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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자료/기독칼럼27

[역경] 상대방 선수가 없이 치르는 경기는 없습니다 상대방 선수가 가로막지 않는 경기는 없습니다. 축구나 농구나 핸드볼을 할 때 상대방 선수가 기술과 키와 힘으로 골인시키지 못하도록 계속 막아섭니다. 그냥 가서 골인시키도록 놓아두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선수들이 경기를 아예 포기해버립니까? 상대방 선수가 막아선다고 포기하면 한 골도 넣지 못합니다. 그래서 선수들이 힘써 부딪치면서 나아갑니다. 상대방이 너무 세다고 주저 앉아 있지도 않습니다. 상대방을 제치고 슛을 날립니다. 골키퍼가 막고 있어도 슛을 날립니다. 배구도 상대방 선수들이 편안하게 마음껏 공격하도록 가만두지 않습니다. 블로킹을 해서 막아냅니다. 그러나 막는다고 해서 스파이크를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블로킹의 벽을 뚫고 내리칩니다. 야구도 투수를 비롯해서 모든 선수들이 막아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아.. 2015. 7. 17.
[회개] 회개할 때 천국이 더 크게 보이고 더 잘 보입니다 어떻게 해야 천국을 잘 발견할 수 있습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회개할 때 천국이 더 가까이 다가오고 그 천국이 더 잘 보입니다. 회개할 때 잘 보입니다. 세상일을 잘 포기해야 잘 보입니다. 주일 성수와 십일조와 전도가 이런 저런 세상일보다 더 커 보이면 잘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값진 줄을 모르면 잘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천국이 얼마나 좋은지를 발견한 사람은 천국뿐만 아니라 천국의 일도 매우 귀하게 여깁니다. 주일성수와 십일조와 전도를 귀하게 여기고 잘 지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싫어하고 버리라고 하는 것은 버리고, 사라고 하는 것을 사야 합니다. 여러분의 눈에는 지금 예수님이 제일 크게 보이십니까? 예수님을 믿고 나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사고 있습니까? 존 레이(John Ra.. 2015. 7. 17.
유다서가 보여주는 지도력 개발의 원리 - 예화자료 유다서가 보여주는 지도력 개발의 원리 - 예화자료 (이서영) 1. 영적 지도자의 정체성(1절) (1) 부르심을 받은 자 여호수아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발걸음을 따르는 데서 성가신 책임을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그의 지도자적 자질을 나타냈다. 여호수아는 모세보다 자신의 부적당함을 변명할 더 큰 이유가 있었지만, 모세가 자기의 부적당함을 변명한 것과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일에 대해서 신속하게 책임을 인정했고 자기 자신을 그 일에 드렸다. 엘리야가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할 때, 엘리사는 자기 주인에 의해 맡겨진 선지자의 직분에 대한 책임을 주저하지 않고 떠맡았다. 그는 떨어진 겉옷으로 주어진 권위를 받아들였고 지도자가 되었다. 각각의 경우에서 결정적인 요인은 거룩한 부르심에 대한 .. 2015. 7. 17.
[이서영] 있으면서도 마치 없는 것처럼 살자! [이서영] 있으면서도 마치 없는 것처럼 살자! 가진 것이 없으면 멸시천대를 받게 되어 있다. 아무리 그렇게 대하지 말라고 해도 세상인심이 그렇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치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처럼 살아갈 때 존중받게 된다. 아무리 뛰어난 현자이고 성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애초부터 가진 것이 없었다면 아무도 그런 사람을 존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조차도 모를 것이다. 뛰어난 지식과 재능을 가진 사람이 마치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살면 우러러보고, 높은 지위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낮은 자세로 살면 겸손하다고 하고,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알뜰하게 살면 검소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그렇게 살면 못나서 그렇다고 우습게 여기.. 2015. 7. 16.
어두움을 밝혀주시는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어두움을 밝혀주시는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인간적으로 잘 나가던 때의 바울은 성공한 인생, 대낮과 같은 인생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산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했고 성경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생활도 바르지 못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색출하는 일에 앞장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빛이 비추이자 영적인 어두움이 사라졌습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둠이 물러갈 수밖에 없듯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바울의 옛사람은 새로운 피조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하는 자에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전파하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전의 자신은 죄인 중의 괴수이었으며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2015. 7. 16.
십자가의 불을 꺼야 한다? “십자가의 불을 꺼야 한다?” 2012.09.26 16:47 입력 ▲이서영 목사 어느 시의 기독교연합회는 십자가의 불을 비추지 않고 십자가의 탑도 작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높은 십자가를 달지 않는 교회도 늘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꼭 맞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환호한다고 해서 다 맞는 것은 아닙니다. 빛이 공해라면 모든 간판의 불까지도 모두 꺼야합니다. 왜 유독 십자가의 불만 꺼야 속이 시원합니까? 새벽종소리가 시끄러워 소음이라고 끄라고 한 이후로 나라는 오히려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물질은 발달한 것 같은데 영혼이 파괴되어 이혼율, 자살율, 성폭력율 등의 온갖 사회적 병폐는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교회가 중대한 역할을 감당했을 때는 어려운 시대를 극복하고 영육 간에 큰 부흥을.. 2015. 7. 16.
고신이 서 있어야 할 곳 고신이 서 있어야 할 곳 2013.11.07 15:34 입력 ▲이서영 목사 최근 고신의 귀한 리더들이 많이 선출되셨습니다. 선출되신 모든 분들께 축하를 드리면서 부탁의 말씀도 아울러 드립니다. 고신의 리더들께서 우리 고신총회와 산하기관과 교회를 고신의 정체성에 맞게 잘 이끌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성경대로 살아내야 하는 구체화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대에 고신이 서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고민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고신은 수치와 크기 면에서 우위에 서 있어야 하는 교단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부심과 신앙은 순교정신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과 자신이 가진 모든 조건과 환경을 초월하여 오직 주님을 위해 살고, 오직 주님께서 주신 .. 2015. 7. 16.
예수님은 외형에 감탄하셨는가? 예수님은 외형에 감탄하셨는가? 수치는 우리로 하여금 병들게 만든다. 수치가 작으면 위축시키고 수치가 크면 으슥거리게 만든다. 수치가 작은 자와 수치가 작은 교회를 무시하고 업신여기게 된다. 그래서 서로 지지 않으려고 수치를 향상시키려고 혈안이 된다. 그러다 보면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이처럼 수치는 우리가 빠른 속도로 세속화되도록 만드는 강력한 도구이다. 예수님은 외형의 크기에 감탄하셨고 추구하셨는가? 아니다. 바리새인의 경건해보이는 겉모습에 감동받지 않으셨다. 오히려 겉만 깨끗하게 회칠한 무덤으로 비유하시고 책망하셨다.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보시고는 어떠셨나? 탄복하시고 참 잘 지었다고 하셨는가? 호화로운 성전이 얼마가지 않아 무너진다고 하셨다. 그것도 돌 위에 돌 하나도 얹혀 있지.. 2015. 7.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