 그 어떤 환경도 극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도 알 수 있게 됩니다. 아울러 예수님께서 오셔서 함께 해주시면 평안하게 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여덟 번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심에 대해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면서 말하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16:22-23) 다음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는데 그러한 말씀 가운데 오시는 것에 대해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7-28절입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을 이곳에서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시고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시 오시면 꼭 하시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마음대로 살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서로 피해보게 되고 엉망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각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에 대해 그대로 갚아주신다고 하시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한편으로는 두려운 말씀이고 한편으로는 위로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아홉 번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에게 안수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려오자 제자들이 꾸짖자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천국은 이런 사람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 13-14절입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어린아이라고 할지라도 무시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귀하게 여기시고 안수해주셨습니다.

 

이곳에 나오는 어린아이(paidiva, 파이디아)는 일곱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의미하므로 어린이 가운데서도 더 어린 아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라고 해서 선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른보다는 순진하게 말을 잘 듣는 편입니다. 간혹 떼를 쓰기도 하지만 시키는 대로 잘 따라하는 것이 어린아이입니다.


또한 어린아이는 어른보다는 때가 덜 들어서 상대적으로 덜 약삭빠르고 순수하기도 합니다. 꾀가 부족하고 힘이 약하니까 쓸 수 있는 수단이 떼를 쓰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어른보다는 순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또한 어른보다 몸집이 더 크다고 생각하지 않고 작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식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도 더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자기를 낮출 수밖에 없고 그만큼 겸손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천국은 이러한 특성을 가진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또한 교회에서 청장년만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주일학생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마지막 열 번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시는 징조에 대해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오셔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예수님께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예수님께서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는지에 대해 조용히 와서 여쭈었습니다(24:1-3).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해주셨는데 그 가운데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0절입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을 또다시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반드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데 오실 때 징조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징조가 있느냐하면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의 징조를 보게 되는데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는 것을(24:29)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징조가 있는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면서 그들이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시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가게 되는 사람은 땅을 치면서 통곡하게 될 것이고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게 되는 사람은 너무너무 기뻐서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있으므로 예수님께서는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오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장 44절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이러한 것을 강조하시기 위해 비유를 들어 말씀해주셨는데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과 악한 종에 대한 비유를 말씀해주셨습니다(24:45-51).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므로 복이 있는 종이 되어 주인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그 종에게 맡겨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악한 종은 동료들을 때리고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종이 되어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게 되어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48절입니다.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예수님께서 더디 오신다고 생각하고는 그러한 일을 행하다가 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악한 종이 되지 말고 예수님께서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오시므로 잘 준비하여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이 일의 중요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천국에 대한 비유인데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하셨습니다(마 25:1-13).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였는데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고 있었으나 기름을 가지지 않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습니다.


신랑이 더디 오자 모두 다 졸면서 잤습니다. 마태복음 25장 5절입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그러고 있는데 밤중에 신랑이 왔으니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러자 모두 일어나서 등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미련한 자들은 기름이 준비가 되지 않아 사러 갔습니다. 그 사이에 신랑이 왔으므로 준비하였던 처녀들은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되었고 문은 닫혔습니다.


마태복음 25장 10절입니다.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기름을 준비해 와서 문을 열어 달라고 하였지만 이미 때가 늦어버렸으므로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므로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반드시 보응해주신다는 것도 알 수 있으므로 예수님께서 깨어서 준비하라고 하신 것을 평소에 잘 준비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도 잘 준비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을 분명하게 믿으시고 평소에 잘 준비하셔서 예수님 앞에 서게 될 때 부끄러운 구원이 아니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과 슬기 있는 다섯 처녀와 같은 구원을 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이제까지 마태복음 가운데 예수님의 오심과 연관된 구절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마가복음 이후는 다음 주에 이어서 계속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2018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cafe.daum.net/truegooddisciples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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