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20:1-13)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성경강해 20200329 참좋은제자들교회 이서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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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대하 20:1-13)
1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2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하니
3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4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5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전 새 뜰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중 가운데 서서
6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7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8 그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주를 위해 건축하고 이르기를
9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10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 사람들을 침노하기를 주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돌이켜 그들을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11 이제 그들이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그들이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
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13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살면서 큰 어려움을 만나면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 주님은 넉넉하게 해결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그러하신 우리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주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도움과 연관하여 성경구절을 중심으로 해서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번째 주제는 간구를 들으시는 주님에 대한 것입니다. 주님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들으시는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주제는 권능이 있으신 주님에 대한 것입니다. 주님은 도와 주시는 권능이 있으신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주제는 언약을 지키시는 주님에 대한 것입니다. 주님은 도와 주겠다는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먼저 첫번째 주제로 간구를 들으시는 주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어떻게 하면 됩니까? 도와 달라고 요청하면 됩니다. 그런데 도와 달라고 하였는데 귀를 막고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도움을 전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도와 달라고 하였을 때 들어주어야 합니다. 도움을 요청하였을 때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들어준다는 것은 말이 쉽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쉬운 일이라면 성경 말씀에 들어주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아주 자연스럽게 잘 하고 있다면 굳이 성경 말씀에 별도로 말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잘 지켜지지 않기에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 대한 것을 그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가난한 자를 어떻게 대해주라고 하였습니까? 지금까지도 잘 모르고 있는데 어떻게 가난한 자들을 제대로 도와줄 수가 있겠습니까?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 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자를 도와주라고 명령까지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명기 15장 11절입니다.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이와 같으므로 하만으로부터 유대인들이 극적으로 구원을 받게 된 부림절에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도 구제하는 일이었습니다. 에스더 9장 22절입니다.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그렇다면 가난한 자와 관련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겠습니까? 시편 9편 12절입니다.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출하여 주십니다. 욥기 5장 15절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강한 자의 칼과 그 입에서, 또한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주시나니.”
시편 35편 10절을 보면 그러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증언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냐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 하리로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우리도 우리 주위에 있는 가난한 자들과 가난한 나라들과 가난한 교회들의 요청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더 볼 수 있는데 시편 72편 12-13절입니다.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이러하신 하나님이시므로 가난한 자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과 관련하여 어떻게 된다고 하셨습니까? 잠언 21장 13절입니다.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가난한 자를 대하는 것과 관련된 것인데 잠언 29장 7절과 14절입니다.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이러하신 하나님이시므로 가난한 자의 요새이십니다. 이사야 25장 4절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요새이시며 환난 당한 가난한 자의 요새이시며 폭풍 중의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예수님께서도 특별히 가난한 자를 돌보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1절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에베소서 4장 28절에서도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고 하였습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우리 주님께서는 이처럼 가난한 자들을 돌보아 주시기에 주님의 의가 영원하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9절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이러하신 하나님이시므로 가난한 자들이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심은 가난 뿐이겠습니까? 가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지만 여러 가지 고초를 당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주님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자들을 돌보아 주시고 그들이 부르짖는 요청에 응답하셔서 도와 주시는 분이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9절을 보면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이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히브리어 원어원형의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재앙”은 “רַע(라)”인데 명사형으로는 “나쁜 것, 해로운 것, 악한 것, 재난, 참화, 환난“ 등의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난리”는 “חֶרֶב(헤레브)”인데 “칼, 검”이란 뜻인데 전쟁을 비유하기도 합니다. “견책”은 “שְׁפוֹט(셰포트)”인데 “심판“이라는 뜻인데 처벌받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재난이나 전쟁이나 심판이나 전염병이나 굶주림과 같은 좋지 않은 것으로부터 구출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9절을 보면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간구를 들어 주시는 주님께서 가난한 자들의 요청을 들어 주시고 온갖 어려움에 처한 자들이 요청하는 것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1-4절을 보면 수많은 연합군들이 쳐들어오자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사밧 왕이 여호와께 “간구하고”(3절) 금식을 공포하였습니다. 그러자 모든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고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4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 우리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모른 척하셨습니까? 간구를 들어 주시는 우리 주님께서 가만히 계실 분이 아니십니다.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들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이후에 나오는 15-17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응답해주신 내용입니다.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자, 어떻습니까? 우리 주님이. 간구를 들어 주시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간구를 들어 주시고 해결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연합군을 두려워하였으며 대적할 능력도 없고 어떻게 할 줄도 모르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까? 도와 달라는 간구를 들어 주시는 주님께서 들어 주시자 대승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는 괴로운 일을 당해 도와 달라고 요청을 드렸을 때 들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의 요청을 들어 주시는 우리 주님을 바라보시고 간절히 부르짖어 간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셔서 오늘날 겪고 있는 전쟁의 위험과 전염병의 위험과 기근과 재난과 비성경적인 잘못된 문화막시즘과 같은 사상과 언론과 교육과 문화와 정치 등으로부터 구출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두번째 주제로 권능이 있으신 주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어떻게 하면 됩니까? 도움을 요청하면 들어줄 사람을 찾아서 요청하면 됩니다. 들어주지도 않고 도와줄 의사도 없는 사람에게 말해 보았자 허탕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어려울 때 도움을 요청했을 때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요청을 들어주고 도와주려고 하지만 막상 도와주려고 해도 능력이 안 되면 도와줄 수 없게 됩니다. 마음 뿐이지 실제로 도움을 주지는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도움을 요청받는 사람이나 요청하는 사람이나 모두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하신 주님께서 듣기만 하십니까? 그것으로 끝입니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시는 분이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간구를 들어 주시는 분이기도 하시고 들으시고 실제로 도움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만한 권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에 비해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권능이 없고 나약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왕인 여호사밧이 연합군이 쳐들어오자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오늘 본문 가운데 3절을 보면 “두려워하여”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두려워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절을 보면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런 권능이 없어 속수무책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여호사밧 왕이 취한 행동은 무엇입니까? 12절을 보면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아무런 능력이 없지만 모든 것에 능하신 주님을 믿고 그러하신 주님께서 도와 달라고 간구를 드린 것입니다.
그 주님은 어떠하신 주님이시라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가운데 6절을 보면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 권세와 능력이 있으시므로 아무도 주님께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연합군이 쳐들어와도 권세와 능력이 있으신 주님께서 도와 주시면 연합군이 이길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권세와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을 역대상 29장 12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그러하신 주님이시므로 다윗 왕이 주님께 권세와 능력이 있으시기에 모든 것이 주의 손에서 받게 된 것이고 그러한 것을 주께 드렸을 뿐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이어서 나오는 역대상 29장 14절입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주님께서 그러하신 분이시므로 다윗 왕은 주님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다고 시인하게 된 것입니다. 많은 것을 드리게 되었지만 자신들의 능력으로 드린 것이 아니라 주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받아서 드리게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사람에게 재물을 얻을 능력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러한 능력을 주셔서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신명기 8장 17-18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처럼 주님은 권세와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도움을 요청했을 때 기꺼이 도와 주실 수 있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힘이 없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주님은 무한하게 도와 주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무한하게 도와 주실 수 있습니까? 감히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도와 주십니다.
그 누가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람을 구원해주고 마귀를 결박하고 사망과 저주를 물리쳐 버리고 새 하늘 새 땅을 창조하여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가게 해줄 수 있겠습니까? 자기 몸 하나 그렇게 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이와 같으므로 아무도 이 일을 해낼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그 권세와 능력이 얼마나 크십니까? 영원하도록 무한하게 도와 주실 수 있는 만큼 크시고도 크시지 않으십니까?
그와 같으신 주님께서 오늘 본문 이후를 보면 도와 달라는 요청에 응답하셔서 권세와 능력을 행하셔서 도와 주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도와 주셔도 조금 도와 주신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이 도와 주셔서 대승을 거두게 해 주셨습니다.
서로 죽이게 하셔서 전멸시켜 주시는 장면인데 역대하 20장 22-24절입니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들뿐이요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
거기에다가 전리품까지 사흘 동안에 거두어 들일 정도로 풍성하게 안겨 주셨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25절입니다.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탈취할새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으므로 각기 탈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거두어들이고.”
자, 어떻습니까? 주님의 권세와 능력이. 연합군을 두려워하였으며 대적할 능력도 없고 어떻게 할 줄도 모르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간구를 들으시는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자 권세와 능력이 있으신 주님께서 전멸시켜 주시고 전리품까지 어마어마하게 거두게 해 주신 것이 말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이후에 나오는 20장 29-30절을 보면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는 것을 듣고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방에서 평강을 주시니까 나라가 태평하게 된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러하신 권세와 능력으로 우리를 도와 주시고 계십니다. 북한의 남침으로 발생한 6·25 전쟁으로 나라가 공산화될 위기에 빠진 우리나라를 구해주신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70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그러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공산화가 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자유 대한민국이 공산주의 체제 국가로 전복될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심지어 공산화가 되기 일보직전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중국이나 북한 체제에서나 볼 수 있는 교회를 탄압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는 도중에 난입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할 말이 있으면 예배가 끝나고 말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신성한 예배시간에 경찰을 투입시킨다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교회를 무시한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러한 일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가능하기나 하겠습니까?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어떤 국가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불순한 권력과 언론과 사회단체와 불순한 자들이 탄압하고 있는 이 모든 상황이 암울해 보이지만 연합군을 완패시켜 주신 권세와 능력이 있으신 주님께서 도와 주시면 승리할 수 있고 자유대한민국과 한국기독교를 지킬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 도와 주셔서 참된 그리스도인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이 늘 수세에 몰리는 것 같았지만 결국에는 머리가 되게 해주시고 승리하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안 될 것 같고 끝장이 날 것 같은 상황에서도 권세와 능력이 무한하게 있으신 주님께서 되게 해주시고 오히려 부흥시켜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는 괴로운 일을 당해 도와 달라고 요청을 드렸을 때 들으시고 도와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권세와 능력이 크신지 세계 모든 만민이 기도드리는 언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누가 새 창조를 해서 그 수많은 사람들을 영원무궁하도록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줄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한 권세와 능력은 제쳐 놓더라도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드리는 언어를 알아듣기나 하겠습니까?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은 고사하고 도와 달라는 언어를 알아듣지도 못할 것입니다. 고대어와 중세어와 현대어를 자유자재로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가정해서 도와줄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알아듣지 못해서 도와주지 못할 것입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의 기도를 알아들을 수 있고 모세의 기도와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의 기도를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지금 현재도 전 세계에서 드리는 각 부족과 민족과 국가의 언어로 드리는 기도를 어떻게 모두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주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셔서 그 모든 언어를 알아들으시고 응답해주시고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권세와 능력이 크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권세와 능력이 있으시고 우리의 요청을 들어 주시는 우리 주님을 바라보시고 간구하셔서 도움을 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셔서 오늘날 겪고 있는 개인과 가정과 생업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이 처해 있는 국가체제 전복과 같은 여러가지 위기 상황으로부터 구출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세번째 주제로 언약을 지키시는 주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요청하는 것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들어줄 뿐만 아니라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들어주고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도와 주겠다고 말한대로 실제로 도와주지 않으면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들어주는 것조차도 난색을 표할 때가 있고, 듣기는 듣지만 도울 힘이 없어 도와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듣고 도와줄 힘도 가지고 있지만 약속한 대로 도와주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도움을 요청하는 간구를 들어 주시는 분이시고, 그러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고, 도와 주겠다는 언약대로 실제로 도와 주시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 가운데 20장 8-9절입니다. “그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주를 위해 건축하고 이르기를,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주님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고 한 언약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언약한 것을 역대하 6-7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하고 나서 기도드린 내용 가운데 역대하 6장 28-29절입니다.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들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거나를 막론하고,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과 고통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이렇게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게 될 때 들어 주셔서 해결해주시기를 기도드리자 주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역대하 7장 12-15절입니다.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 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으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러한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들어 주시고 도와 주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이러한 언약에 근거를 두고 여호사밧 왕이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여호사밧 왕이 주님께서 언약하신대로 실제로 도움을 받아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응답을 해주신 것을 오늘 본문 이후에 나오는 20장 14-19절에서 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 17절입니다.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여호사밧 왕은 이러한 응답을 받고 얼굴을 땅에 대고 주님께 경배드리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나갈 때 주님을 신뢰하고 선지자들을 신뢰하라고 하였습니다. 20장 20절입니다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그런 이후에 군대를 앞세우지 않고 이른 바 성가대가 군대 앞에서 행진하면서 주님께 찬송하도록 하였습니다. 20장 21절입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이러한 장면을 보면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면서 여리고 성을 도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호수아 6장 2-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이러한 것을 보면 주님께 권세와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막강해 보이는 군대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직 주만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이러한 권세와 능력이 있으신 주님을 오직 바라보게 되었고 주님께서 언약하신 언약을 믿고 주님과 선지자들을 신뢰하고 군대를 앞세우기보다는 주님께 찬송을 드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0장 22절입니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그리하여 앞서 살펴본 대로 연합군이 전멸되고 전리품을 사흘 동안 거두어들일 정도로 대승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승리는 주님께서 이기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20장 27절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다시 여호사밧을 선두로 하여 즐겁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이 그 적군을 이김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자, 어떻습니까? 언약을 지키시는 주님이. 연합군을 두려워하였으며 대적할 능력도 없고 어떻게 할 줄도 모르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까? 군대나 사람의 힘이 아니라 권세와 능력이 있으신 주님께서 언약을 지키시자 대승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우리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권세와 능력이 있으신 주님께서 언약하신대로 실제로 도와 주시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도와 주겠다고 말해 놓고서도 힘이 없어 돕지 못하게 되거나 약속을 어기므로 도와주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도와 주겠다고 언약하시면 언약하신 그대로 언약을 지키셔서 도와 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것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세기 17장 2절과 4절입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 언약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권세와 능력이 없으면 이룰 수 없고 언약을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면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해 주실 있는 권세와 능력이 있으시고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시므로 그대로 이루어 주셨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은 그러하신 분이십니다. 말씀이 헛되이 땅에 떨어지거나 이루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한 것을 이사야 55장 10-11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이러하신 주님이시므로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언약하신대로 우리가 요청드리는 간구를 들어 주시고 응답해 주셔서 도와 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의 요청을 들어 주시고 권능이 있으시고 언약을 지키시는 우리 주님을 바라보시고 간구하셔서 도움을 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셔서 오늘날 겪고 있는 개인과 가정과 생업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이 처해 있는 전염병과 전쟁과 같은 여러가지 위기 상황으로부터 구출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세 가지 주제를 총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직 주만 바라본다고 하였는데 과연 어떤 주님을 바라본다는 것입니까? 간구를 들으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권능이 있으신 주님을 바라보고, 언약을 지키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간구를 들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도움을 주실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있으신 주님을 바라보고, 도움을 주겠다는 언약대로 실제로 도움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아무리 거대한 연합군이 기세가 등등하게 쳐들어와도 도와 주셔서 전멸시켜 버리시고 전리품까지 풍성하게 거두게 해주신 주님께서 우리도 도와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총체적인 위기에 빠진 개인과 가정과 생업과 우리나라와 민족과 세계 열방과 교회가 오직 그러하신 주님을 바라보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셔서 주님의 도우심을 받게 되어 어둡고 악한 영의 문제와 산적한 난공불락의 문제들이 속히 해결되고 크게 승리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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