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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아주시는 예수님 (눅 8:49~56) 손을 잡아주시는 예수님 (눅 8:49~56) 우리가 힘들어할 때 달려와서 도와주는 손길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손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거칠어진 손, 힘없는 손을 “꼭” 잡아주십니다. 예수님께서 2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신 것은 성도들의 손을 잡아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눈길은 어떤 눈길일까요? 바닷가에서 아침이나 저녁에 바닷물을 보면 물에 비친 태양빛 한 줄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빛줄기는 오직 나 자신만을 향해 따라다니면서 비춰줍니다. 여기가도 저기가도 계속 따라와서 비춥니다. 예수님의 눈길도 늘 성도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시골에도 도시에도 화려한 집에도 가난한 집에도 그 어디에 있어도 향합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할 것 없이 어느 누구에게나 바라보십니다. 예수님께서.. 2015. 7. 17.
[대강주일] 다 내게로 오라 (마 11:28) [대강주일] 다 내게로 오라 (마 11:28) 대강절은 대림절 또는 강림절이라고도 합니다. 대림절은 성탄 전 4주간을 예수님의 성탄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 절기입니다. 507년 투르 공의회에서 대강절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때는 성탄 전 40일간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9세기부터는 성탄 전 4주간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어떤 예수님을 맞이해야 할까요? 우리의 짐을 져주시는 예수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학업의 짐, 생업의 짐, 가정의 짐, 신앙의 짐, 건강의 짐, 가난의 짐, 인간관계의 짐, 무지의 짐, 무능의 짐, 사역의 짐, 죄와 사망의 짐 등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모두 져주시는 예수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눈앞이 캄캄한 상황을 만납니다. 해결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요즈음은 아.. 2015. 7. 17.
[추수감사주일] 감사가 주는 구원 (시 50:23) [추수감사주일] 감사가 주는 구원 (시 50:23) 원망 불평은 인간이 타고난 죄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가르치고 시험을 치지 않아도 저절로 잘 할 수 있는 것이 원망 불평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저절로 되기에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이 원망 불평의 독을 사람의 생각과 마음 안에 자꾸만 집어넣습니다. 원망 불평하기만 하면 관계가 깨지고 미워하고 기쁨이 사라지고 행복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되 더 풍성하게 주시지만 마귀는 죽이고 빼앗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러니 마귀가 이것을 얼마나 좋아하고 기뻐하겠어요? 이런 마귀에게 속고 마귀에게 지면 은혜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릅니다. 계속해서 투덜 투덜거리는 불만투성이가 됩니다. 그런 부하, 그런 자식, 그런 배우자를 좋아할 사람은 .. 2015. 7. 17.
예수님의 고민 (마 26:36~46) 예수님의 고민(마 26:36~46) 우리는 무엇을 고민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우리는 수많은 고민 속에서 살아갑니다. 자동차가 없는 사람은 자동차가 있어야 하는데 하면서 고민합니다. 그런데 자동차가 있는 사람은 주차하고 할부금 내는 것을 고민합니다. 돈이 부족한 사람은 돈이 넉넉하게 있으면 하고 고민합니다. 그런데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지키고 불리는데 고민합니다. 이래저래 고민거리가 참으로 많습니다. 자녀 양육 고민, 피부 고민, 취업 고민, 냄새 고민, 소음 고민 등등 고민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고민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고민을 하셨을까요? 예수님과 제자들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어떤.. 2015. 7. 17.
[종교개혁주일] 우리는 계속 개혁되어져야 합니다 (히 9:10) 국민일보 기사를 요약한 것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독일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95개 조항을 공표함으로써 종교개혁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개신교가 탄생했습니다. 루터가 교권주의 속에서 극도의 타락상을 보인 중세 카톨릭 세계에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주창했습니다. 493년이 지난 오늘날 개혁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지금 한국 교회가 처해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한국 땅에 오신다면 한국 교회를 향해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물질적 타락, 도덕적 타락. 교권주의, 기복신앙, 분열이 한국 교회에 만연되어 있다는데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믿음은 오용되고 있습니다. 수없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만 힘이 없습니다. 사회.. 2015. 7. 17.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들(3) - 행하지 않음(약 1:22)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들(3) - 행하지 않음(약 1:22) 세 주일 연속해서 우리는 자기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죄입니다. 로마서 7장 11절입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죄가 기회를 타고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자기 자신을 죽였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것은 자기 마음의 교만입니다. 오바댜 1장 3절입니다.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오늘은 우리 자신을 속이고 있는 마지막 세 번째 것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집집마다 직장마다 꼭꼭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거울입니다.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2015. 7. 17.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들(2) - 교만(옵 1:3)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들(2) - 교만(옵 1:3) 지난 주에 자기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은 무엇이라고 했지요? 죄라고 했습니다. 우리 자신을 속이고 있는 첫 번째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7장 11절입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죄가 기회를 타고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자기 자신을 죽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깨닫고 회개할 때 속지 않게 되고 스스로 속이지 않게 됩니다. 오늘은 우리 자신을 속이는 두 번째 것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상은 야곱의 형인 에서의 후손, 곧 에돔 족속입니다. 그들은 오늘날 이스라엘의 동쪽에 있는 요르단에 있는 세일 산에 살았습니다. 이 산은 에서의 별명인 ‘에돔’(붉음)처럼 붉은 바위로 이.. 2015. 7. 17.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들(1) - 자신의 죄(롬 7:11)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들(1) - 자신의 죄(롬 7:11) 이 세상에 분통이 터지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속고 사는 것보다 더 분통이 터지는 일은 없습니다. 철썩 같이 믿었던 사람에게 속으면 그렇습니다. 남편이나 아내, 그렇게 믿었던 사장과 직원과 거래처, 등등 다른 사람에게 속고 사는 것은 참지 못합니다. 그리고 물건을 샀는데 나중에 속고 산 것을 알게 되면 분통이 터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자기 자신에게 크게 속고 있으면서도 크게 분노하지도 크게 분통을 터뜨리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속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고 있습.. 2015. 7.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