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자료/신앙간증91 [강수경 장로] `주일 성수`는 우리 집 가훈 '주일 성수'는 우리의 믿음 고백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주일 성수'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만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나 스스로의 약속이었다. 왜냐하면 예배는 절대자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황과 형편이 어떠하든지 반드시 주일을 지켰다. 1969년 하나님의 은혜로 신실한 자매와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집 가훈은 '주일 성수'가 되었다. 어느 날 주위 사람들로부터 '어느 문구상이 잘 되는데, 그 문구상을 인수해서 사업을 해보라는 말만 듣고 계약을 했다. 계약 후 실제적으로 여러 가지를 살피던 중, 담배도 같이 판매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계약금이 아까웠지만 신앙인으로서 담배를 팔 수는 없었기에 계약금을 포기했다... 2018. 12. 7. [김진홍 목사] 어머니의 삭발 모정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시절 공부가 하기 싫고, 사는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가출을 하였습니다. 칫솔 하나를 주머니에 꽂고 헤르만 헤세의 시집 한 권을 들고는 일 년 반을 무전여행 다녔습니다. 경상남도로 전라도로 두루 다니며 바늘장사도 하고 볼펜장사, 화장품 장사를 하기도 하고, 식당에서 심부름도 하고, 농촌에서 머슴살이도 하는 등으로 지내다가 일 년 반이 지난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다니는 것이 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에 나이가 든 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집으로 들어가 공부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이젠 그만 돌아다니고 공부하겠습니다”라고 여쭈었더니 “그래 너는.. 2018. 12. 7. [김창인 목사] 세상의 부귀는 모두 헛된 것이지요 1917년 음력 10월에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에서 출생한 김창인 목사는 고려신학교를 11회로 졸업했다. 부친 김택연 씨와 모친 김택신 씨 사이의 5형제 중 3남으로 태어난 김 목사는 양친의 신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부모와 같이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많은 옥고를 치른 김 목사는 이북에서 사역하다가 1948년 월남해 고려파와 관계를 맺게 되었다. 김 목사는 어려서부터 부친의 신앙 인격을 배우고 이기선 목사로부터 목회자의 굳은 신앙의 절개를 배워 한국 교회에 큰 목회를 감당하는 사역자가 되었다. 그는 교회 건축이 끝난 만 70살을 맞은 해에 정년 제도가 없었음에도 자의로 사임하고, 퇴직금과 재산 일체를 교회에 헌금했다. 올해 96살이 된 김 목사의 과거 목회 회상과 말씀은 좋은 가르침이 되었다. 세.. 2018. 12. 7. [정명섭 이미영 선교사] 관심가져야 할 아프리카의 선교지 앙골라/모잠비크 아프리카를 품은 선교사 정명섭/이미영(1997년 파송) 1. 사역 개요: 앙골라 사역지를 현지인 제자들에게 이양하고, 70%가 넘는 가정이 하루 한끼만 먹고 있을 정도로 가난한 땅 모잠비크로 사역지를 옮겨 교회개척 사역과 결손가정 홈 사역을 전개하고 있다. 2. 주요사역: 교회개척 사역, 기아대책을 통한 아동결연 사역 450명 결연, 결손가정홈공동체 1곳 운영, 공동체 3곳 운영을 통해 모잠비크 사역자 양성, 목회자 예비 사모 훈련공동체 시작, 모잠비크 목회자 양성 사역, 지역주민을 위한 우물사역과 재래식 화장실 건축사역, 빈민촌 사역 및 문맹퇴치 사역. 3. 기도제목: 우니베르살 이단성 혼합주의 교회와 시오니즘 이단 및 악한 역사를 일으키는 무당 세력과 이슬람의 역사의 힘이 소멸되도록,.. 2018. 12. 7. [남부산 교회 김상권 장로] 선교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 * 장로님께서 지금까지 하나님과 동행해 오신 인생의 여정을 되짚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경북 구미 산골에 위치한 독실한 불교가정에서 자랐습니다. 3살 때는 '지보사'라는 절에 팔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6살 되던 해에 앞집에 살던 친국가 같이 교회에 가자고 저를 전도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 당시 가족들에게 받은 박해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형님에게 많이 맞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5,6학년 때부터 어른들을 따라 산을 하나 넘어야 하는 거리를 걸어가 부흥회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후 대구에서 미션스쿨인 성광고등학교 야간에 다니면서 신문배달, 공장일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졸업후 경북대 법대에 진학하여 3학년.. 2018. 12. 7. [류경순 사모] 선교는 내 평생의 사명 류경순 사모는 해운대신일교회 故 최도명 원로목사의 사모로 고신대학교의 전신인 칼빈신학대(신학교) 재1회 졸업생이다. 필립핀에 신학교 설립 후원을 했으며, 소련 사할린에 있는 선교사와 브라질, 일본 선교사 등 여러 나라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있다. * 사모님께서 특히 세계 선교에 많은 후원을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계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젊었을 때는 외국여행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괜히 돈을 낭비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외국여행을 통해 여러 나라의 문화를 접하고,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어렵게 생활하는 그들을 보며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들이 안타까워 전도를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겠다.. 2018. 12. 7. [이환용 장로]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한 평강한의원장 여의도 방송국에서 강남의 한의원으로 돌아오니, 벌써 한의원 앞에 환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환자들이 너무 몰려와서 화장실에 갈 틈도 없을 정도였다. 이제 평강한의원은 콧병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코 전문 한의원으로 이름이 났다. 보약을 짓거나 다른 진료는 사양해야 할 정도로 이름이 났다. 그러다보니 주변의 시샘이나 오해도 생겼다. 가난한 시골마을 출신에다 공부도 경주에서 했기 때문에 주변에 유명한 사람이나 힘있는 사람도 없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주님께 기도를 드렸고, 정직하고 솔직하게 대처했다. 내가 잘났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그것이 최선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식약청에서 전화가 왔다. 누군가 청비.. 2018. 12. 7. 주대준장로 간증집회( 바라봄의 법칙 저자 ) 저자(주대준장로) 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초등학교 때부터 고학으로 KAIST 공학 박사가 되기까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평생 멘토’로 바라보며 성장해 왔다. 성경 속 인물인 요셉을 역할 모델로 삼고, 요셉이 ‘애굽’이라는 다른 나라에 노예로 팔 려가 총리대신이 된 것처럼 자신 또한 청와대 입성을 꿈꾸며 기도하고 바라보았다. 그렇게 기도한 지 10년 만에 마침내 청와대에 근무하게 되었고, 청와대 출근 첫 날 부 터 하나님께서 ‘청와대 선교를 위해 자신을 청와대선교사로 파송하셨다’는 사명감으 로 청와대기독신우회 창립을 꿈꾸고 바라보며 기도했다. 기도한 지 2년 만에 청와대기독신우회를 창립하여 청와대와 공직사회 선교를 위해 생 명을 건다는 각오로 노력해 왔다. 전산직능의 전산실 팀장으로 청와대 근무를.. 2018. 12. 7. 이전 1 ··· 8 9 10 11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