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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주일설교

[맥추주일] 맥추절을 지키라 (출 23:16)

by 이서영 목사 2019. 12. 13.

[맥추주일] 맥추절을 지키라 (출 23:16)

 

요즈음은 쌀농사가 흔합니다. 그래서 쌀이 남아돌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보리농사를 많이 지었습니다. 쌀밥은 거의 못 먹고 꽁보리밥만 먹던 시절이라 보리를 많이 재배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전교생이 보리밟기하러 나가기도 했습니다. 숙제로 보리 이삭을 한 되씩 주워서 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어떤 집에서는 가끔 밀을 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십 년 만에 밀과 보리가 거의 자취를 감출 정도로 쌀이 풍족해졌습니다.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맥추절도 밀과 보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밀과 보리를 거둔 후에 지킵니다. 맥추절은 유월절로부터 일곱 주를 지난 다음에 지키므로 7주 곱하기 7일하면 49일이 되므로 칠칠(77)절 혹은 오순(50)절이라고도 합니다. 이 맥추절은 유월절과 초막절로도 불리는 수장절과 더불어 유대인이 지키는 3대 명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나라는 구정과 추석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유대인은 이 3가지를 명절로 지킵니다. 이 절기들은 하나님께서 매년 특별히 지키라고 지정해주신 절기이므로(출 23:17) 맥추절이 그만큼 매우 중요한 절기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맥추절을 지켜야하는 의미는 무엇이며 이 맥추절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1. 사람은 아담 이후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고하면서 살아갑니다.

 

아담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아담 스스로 저주를 자초하였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아담이 불순종해서 땅이 저주받아 평생에 수고해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고’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마아세’인데 ‘일, 노동’을 의미합니다. 노동하는 수고를 해야 먹고 살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수고는 저주받은 수고를 말합니다. 그래서 시편 104편 23절은 말합니다. “사람은 나와서 일하며 저녁까지 수고하는도다.” 인생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파김치가 되도록 노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일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일하면 그 수고는 헛됩니다. 그래서 시편 127편 1절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우리 인생은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 성수하고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관계를 회복하면 저주가 풀리고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다시 찾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무시하면 우리의 인생은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모세가 그것을 시로 지었습니다. 시편 90편 10절입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모세는 120세에 죽을 때까지 눈이 흐려지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고 정정했습니다(신 34:7). 그런 모세였지만 연수는 자랑할 것이 못 되고 남은 것은 그저 수고와 슬픔뿐이라는 것입니다.

 

보리농사든 쌀농사든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잘 지을 수 없습니다. 언제 태풍이 불고 언제 가뭄이 올지 모릅니다. 104년 만의 가뭄이 왔다고 하지 않습니까? 새벽부터 저녁까지 정성을 들여 키워놓아도 비가 오지 않으니까 타 죽어서 다 망치게 됩니다. 농사를 잘 짓고 싶어도 마음대로 짓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농사를 못 짓겠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런데 장마 비가 내리자 가뭄이 많이 해결되었습니다. 농사는 그렇습니다. 사람이 원하는 대로 척척 들어맞지 않습니다.

 

농사 가운데 진짜 농사는 무슨 농사입니까? 자식농사입니다. 그런데 자식농사를 마음먹은 대로 잘 지을 수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더 어려운 것이 자식농사입니다. 이 수고는 하와의 불순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입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이를 낳을 때 수고하면서 고통 가운데 낳습니다.

 

야베스 역시 그런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역대상 4장 9절입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귀한 아들인 것은 수고해서 낳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고통 가운데 고생해서 자식을 낳으면 그것으로 끝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속 썩이는 자식이지만 계속해서 키워야 합니다. 이러한 수고의 바퀴가 계속 돌고 돌아갑니다. 시대를 넘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겪는 일입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웃지 않고 태어납니다. 어떤 분은 호흡하기 위해 기도를 틔우기 위해 운다고 합니다. 그러나 크게 배꼽잡고 웃어도 호흡이 시원하게 뚫릴 것입니다. 굳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우는 것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수고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그렇게 산다고 해도 그 수고가 헛됩니다. 레위기 26장 20절이 말합니다. “너희의 수고가 헛될지라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라.” 신명기 28장 33절도 말합니다. “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 너는 항상 압제와 학대를 받을 뿐이리니.” 수고가 헛될 뿐만 아니라 애써 수고해서 거두어 놓은 것을 오히려 빼앗기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지혜의 왕인 솔로몬이 이 수고에 대해 말했습니다. 전도서 1장 13절입니다.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전도서 2장 11절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전도서 2장 22절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전도서 5장 15절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전도서 5장 16절 “이것도 큰 불행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는 수고가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하나님 없이 수고하는 인생은 이렇게 허무하게 됩니다.

 

2.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면 달라집니다. 회복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므로 수고를 해도 복을 받는 수고를 합니다.

 

요셉이 세계 초강대국인 애굽의 총리가 되고 장가도 가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둘째 아들도 낳고는 이름을 지을 때 이렇게 지었습니다. 창세기 41장 52절입니다.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한 요셉이 한 수고는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그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형통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창 39:2,3,21-23). 그래서 이것을 기억하고 영광 돌리고 감사하기 위해 ‘에브라임’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누구나 형통한 사람이 되고 번성하게 됩니다. 신명기 12장 7절은 말합니다.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누가 복을 주었다고 했습니까? 우리가 수고한다고 해도 보장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수고한 일이 헛되지 않고 잘 거두어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28편 2절은 말합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어야 수고한 것이 물거품이 되지 않습니다. 전도서 2장 24절입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전도서 3장 13절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도서 5장 19절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수고한 대로 즐겁게 먹고 마시고 재물과 부요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16절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수고는 하나님이 함께 해주신 수고를 말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데 본문에 우리가 수고했다는 말만 있지 하나님이 함께 해주셔서 풍성하게 거두게 해주셨다는 말은 없는데요?’ 그래서 성경을 해석할 때는 한 구절만 쏙 빼내서 해석하면 안 됩니다. 문맥을 보아야 합니다. 앞뒤 문맥과 그 성경의 문맥과 다른 성경의 문맥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총정리하면서 거듭 강조하는 신명기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신명기 16장 10절을 찾아봅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수고는 헛수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는 수고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나가서 일부터 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라고 하십니다. 이사야 55장 2절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하나님께 나아가 듣고 듣는 것이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계속해서 65장 23절에 말합니다.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회복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서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주님 없이 나가서 고기를 잡을 때는 밤이 새도록 수고했지만 허탕을 쳤습니다. 빈 그물만 가지고 힘이 쭉 빠져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좀 황당해 보이는 주님의 말씀이지만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서 잡으라”고 하셨을 때 시몬이 대답하였습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똑같은 그물이고 똑같은 배였지만 주님 말씀을 잘 듣자 그물이 찢어지고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눅 5:3-7).

 

이렇게 주님께서 함께 해주셔야 헛수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풍성하게 거두어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고 교회를 세우고 성경을 기록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자기가 수고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이 수고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속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 1장 29절입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위대한 사역을 감당했지만 주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감당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우리가 수고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상급을 받는 것 자체도 알고 보면 우리가 잘해서 상급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 하나님의 은혜로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고해서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힘주시고 복을 주셔서 거둘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본문 가운데 “수고하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수고는 우리가 한 수고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복을 주신 수고입니다. 맥추절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그러한 주 하나님과 더욱 더 함께 하시고 또한 그동안 함께 해주신 주 하나님께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3. 그렇다면 우리와 함께 해주셔서 우리의 수고를 복되게 해주신 하나님께 맥추절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맥추절을 우리가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하면 여섯 가지의 자세로 지켜야 합니다. 본문 다음에 나오는 19절과 신명기 16장 10절에 한 가지가 나오고, 신명기 16장 11절에 두 가지, 신명기 16장 12절에 한 가지, 신명기 16절에 두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 이 맥추절에는 처음 거둔 열매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 합니다. 본문 다음에 나오는 19절을 보면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처음 거둔 열매’(빅쿠르)의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레쉬트)는 ‘첫째, 처음, 시작, 최초, 최상의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의 것을 첫째로 드리는데 최상의 것을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손꼽아보면서 힘을 다해 자원해서 드려야 합니다. 신명기 16장 10절은 말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둘째, 소외된 이웃과 함께 지켜야 합니다. 수고했다고 해서 나 혼자 모두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신명기 16장 11절입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 즐거워할지니라.” 주 하나님께도 감사드려야 하지만 소외된 이웃과도 함께 나누면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성전에서 지켜야 합니다. 어디서 지키느냐하면 성전에 지켜야 합니다. 신명기 16장 11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 즐거워할지니라.” 교회당에 와서 지키고 나누라는 것입니다. 교회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넷째, 모든 성도가 빠짐없이 맥추절을 지켜야 합니다. 신명기 16장 16절은 말합니다.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성도는 모두가 하나님을 뵐 수 있도록 빠짐없이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다섯째, 빠짐없이 맥추절 감사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앞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맥추절에 꼭 참석도 해야 하지만 꼭 감사 예물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여섯째, 구원받은 것을 기억하면서 지켜야 합니다. 신명기 16장 12절입니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하나님께서 무언가 부족하시다거나 욕심이 있어서 참석하고 드리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감격으로 자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감격이 크면 클수록 드리라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맥추절은 유월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유월절 이후 칠 주를 계산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유월절을 꼭 지켜야 하는데 어떻게 지켜야합니까? 신명기 16장 3절입니다.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함께 하셔서 이끌어내 주신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같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성도는 이미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심으로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출애굽하고 홍해바다를 건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14장 3절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네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나무에 달리셔서 저주를 한 몸에 받으심으로 저주받은 수고를 쉬게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깊이 기억할 때 자원해서 즐겁게 기쁜 마음으로 맥추절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오늘은 맥추 감사주일입니다.

 

특별히 날짜도 7월 1일입니다. 그래서 상반기 1월에서 6월까지 결산하기에 좋은 날입니다. 그러므로 그동안 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을 하나하나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셔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것을 비롯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복을 주신 감사거리를 많이 찾아내시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해주시고 복을 주셔서 하반기는 더욱 더 풍성하게 거두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더욱 더 힘을 다해 자원하여 감사드릴 제목이 많아지시고 다함께 즐거움을 기쁘게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2012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128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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