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자료/신앙간증91 [정윤득 교장] 생명력 있는 학문의 전당 고신대학교 [정윤득 이사벨고등학교 교장] 생명력 있는 학문의 전당 고신대학교 고등학교시절, MRA 동아리 대표로 활동하면서 리더십을 키웠지만, 넓은 세상 가운데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으로 저의 인간적 기대와는 달리 고신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습니다. 당시 송도캠퍼스의 환경은 열악하였고 기대했던 대학의 모습과는 괴리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학교생활이 시작되면서 점점 개혁주의 신앙의 고백과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고신대학교에 입학하지 않았다면 신앙생활을 젣로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지금과 같은 교육현장에 사명자로 쓰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고신대학교를 .. 2018. 12. 7. [이복수 교수] 하나님의 은혜와 예비하심 하나님의 은혜와 예비하심 - 이복수 고신대학교 명예 교수 3. 교수가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처음에는 교수가 될 생각을 못했습니다. 신학과에서 목사 교육을 받고 신대원에 갔지요. 신대원에 가서 유학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고, M.Div(목회학 석사)를 마쳤지요. 박사학위 첫 1년간은 선교학이 아닌 다른 전공을 했어요. 목회자의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전공을 바꿔야 할 상황이 되어 선교학을 하게 되었어요. 선교학 과정을 마치자마자 마침 고신대학교에 선교학과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교수 자리가 생겨 바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게 딱딱 들어맞았던 상황들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으며 예비하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5. 교수님은 대학시절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셨나요?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서 저의.. 2018. 12. 7. [이한식 목사] 목회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한식 목사] 목회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나라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한지가 벌써 9년이 지났다. 이전에는 잠실중앙교회에서 부목사로 5년 반을 지냈고, 그 사이에 교회의 지원으로 미국에서 3년간 공부를 하고 왔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잠실중앙교회로 다시 올 때는 3년간의 공부와 미국 여러 교회들을 둘러보면서 생각한 것들로 인해 나름의 포부들이 참 많았다. 그 포부 중 하나는 이 나라에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 그리고 이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교회의 모습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개척교회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그랬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항상 내 생각과 다를 때가 많았다. 첫 부목사의 사역지로 잠실중앙교회로 부임하게 되었을 때에도 전혀 생각지.. 2018. 12. 7. [김진숙 동방사회복지회장] 명리를 품지 않고 고아와 과부를 품은 사람 명리를 품지 않고 고아와 과부를 품은 김진숙 동방사회복지회장 "오늘도 믿음으로 살자, 바르게 살자. 감사하며 살자, 겸손히 살자, 근검절약하자, 명리를 멀리하자"(고암 김득황). 입양아의 대모 동방사회복지회 김진숙 회장을 만났다. 평생 근검걸약하며 고아와 과부를 그리스도의 가슴으로 품었던 고 김득황 이사장의 유지를 따라 동방사회복지회를 섬기고 있는 김진숙 회장은 아버지가 생전에 자녀들에게 친필로 전해주신 말씀이 적혀 있는 액자를 보여 주었다. 동방사회복지회 설립자인 김득황 장로 아버지 김득황 박사는 고위 공직자 출신이다. 내무부 차장과 해외개발공사 사장을 지냈고, 궁정감리교회에서 32살에 장로로 임직을 맡았던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공직을 끝낸 1972년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선택.. 2018. 12. 7. [박도호(존 마이클 배튜) 교수] 개혁된 고신교회는 항상 개혁해 가야 합니다 [박도호(존 마이클 배튜) 교수] 개혁된 고신교회는 항상 개혁해 가야 합니다 김흥식 고신역사연구소 연구원 김흥식 연구원: 안녕하세요? 외교사절을 인터뷰하게 되어 좋습니다. 박도호 교수: 안녕하십니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의 정식 이름은 '존 마이클 배튜(John Michael Batteau)'입니다. 저는 올해로 만 66세입니다. 제 아내는 아름다운 네덜란드인 마그릿 소네펠트입니다. 저에게는 장성한 네 자녀가 있습니다. 이 중에는 한국에서 입양한 딸 수지도 있습니다. 아직 미혼이지요. 입양할 당시 수지는 소아마비가 있었습니다. 거동하는 것이 불편했지요. 하지만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독립적으로 운전도 하고, 일도 잘 합니다. 저는 세 명의 어린 손자들도 있습니다. 김 연구원: 교수님의 유년시절.. 2018. 12. 7. [이재술 장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기도의 응답임 [이재술 장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기도의 응답입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필자가 부산복음병원의 서무과장(재단총무 차장 서리 겸임)으로 부임하게 된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필자가 당시 거창고등학교 재단총무와 서무과장으로 일하면서, 고 전영창 교장 선생님과 함께 폐교 직전까지 갔던 거창고등학교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또 자립에 성공시킨 것을 알고 복음병원에 오라고 초청이 왔다. 그러나 그 당시는 초청이 왔다고 마음대로 사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필자의 가정형편상 고향인 거창을 떠날 수 없었는데, 당시 복음병원의 위기상황을 살펴보니 당면한 애로와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사건과 사고 수습 등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도하는 중에 하.. 2018. 12. 7. [양영자 탁구선수] `금메달 보다 귀한 천국 면류관` [양영자 선수] '금메달 보다 귀한 천국 면류관' 라켓으로 복음 전하는 양영자 선교사 고통의 손 잡아주신 하나님 "진통주사도 통하지 않았던 그때 하나님께 간구해 보라는 지인의 권유로 기도원에 들어갔어요. 완치의 확신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었죠. 그렇게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6년 동안 저를 고질적으로 괴롭히던 테니스엘보가 극적으로 치료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하나님을 만나 치료된 양영자 선교사의 삶의 목적은 달라졌다. 자신의 명예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다시 라켓을 잡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에도 간염으로 쓰러지는 등의 시련은 있었지만 양 선교사는 절망도 포기도 하지 않았다. "간염으로 연습량이 부족해 국가대표에서 탈락하고 말았을 때, 사람들은.. 2018. 12. 7. [김희신 목사] "나의 목회는 하나님의 은혜의 현장" [김희신 목사] "나의 목회는 하나님의 은혜의 현장이었습니다" 뒤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눈물의 기도와 동일하게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3형제, 그리고 지금까지 제가 지나온 교회들과 현재 제가 섬기고 있는 교우들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저의 목회를 되돌아보면 크게 4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이끄는 목회였습니다. 저는 주일학교 학생을 오랫동안 가르치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제가 지도한 학생들 중에는 벌써 교회의 중직자도 있으며, 또한 사회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멋지게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였습니.. 2018. 12. 7. 이전 1 ··· 6 7 8 9 10 11 12 다음